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반동의 제국주의, 전쟁은 지속된다

[특별기획]세계화에 저항하라(3)
반동의 제국주의, 전쟁은 지속된다<1>

이라크의 상황은 점점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팔루자를 중심으로 연일 이어지는 이라크 게릴라 조직의 공세는 날로 격화하고 있고, 미국이 지원하는 이라크 임시정부의 치안 능력은 임시정부 스스로도 신뢰하지 못할 수준이며, 미군의 치안유지 능력도 그린존이라 부르는 안전지대 내에서조차 확보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이라크 임시정부의 전국총선거의 일정이 다가올수록 저항세력의 총력전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이며, 설사 총선거가 치루어지더라도 이를 통해 새로 신설되는 정부가 최소한의 통치능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9.11 이후 미국의 모든 문제는 마치 빈 라덴이라는 한 인물과 그를 따르는 알카에다라는 소수의 무리 때문에 생기는 것처럼 떠들던 때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리고 나서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사담 후세인이라는 광인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되었고, 후세인 정권의 붕괴와 후세인의 체포로 모든 일이 종료될 것처럼 선전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자 이제는 알사드르라는 새로운 인물이 마치 모든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빈 라덴과, 후세인과 알사드르는 직접적 연관이 있는가? 아니면 이번에도 알사드르가 제거된다면 그 후에 또 새로운 알사르드와 후세인과 빈 라덴이 계속해서 출현하게 될 것인가?

9.11과 이라크가 직접적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알카에다 지원이라는 근거로 이라크 전쟁이 개시되었고, 그 두 가지 근거는 미국의 자체 조사를 통해서도 근거가 없다고 확인되었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알카에다와 이라크라는 연관성 없는 두 이야기를 연계시켜 대대적인 군사적 작전을 전개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보통 폴 울포위츠나 존 볼튼 같은 신보수파와 이들과 연계한 럼스펠트나 체니 같은 강경 매파가 이런 미국의 군사적 팽창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이 단기간의 군사작전으로 중동지역의 안정적 질서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너무나 낙관적 전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신보수파가 자신들의 이라크 전략을 수정하지는 않았으며, 그 때문에 다가오는 미국 선거에서 부시가 미국 대중의 지지를 잃어 재선에 실패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미국의 정치지형에서는 신보수파의 판단오류를 덮고 지나갈 만큼 이들의 전반적 세계질서 재편에 찬성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이미 깊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전쟁은 9.11 사건과 직접적 연관 속에서 촉발되었다. 9.11 사건이 터진 직후 열린 백악관 고위 참모회의에서 미국의 신보수파를 대표하는 국방부 부장관 폴 울포위츠는 이미 9.11에 대한 직접 대응으로 이라크를 공격할 것을 주장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정 국가에 기반한 조직이라기보다는 강력한 반미 이슬람 근본주의 초국가적 네트워크 조직이라 할 수 있는 알카에다와 미국의 신경을 거슬리는 행동을 반복해 온 이라크 모두 미국중심의 세계질서 유지에 위협이 되는 세력이었지만, 9.11 사건 전까지 양자에 대한 공격 명분을 하나의 연결선 속에서 찾을 수는 없는 상태였다. 9.11은 미국에 위협이 되는 이런 대표적 두 세력에 대해 동시에 본격 전쟁을 개시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더 나아가 이런 전쟁은 이후 미국의 잠재적 적들로 확장될 수 있다.

이런 세계적 변화가 발생하는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탈냉전 시기 세계질서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대치로 특징지워진 냉전 시대는 또한 '발전주의' 시대라고도 지칭된다. 이 시기는 과거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신생 민족국가들이 각 국가별로 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함으로써 전반적으로 전 주민의 부(富)가 상승해갈 수 있다는 환상이 공유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럴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는 사회주의 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의 거대한 위협에 직면한 세계경제의 주요 기득권 세력들이 어쩔 수 없이 이런 위협을 포섭해들이기 위해 제한적이나마 위협세력들에게 양보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그런 양보를 강요한 핵심적인 조건이 되었으며, 자본주의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이탈하여 독립적인 폐쇄적 경제 건설의 과정을 추진하긴 했지만, 이런 사회주의 국가 자체도 발전과 '따라잡기'라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한 바 있다. 자본주의 진영 속에 남아서 독립한 국가들 또한 미국의 전지구적 발전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제한적으로나마 발전의 환상을 지탱하는 근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의 부담이 걷히자 자본활동에 대한 굴레는 사라졌고, 정치적 고려가 우선시되지 않자 자본축적의 논리에 따라 더 많은 부가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고, 세계적으로 배제되는 지역은 점점 더 확대되어 갔다. 선별적으로 포섭된 지역들이 일시적으로 자본투자의 혜택을 받긴 했지만, 사회경제의 불안정성은 전례없이 커졌고, 아프리카처럼 자본투자로부터 배제된 지역은 생존의 갈림길에 놓일만큼 피폐해져 갔다. 이로서 제3세계를 포섭해 들여야 하는 '발전주의 시대'도 끝이 났다.

그러나 이런 냉전의 해체와 자본의 자유의 확대가 세계질서를 안정적으로 만들지는 못하였다. 발전주의의 신화가 무너지고 배제된 지역이 늘어나자 그동안 세계를 냉전적 구도 속에서 통치해왔던 틀 또한 무너졌고, 이전과는 다른 동일성(정체성)을 내건 다양한 집단들이 등장하여 위기에 빠진 민중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붕괴한 구사회주의권에서는 인종이 새로운 동일성의 중심으로 등장하면서 끊임없는 분할과 그에 따른 증오가 폭발하여, 이른바 '인종청소'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인종의 분할선에 덧붙여 냉전시대 이루어진 과잉군사화의 유산이 남아있는 아프리카 지역 같은 곳에서는 군벌을 중심으로 한 인종의 적대가 증폭되고있다.

냉전 시기 과잉군사화한 정권의 유산이 남아있는 동시에 중요한 자원을 확보한 지역에서는 새로운 지역적 맹주로 떠오르려는 국가들도 등장하고 있다. 이라크 문제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부각되었다. 9.11 사태는 그런 변화의 결과였고, 미국의 세계전략에는 근본적인 전환점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전략적 전환에는 부시정권 등장의 배후에 있던 신보수파라는 세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1990년대 미국이 변화하는 세계구도에 적절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미국에 적대적인 세력들이 힘을 얻어가도록 방관하였으며, 세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고 본다. 이들은 안정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미국 중심이 세계의 정치적 군사적 절대우위를 확보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잠재적인 적대세력들이 실질적인 힘을 갖기 전에 선제공격, 나아가 예방전쟁까지 동원하여 위협요소를 뿌리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미국은 다른 나라의 주권의 제약을 받아안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군사적 행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재건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예방전쟁이란 쉽게 말해 2차대전 당시 독일이나 일본이 전쟁을 개시하기 전에 미국이 먼저 이런 위협국가들을 초토화했다면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주권국가들 사이의 세력균형과 미국의 핵 우위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는 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국가가 그 내부의 위협세력을 통제하지 못할 때 미국이 직접 위협세력의 제거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한 것이다.

이런 신보수파는 미국이 미국의 요구를 인정하는 국가들과 협조는 유지하되, 의제는 미국이 설정하는 '다자적 일방주의'의 틀을 확대해 갈 것을 주장한다. 9.11은 미국의 저류에 깔려있던 이런 신보수파 세력의 논리가 정치적 전면에 드러나는 계기였으며, 이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내걸고 알카에다를 넘어서 이라크 공격으로 나아간 것은 이처럼 새로운 세계질서 수립에 도전이 되는 위협세력의 제거라는 목적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라크 전쟁에서 알카에다와의 연계나 대량살상무기라는 구실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미 국민들 사이에서 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다는 위기감을 극대화함으로써 미국의 세계전략의 대대적 전환을 추동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현재의 세계 구도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것을 한 세기 전의 세계상황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한 세기 전의 세계는 '제국주의 시대'로 특징지을 수 있다. 헤게모니 국가인 영국의 뒤를 잇는 잠재적 헤게모니 국가간 경쟁이 제국주의간 치열한 경합으로 나타났고, 이것이 식민지화의 경쟁과 제국주의간 전쟁으로 이어졌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금융세계화를 통해 가속화되었고, 여기에 전지구화 또는 세계화의 전사가 놓여있다. 현 시기 세계화나 미국중심의 세계구도의 변화 또한 유사하게 금융세계화로 시작되었고, 미국헤게모니의 약화에 따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세기 전과 비교해 볼 때, 현 시기에는 특히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의 위상과 관련해 적어도 세 가지 다른 점이 눈에 띤다.

첫째는 군사력이 이례적으로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에 집중되어 있고, 이 추세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어, 미국에 군사적으로 전면적으로 도전할 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점이다.

둘째는 자본 또한 새로운 중심지로 집중되기보다는 미국에 집중되고 있고, 이것이 미국의 '신경제' 현상을 지탱하였으며, 이 때문에 미국을 전면적으로 대체할 새로운 경제대국이 등장할 가능성도 당분간은 낮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한 세기 전 민족해방 운동이나 사회주의 운동처럼 조직된 형태로 기존의 세계권력에 도전하는 사회운동이 현재는 관찰되지 않고 분산된 저항들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한 세기 전에 비교할 때 약화된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으로서는 변화의 추세를 역전시키기에 매력적인 조건이 많이 있고, 미국이 세계적 상황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반전시키려는 노력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엄청난 무역수지 적자와 또 새롭게 늘어날 재정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부와 권력을 미국에 집중시키는 형태로 세계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자원과 의도를 당분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9.11이라는 상황은 이것을 추동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조건도 당분간 제공하였다. 이런 조건 하에서 당분간 세계질서의 구도는 한 세기 전과 달리 북-북 사이의 갈등(즉 한 세기 전의 제국주의 전쟁)은 최소화하고, 대신 북-남 사이의 갈등은 강화할 것이며, 그것은 '문명의 충돌'이나 인종주의적 적대의 외양을 띠고서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이런 질서의 유지를 위한 극단적인 군사화와 세계적 부의 소수로의 집중, 그리고 자유주의의 최소한의 외피마저도 상실한 노골적인 힘의 논리를 대가로 추동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미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의 사망자가 1천 명을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계획된 안정화 일정을 진행할 수 없는데서 볼 수 있듯이, 미국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가 곧바로 안정적인 세계질서의 수립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과, 국방비를 중심으로 재정지출이 대폭 증가하면서 적자재정이 다시 심각한 문제가 되어감에 따라 지금과 같은 방식의 군사적 전면 개입의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스스로 이런 전략으로부터 물러설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전쟁은 더욱 장기화하고, 그 정치적ㆍ경제적 비용을 분담시키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늘어갈 것으로 보인다. 전쟁에 발을 담그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전쟁의 전선은 자연스레 넓어지고, 그 관련국가들이 공동의 안정적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군사적 팽창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새로운 세계질서 수립에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을 수 없는 구도 또한 예상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안정적 축적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도전없는 세계질서를 수립하여 대서양 공동지배의 시대를 지속시키는 동시에, 중동의 풍부한 석유자원에 대한 안정적 지배구도를 형성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세력을 최소화한다는 목표는 미국이 중동에서 군사적 개입을 통해 달성하고 싶어하는 것들이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이 내미는 당근이라고는 중동에서 '미국식 민주주의'를 확대한다는 허울뿐인 이상 외에 달리 없는 상황에서 전쟁이 조기에 끝나기를 기대를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신보수파 스스로도 '좋은 제국주의자'를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목표는 세계의 안정 자체가 아니라 불안정을 초래하더라도 좀 더 확실한 미국 중심의 질서의 틀을 짜는 것임을 공언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안정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전쟁은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라 이제 우리 모두의 삶을 위협하는 일상적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 기획을 시작하며
○ 1회(9. 9) 세계화 10년, 저항의 세계화
[취재] 지금은 다 개방중 - 이정석 기자
[인터뷰] 반세계화운동의 동원전략과 정치적 방향 수립을 - 이창근
○ 2회(9.16) 미 제국주의와 반제, 반전 운동
[기고] 전쟁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지속적인 투쟁에 대하여 - 박하순
[좌담] 원영수 vs 최일붕
- (좌담上) 세계 반전운동, 반세계화운동 만나 급진화
- (좌담下) 한국 반전운동, 중장기적 전략을 가져야 한다
○ 3회(9.23) - 반동의 제국주의, 전쟁은 계속된다
[기고] 반도의 제국주의 전쟁은 계속된다 - 백승욱
[취재] 침략과 점령에 저항하라 : 베이루트2004 전략회의 리포트 - 정영섭
[번역] 베이루트 2004 : 부당한 전쟁에 대항하는 전지구적 투쟁의 이정표- 월든 밸로
[영상] 반전의 목소리들
○ 4회(10. 5) - [기고/취재] 한-미동맹의 현주소와 한반도 전쟁 위기
○ 5회(10.12) - [기고] 무한 자본시장 확장의 결절점, 지역블록화
○ 6회(10.19) - [기고/취재] 아시아 황금시장 노리는 초국적자본
○ 7회(10.26) - [기고/좌담] 초국적자본이 점령한다(1) : 의료,교육,스크린,방송,에너지 개방
○ 8회(11. 2) - [기고/대담/취재] 초국적자본이 점령한다(2) : 금융세계화와 투기자본의 횡포
○ 9회(11. 9) - [대담/취재] 초국적자본이 점령한다(3) : 산업공동화, 한-일FTA, 기업도시
○ 10회(11.16) - [대담] 자본의 세계화와 저항의 세계화

[특별기획] "세계화에 저항하라"
세계화 10년, 저항의 세계화<1>-지금은 다 개방중
세계화 10년, 저항의 세계화<2>-“반세계화운동의 동원전략과 정치적 방향 수립을”
[좌담上] 세계 반전운동, 반세계화운동 만나 급진화 -미 제국주의와 반제, 반전 운동<2> - 원영수 vs 최일붕
[좌담下] 한국 반전운동, 중장기적 전략을 가져야 한다
덧붙이는 말

백승욱 씨는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 활동을 하고 있다.

태그

반전 , 제국주의 , 전쟁 , 신보수주의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백승욱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