김형오 국회의장의 첫 말은 “지난 '2년 간 유보'되었던 비정규직 보호법이 오늘부터 시행됩니다”였다. 김형오 의장은 “정치권은 양대 노총과 함께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는 대량 실업의 가능성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머리를 맞댔으나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국민의 민생을 돌봐야 할 우리 국회가 미리 사회적 혼란 가능성에 대비하지 못하고, 결국 이 같은 상황에 이른 것을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장으로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비정규법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에게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2006년 11월 30일 당시 거대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20여 분 만에 본회의장에서 통과시킨 비정규법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노동위원회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이다.
기간제법은 사용사유 없이 사용기간만 정했으며, 파견법은 파견업종을 확대하고 불법파견이 발각되면 사용자가 반드시 직접 고용해야 하는 고용의제가 아니라 벌금으로 피할 수 있는 ‘고용의무’ 조항이 포함되었다. 차별처우 개선은 ‘개인’만 가능하도록 했다.
▲ 비정규법 시행 100일 토론회에서 이상수 노동부 장관/참세상 자료사진 |
법은 2007년 7월 1일부터 이미 ‘시행’되었다. 이 날부터 계약을 맺은 기간제 노동자들은 2년 후에는 정규직화 해야 하는 법이었다. 김형오 의장 말 따라 ‘유보된 법’이 아니라 2년이라는 사용기간을 정해 놓았기 때문에 정규직이 되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년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법이 생기니 사용자들은 2년 동안 마음껏 기간제 노동자들을 사용하고 2년이 되기 직전 해고하면 그만이다. 이것도 걸리면 사용자들은 비정규법 어디서도 규정받지 않는 외주로, 용역으로 자리를 채우면 그만이다. 불법파견도 하다 걸리면 벌금만 내면 끝이다. 차별시정을 비정규직 노동자 개인이 하면 계약만료를 이유로 해고하면 된다. 이 법을 만들어 놓고 당시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비정규법 시행일이었던 2007년 7월 1일 부채를 나눠주며 비정규직을 보호할 것이라 선전했다.
이렇게 구멍이 많은 법을 만들어 놨으니 7월 1일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매일 매일이 해고대란이다. 비정규법 시행에 맞서 외주화를 들고 나온 이랜드 그룹과 500일이 넘게 싸운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었고, 불법파견에 맞서 지금도 싸우고 있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비정규법이 비정규직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비정규법을 만들기 전부터 예상됐던 것이다. 2006년 3월 노동부가 은폐하다 걸린 보고서가 하나 있었다. “비정규법의 비정규직 보호 효과가 미미하다”는 내용이었다. 노동부 용역자료 ‘비정규 보호 입법의 시행효과’에서는 “법안 시행에 따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효과는 0.12%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을 만들기 전부터 정규직 전환 효과는 없고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거나 비정규직은 2년을 주기로 해고될 것이라는 정부의 예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은 2009년 7월 1일이 오도록 손을 놓고 있었다. 4대강 사업 23조에 100분의 1도 안 되는 1185억 원이라는 돈을 지원금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전부다.
▲ 참세상 자료사진 |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백만 해고설’을 들고 나와 비정규직 보호의 선봉에 섰다. 노동계가 우려했던 지점을 모두 자신의 논리로 만들면서 말이다. 비정규직의 해고를 막기 위해 법을 유예하거나 사용기간을 2년 더 늘려야 한다고 했다. 분명한 것은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규직화를 하기 싫은 사용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비정규직은 해고된다.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비정규법으로 해고된다. 1일 민주노총 기자회견에서 만난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렇게 말한다.
“기간을 이유로 해고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터져버리는 시한폭탄이 아니잖아요. 법은 지키라고 있는 거잖아요. 꼭 필요한 곳에서 지금 일하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