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지역화, 초국적자본의 이중 전략

[특별기획]세계화에 저항하라(5) - 무한 자본시장 확장의 결절점, 지역블록화<1>

세계화 만큼이나 새롭지 않은 지역화

‘지역화’란 국가 간 경제 활동이 일부 지역에서 심화․확대되는 것으로, 지리․문화적으로 근접한 특정 지역 내에서 무역, 투자, 자본 이동 등 경제활동의 상호 의존관계가 심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지역화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같은 지역 내 혹은 지역간 협력을 위한 느슨한 형태의 협의체, 보다 구속력이 높은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지역화, 또는 단일통화권을 형성한 유럽연합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의 통합 수준을 보인다.

사실, 특정 지역 내 무역 및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각종 형태의 경제협력체는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유럽연합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추진되기 시작했고, 아세안(ASEAN)도 196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 간 무역, 그리고 이에 따른 세계화가 세계 자본주의 발전 과정 속에 늘 존재했듯이, 지역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즉, 세계화가 새로운 것이 아니듯 지역화 역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 양자간 또는 지역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지역화에 그토록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낯설었던 지역무역협정과 ‘지역화’가 왜 화두이자 우리가 대응을 해야 할 사안으로 부각되고 있는가? 이는 세계화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확장하는 데 핵심 이데올로기이자 기제이듯이, 지역화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 세계적으로 강제하는 데 있어 자본의 핵심 전략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세계화와 지역화는 늘 동전의 양면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지역화가 세계화와 더불어 특히 요즘 자본의 핵심 전략이 되고 있는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다자주의 체제의 위기이다. 1999년 시애틀에서 개최된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장외 강력한 반세계화 시위와 장내 개도국들의 집단적 반발로 무산되고 2003년에 또 한 번의 좌초를 겪은 후, 협상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자 강대국들은 대안적인 방법을 고안해냈다. 즉, 146개국이 모두 모여 협상하는 것이 어렵다면, 일대 일로 내지는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해당 지역부터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경제협력체나 공동체를 보다 강화하여 자유무역지대로 발전시켜나가는 한편, 양자간 또는 지역 자유무역협정(FTA)을 새롭게 체결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WTO는 개별 FTA가 더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추진해야 함을 규범 상 명시하고 있어 자본 강대국들은 WTO를 통해 못다 이룬 꿈을 오히려 양자간 또는 지역FTA를 통해 보다 강력한 수준으로 실현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WTO 출범 전보다 출범 후, 그리고 출범 직후보다 지난 3-4년 사이에 점점 더 많은 수의 FTA가 체결되고 있다.(GATT 출범 이후 1994년까지 통고된 FTA가 124개였는데 반해 WTO가 출범한 1995년 1월 1일 이후 통고된 협정은 130개로 지난 8년 동안 통고된 FTA가 이전 47년간의 그것을 능가하고 있다. 또한 80여 개의 협정이 아직 WTO에 통고되지는 않았지만 실제 협상중이며 2005년까지는 총 300개 이상의 지역무역협정이 발효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두 번째 요인은 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를 특정 지역 내에서 봉합함으로써 이에 대응하고, 동시에 기타 지역과의 경쟁 속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데 있다. 예컨대, 아시아 지배엘리트는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 앞에 무력했던 아세안(ASEAN)을 강화하고 아울러 한국, 일본과 중국을 합해 ‘아세안+3’을 형성(한중일 및 아세안 간 자유무역협정 체결)하고 궁극적으로 아시아 경제통합을 이루려 한다. 또한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미주대륙 전체로 확장하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의 시작과 유로화의 출범이 불과 1-2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아시아, 미주대륙과 유럽이 해당 지역을 통합하여 엔화와 달러화, 그리고 유로화를 중심으로 독점체제를 강화하고 이윤율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즉, 지역블록을 통해 타 지역의 특정 국가가 전세계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을 견제한다는 의미(예를 들어, 아래에서 언급할 남미공동시장)에서 세계화와 지역화가 대립되는 듯 보이기도 하나, 이 둘은 사실상 동전의 양면이며 궁극적으로는 자본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상호보완적인 전략이자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지역 내에서 나아가 전세계에 동시적으로 확장시키고 추진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미주대륙의 통합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1994년 1월)이 발효되자마자, 즉 1994년 12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개최된 1차 미주정상회담을 통해 제안되었다. NAFTA는 미국, 캐나다와 멕시코 3개국 간 체결된 협정인데, FTAA는 동일한 협정을 미주대륙 전역으로 확장시키기 위한 기획인 것이다. 미국의 ‘뒷마당’인 광활한 남미 시장에 대한 미국 초국적 자본의 접근권을 확보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자유롭게 이용하면서 강력한 달러통화권을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FTAA는 이어 1998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개최된 2차 정상회담을 통해 본격적인 협상에 돌입했다. 다른 무역협정과 마찬가지로, FTAA는 시장접근, 농업, 투자, 서비스, 정부조달, 분쟁해결, 지적재산권, 서비스 등을 포괄하고 있으며, 미주대륙의 80억 민중은 농업개방, 공공서비스 및 기간산업 사유화, 정보 및 의약품 접근권 제한, 투자 자유화 등을 통해 FTAA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된다.

NAFTA의 경험을 혹독히 치룬 남미 민중들은 2001년 퀘백과 2003년 마이애미 등 미주정상회담이 개최될 때마다 강력한 시위를 전개했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는 수천만 명이 참가하는 비공식 국민투표를 조직하는 등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 게다가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 여러 남미 국가에서 좌파적 성향의 정권이 집권하고 이들이 미국을 견제하면서 FTAA에 대한 합의 도출이 당초 계획보다 늦춰지고 상대적으로 약화(협상이 어려움을 겪자 정상들은 최소 수준의 합의만 이루어내고 있다)되고 있다. 이에 미국은 중미 국가들과 별도로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을 체결하는 등,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우회적으로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유로화를 중심으로 세계 재편에 나선 유럽연합

유럽연합은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수준의 지역블럭으로, 현재 추진되고 있는 많은 경제통합 내지는 지역블록화의 모델이 되고 있다. 유럽경제공동체(ECC)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 자본주의의 재건과 강화를 위해 1957년에 출범하였고 1965년 유럽공동체(EC)로 통합하면서 유럽집행위원회, 유럽의회와 유럽법원을 설립하는 등 경제적 통합과 아울러 정치적 통합 과정을 추진해나갔다.

그리고 2002년에는 유로화라는 단일화폐를 도입하였고, 최근 동유럽 체제전환국들을 대거 가입시켜 25개국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으로써 유럽연합은 미국과 함께 명실상부한 세계 강대국의 입지를 유지해나갈 수 있게 되었으며, FTAA를 통해 미국이 창출하고자 하는 달러 화폐권과 경쟁할 유로 화폐권을 창출하게 되었다. 다른 지역이 최근에 추진하는 경제통합과 마찬가지로, 유럽연합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이하여 유럽 내 노동유연화 강화, 연금 및 복지 삭감, 공공서비스 축소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단행하는 동시에, 미국과 때로는 동지 때로는 적이 되면서 WTO 협상을 주무르고 각종 FTA를 추진하여 제3세계 시장 장악을 노리고 있다.

유럽연합의 발전과정이 사실상 유럽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의 연장선상이자 그 자체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 내 시민사회단체들은 유럽연합이 민주적이고 대안적인, 그리고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설 수 있는 지역블럭이 되기를 일면 기대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기대가 무참히 깨지면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지역블럭이 되어가는 현실을 직면하고 있다.

특히 90년대 중반부터 예산 삭감과 공공서비스 축소 등에 맞선 노동자와 학생들의 강력한 투쟁은 이미 많이 알려졌다. 올해 6월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권력의 중앙집권화를 핵심으로 한 유럽연합 헌법 개정을 둘러싼 ‘유럽연합 탈환’을 위한 투쟁이 조직되기도 하였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아시아 경제 통합

아시아지역의 지역화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67년 느슨한 형태의 지역협력체로 출범하였으나 냉전 시기에 미국이 개입하면서 중국 및 베트남 공산주의에 대한 견제 용 이데올로기 동맹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냉전이 종료된 후 1990년대 초에는 동남아시아 지역 내 무역을 확대하기 위해 아세안자유무역협정(AFTA)을 출범시켰다. AFTA로 동남아 국가들은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와 농민이 희생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아세안 자체라기보다 아세안과 아시아 각 국이 FTA를 체결함으로써 동아시아 및 아시아 지역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다. 아세안 국가들의 투자에 대한 목마름,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저임금 노동력과 시장 잠재력을 인식한 한국과 일본 자본은 아세안과의 FTA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한국 자본의 경우, 일본과의 FTA로 예상되는 손해를 아세안 또는 중국과의 FTA를 통해 만회해보겠다는 생각 하에 아세안과의 FTA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내년부터 당장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한 상태이다. 한국은 나아가 한중일FTA, 한중일+아세안 FTA 그리고 궁극적으로 아시아경제통합을 바라고 있다. 한국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는 지역블럭화가 '대세'이며 동북아중심국가로 가기 위한 필수적 과정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있다. 이런 전략적 판단은 정부의 경제자유구역 추진 과정과 내용에서 증명되듯이 철저히 신자유주의 체제에 한국 경제를 편입시킴으로써 한국 경제를 해외 자본에 완전 개방하고, 이런 외부의 당위적 ‘충격’을 통해 경제 구조조정과 노동에 대한 공격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의도이다. 또한, 재벌들의 초국적 기업화를 촉진시켜 해외시장 사냥을 위한 기반을 형성해주겠다는 것이다.

한편, 일본은 핵심 생산기지인 동남아시아, 그리고 한국과 FTA를 체결함으로써 경제대국이 되어가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는 속에서 아시아경제통합을 이루고, 아시아에 엔화블록을 형성함으로써 일본 자본의 이권을 챙기고자 하는 것이다. 군사대국화를 동반한 이런 일본의 바램이 현실화될 경우, 세계는 유로화, 달러화와 엔화를 중심으로 한 지역(자본)블록들 간 경쟁체제로 돌입하고 자본 간 격돌과 이로 인한 노동자․민중에 대한 공격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대안적 지역화인가 신자유주의 편입과정인가 - 남미공동시장과 아프리카경제공동체

‘남미공동시장(Mercosur)’은 1985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시작되어 파라과이와 우루과이까지 포괄하게 되었으며, 이들 국가 간 역사적 분쟁관계를 극복하고 경제적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들어 NAFTA가 발효되면서 미국 중심의 북미지역 통합을 견제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역할을 자임했다.

애초에 남미공동시장은 규모가 작아 국제적으로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WTO나 FTAA 협상이 모두 지지부진해진 가운데 미국이 남미 국가들을 일대 일로 공략하면서 브라질 노동자당의 룰라 정부를 중심으로 남미공동시장을 이용해 NAFTA/FTAA와 미국을 견제하려는 노력이 더욱 강화되었다. 남미공동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국가들은 역내 무역 자유화를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미국에 대한 결속력을 강화하는 한편, 유럽연합 등과 FTA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카리브지역 시장과 경제를 통합하기 위한 카리브공동체(CARICOM)는 보다 약소하지만 비슷한 의도와 과정 속에 있다.

세계화 과정에서 다소 배제되었던 아프리카 지역도 최근 지역블럭화 흐름에 적극적으로 합류하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남아프리카지역개발공동체(SADC)와 같은 지역별 경제공동체가 존재하며, 아프리카연합(AU)은 이들 경제공동체들을 점차 통합하여 단일한 아프리카경제공동체를 창출해 아프리카 국가 간 결속력을 다지고, 제국주의 세력을 배제한 채 독자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아프리카연합이 내세우는 경제공동체가 기본적으로 ‘자체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힘을 키운 다음 세계시장에 뛰어 들겠다’는 사고를 중심에 두고 있으며, 아프리카 전역에 신자유주의 모델을 강제하기 위한 정책인 ‘아프리카개발을 위한 새로운 경제 파트너쉽(NEPAD)'을 추진하는 등 신자유주의 모델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 국가 간 경제적, 정치적 결속력을 다지고 힘을 키워 독자적 경제발전을 이루겠다는 목표와 미국 및 유럽연합에 대한 의존과 개방하려는 현실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세계화와 지역화, 반세계화와 대안 지역화의 딜레마

위에서 대륙별 또는 소대륙별로 진행되고 있는 각종 지역무역협정과 기타 방식을 통한 지역화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현재 초국적자본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와 이를 보완하거나 병행 추진되고 있는 지역화 역시 신자유주의에 기반하거나 이를 지향하고 있다. 물론, 남미공동시장이나 아프리카경제공동체의 경우, 이들이 진정 신자유주의에 복무하고 있는지 아니면 미국과 유럽연합이 배제되었기에 이들이 주도하는 세계화 과정으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 발전정책을 구사할 수 있는 대안적 지역화가 될 가능성은 없는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다.

실제로, 시민사회가 남미공동시장, 남아프리카지역개발공동체와 아세안에 개입하고 이들을 민주화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제3세계의 경제발전에 복무하게 만들 수 있다면, 이들이 지배적인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적 지역화’가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조심스러운 제안이 나오고 있다.(Linking Alternative Regionalisms for Equitable & Sustainable Development, TNI Briefing Series # 2004/11)

또한, 지난 칸쿤 WTO 각료회의에서 형성된 농업수출개도국 그룹인 G20을 WTO 내에서 미국과 유럽연합의 지배질서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유의미한 정치동맹으로 사고하면서 이들에 대한 국제 시민사회의 지지․지원을 촉구하는 흐름도 있고, 이의 연장선상에서 남반구 간 (또는 경제 수준이 비슷한 국가 간) FTA를 제3세계의 생존전략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시각은 공통적으로 제3세계 국가들 간 연대와 단결을 통해 미국과 유럽연합 중심의 세계화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기대이자, 빈곤과 수탈체계를 극복하는 것이 제3세계 국가의 공통적 이해관계인만큼 수평적이고 공정한 무역 및 투자, 보다 민주적 정책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기대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한 근거로 유럽연합과 미국이 자신들이 배제된 각종 경제협력체들을 분열시키는 전략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든다. 이런 분석이 일면 타당해 보일 수도 있다. 점점 경쟁이 격해지고 이에 따라 위기가 심화되고 민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더욱 강화되는 상황에서 당장 실천가능한 대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며, 미국과 유럽연합이 배제되면 일정 정도 숨쉴 공간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의 위험성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배제된다 하더라도 지역통합의 지향과 내용이 신자유주의 모델에 기반하고 있다면 이것이 민중들의 대안이 될 수 없는 노릇이다. AFTA의 농업개방 정책, 사유화와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동남아시아 농민과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아세안을 보다 민중지향적으로 바꿔보겠다는 논리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게다가 여기에 다분히 신자유주의적 지향을 가진 한국과 일본이 합세하여 아시아를 통합하여 아시아에서 신자유주의 지역블록을 이루겠다는 현실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G20의 경우, 이들의 입장은 애초부터 시장접근과 농업자유화였다. 그리고 결국 유럽연합과 미국의 공작 끝에 분열되었고, G20을 주도하던 브라질과 인도는 미국, 유럽연합, 호주와 함께 WTO 내 ‘이해당사자 5개국 그룹’을 만들어 올해 8월 1일 WTO 도하개발의제 기본골격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남반구 국가 간 FTA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지역화가 자본의 세계화와 양대 전략을 이루고 있는 ‘자본의 지역화’란 점이다. 그리고 아무리 남반구 개도국 간 지역화라 하더라도 이것이 ‘자본의 지역화’에 대한 즉자적 반응이자 이와 동일한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에 기반하고 있는 이상, ‘약간의 숨쉴 공간’을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지역화에 대한 판단은 단지 자본 강대국들의 참여 여부가 아닌 그 ‘지역화’의 내용과 주체에 기반해야 한다. 자본 강대국들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지역화는 ‘악’이라면, 제3세계 국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지역화가 ‘차악’이 될 수는 있을망정 ‘선’이 될 수는 없다. 현존하는 지역블록에 기대를 거는 논리는 결국 세계 시장을 누가 더 많이 먹을 것인가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며, 해당 지역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예를 들어, 제3세계의 신자유주의적 내지는 독재적 정권에 의한)은 은폐되어 버리는 효과를 갖는다.

또한, 대안적 세계화/지역화의 주체는 몇몇 정부가 아니라 민중이 되어야 한다. 물론, 개별 국가의 정부가 민중의 편에서 민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세계화와 지역화가 동전의 양면이자 초국적 자본의 상호보완적 전략임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진정 고민해야 하는 것은 현존하는 지역화 질서에 대한 ‘개입’과 ‘개혁’이 아니라 자본의 세계화/지역화에 맞선 민중의 국제적, 대륙적 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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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국적자본 , 세계화 , wto , fta , 지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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