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광주민중항쟁 기념일을 계기로 한국을 찾은 <신좌파의 상상력>의 저자 조지 카치아피카스가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봉기> 출간을 앞두고 세계 민중 봉기에 관한 분석을 전했다.
알려지지 않은 봉기의 대륙,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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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욱 기자 |
카치아피카스는 우선, 세계 곳곳의 민중 봉기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항해 직접민주주의, 정당이나 노동조합 등 기존의 조직으로부터 독립적인 다중적 투쟁으로서의 자율성, 국제연대, 동시적인 투쟁이 연결되고 확산(에로스효과)하는 성격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신좌파적 국제주의의 주요 사례가 1960-70년대 68혁명, 1980년대 미-소간 핵무기 경쟁에 반대하는 무장해제 운동과 99년 시애틀 반세계화 운동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나며 주목됐지만 아시아에서 이 현상은 잘 알려지지 않거나 왜곡됐다며 이의 주요 특징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민중 봉기는 1980년에서 1992년에까지 6년간 9개국에서 나타났다. 5개국에서 독재 정권을 퇴진시켰고, 1980년 광주민중항쟁에 이어, 1986년 필리핀, 87년 다시 한국의 6월 항쟁, 88년 버마, 89년 중국, 92년 대만으로 이어졌다.
1986년 필리핀 피플파워 혁명은 보통 간디가 인도를 해방시켰듯, 가톨릭이 혁명을 이끌었다고 평가되지만, 혁명의 양상은 군부 개혁세력의 반독재투쟁과 민중운동이 결합해 전개된 민중 혁명이라는 성격을 가진다. 필리핀은 또 3천 개 이상의 섬과 80개 이상의 언어로 구성된 나라여서 이전에는 하나의 민족이라고 보기 어려웠지만 이 혁명을 통해 하나의 집단적 의지가 관철되며 동질성을 구성하게 됐다고도 해석했다.
1989년 중국 천안문 봉기도 흔히 학생들의 투쟁으로 평가되지만, 학생 봉기를 넘어선 민중 항쟁이라고 평가했다. 희생된 사상자 대부분도 도시 노동자와 빈민이었고 당시 베이징 노동자 단체는 초기 조합원 2천 명에서 2만 명으로 늘어날 정도도 노동자들의 참여가 절대적이었다고 보았다. 천안문 광장에서는 또 아시아 봉기 간의 상호 작용을 나타내듯 필리핀 피플파워 사진들이 널리 전시돼 천안문 참가자들이 필리핀의 사례를 참조하고 동질감을 느끼는 과정도 이뤄졌다.
87년을 중심으로 투쟁이 지속되다 1999년 봉기가 일어난 대만에서는 학생 그리고 장개석 광장이 공적 광장으로서 중심 역할을 했다. 대만에서의 민중항쟁은 민주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투쟁이자 천안문에 비해 보다 진전된 직접민주주의가 이뤄졌던 사례다.
92년, 99년 두 번의 봉기를 통해 절대 군주제를 폐지한 네팔, 1992년에 수친다 군사 쿠데타에 맞선 태국, 잔인하게 학살당한 버마 민중 투쟁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광주민중항쟁, 직접민주주의의 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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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봉기>, 올 겨울 출판을 앞두고 있다. |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특히 광주민중항쟁은 한국 민주화 투쟁의 핵심이며 이로 인해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운동이 촉발됐다고 강조했다. 그 중에서도 매일 도청 앞 광장에서 열렸던 일일 집회가 결정적이며, 바로 이를 통해 광주항쟁에서의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됐다는 견해다.
광주민중항쟁은 그의 시각에선, 1871년의 파리코뮌과 비교될 수 있다. 파리 민중들이 당시 프로이센의 점령에 항거하며 권력을 장악했고, 결국엔 프랑스와 독일 군대에 진압됐는데, 이것은 광주민중항쟁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광주민중항쟁과 파리코뮌 사이에는 두 가지 차이가 있는데, 1871년 파리코뮌에서는 국민방위군이 미리 조직돼 있었지만 광주에서는 민중이 스스로 무장한 점, 그리고 파리코뮌은 원래 행정단위이기 때문에 구역에 따라 대표자를 선출한 간접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는 반면, 광주에서는 10만 명까지 군중이 주도하는 직접민주주의를 보였다는 점이다. 그는 민중의 자기 조직화라는 관점에서 광주민중항쟁이 더욱 발전적이라며 광주에서 대중들이 이끌어간 것은 직접민주주의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남미 민중운동과 오큐파이운동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아시아에서의 민중 봉기 외에도 남미와 최근 월스트리트 오큐파이 운동에 대해서도 견해를 나타냈다.
라틴아메리카 사례는, 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부, 민간 독재 하에 있었지만, 짧은 기간 안에 진보적 정권이 출현하게 됐다며 차베스가 군부 내 개혁운동을 이끌었던 것도 있지만 광범위한 민중들의 힘에 의해서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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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욱 기자 |
특히 남미 민중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선 투쟁으로 촉발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1989년 2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의 봉기는 IMF, 세계은행의 보조금 삭감 요구 아래 교통비가 하루 아침에 2배로 오르며 사회적 폭동으로 이어지고 전국으로 확산된 폭동에 혁명 세력이 조응하면서 진행됐다고 그 맥락을 풀이했다.
카치아피카스는 베네수엘라 외에도 멕시코 사파티스타, 와하카 코뮌을 주목했다. 와하카는 애초 2006년 교사 노조의 투쟁으로 시작해서 도시 전체의 반란으로 확산된 사례로 여기서 정당이 주도하는 형태가 아닌, 직접민주주의와 아래로부터 풀뿌리 봉기, 국제연대, 도시 자체를 장악하는 코뮌 형태를 취했다는 점을 볼 수 있으며, 점거라는 형태가 민중 투쟁의 주요 전술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볼리비아의 경우, 2000년 코차밤바 물 전쟁, 2003년과 2005년 가스 전쟁 등 자원 사유화 조치로 물과 가스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오르면서 민중들이 일어나 봉기로 다시 빼앗아 왔다. 2002년 페루 제2의 도시 아레키파에서의 발전 민영화 저지 투쟁도 유사한 형태로,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나타난 사유화, 글로벌 자본에 대한 투쟁들은 기존의 노사관계 투쟁이 아니라 한 도시 내에서 전 민중이 봉기하며 쟁취한 사례라고 전했다.
카치아피카스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은 상대적인 의미에서 제도화된 정당, 노동조합은 쇠퇴했지만 과거 주변적 존재였던 원주민 운동이 활성화됐다는 점을 들었다. 콜롬비아 원주민은 스스로 FARC 인민군을 조직, 정부와 대치하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페루 아마존 지대도 원주민들이 투쟁에 나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 유기적 생태, 보존 등 생활양식을 자연과 조화하려는, 유기적 생활양식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보았다.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한편, 남미 좌파 정권이 등장할 수 있었던 핵심 요소는 1990, 2000년대 아래로부터의 민중운동의 동력이었지만 이런 봉기들은 지배 엘리트에게도 유리한 요소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월스트리트 오큐파이 운동에 대해서는 2011년 9월 뉴욕 주코티 광장 중심의 운동과 11월 오클랜드 운동을 비교하며 평가했다. 뉴욕에서 200곳, 전국적으로 2000군데가 점거됐는데 겨울이 오면서 지속되지 못한다. 카치아피카스는 이에 비해 오큐파이 운동의 정점은 오클랜드 투쟁이었다며 경찰 폭력에 맞서 총파업이 조직됐고 지역운동과의 역학 속에서 빌딩 등 점거운동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확대되는 민중의 자율성...지배계급, 봉기의 성과 향유하고 개입해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이 같은 봉기를 되돌아보며,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항해, 직접민주주의, 다중적 투쟁으로서의 자율성, 국제연대, 동시적인 투쟁이 연결되고 확산(에로스효과)하는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기본적으로 강조하고 주요 공통점을 제기했다.
카치아피카스는 우선 아시아에서의 봉기에 대한 연구를 통해 경제 상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불황이냐 호황이냐가 봉기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평가다. 두 번째는 1인당 GDP를 척도로 흔히 헌팅턴의 민주화론에서처럼 경제 발전 과정에서 중산층이 민주화를 주도한다는 평가가 있지만 아시아에서의 봉기는 중산층 주도의 민주화가 아닌 민중의 자기조직화였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봉기와 봉기 자체의 직접적인 성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봉기의 성과는 정치 엘리트가 대부분 챙겨 갔다. 혁명에서는 종교나 인종도 상이하며 오히려 투쟁과 운동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고 그는 전했다.
카치아피카스는 남미 민중 운동을 중심으로는 봉기의 성과가, 자유의 확대, 물질적 개선 등 민중에도 공유되지만 지배 엘리트는 이를 이용해서 새로운 지배체제를 확립한다고 평가했다. 남미의 경우, 진보적 정권이 확산된 것은 한편에서는 봉기의 결과물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정권과 이 운동과의 갈등이 존재한다며, 정권과 운동 사이에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포섭하려는 갈등과 긴장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배엘리트도 봉기의 성과를 챙긴다는 것은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견해다. 마르코스 독재 타도 이후 일부 은행과 다국 적 기업도 노동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태국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다르긴 하지만 90년대 후반 그루지아, 색깔혁명, 오렌지, 장미 혁명 등 조지 소로스 재단, 베네수엘라 차베스에 대한 공작도 미국의 전국민주주의기금(NED)이 해왔다고 제기했다.
카치아피카스는 이외에도 지배엘리트들은 봉기의 성과를 향유할 뿐 아니라,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며 북아프리카 혁명 같은 경우 튀니지의 상황은 유일하게 예외이지만, 미국이 가시처럼 여겼던 카다피 그리고 이집트의 무바라크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로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5일 진행된 이번 조치 카치아피카스 초대 토론은 ‘국제문제활동가연구자모임’이 주최, 원영수 도서출판 타흐리르 편집장이 통역을 맡았다. 이날 소개된 아시아의 민중봉기들을 조명한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봉기>는 1권(한국), 2권(아시아)으로 올 겨울 한국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