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고 이윤정 씨 1주기, “많이 보고 싶고, 사랑한다”

“진상규명도 제대로 못하고 살아있는 우리들...미안합니다”

“사랑하는 내 아내 윤정아, 하늘나라에서 아프지 않고 잘 지내지?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이 됐다. 우리아이들 소식이 궁금하지? 00이는 남자아이어서 엄마 이야기를 많이 아끼지만, 00이는 나에게 ‘엄마 보고싶어’, ‘난 왜 엄마가 없어?’하며 병원에 누워 있던 엄마 모습까지 그리면서 나를 많이 조른단다.

이번 어린이날도 엄마 없는 슬픈 어린이날을 보냈어. 아이들에게 더 없이 즐거운 날이어야 하는 어린이날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떠난 날을 떠올려야 하는 슬픈 날이 돼 버린 현실에 나는 아이들에게 죄인이 돼 버렸다. 어른인 나도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데, 어린아이들은 얼마나 무섭고 슬플까, 하는 생각만 하면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을 수 없어 술만 늘어가는구나.

당신과 함께 했던 때는 우리 네 식구 가진 것은 없지만 하루 하루 행복했는데, 당신이 없는 지금은 너무나 초라하고 슬프다. 당신이 알고 있는 나는 참 듬직하고 강한 남편이자 가장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너무나 약하고 무기력한 바보인 것 같다. 오랜만에 당신에게 편지를 쓰니 꼭 당신이 살아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편지 쓰는 것이 많이 서툴고 부끄럽지만 꼭 하고 싶은 말, 윤정아 많이 보고 싶고 사랑한다”



1년 전 뇌종양으로 사망한 고 이윤정 씨(당시 32세)의 남편 이희수 씨는 아내를 떠올리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지난 2010년 5월, 아내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후부터, 이희수 씨는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아내의 산업재해 인정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아내를 떠나보낸 후 1년이 지나도록 산재인정은커녕 진상규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희수 씨는 하늘에 있는 아내에게 미안해, 스스로를 ‘무기력하다’고 자책했다.

생전에 이윤정 씨와 함께 산재 인정을 위해 뛰어다녔던 삼성 반도체 유족들과 반올림 활동가들도 함께 눈물을 떨궜다. 1년 전, 이윤정 씨를 떠나보냈던 서초동 삼성 본관 앞은 또 다시 눈물로 가득 찼다. 7일 오전 11시, 고 이윤정 씨의 1주기를 맞아 삼성 본관 앞에 모여든 사람들은 아직도 그녀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는 “고 이윤정님과 같은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의 진상규명을 위해 반올림이 만들어졌으나, 우리 힘으로는 너무 모자란 것 같아 윤정 씨에게 미안한 마음만 앞선다”며 “하지만 아직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윤정 씨의 억울함을 벗겨주겠다”고 약속했다.


고 이윤정 씨는 1997년, 열아홉의 나이로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해 6년간 고온테스트 업무(MBT Burn-in공정)를 담당했다. 6년 동안 고온에 타버린 반도체 칩에서 발생한 미세 분진을 흡입했고, 벤젠 등 발암물질에 노출되기도 했다.

2003년 퇴사 후 전업주부 생활을 하던 중, 2010년 5월 4일 악성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뇌수술 및 항암치료를 진행하며 같은 해 7월, 산업재해를 신청했으나 2011년 2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이후 2011년 4월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그녀는 소송 결과도 보지 못한 채 2012년 5월 7일 사망했다. 삼성 직업병으로 인한 55번째 사망이었다.

이 씨와 같은 라인에서 일했던 유명화 씨 역시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렸고, 그녀와 같은 공정에 있었던 다른 노동자들 직장암과 백혈병을 얻어 반올림에 제보를 하기도 했다. 반도체 공장에서의 화학물질 노출 이외에는 발병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지만, 회사와 공단은 ‘개인적 질병’이라고 뒷짐을 졌다.


반올림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어떤 정보도 내놓지 않으면서도 절대로 산재가 아니라는 삼성이나, 아픈 노동자가 산재임을 증명하라며 2년이 넘도록 재판을 받고 있는 현실의 벽은 참으로 견고하고 모질다”라며 “당신의 죽음 앞에 삼성의 사죄의 한마디 받아내지 못하는 우리들은 참 못났다”고 토로했다.

삼성 직업병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직업병 유가족과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나섰지만 오히려 유족들에게 더 큰 상처만 남겼다.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삼성 측 실무협의 담당자들은 교섭의 의미를 망각한 채, 유족과 피해자들을 향해 기본적 예의도 지키지 않는 비인간적인 태도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실무협의는 2차례 만에 별 성과 없이 결렬된 상태다.

그 사이에도,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은 또 다른 죽음을 맞이하거나 홀로 병마와 싸워나가고 있다. 현재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 직업병 피해자는 181명이며, 그 중 69명이 사망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노동자 고 황유미 씨의 부친 황상기 씨는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과, 그리고 그 가족들까지 다 죽어가고 있다”며 “이제 더 이상의 죽음을 멈추고, 진상규명을 실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반올림은 이 자리에서 “55번째 죽음이 된 삼성노동자 고 이윤정 님을 추도하기 위해 모인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싸움에 대해 새롭게 결의를 다진다”며 “삼성의 거대한 돈의 힘에, 삼성만의 정부에 더 이상 우리 노동자들을 빼앗길 수 없다고, 산재인정을 넘어 건강하고 평등한 노동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노라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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