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노동위, 50년만에 무차대회 열어

종교계 최초 종단직속 노동위...“언제나 노동자 목소리 들을 것”

무차대회는 승속과 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여 법문을 듣고 잔치를 열어 공양을 베푸는 불교의 오래된 전통이다. 오래동안 맥이 끊겼던 무차대회가 통합 조계종단 출범 50년만에 열렸다. 오래간만의 무차대회에서 조계종의 스님들이 함께 공양을 나누고 싶었던 이들은 ‘노동자’들이다.

29일 저녁 조계사 마당에는 가사장삼을 입은 스님들과 남색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이 한데 모여 앉았다. 종교계 최초로 종단 직속으로 설립된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초대해 개최한 무차대회가 열린 때문이다.


조계종 노동위원회는 지난 4월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쌍용자동차 김정우 지부장과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노동현안에 대한 불교적 대안을 찾을 것을 약속했던 자승스님은 지난 21일 ‘조계종 노동위원회 설치와 운영에 관한 령’을 제정 공포했다. 이후 27일에는 노동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조계종 노동위원회는 무차대회에서 노동자들과 직접 만나 공양을 나누며 노동현안과 노동자들의 고충을 듣고 이후의 활동 방향을 결정한다.

조계종 노동위원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은 양한웅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는 “종교계를 통틀어 종단 직속에 생긴 첫 노동위원회”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무차대회를 “조계종단의 본산인 조계사에서 조계사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초청해 함께하는 행사”라는 사실을 짚으며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향후 노동운동 진영에 작지 않은 도움과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차대회는 22번의 타종으로 시작됐다. 쌍용자동차에서 희생된 22명의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22번의 타종엔 쌍용차지부와 재능교육지부를 비롯한 각 투쟁사업장의 대표 22명이 올라 의식을 진행했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은 “그동안 불교계가 사회의 아픔을 함께해야 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었다”며 “노동위원회가 노동현장의 신음소리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고 위로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상시적 기구가 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의헌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도 “지금 우리사회는 최선을 다해 일해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오래 일한 직장에서 쫓겨나 죽음에 이르는 불평등의 시대”라며 “지금이야말로 생명과 노동이 평등하다는 무차대회의 정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앞장서 뜻있는 종교계 인사들이 더욱 노동현안에 관심을 갖고 연대의 손을 내밀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며 조계종 노동위원회의 역할을 당부했다.


무차대회의 저녁공양 배식은 자승스님과 도법스님, 노동위원장인 종호스님 등 조계종의 스님들이 직접 맡았다. 조계종 스님들은 직접 노동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고 함께 식사를 하며 노동 현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은 “노동위원회 설치와 무차대회가 노동자들의 마음에 큰 위로와 격려가 됐다”고 전했다. 김정우 지부장은 “노동위원회가 앞으로 쌍용자동차를 비롯한 노동현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며 조계종 노동위원회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노동위원회의 앞으로의 활동방안에 대해 양한웅 집행위원장은 “주로 당면한 노동 현안과 투쟁현장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힘이 될 수 있는 활동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고 밝혔다. 조계종 자성과쇄신 결사추진본부와 노동위원회는 향후 100일 도보순례 등의 일정을 기획하고 있다.


노동위원회는 무차대회에서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을 위해 올리는 서원문’을 발표했다. 서원문은 “소외된 노동자 이웃을 초청하여 함께하는 무차대회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고 존중, 보호하여 소박하고 정의로운 삶이 빛나는 평화 공동체를 가꾸는 불교인으로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밝혔다.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모든 이에게 차별이 없는 무차대회의 정신을 살려 소외된 노동자와 이웃들에 부처의 자비를 전달 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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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노동위원회 , 무차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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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홧팅

    불교계가 노동운동에 도움이 되는 기구를 설치했다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건투하시길 바랍니다.

  • 노동자

    1997년 총파업 이후 단위노조(투쟁사업장)의 대부분은 자본가 정권의 탄압으로 스러졌다. 노동연대체인 민주노총은 단위노조가 탄압으로 없어져도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노동자의 투쟁이 아주 수세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노동자 정치투쟁이 의회로 가면서 부터 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주의적인 건강한 흐름의 조직과 투쟁 또한 없었다. 노동자들이 공세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수세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것이 어쩌면 쌍용차 투쟁이다. 쌍용 자본가가 거짓말하고 기회주의적이고 노동자 탄압하니 노동자들은 충격받아 자살하고 남아 있는 노동자들도 힘겨우니 해결해 달라는 것이 투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세적 대응의 극치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자본의 탄압으로 죽어가는 노동자가 비단 쌍용차만은 아닐 것이다. 수세적 대응은 종교에서 나서기 마련이다. 노동자들이 힘이 있어 파업투쟁이 한참일 때는 종교 지도자들이 나와서 파업자제하라고 하는데...노동자 투쟁이 종교의 거시기에 묻히질 않길...공세적 투쟁의 발판은 언제쯤 전개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