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구로공단의 외관과 이미지는 미화되고 변화돼 왔지만, 그 속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30년 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첨단산업’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노동환경은 30년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청년노동자 박민수(가명. 29)씨 또한 여전히 ‘구로공단’의 노동자로 살고 있다. 장시간노동과 열악한 환경, 임금까지 그를 향한 사회적 착취는 여전히 멈출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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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과 ‘인내’를 강요하는 사회
노동자들은 아직 80년대 ‘구로공단’에 살아
박민수 씨는 20대의 절반 정도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로 살았다. 청년실업이 심각하다고는 하지만, 구로공단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견디기 힘든 노동강도에 혀를 내두르며 들고 나는 사람이 많아, 비교적 수월하게 고용이 된 케이스였다.
“대기업 1차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어요. 이전 업체에서는 생산직으로도 일을 했는데, 지금은 준 사무직이예요. 주 5일 사업장이고, 정상 업무 시간은 오전 8시 30분에서 오후 5시 반까지예요. 하지만 이런 규정이 지켜진 적은 없어요. 정상업무 시간은 단순히 임금 계산을 하기 위한 것이어서, 실제 출근 시간은 오전 8시 10분이고 퇴근은 정해진 시간이 따로 없어요. 보통은 밤 11시 넘어서 끝날 때가 많고, 심할 때는 새벽 3시까지도 일해요.
그럼에도 임금은 정상업무 시간만큼만 나와요. 포괄임금제라서 잔업을 해도 추가되는 수당은 없어요. 주5일 회사라고 하지만, 주말에도 항상 일을 해요. 한 달에 3일 쉬기도 어렵죠. 그렇게 일을 해서 한 달 손에 들어오는 임금은 140만 원 정도. 주 5일 근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메워야 하니까요. 또 그렇게 일 해야 윗사람들이 ‘헌신적으로 일한다, 고생했다’고 말해주니까, 그게 또 우리한테는 먹혀요”
심각한 노동 강도와 열악한 근무환경에 나가떨어지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자리는 빠르게 새로운 노동자로 채워진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헌신’이라는 관념을 주입하고, 사회는 그들에게 ‘인내’를 강요한다. 그들 사이에서도, 노동은 미래를 위해 ‘견뎌내는 것’이 돼 버렸다.
“제 또래 친구들 중 못 버티고 떠나는 이들도 많아요. 하지만 다른 회사 가도 고생하는 것은 똑같고, 제 또래 나이의 특성상 5년 뒤에 좀 더 나은 삶이 중요하지 지금 당장 힘들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잖아요. 당장의 편한 것을 찾으려다보면 철없는 애로 보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운이 좋거나 빽이 있지 않은 이상 편하고 임금 많이 주는 회사를 찾기가 어렵잖아요. 회사도 그걸 잘 알고 우리도 잘 알아요.
그래서 회사는 우리 또래나 30대 직원들에게 주말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헌신하기를 기대해요. 우리 역시 그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자기 삶 보다는 회사를 더 생각하고요. 지금 고생하면 5년 뒤에는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도 크고요. 물론 5년 뒤에 편하게 주말에 쉴 수 있는 환경을 기대하는 건 아니고, 단지 좀 더 좋은 직급이나 대우를 받기 원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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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21세기 신분제, “1차 하청은 양민, 2차 하청은 종”
산업 전반에 뿌리내린 다단계 하청구조 시스템은 ‘먹이사슬’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업체간 종속관계는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관계에까지도 스며든다. 익히 알려진 대기업-하청업체간 상명하복의 관계는 빙산의 일각이다. 하청업체의 다단계 구조를 들여다보면, 그 속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1차 하청 소속이냐, 2차 하청 소속이냐에 따라 나이나 연차, 실력은 모두 역전될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한 들 원청인 대기업에 들어가기란 거의 불가능하죠. 하청회사들도 마찬가지예요. 수직계열화 돼 있거든요. 1차 하청에서 2차 하청에서 일했던 사람을 받아주지 않아요. 마치 신분제처럼, ‘종’이었던 사람이 ‘양민’이랑 같아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달까. 아무래도 ‘갑’과 ‘을’의 관계니까 정서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반면 1차 하청 직원이 2차 하청으로는 옮겨갈 경우 직급부터 임금까지 모든 게 올라가요. 1차 하청에서 과장했던 사람이 2차 하청으로 옮기면 차장으로 직급이 오르고, 임금도 배로 받을 수 있어요. 물론 폐업 등의 위험이 있어 안정성은 떨어지죠”
박민수 씨는 공장에 들어와서야 ‘소속’이 ‘신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았다. 21세기 신분제는 정규직-비정규직으로만 분류되는 게 아니었다. 다단계 하청업체 구조는 나이도, 직급도, 관습도 뛰어넘는 또 다른 사회와 계급을 만들어냈다.
“하청업체 직원간의 관계는 나이, 직급과는 상관없어요. 1차 하청이냐, 2차 하청이냐에 따라 상하관계가 형성되는 거죠. 저는 아직 직원인데, 2차 하청 과장이 저한테 쩔쩔매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람도 있어서 나이에 상관없이 2차 하청 사람들한테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경우도 많아요. 회사에서 ‘강압적’인 방식으로 2차 하청을 관리할 것을 주문하기도 하고요.
사실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구직자들이 1차 하청인지, 2차 하청인지 알고 들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대다수가 회사 규모나 연봉, 복지 같은 것을 보고 들어가는 거니까요. 하지만 입사해 보면 구조를 알게 돼요. 10년간 2차 하청에서 일했던 잔뼈 굵은 직원도, 1차 하청으로 재입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요. 1차 하청의 체면상, ‘을’관계에 있던 2차 하청 직원을 받아들이기란 어려운거죠”
상시적 체불임금과 폭력까지...“노조가 있으면 좋지만...”
박민수 씨는 지역에 있는 공단에서 생산직 노동자로도 일한 경험이 있다. 하루 종일 몸에 기름때를 묻히고, 상사의 폭언에 시달려야 했다. 노조가 없어 집단대응은 꿈도 꾸지 못하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매번 주눅이 든다. 자신의 신분이 비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A지역에 있는 제조업체에서 1년 넘게 생산직으로 일한 경험이 있어요. 회사 분위기도 좋지 않았는데, 특히 계장이라는 사람의 성격이 포악해서 항상 욕을 입에 달고 다녔어요. 자기랑 일을 하다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을 하고, 실제로 때리기도 하고, 무게가 3키로 정도 되는 제품을 집어던지기도 했어요. 매일 기름을 몸에 묻히고 욕을 먹으며 일을 하다 보니까, 내 삶이 남루하고 비루해보였어요.
생산직으로 기계만지는 일을 하다가 이제는 준 사무직이 된 거잖아요. 우리 회사에도 사출기를 만지고 몸에 기름을 묻히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있거든요. 그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보다는 그래도 내가 낫지’ 하다가도, 또 회사에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진짜 사무직 사람들을 보면 괜히 주눅이 들어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거예요. 같이 추레한 작업복을 입고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밖에 나갈 때는 누군지 몰라볼 정도로 세련되게 차려입고 다녀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도 이렇게 일 하는 것을 감추고 싶구나. 열악하고 험하게 일하는 생산직으로 보이고 싶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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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세대인 박 씨에게 옛 구로공단의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구로공단 노동자’라는 말도 이질적이다. 하지만 그도 어렴풋이는 느끼고 있다. 공단의 외관이 변하고, 명칭이 바뀌어도 ‘공단 노동자’의 삶만큼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옛날 구로공단 모습을 사진으로 한 두 번 본 것 같아요. 지금처럼 삐까번쩍한 아파트형 공장이 아니라, 높아야 삼층 건물들. 삼층 건물에 올라가면 이 끝에서 저 끝이 보였다고 하니까요. 되게 후졌죠. 그런데 그 시절에 사람들의 모습과, 지금 서울디지털단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크게 다를까 싶어요. 지금도 여전히 2차 하청에서 체불임금이 상시적으로 있고, 고용의 불안정한 문제라던가 비정규직 문제가 많이 있잖아요”
민주노총이 2011년, 전국 7개 지역 주요 공단에서 1,815명의 노동자를 상대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 중 60%가 노동조합 가입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규직 노동자들 40% 역시 노동조합 가입 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서울디지털단지 내의 노조 조직률은 현재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열악한 임금, 초과노동, 비인격적 대우에 시달리는 중소영세 공단 노동자들은 왜 노조를 결성하지 못하고 있을까.
“노조가 있으면 좋겠죠. 노조가 있으면 지금보다 환경이 나아질 것 같아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끔 노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하지만 노조 활동을 하고 싶다는 것 보다 ‘그런 게 있으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런 느낌이예요. 자기가 나서서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노조가 있으면 가입을 안 해도 일종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스스로 ‘구로공단 노동자’라며 뭔가 말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특히 제조업 같은 경우는 많은 비중을 이주노동자로 채우고 있는 추세고, 젊은 사람들은 이런 일을 많이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잖아요. 저 같아도 만약 노조가 만들어진다 해도 우선 상황을 볼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이 망설이고, 고민하고, 그러다가 어떤 판단을 하는 것에 따라 저도 판단을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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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옥탑방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노동자
꿀 수 있는 꿈은 ‘진급’과 ‘임금인상’ 뿐
사업장을 벗어난 박민수 씨의 삶은, 공장 안에서의 팍팍함 못지않게 열악하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한 청년노동자들은 옥탑방 한 칸의 삶을 벗어날 수 없다. 서른 즈음을 사는 그들에게 ‘미래’라는 것은 싼 월세를 찾는 일과 같은 현실적 바람이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도 ‘지금보다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소박한 꿈을 꾼다.
“포괄임금제라 아무리 잔업을 해도 추가되는 임금이 없고, 제 손에 떨어지는 임금은 148만 원 정도예요. 제가 지금 보증금 500에 짜리 옥탑방에 살고 있거든요. 월세와, 각종 공과금, 수도세, 전기세, 가스비 같은 것을 내고, 휴대폰비 평균 11만 원 정도. 교통비, 식대랑 식료품, 생활용품 같은 걸 제외하면 융통할 수 있는 돈은 빠듯하죠. 그래도 매달 36만원이었던 적금을 다음 달부터는 46만원으로 올리려고요.
지금 살고 있는 방 계약이 올 겨울에 끝나는데, 그 때 맞춰서 500만 원 정도를 더 모으려고 하거든요. 지금 살고 있는 방 보증금을 1000만원으로 조정해 월세를 좀 낮춰 보려고요.지금 살고 있는 방은 화장실과 창고까지 합치면 한 여섯 평 정도. 지금까지 살아본 옥탑방 중에 제일 좋아요. 예전에 살았던 옥탑방은 방 한 평에 화장실이 딸려 있고, 방안에 싱크대 한 칸 짜리에 휴대용 가스렌지랑 식기건조대까지 올려놓고 살았어요. 거기는 보증금 없이 11만원이었던가. 냉난방도 안 되고 여름에는 엄청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춥고, 보안에도 취약하고, 사생활 보장도 안됐어요.
지금 현실적으로 꿀 수 있는 꿈은, 회사에서 인정받아 빨리 진급하는 거예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월급이 오르고 생활이 안정되는 거죠. 다른 직장으로 옮기더라도 환경이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 나이 또래 남자들도 대부분 안정적인 샐러리맨이 되는 걸 꿈꾸잖아요. 가끔 결혼은 언제 하냐고 주변에서 걱정을 하는데, 당장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직은 내 인생의 화두로 올리기에는 부담스럽죠”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