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아니 발포성 와인을 터뜨립시다!

[한EU FTA 지재권 릴레이 칼럼](3) - 지리적 표시

2002년 11월 12일 프랑스 통상장관 프랑소와 로스(Francois Loos)가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에서 한국과 프랑스 양국 간 협력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때, 그는 세간의 이목을 끄는 말을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

“‘샴페인’은 특정 주(酒)종에 대한 프랑스의 원산지명인 만큼 한국에서 샴페인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가 생일 파티나 기념행사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터뜨리는 ‘샴페인’은 유럽에서는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생산되는 백포도주에만 붙일 수 있는 지리적 표시이다.

지리적 표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EU와의 FTA 협상에서 농업과 지적재산권 분야의 최대 이슈가 될 전망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리적 표시 보호 제도를 갖춘 EU의 요구에 따라 불행히도 FTA 협상이 타결된다면, 로스 장관의 충고에 따라 한국 정부의 협상 자축연(?)에서 협상단들은 샴페인 대신 이런 말을 써야 할 것이다.

“한EU FTA 협상 타결을 축하하며 한국산 발포성 와인(sparkling wine)을 터뜨립시다!”파티 장소가 아니라, 전쟁터의 참호에 들어선 기분이지 않을까?

지리적 표시의 국제적 논의

지리적 표시(Geographical Indications)란, 상품의 특정 품질, 명성 또는 그 밖의 특성이 본질적으로 지리적 원산지에서 비롯되는 경우 그 지역 또는 지방을 원산지로 하는 상품임을 명시하는 표시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함께 지리적 표시는 TRIPS 협정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TRIPS 협정문에는 하나의 절(Section 3)을 따로 마련하여 지리적 표시에 관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TRIPS 협정에서 지리적 표시에 대한 보호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반적인 지리적 표시에 대한 것으로(제22조), ‘공중의 오인(mislead)’을 야기할 수 있는 경우와 파리협약 제10조의 2의 의미상 부정경쟁행위가 되는 방법으로 지리적 표시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금지청구권과 상표등록의 거절·무효화가 기본적인 보호수단이 된다. 다른 하나는 이보다 더 높은 차원의 보호로 포도주와 증류주에 대해서만 적용된다.(제23조) 포도주와 증류주에 대해서는 ‘공중의 오인’이라는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도 지리적 표시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적 수단의 제공 및 상표등록의 거절, 무효화 조치가 가능하다.

포도주와 증류주에 대한 강력한 보호가 TRIPS 협정에 포함된 것은 EU가 TRIPS 협상에 미친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EU가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시한 분야는 농업분야였다. EC위원회는 농업분야의 합의를 강경하게 반대하는 프랑스를 비롯한 남부 유럽 국가들을 설득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TRIPS 교섭의 지리적 표시 분야에서 미국 등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필요가 있었다. 즉, TRIPS 협정의 지리적 표시 조항은 농업분야 협상에서 프랑스 등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미국이 타협한 결과인 것이다.

EU의 지리적 표시 보호 제도

유럽에서는 이미 100년 전부터 개별 국가별로 지리적 표시를 보호해왔다. 1992년 EU가 출범하면서 EU 전체 회원국에서 생산되는 농산품은 EU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에 지리적 표시로 등록됨으로써 법적 보호를 받게 되었다.

EU 내에서 등록된 지리적 표시의 보호 범위는 상당히 넓으며 상표 보호와는 차원이 다르다. 원래 상표권은 동일,유사한 영역의 상표 사용을 금지할 권리인데, 여기서 동일,유사한 영역인지 아닌지는 일반 소비자가 상품의 출처에 관해 오인,혼동을 일으키는지, 아닌지로 판단한다. 즉, 상표권 보호의 핵심 기준은 소비자의 혼동 여부다. 하지만, EU가 강조하는 지리적 표시 보호는 소비자의 혼동 여부를 묻지 않는 절대적인 보호이다.

등록하지 않은 상품에 대해 지리적 표시 인증을 받은 명칭의 직-간접적 사용 행위와 인증을 받은 이름의 오용, 모방 혹은 연상을 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해당 상품과 동등하거나 관계가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풍(style)’, ‘유형(type)’, ‘방식(method)’, ‘~산(as prodused in)’, ‘모조품(imitation)’ 등의 표현도 사용이 제한된다. 이는 해당 상품의 원산지를 표시하거나 인증을 받은 원 상품의 명칭을 표기하더라도 금지된다.

또한, 상품의 내-외부 포장, 광고물, 관련 서류, 용기의 포장 등에 원산지, 자연 환경, 상품의 품질 등에 대해 잘못되거나 혼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기입하면 진짜라고 믿을 수 있으므로 금지된다.

양자 협정을 통해 확대되는 EU의 지리적 표시 보호

EU가 체결한 모든 양자 협정에는 지리적 표시 관련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미국과의 FTA와 명확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미국이 지리적 표시를 강조하지 않는 이유는 보호받을 지리적 표시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5년 기준 세계 최대 농산물 생산국인 EU는 현재 등록된 지리적 표시만 약 4,800건에 이른다. 특히 와인과 증류주의 경우, 프랑스에서 수출되는 와인의 85%, EU가 수출하는 증류주의 80%가 지리적 표시를 사용한다. 수출 규모 면에서도 증류주의 경우 EU는 54억 유로 규모를 수출하는데 이 중 35억 유로가 지리적 표시를 단 제품이다.

호주, 캐나다, 미국과 체결한 포도주 및 증류주에 관한 협정에서 EU는 유럽의 지리적 표시가 상대국에서 일반 명칭으로 사용되는 것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남아공, 칠레와의 FTA 협정에서도 포도주 및 증류주의 지리적 표시 보호에 합의하였으며, 멕시코와의 FTA에서는 지리적 표시를 등록한 포도주와 증류주에 대해 높은 수준의 상호 보호에 합의하였다.

다자주의(multilateralism)를 중시하는 EU가 이처럼 지역무역협정(RTA)을 통해 지리적 표시를 강조하는 이유는 DDA에서 다자등록시스템 마련이나, 지리적 표시의 추가 보호 대상 확대 문제와 관련하여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에 체결되는 대부분의 FTA가 TRIPS가 요구하는 수준보다 높거나 넓은 범위의 지적재산권제도를 추구하는 TRIPS 플러스 방식을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EU는 FTA를 통해 지리적 표시와 관련한 자신들의 요구를 공격적으로 각국에 관철시키고자 한다.

명칭 독점을 위한 최초의 실험대, 한EU FTA

2006년 10월에 발표된 ‘Global Europe : Competing in the World’에서 EU는 새로운, 즉 과거와 달리 공격적인 FTA 계획을 천명하였으며, 그 대상국으로 한국, ASEAN, 인도를 꼽았다. 때문에 한EU FTA 협상에서 논의될 지리적 표시는 EU가 지금까지 체결한 양자 협상 중 가장 강도 높은 보호 수준을 담고 있을 것이다.

TRIPS 협정 상 포도주와 증류주에만 적용되는 ‘공중의 오인’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 절대적 보호를 일반 농산품에 확대하는 것은 지리적 표시의 다자등록시스템 마련과 함께 EU의 핵심적인 정책 목표이다. EU는 2005년 미국, 호주와의 분쟁과 관련한 WTO 패널의 판정과 2006년에 개정된 이사회 규정을 통해 이에 대한 법적인 근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한EU FTA는 그 첫 실험대가 될 것이다.

EU 주장의 근거는 특허권이 상품의 종류에 따라 보호에 차별을 두지 않듯이, 지리적 표시 역시 포도주와 증류주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에도 동일한 보호 수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리적 표시는 창작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특허권이나 저작권과 함께 묶어 지적재산권으로 논의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많다. 지리적 표시를 보호한다는 것은 허위 표시와 같은 불공정한 상행위를 방지하려는 목적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인-혼동을 야기하는 행위로부터 수요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에 공감하더라도 EU가 요구하는 지리적 표시의 추가 보호 대상 확대는 EU,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남유럽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강하게 얽혀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즉, EU에서 생산되는 주류를 비롯한 농산물과 식료품의 시장 확대 의도에 ‘상거래 질서 유지’라는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보통명칭(common name)화된 지리적 표시에 대한 보호의 예외를 규정한 TRIPS 협정 제24조 제6항은 TRIPS 협정 제3절에서 EU가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부분이다. 때문에 호주, 캐나다, 미국과 체결한 양자 협정에서 보듯이 EU는 유럽에서 등록된 포도주와 증류주의 지리적 표시의 보호를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샴페인처럼 지리적 표시가 특정 지역이 아니라 동일한 유형의 모든 제품을 나타낸다고 인식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면 이를 지리적 표시 보호를 명분으로 독점 명칭화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EU의 요구에 따라 이미 널리 사용되는 일반 명칭의 경우도 소급해서 지리적 표시로서 보호한다면, 지금까지 형성되어온 법률관계의 변동을 초래하여 불측의 손해를 보는 집단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또한, 후발업자의 경우 이미 출현한 상품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기 상품을 선전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지리적 표시를 이유로 ‘~풍(style)’, ‘~유형(type)’ 등과 같은 표기까지 금지한다면, 후발업자의 영업활동을 심각히 제한하며, 동시에 지리적 표시의 사용자들의 시장 독점을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소비자 후생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지리적 표시의 본래 목적인 공정 경쟁과도 거리가 먼 과도한 보호이다.

지리적 표시를 보호하는 것은 지리적 원산지가 제품의 고유한 품질, 특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전 세계의 어느 곳에서라도 원산지 제품과 똑같은 품질과 특성을 가진 것을 생산해 낼 수 있다.

EU가 말하는 지리적 환경이 제품의 특징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품질과 특성이 과연 그 제품만이 가진 고유한 것, 즉 ‘배타적(exclusive)’인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또한, EU의 주장은, 인간의 손에서 나온 ‘제품(製品)’이란 본디 ‘떼루아르(terrior : 포도재배환경)’보다는 유동적인 기술과 제조 방법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는 누구나 아는 사실을 은폐한다. 결국 EU가 의도하는 것은 명칭의 독점과 이를 기반으로 한 세계 시장 독점일 뿐이다.
덧붙이는 말

홍지은 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