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하고 지우려는 기억과 희망을 지키는 길

[기고] 현대차 희망버스의 세 가지 기억...8.31 희망버스를 타야 할 이유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울산의 뜨거운 태양, 뜨거운 함성, 뜨거운 분노가 하늘 위를 뒤덮고, 그 보다 더 높은 곳, 철탑 위에서 아직도 두 명의 노동자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던 그 날. 철조망 뒤에서 우릴 향해 조소하던 수천 명의 용역들이 내어 뱉던 욕설과 TV 뒤에 앉아있던 이들이 쏟아낸 상상치 못할 조롱과 비난. ‘희망’이란 이름이 무참히 짓밟히던 그 날. 용역들의 폭력에, 세상의 비난어린 시선에, 경찰들의 방관과 기만에, 분노하다 못해 소화기 눈발 날리던 숨 막히는 안개 속에서 그저 온몸으로 한스런 고함을 외치던 그 날.

그 날의 기억이 자못 비장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자세히 나의 머릿속 기억의 조각들을 살펴보면 실은 무척이나 설렘 가득하고, 따뜻한 순간들도 많이 있었는데, 왜 그 날은 이리도 비장한가! 어떤 이들은 희망버스가 아니라 혼란버스란다. TV에 나온 검은 옷 입은 이들은 카메라를 판독하여, 희망버스에 참여한 ‘폭도’들에게 몽땅 소환장으로 발송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 날 9시 뉴스에 마스크 쓰지 않은 내 민낯이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언론의 협박들과 희망버스를 향한 주변의 술렁거림은 나의 기억을 점점 굳어지게 한다. 분노와 자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몇 일간은 주변인들에게 변명해야 했고, 나의 말과 행동을 점검해야 했다. ‘희망’이란 단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희망버스 다녀온 날 내 얼굴이 TV에 나오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기분 좋은 날이었나. 버스 안에서 어린 시절 나에게 영화감독이란 꿈을 갖고 살게 해준 장본인인 정지영 감독님을 만났다. 그냥 곁에서 바라본 정도가 아니라, 그에게 나의 학창시절과 꿈에 관해 함께 이야기했고, 서로의 손을 마주 잡았으며, 시대의 엄혹함과 혁명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흔을 눈앞에 두고 있는 노장이 아직도 희망과 청춘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바로 이번 ‘희망버스’의 첫 번째 기억이다.

울산 현대차 공장에 도착하여 뜨거운 태양아래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 어린아이부터 머리가 성성한 노인들까지, 머리띠를 둘러맨 노동자들부터 풋풋한 대학생들까지 한자리에 둘러앉은 생경한 모습.

철조망 뒤로 온갖 무기를 들고 욕설을 내어뱉는 그 야만적인 풍경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서로에게 물을 권하고,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던 아스팔트 위의 두 시간. 노래가 나오면 어깨를 걸고, 구호가 나오면 함께 소리를 높이며, 거대한 자본의 위력 앞에서도, 절대 쫄지 않았던 모습이 바로 ‘희망버스’의 두 번째 기억이다.

그날 밤 300일 넘게 높디높은 철탑위에서 희망을 노래한 최병승, 천의봉 두 노동자를 둘러싸고 수천 명이 함께 불러준 사랑의 세레나데가 기억난다. 모두의 손에는 아름답게 반짝 거리는 스파클러가 들려 있었고, 모두의 마음엔 세상을 바꾸겠다는 희망의 꿈이 담겨 있었다. 그 아름다운 광경이 바로 ‘희망버스’의 세 번째 기억이다.

희망버스 세 가지 기억

하지만 자본과 정권은 이 기억을 조작한다. 이 희망을 깨뜨린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투쟁의 기억을 빼앗고, 따뜻한 동지의 품을 앗아간다.

그치지 않는 현대차의 만행과 신자유주의의 질주를 멈추게 하는 것은 결국 투쟁하는 노동자가 승리한다는 역사의 ‘기억’을 간직할 때에만, 우리가 함께하는 것 자체가 ‘희망’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가슴에 품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희망버스’는 멈출 수 없다. 8월 31일 다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으로 떠나는 희망버스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버스다. 희망을 잃고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곳으로 떠나는 희망버스는 저들이 조작하려고 하는 기억을 되살리고 저들이 깨려고 하는 희망을 지키는 발걸음.

전국 방방곡곡의 모든 정류소에서 희망버스는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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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 현대자동차 ,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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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택(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사무국장)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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