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법 시행 5년, 세상은 달라졌나?

당사자 권리의식과 장애인인권 인식은 상승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5주년을 맞아 성과와 한계, 과제 등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10일 늦은 2시 상공회의소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출처: 비마이너]

장애인차별금지법(아래 장차법) 시행 이후 장애인당사자의 권리의식과 장애인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지만 제도적, 정책적 측면에서 사회변화를 이끄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따라 실효성 확보를 위해 장차법을 재정비하면서, 최근 제정 운동이 추진 중인 장애인권리보장법과 발달장애인법과의 연동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보건복지부는 10일 늦은 2시 상공회의소 국제회의실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5주년 성과와 평가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1부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5주년 성과 및 평가'와 '2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성 이행을 위한 영역별 평가 및 제언'으로 진행됐다.

1부 토론회에서 장추련 서재경 활동가는 장차법 시행 이후 1577장애인차별상담전화 '평지'를 통한 차별상담과 정당한 편의제공에 대한 모니터링 활동을 소개한 뒤 이 과정에서 가장 대응하기 어려운 부문으로 고용 영역을 뽑았다.

서 활동가는 "현재 장애인고용차별은 매우 심각하지만, 회사 내에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느 수준에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실태자료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장애인 민간단체는 개인정보 보호라는 측면에서 민간기업체에 대한 조사를 시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서 활동가는 "따라서 정부는 앞으로 장애인 민간단체가 고용에서의 정당한 편의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아울러 장애인 민간단체가 매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도록 정부의 재정적 지원도 제공돼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서 활동가는 "또한 현재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위한 운동이 추진되고 있는데 장차법에도 발달장애인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필요한 정당한 편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면서 "또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위한 운동에서는 앞으로 권리옹호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제도와 장차법이 어떻게 연동해야 할 것인가는 향후 풀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인권위 장애차별조사기획팀 조형석 팀장은 "장차법은 개인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라는 점, 단계적 시행에 따른 의무이행 대상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 실효적 이행을 위한 관련 법률이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조 팀장은 "따라서 장애인의 실질적이고 동등한 사회참여를 위해서는 장차법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이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라면서 "실무적으로 보면 일부 조항에서는 직접차별에 대한 내용만 규정하고 정당한 편의제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거나, 차별에 대한 내용을 너무 포괄적으로 규정해 적용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조 팀장은 "하지만 장차법 시행 이전까지 인권위에 접수된 차별사건 중 장애차별 사건 비중이 20.4%였다가 시행 이후 53.2%로 급증했다"라면서 "장차법 제정이 장애인의 인권의식을 제고시키는데 큰 기폭제가 된 것은 분명하다"라고 덧붙였다.

  1부 토론회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서재경 활동가가 제도적 미비로 민간단체가 고용 영역에 대한 상담과 모니터링을 할 수 없는 문제점을 지적한 뒤에 발달장애인법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흐름에 맞춰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이어 2부에서는 고용, 교육, 사법·행정서비스, 재화·용역의 제공 및 이용 영역의 차별에 대한 장차법의 평가와 과제에 대해 논의가 진행됐다.

고용 영역을 맡은 동의대 사회복지학과 유동철 교수는 "장차법 시행 이후 장애인 고용률이 다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지만, 이것이 장차법의 영향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라면서 "또한 고용영역이 장차법의 핵심 영역임에도 차별진정 비율은 오히려 다른 영역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밝혔다.

유 교수는 "고용 영역의 진정사건 유형을 살펴보면 모집, 채용(39.1%), 퇴직, 해고(22.5%) 순으로 진정사건 접수가 많아, 고용의 첫 관문에서 진입 장벽이 높을 뿐만 아니라 채용이 되더라도 비장애인보다 퇴직, 해고 등에 있어 열악한 제도 및 환경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의무고용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장애인 차별 금지는 필수적이지만, 장차법의 원조 국가인 미국에서도 장애인보다 더 나은 능력이 있는 비장애인을 채용하는 것은 합법적이었기에 법 시행 이후에도 장애인고용률은 큰 변화가 없었다"라면서 "따라서 차별받은 장애인의 진정이나 소송을 도와줄 수 있는 권리옹호제도를 도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고용평등전략을 보완적 조치로 활용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교육 영역을 맡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기룡 사무처장은 "현행 장차법으로는 간접차별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한, 차별행위가 발생했을 때 이를 명백히 차별로 규정하고 권리를 구제할 수 있는 절차를 밟아 나갈 수 있는 규정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예를 들면 지난 5년간 특수학급 설치에 관한 진정이 교육 영역 진정사건의 20.1%에 달하지만, 현행 법규에서는 이를 차별로 볼 수 있는 분명한 근거가 없어 지난 2009년에는 특수학급 증설의무 이행청구 소송이 각하되는 사례도 있었다"라고 전했다.

김 사무처장은 "또한 장차법 시행으로 교육 현장에서는 정당한 편의제공 지원에 1조 원에 가까운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아직까지도 장차법을 이행하기 위한 소요예산을 별도로 책정해 운영한 사례는 발견된 적이 없다"라면서 "그럼에도 지난해 정당한 편의제공 요구와 관련된 진정 건수는 15건에 불과했는데, 관련 조항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실용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 사무처장은 "따라서 실제 발생하고 있는 교육 차별 상황을 장차법에 조문화하고,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경우에는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항 내용을 수정, 보완하는 방향으로 장차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2부 토론회에서 고용 영역을 맡은 동의대 사회복지학과 유동철 교수가 토론하는 모습 [출처: 비마이너]

사법·행정서비스 영역을 맡은 법무법인 지평지성 임성택 변호사는 "장차법에 따른 차별구제기구는 인권위, 법무부 장관, 법원이 있는데 이중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곳은 법원"이라면서 "그러나 장애인들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훨씬 높고 구제가 용이하기에 시정 권고 권한밖에 없는 인권위를 찾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임 변호사는 "사법부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 장애인의 헌법상, 법률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정책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라면서 "장애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제공이 이루어져야 하며, 나아가 장애인의 인권침해나 차별행위에 대해 적극적인 권리구제를 하는 판결이나 결정도 많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화·용역의 제공 및 이용 영역 평가를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 윤정노 변호사는 "이 부문은 생활 영역과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어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영역에 해당하며 진정 접수도 가장 많다"라면서 "그러나 권고 자체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권고의 내용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피진정인의 자발적 이행이 필수적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윤 변호사는 "또한 법원에서 시각장애인의 공중목욕탕 입장 거부 사건에 대해 장차법상 차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판례가 있다"라면서 "이 판례를 보면 정당한 사유 여부에 너무 신중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장차법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정당한 사유 여부를 판단할 때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종합토론에서 한 발달장애인 참가자가 “장차법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알기 쉬운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을 경우 차별로 규정하는 조항 등이 없어 발달장애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 조형석 팀장은 “인권위에서도 전부터 이러한 문제를 알고는 있었으나, 과연 어디까지를 알기 쉬운 정보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라면서 “그래서 현재 이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태이며, 앞으로 연구 용역 결과가 나오면 그 기준에 따라 권고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 함효숙 활동가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전과 시행 이후 달라진 점에 대해 수화로 이야기하는 모습 [출처: 비마이너]

한편 이날 토론회 1부에서는 장애인당사자들이 직접 나와 장차법 시행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비교해 발표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 함효숙 활동가(청각장애 1급)는 "장차법 시행 이전에는 불편해도 불편하다고 못 했고, 권리를 침해받아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라면서 "그러나 장차법 시행 이후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함 활동가는 그 예로 수화언어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 확산, 관공서·법원·경찰·고궁 등에서 수화통역 제공, 자막방송의 활성화, 대중교통 문자서비스 등을 뽑았다.

함 활동가는 "비장애인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해졌다는 것과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장차법 시행 이후 달라진 것"이라며 "그러나 여전히 청각장애인으로 불편함이 큰데 나와 같은 청각장애인의 권리 침해를 줄이는 것이 바로 장차법의 제정 목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김신지(시각장애 1급) 씨는 "한 체육시설에서 이용을 거부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전에는 내가 불편을 호소하고 선처를 바랐다면 장차법이 있어 이제는 시설이 나에게 이행할 수 없었던 어려움과 사정에 대해 호소하더라"라면서 “그러나 아직도 많은 장애인당사자가 장차법의 존재를 모른다. 많은 장애인당사자가 장차법을 응원군 삼아 활동하기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한편,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5주년 성과 및 평가 토론회는 이날 서울을 시작으로 11일 광주, 16일 대전, 17일 대구, 18일 부산, 25일 제주에서 차례로 열릴 예정이다.(기사제휴=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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