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세계화가 아니라 자본과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라

[특별기획]세계화에 저항하라(5) - 무한 자본시장 확장의 결절점, 지역블록화<2>

세계화에 저항하라!? 이 슬로건은 명명백백 잘못되었다. 정확히는 '자본주의적 세계화' 혹은 '자본의 세계화'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화 자체는 진보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진보적인 과정이 자본주의적 방식, 즉 자본간 경쟁의 가속화를 통해 중소자본의 몰락과 자영업자들의 몰락을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자본의 구조조정 그리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이 자행된다. 따라서 노동운동을 포함한 진보적 운동진영에서는 자본주의의 철폐를 추구해야 하며, 그것이 현재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서는 세계화 과정에서 진행되는 자본의 파괴적인 결과를 최소화하도록 자본에 대한 공세를 가해야 한다.

요컨대 세계화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자본에 대한 반대와 세계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의 공격에 대한 반격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반세계화 투쟁은 예컨대 '해외매각 반대'와 '제조업 공동화 저지'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자국 자본지키기 투쟁으로, 즉 민족주의적 투쟁이 만연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한-칠레FTA가 체결되고 난 후에 한-일FTA가 거론되고 있는 시점에서도, 이 FTA의 본질이 자본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무시되고 있다. 예컨대 현대자동차 노조 등에서 한국 자동차산업지키기 투쟁에 노동자들을 독려하면서 자본협조주의로 경도 되고 있다.

또한 현재 한-칠레FTA의 결과에 대해서 적자가 많이 발생한 만큼 잘못된 개방이었다는 주장이 유포되어 있지만, 사실 자본에게는 철저히 이익이 되는 올바른 개방이었다. 무역수지적자가 한국 자본에게 의미하는 것은 다량의 원자재를 관세 없이 들여오는 동시에 수출 시장을 확보한다는 일석이조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싼 농산물의 수입은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비용을 낮추는 요인이 되며, 중소농민의 몰락은 신규 산업예비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일석4조의 효과를 제공하는 것이다.

요컨대 현재의 세계화는 자본을 위한, 자본의 국가에 의한 자본주의적 세계화이다. 따라서 자본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세계화 자체에 대한 투쟁으로 매몰되는 것은 결국 자국자본을 지키는 반노동자적인 투쟁으로 이어지게 됨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리고 한-칠레FTA 이후 5개월 간 무역의 상황은 아래와 같다.

"FTA 발효 이후 5개월간('04.4.-8월) 양국간 교역량은 작년 동기에 비하여 73% 늘어났으며, 우리의 대칠레 수출과 수입은 각각 38%, 18%(국제원자재 가격상승분 제외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출증가율 38%에 비해 외형상 수입증가율이 91%로 나타나 한-칠레FTA의 발효로 수입이 급증한 것 아닌가하는 우려도 있었으나, 외형상 대칠레 수입액이 크게 늘어난 요인은 FTA에 따른 관세철폐 효과가 아니라 칠레 주요 수입 원자재의 가격 폭등(구리 등)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원자재 가격 상승(전년 동기대비 60%-72%)에 따른 수입액 증가를 제외하면, 대칠레 수입 증가는 약 18% 정도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외교통상부. http://www.mofat.go.kr)

자본의 세계화의 본질, 자본의 생산력 증대과정 그리고 파괴적 진보

현재 진행되고 있는 WTO(세계무역기구)의 소위 DDA(도하개발 의제) 그리고 만연하고 있는 FTA(자유무역협정) 모두 자유무역을 그 기치로 내걸고 있다. 즉, 대외 무역의 상호 확대를 위한 조치들이 현재 자본의 국가들간에 협의되고 합의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자유무역에 의한 세계시장의 확대는 자본의 팽창의 공간을 확대하는 동시에 자본간 경쟁을 확대하는 과정이다.

자본에게 대외무역은 16세기 자본주의가 발달하던 초기에는, 자본주의가 등장하는 토대였으며, 이 생산양식이 발달함에 따라서 점점 확대되는 시장에 대한 자본의 요구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왜냐하면 자본들간의 경쟁은 그들로 하여금 무제한적인 생산의 확대를 시도하게 하는 반면에, 노동계급 대중에게는 최소한의 소비만 할 것을 강제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는 지속적인 과잉생산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이의 해소를 위해서 자본은 필연적으로 대외시장을 확대해 나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본은 그 팽창 공간을 확대함으로써 더욱 커다란 자본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며, 또한 이 과정에서 생산력의 증대 과정이 일어나며, 세계는 더욱더 통합화 된다. 바로 이점을 친자본가 지식인과 연구소에서는 연일 떠들며, WTO와 FTA 등이 한국 경제 성장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동시에 자본간 경쟁을 일국적인 차원에서의 심화와 세계적 차원으로의 확대를 초래하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대외무역의 확대과정에서 자본간 상호 뺐고 빼앗는 수탈이 일어나며, 자영업자들의 몰락과 중소자본들의 대자본으로의 집중화 과정 그리고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과정이 일어난다.

"이 수탈은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의 내재적 법칙의 작용에 의하여, 즉 자본의 집중에 의하여 수행된다. 항상 한 자본가가 많은 자본가를 파멸시킨다. 이러한 집중, 소수 자본가에 의한 다수 자본가의 수탈과 병행하여 기타의 발전도 더욱더 대규모로 일어난다. 즉, 노동과정의 협업적 형태의 성장, 과학의 의식적 기술적 적용, 토지의 계획적 이용, 노동수단이 공동적으로만 사용될 수 있는 형태로 전환되는 것, 모든 생산수단이 결합된 사회적 노동의 생산수단으로서 사용됨으로써 절약되는 것, 각국의 국민들이 세계시장의 그물에 얽히게 되는 것, 따라서 또 자본주의의 국제적 성격의 증대 등등이 더 대규모로 일어난다. 이 전환과정의 모든 이익을 가로채고 독점하는 대자본가의 수는 끊임없이 줄어가지만, 빈곤, 억압, 예속, 타락, 착취의 정도는 더욱더 증대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수가 계속 증가하며 또 자본주의적 생산과정 그 자체에 의하여 훈련되며 결합되며 조직되는 계급인 노동계급의 반항도 또한 증대해 간다. 자본의 독점은 이 독점과 더불어 또 이 독점 밑에서 번창해온 생산방식의 질곡으로 된다. 생산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는 마침내 그 자본주의적 외피와 양립할 수 없는 점에 도달한다."(칼 맑스, 김수행 역,『자본1권』p.959.)

요컨대 자유무역은 자본간 경쟁 격화를 야기하며 상호 수탈과 몰락이라는 파괴적 과정을 통해서 거대자본으로 집중화 되어가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필연적 과정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과정은 거대 생산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생산수단이 집중화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생산력 향상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 자본의 세계화, 자본주의의 세계화 과정은 동시에 생산의 세계화와 지역간 통합화 과정이라는 진보적 성격이 있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은 이 세계 생산력의 진보라는 모든 이익을 독차지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을 철저히 공격하여 복속시키며 극심하게 착취한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진보적 과정인 생산의 세계적 확대를 거부하는 관념적이고 역사에 반동적인 투쟁을 할 것이 아니라, 자본의 공세에 반격함으로써 자신의 생존권을 지켜내는 한편, 이 파괴적 진보가 가져오는 새로운 사회의 물적 토대에 기반하여 현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에 나서야 한다.

동시에 이런 파괴적인 과정이 자본주의의 생산력 증대의 과정이라는 것은 소위 초국적 자본의 전세계적인 생산시설의 확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현실이 그것을 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생산력의 세계적 확대는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따라서 세계화가 생산력의 증대를 낳는 역사적 발전과정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부인하고 세계화 자체에 반대하는 투쟁은 관념적인 투쟁이며, 반동적인 투쟁이며, 그리하여 패배를 초래하는 투쟁이다. 노동계급은 이 세계화 과정에서 초래되는 자본의 파상적 공세에 대한 반격, 특히 자국 자본에 대한 공격에 철저히 저항해야 할 것이다.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그리고 자본의 세계화

자유무역이 이처럼 자본주의의 본성인 세계적 확대를 촉진하는 과정이라고 할 때, 자유무역을 반대하고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것은 현 상태의 자본을 영구화하겠다는 환상에 불과하거나 보수적인 주장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자유무역이냐 보호무역이냐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다. 단지 자유무역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발시키고 역사적 경향을 가속화시킬 따름이다. 반면에 보호무역 혹은 민족주의는 자본주의는 체제를 수호하려는 반동적인 계획에 지나지 않으며, 노동계급을 체제에 포섭하려는 기도에 불과하다. 즉, 자유무역이건 보호무역이건 노동계급이 저항하지 않는, 어느 체제에서도 노동계급과 민중의 고통은 증대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15-16세기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태동기에 대외무역이란 노예무역을 포함해서 식민지에 원주민들에 대한 직접적 수탈이 그 핵심적 위치를 차지했었다. 그리고 이런 중상주의라는 이름 하에 자행된 식민지들에 대한 수탈이 바로 선진자본주의의 역사적 토대였다.

그리고 1846-7년 영국에서는 면화와 기타 원료에 대한 관세가 폐지됨으로써, 바로 자유무역의 시대라는 새로운 역사적 시대가 열였다. 자유무역이 확대되면 임금이 두 배로 오른다고 선전해대던 영국 자본가들은 오히려 10시간 노동의 공장법을 파괴하려고, 그 법이 통과되자 공장주들은 10% 임금 인하를 단행하였고, 노동일이 11시간으로 단축되자마자 8과1/3% 인하하였으며, 최종적으로 10시간으로 단축되자마자 그것의 두 배를 인하하였다.

그런데 이런 자유무역은 1870년대 초 극심한 경제위기(공황)에 직면하면서 철회되고, 각국 자본은 보호무역으로 선회하였다. 이 보호무역의 결과는 자본주의적 시장은 축소되었던 반면에 독점적인 시장개척을 위하여 각국 자본은 식민지 확대와 이를 위한 전쟁이라는 파괴적이고 수탈적인 정책을 심화하였다. 그리고 이런 보호무역에 입각한 자본들은 독점체를 형성하고 특히 금권세력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체제로 재편되었던 것이다.

소위 보호무역 형식의 자본의 세계화는 식민지 수탈과 독점체제라는 극악한 파괴적 방식을 띠고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결과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는 파국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보호무역체제 그리고 독점체제는 1945년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소위 전간기라는 이 시기는 그 어떤 시대 보다 역사의 전진을 멈추는 동시에 파괴적인 시대로 기록된다.

그리고 이 시기 대공황이 발생하자 제국주의 중심 국가들은 식민지와 반식민지를 블록으로 하는 - 예컨대 영연방 - 폐쇄적인 자급자족경제체제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 시기 (지역)블럭화는 타국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로서, 시장을 상호 폐쇄함으로써 전체 세계시장을 축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과잉생산위기는 더욱더 심화되어 결국 2차 대전이라는 대량의 파괴와 살육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 결과 보호무역과 독점적 제국주의 체제는 양차대전에 따른 노동계급의 혁명적 저항 그리고 자본축적 자체의 법칙에 의해 철회되기에 이른다. 요컨대 자본의 일국적 축적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자본은 위기에 처했으며, 보호무역 및 경쟁제한을 통한 '독점'으로 이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이 위기의 상황에서 각국의 독점자본은 제국주의 정책을 사용함으로써 일시적으로 모순을 해소해나아 갔지만, 이는 오히려 모순을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식민지 정책 혹은 식민지 전쟁은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세계적 축적과 집적을 지향하는 자본의 논리로 대체된다. 이후 자본은 일국적 축적에서 세계적 축적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 세계적 축적은 일국적 축적을 강화한다. 좀더 엄밀히 말하자면, 카르텔과 트러스트 등의 독점은 금지되고 다시금 세계적 차원의 경쟁과 자유무역의 복원이 이루어진다.

"미국의 헤게모니가 지배했던 동일한 20년간(-45년 이후) 시장을 격리시켰던 관세와 무역장벽들은 사라졌다. 무역규제가 있던 곳은 신생국들 경제의 성장과 원활함을 증대하기 위한 법률이 있던 지역들에서 종종 있었을 뿐이다.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양차대전 사이에 보였던 자급적 경제정책은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1957년 로마조약으로부터 시작된 유럽공동체의 형성은 유럽 제조업자들에게 이전에는 미국에나 존재했었던 거대시장에 비견되는 거대하고 급속히 확대하는 국내시장을 창조했다. 무역장벽의 축소와 함께 전쟁 전의 카르텔과 기업간 계약협정들은 붕괴되었다. 자유무역과 경쟁이라는 미국의 경제강령의 기본적인 교리가 해외로 퍼져나갔다. 전승국인 미국은 독일에서 카르텔을 해체하고 I.G.Farben과 VSt(독일의 독점기업-인용자)를 주요 부분으로 분할했다. 그리고 1956년 영국의회는 기업협정법을 통과시킴으로써 기업협정을 통한 시장장악의 법률적 경제적 효력에 대해서 처음으로 공격을 하였다. 곧 유럽공동체도 확대된 대륙시장에 대한 동일한 역할을 하는 일련의 법률을 발달시켰다."(알프레드 챈들러, {Scale and Scope} p.608.)

또한 1947년 미국을 중심으로 한 23개국이 교역증대와 관세율 인하를 목적으로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라는 세계자유무역체제에 합의하기로 한다. GATT체제는 1947년 10월 이후 7차에 걸친 다자간 무역협상을 주도하여 주로 공산품의 관세인하를 주요 역할로 삼았다.

이 GATT 다자간협상에서는 회원국 모두에게 최혜국 대우를 함으로써 기존의 관세의 차별 대우를 없앴다. 요컨대 자유무역이건 보호무역이건 자본이 노동계급에 대해 공격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1945년부터 1974년의 기간 동안에 자유무역의 확대와 함께 오히려 노동계급의 실질적인 삶의 개선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무역 때문이 아니라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만연하였던 노동계급의 혁명적 저항과 현실 사회주의의 등장에 기인한 것뿐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자국 자본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무역 즉 시장 개방에 저항하는 것은 투우사의 붉은 망토를 향해 돌진하도록 하는 반노동자적 투쟁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세계화 혹은 자유무역이냐 보호무역이냐가 아니라 자본의 세계화이며, 자본 자체이다.

과잉자본의 심화와 자본의 세계화의 확대

1945년 이후 지속되는 무역자유화와 자본의 세계적 축적은 1974년까지 미국과 유럽의 최대의 호황을 낳는 대외적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런 최대의 호황은 배트남전쟁 특수로 추가적인 팽창을 낳으면서 1974년까지 극도의 과잉생산을 낳은 배경이 된다. 그리하여 1973년 오일쇼크와 맞물리면서 1974년 과잉생산위기는 폭발하고 만다.

그리고 1979년 10년 주기의 과잉생산위기가 다시 폭발하여 1980년대 초까지 위기와 침체가 지속된다. 과잉생산은 동시에 자본의 과잉이기도 한데, 과잉된 자본은 새로운 투자처와 새로운 시장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런 자본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자본의 폭압적인 공세가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즉, 이런 과잉생산과 과잉자본이라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 속에서 1979-80년 등장한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노골적 독재권력은 이 자본의 과잉생산위기를 이용하여 노동계급에 대해 철저하게 공격함으로써 과잉자본의 부담을 덜어준다.

동시에 과잉자본의 모순을 더욱 신속히 해결하기 위하여 세계 자본은 더욱더 급속한 시장개방과 자본 투자처의 개방을 추구하게 된다. 특히 2차대전 이래 권력에서 물러났던 기생적 금권세력이 1974년 이후 과잉생산위기를 틈타 다시금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이 개방은 투기세력들을 위한 금융자유화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그리하여 파괴적인 금융위기를 줄기차게 초래한다.

이런 자본의 과잉속에서 1986년 세계전체 자본주의 국가들의 시장개방을 목표로 하는 GATT 다자간무역협상 제8차 회의(우르과이라운드, UR)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 UR협상은 그 범위를 공산품을 넘어서서 농산물과 섬유의 관세 철폐 및 인하 그리고 서비스 시장, 원산지 규정 등 각종 규범과 지적 재산권 및 분쟁해결절차 등 각종 제도를 포괄하며 117개국이 참가하였다.

그리고 이 UR은 GATT체제를 더욱더 강력한 무역기구로 전환할 것을 동시에 추진하였는바, 1994년 4월 4차 각료회의에서 WTO(세계무역기구) 출범을 선언하고, 1995년 1월 1일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게 되었다. WTO는 기존 GATT체제와 달리 명실상부한 국제기구로서 세계 시장경제의 세부적 경쟁규칙의 제정과 규칙 위반에 대한 제재 권한을 가짐으로써 더욱 강력히 자유무역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WTO는 경쟁정책, 투자분야, 환경, 노동, 기술정책 등을 그 의제로 포괄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의 제4차 각료회의에서 쌀 개방을 포함한 더욱 강력한 농산물 비농산물 개방 및 서비스 및 정부조달시장 개방 등 경쟁정책에 관한 협의(싱가포르 이슈)등에 대한 새로운 협상을 하기로 했으며,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후 진행되는 자본의 세계화와 전전의 식민지 확대를 통한 강제적 세계화와는 상이한 성격을 가진다. 전전의 식민지 확대에 기반한 세계화는 식민지에 대한 본국 정부의 직접적 수탈(정부수출) 특히 채권 및 주식 등 금융적 수탈에 기반한 파괴적인 수탈이었던 반면에, 전후 자본의 세계화는 개도국에 대한 생산설비 등의 직접투자를 통한 이윤획득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즉, 초국적 자본에 의한 세계적 차원으로 생산설비가 확대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여전히 중남미, 그리고 90년대 초 체제전환 당시 동구의 경우처럼 금융위기 등 파괴적 수탈을 수반하지만. 그리고 전후 세계화는 형식적으로나마 개도국의 개발이라는 의제를 포함하고, 만장일치에 의한 합의과정을 거친다.

개발이란 물론 선진 자본주의의 과잉자본 투자처 확대를 의미하며, 만장일치라고 하더라도 선진자본주의의 입김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세계적 시장통합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어쨌든 이런 전후의 방식으로 인해 자본주의적 관계는 중국, 인도, 러시아 및 동구국가 등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으며, 세계적 생산의 급속한 팽창을 낳고 있다.

요컨대 현재 자본의 세계화는 세계 각국 자본 전체의 이익을 그 어느 때보다 고려하며 진행되고 있다. 반면에 이 과정에서 자본간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중소자본은 대자본에 몰락해가면서 집중화라는 파괴적 과정 그리고 자영업자들의 몰락 그리고 이와 동시에 정리해고와 노동조건 후퇴 등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이 자행되고 있다. 한마디로 노동계급의 현재의 고통은 바로 과잉자본이라는 자본의 문제가 해소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자본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 과정은 세계 자본이 더욱 강력해가는 과정이며 노동계급에 대한 지배가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다.

자본의 세계화의 지역적 표현으로서의 FTA

자본을 위한 세계적 시장의 전반적 확대 과정 혹은 소위 다자간 시장의 확대과정과 함께 FTA(자유무역협정)로 대변되는 지역적 개방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세계 각국 자본의 상충되는 이해관계의 존재, 그리고 이로 인해 세계시장의 동시적 확대가 더디게 진행되는 상황은 각국 자본으로 하여금 대외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각개전투를 펼치게 만들었던 것인데, 이것이 바로 FTA등의 지역화이다.

물론 지역적 자유무역협정의 기원은 유럽공동체(EU)의 설립의 토대가 되었던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출범했던 195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FTA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것은 1980년대부터다. 다시 말해 지역 국가간의 FTA도 GATT체제가 UR로 강화되었던 것과 마찬가지의 배경, 즉 자본의 극심한 과잉생산에 의해 강력히 추진되었다.

따라서 이 FTA가 초래하는 결과는 본질적으로 WTO에 의한 세계적 시장의 확대와 동일하다. 즉,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시장의 확대와 자본간 경쟁의 심화가 지역적으로 압축되어 일어나게 된다.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 세계 전체의 생산과 유통의 통합화를 가져왔듯이, 협정국가간에 경제의 통합화 과정을 가지고 온다. 물론 생산의 확대와 통합이라는 진보적 과정에서 이익을 보는 것은 대자본 혹은 자본 전체이지만 이 과정에서 양국의 다수 중소자본 및 자영업자들의 몰락 그리고 대자본간들의 구조조정 및 노동유연화 공세라는 공통된 결과를 초래한다.

그럼에도 WTO에 의해 주도되는 다자간 자유무역 확대와 FTA라는 지역적 자유무역의 확대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FTA는 전체 자본주의 국가간의 합의에 기반하는 우르과이라운드나 WTO협상과 달리 협상당사자간에 체결되며, 협상당사국의 자본에게만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내용적으로 양국간 관세인하를 통해 무역장벽을 낮추는 것으로서, 협정국가의 자본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하여 기존의 GATT체제가 가지고 있던 최혜국 대우, 즉 관세 차별을 없앤다는 기준에 위배되는 것이며, 일견 보호무역시대의 지역블럭화와 동일한 현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일각에서는 이 FTA를 '지역블럭화'라고 표현하고 더 나아가서 이 '지역블럭화'가 세계화에 반대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FTA는 자본의 과잉생산을 해소하기 위하여 자본의 세계화와 함께 추진되었으며, 자본의 세계화와 마찬가지로 과잉자본 해소를 위한 시장확대 과정이며, 그리고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과정이다. 물론 이 FTA는 지역블럭화와 마찬가지로 해당국 시장의 확대통합을 야기하며, 그리하여 해당국 전체 자본에게는 배타적으로 이익이 됨은 분명하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각국의 자본은 FTA를 앞다투어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FTA라는 지역통합화는 이전의 보호무역 하의 지역블럭화와 달리 다른 나라 자본들에게 장기적으로는 마이너스의 효과를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체 세계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지역통합화는 오히려 더욱 통합된 거대 시장을 제공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WTO는 회원국에 대한 전반적 무역장벽을 기존 수준 이상으로 높여서는 안 된다는 GATT 제24조 5항 a, b항을 준수하는 한에서, 이 FTA가 광범위하게 확대해가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2004년 5월 1일 현재 GATT 제24조에 의거한 상품 분야 지역무역협정은 총 155건에 이르고 있는데 이 중 관세동맹협정이 14건, 자유무역협정이 141건에 달한다.

그리고 또한 이 지역통합화로서의 FTA는 개방적 지역통합화로서 세계적 자유무역의 확대를 위한 징검다리이다. 즉, 현재 거대한 지역통합의 FTA는 EU(유럽공동체), NAFTA(북미자유무역지대), AFTA(아세안자유무역지대), MERCOSUR(남미공동시장) 등이 있지만, 이들 지역적 통합체는 다른 외부의 자본에 배타적인 블록화가 아니라, 개방된 지역통합체이다.

예컨대 NAFTA를 체결한 미국은 이스라엘, 요르단, 싱가포르, 칠레 그리고 모로코 등과 동시에 FTA를 체결하고 있으며, FTAA(범미주자유무역지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EU도 지속적으로 그 영역을 동구로 확대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칠레와 FTA를 체결하였으며, 브라질 등 MERCOSUR와 FTA체결을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MERCOSUR 또한 CAN(안데스공동체, 볼리비아,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페루)등과 FTA를 체결하였다. 그리고 AFTA도 인도 및 중국과 FTA를 체결하였으며, 이 중 싱가포르는 30개국 이상과 FTA를 체결한 상태다. 요컨대 지역통합화로서의 FTA는 보호무역의 폐쇄적 지역블럭화와는 개방되어 있으며, 확대일로에 있다. 현재 진행되는 FTA는 자본의 세계적 시장의 확대를 보완하고 촉진하는 과정이며, 특히 FTA를 체결하는 상호 자본의 특혜적 이익을 준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한-일FTA도 바로 한국 및 일본의 자본 특히 거대자본을 위한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노동운동진영에서 한국 산업보호라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의 대 자본투쟁을 방치한 채 자국 자본지키기 운동에 나서는 것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세계화와 FTA의 파괴적 결과를 야기하는 자본에 대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처럼 현재 진행되는 세계화의 파괴성은 세계화 자체에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세계화는 전세계적 발전이라는 진보적 과정이다. 세계화 자체는 생산의 집중을 통한 생산력의 증대이며, 생산의 세계적 확대를 통한 세계의 발전과정이며, 생산의 세계적 연결을 통한 통합의 과정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자본에 의해 주도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중소자본의 몰락을 초래하는 방식이며, 노동자계급에 대한 정리해고, 노동유연화 등의 구조조정 공격을 수반하게 된다.

따라서 자국 자본에 대한 투쟁, 특히 구조조정 분쇄를 통한 생존권 사수투쟁을 중심에 놓지 않고, 세계화 자체와 자본간의 경쟁의 결과를 막으려는 투쟁은 관념적이며 역사의 흐름에 반하는 반동적인 투쟁이며, 결국 노동계급의 투쟁의 방향을 잘못 이끄는 반노동자적 투쟁이다.

예컨대 자본의 집중화라는 필연적인 과정을 무시하고 해외매각 저지를 통해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사수한다는 투쟁은 관념적인 투쟁으로서 진정한 생존권 사수투쟁을 방기한다. 그리고 자본이 과잉생산을 해소해하기 위해서 세계적으로 시장을 확대하며 투자를 확대하는 과정을 자본이 강화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산업이 공동화'되는 과정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저지하는 투쟁 또한 그렇다.

그리고 특히 FTA가 해당 국가의 자본들의 특혜적 이익을 추가하는 것이라고 할 때, 자국 산업을 지키기 위해 한-일FTA를 저지하려는 투쟁은 결국 자국 자본을 지키려는, 더욱더 비현실적인 투쟁이며, 대(對)자본 투쟁을 방기하는 반노동자적 행위다. 세계화 저지와 FTA 저지가 아니라 이것을 주도하는 자본과 자본의 국가에 대한 저항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계화와 FTA 확대 과정 중에 들어오는 자본의 공격에 대한 공세적인 반격투쟁이 요구된다. 문제는 자본과 자본주의 자체다!
덧붙이는 말

김두한 님은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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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계화 , 세계화 , 자본주의 , 반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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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태곤

    잘 읽었어요. 요즘 잘 지내시나요? 얼굴 본지 오래됐는데...빠른 시일 내에 한 번 보고 싶네요.

  • 윤태곤

    잘 읽었어요. 요즘 잘 지내시나요? 얼굴 본지 오래됐는데...빠른 시일 내에 한 번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