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쥐 똥 섞인 개밥을 먹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있었고, 2013년 야심한 밤에 생라면 부셔 소주 마시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사 A/S기사들이 있다. 어느 시간대에 무엇을 먹던 못 먹던 한국의 노동자들은 27년이 지나도 배가 고프다.
그리고 1986년 한진중 노동자들이 ‘개밥을 거부하자’며 도시락 거부 투쟁을 벌여 사측에 최초로 저항했던 것처럼,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들이 점심시간을 달라고 투쟁하다 2013년 노사협의회의 굴레를 깨고 비로소 노조를 만들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되고, 집단적으로 맛본 저항의 힘은 노조 조직력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것도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노조는 절대 안 된다”는 고 이병철 회장의 유언이 절대적인 ‘삼성’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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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점심시간과 8시간 노동시간 쟁취, 임금삭감 반대, 시간외근로수당 지급 등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회사에 항의하던 몇몇 ‘미친 놈’들의 반란은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결성의 시발점이 됐다. 입소문과 스마트폰 채팅방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확산된 저항의 소식에 회사와 노동자 모두 술렁였다. “아나 모르겠다, 일단 단결하고 보자”하고 시작한 노조 결성 운동은 조합원 400~500명에서 출발해 현재 1600여 명에 이르게 됐다.
노동자들의 저항은 회사가 옭아맨 노사협의회 구조에서 시작됐다. 부산시 동래센터 출신 위영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도 2012년 6월 노사협의회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위영일 지회장에 의하면 원래 노사협의회도 없었고, GWP(Great Work Place)협의회가 노사협의회로 둔갑해 노동청에 등록되어 있었다.
“어용 노사협의회 근로위원들이 있었는데 근로기준법이나 노동법을 전혀 모른다. 내가 2012년 1월부터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왜 사측을 대변하나?’, ‘근로기준법을 지켜야 한다’고 압박하니까 기존 근로위원들이 ‘나 못하겠다, 알아서 해라’ 이렇게 됐다. 일하기도 바쁜데 계속 공격당하니까 근로위원들이 피곤했던 것이다. 동래센터의 경우 점심시간과 8시간 노동시간, 일부 시간외수당을 쟁취했다. 업무특성상 고객들이 기다리고 있어 주5일제가 잘 안 됐지만 그래도 따냈다.
그러면서 전국에 ‘동래센터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소문이 났다. 노사협의회를 주축으로 처음에 동래, 포항, 구미 3개 센터에서 모이게 됐다. 그리고 확대되기 시작했다”
몇몇 노동자의 저항이 집단적인 노동자들의 분노와 만났다. 점심시간뿐만 아니라 점심식사비도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 고객서비스를 위한 차량 유지비와 기름값을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에 분노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다 임금이 대거 삭감되는 일이 벌어졌다.
“2011년 대법원이 현대차 비정규직에 대해 불법파견 판결을 내리면서 삼성이 도급법에 대한 위험을 감지하고 준비하기 시작한다. 2012년 4월부터 삼성이 핵심 부분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원청 직원과 협력사 직원이 혼재 근무하고, 모든 업무를 공유하고, 심지어 우리가 속해 일하는 협력사를 GPA(Great Partner Agency)라고 불렀다. 협력사 직원들이 원청 지점장 앞에 가서 파워포인트로 안건 발표하고, 개선 대책을 냈다. 월급만 적게 받았지, 하는 일은 똑같았다.
‘도급’은 도급단가 계약을 맺고 일의 결과를 가져다주면 도급계약금을 받는데, 4월 이전에는 원청이 협력사 사장 임금 주고, 우리 임금 주고, 건물임대료 주고, 모든 기자재 줬다. 명백한 위장도급이다. 문제가 되니까 협력사에 통째로 돈을 주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예전에는 조금씩 돈을 떼어먹던 협력사가 큰돈을 보고 욕심이 생겨 왕창 떼먹기 시작했다. 노동자들 간의 임금 차이가 1천만 원 이상씩 나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이 월급 받으면서 못 산다’고 난리가 났다. 그리고 알게 됐다. 협력사 사장은 경영할 수 없는 바지 사장이고, 원인은 삼성전자에 있다!”
해도 해도 모자란 말이 있다. ‘12년 연속 서비스품질 1위’를 만든 건 A/S기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인데, ‘진짜 사장’이 아니라던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가 연말 성과급 잔치를 했고, 배당금 잔치를 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수색영장 들고 온 것도 아닌데 자재 검사한다고 내 차를 뒤집어놓고, 회사 직원이 아니라면서도 일요일마다 불러 산행시켰다. 평일날도 시켰다. ‘5시30분까지 금정산 입구에 모여’라고 했다. 임금도 안 주고 부려먹으면서 교육은 매일 ‘삼성맨이다, 삼성의 프라이드’를 가지라고 했다. 우리는 비수기에 100만원 받으면서 배 쫄쫄 굶고 있는데, 신문에는 삼성전자 성과급이 얼마라고 떠든다. ‘아이고 기사님, 성과급 3천만 원 받아 좋으시겠요’하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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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영일 지회장 [출처: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 ‘기이한 일’로 이어졌다
현장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삼성전자서비스는 ‘악수’를 두기 시작했다. 사측은 ‘불만자’들을 제거하는 전근대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변화의 바람이 멈출 거라고 판단했다. 직접 감사를 통해 위영일 현 지회장, 신장섭 현 사무장을 문제 삼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감사를 해봤자 나올 게 없었다. 나는 ‘왜 그렇게 사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부정부패에 휘말리지 않고 비교적 깨끗하게 살았다. 감사 카드로 나를 위협할 때 당당할 수 있었다. 불법은 회사가 했고, 나는 당당했다. 신장섭 현 사무장도 당당할 뿐만 아니라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감사해 봤자 털릴 게 없었다. 결국 회사는 2013년 5월 말 위장폐업으로 다른 A/S기사들을 인근 센터에 재고용하고, 우리를 해고했다. 나는 끝까지 사직서를 쓰지 않았다. 이 회사 문 닫을 때까지 있을 거라고 했다. ‘사장님 오늘은 뭐 묵을까요?’하면서 사장 혼자, 나 혼자 이렇게 앉아있었다.
사측이 폐업, 해고를 강행하면서 위영일 지회장은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으로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에 노조 교육을 해 달라고 했다. 그는 이전부터 부산에서 여러 곳을 만나고 있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부터 통합진보당, 민주당까지. 사는 게 힘들어 나만 이렇게 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른 ‘근로자’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근무 마치고 오면 각 종 홈페이지에 들어가 ‘눈팅’하고 하소연했다. 반 발 걸치고, 술 한 잔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훑어보던 그였다. 이 과정에서 실망도 했고, 용기를 얻으며 성과도 있다. A/S기사들의 노동 현실을 바꾸기 위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이곳저곳 모두 만났다. 그러다 민주노총을 선택하게 됐다.
“금속노조가 삼성전자서비스 동래센터 현장에 직접 와서 교육을 한 것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너무 대담한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했다. 동래센터가 발칵 뒤집혔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생긴 이래로 처음으로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와서 우리를 전부 모아놓고 노조란 무엇인가 교육을 한 것이다.
그 뒤로 삼성전자서비스 남부지사 그룹장이 내려온다. 사측이 긴장했다. 원래는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서 인근 센터로 보내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암세포처럼 종자 번식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래서 동래센터에서만 인원이 20명이든, 30명이든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내부에서 ‘안고 있으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노조가 만들어지려고 꿈틀거리고 있으니까. 동래센터측은 바로 A/S기사들을 다시 채용한다면서 근로계약서 작성을 위해 오라고 했다. 나와 사무장만 오라고 하지 않았다”
동시에 위영일 지회장은 개인 블로그에 글을 하나 썼다. 해고를 눈앞에 둔 그가 5월말~6월초에 글을 올리면서 트위터에도 보냈다. 그날 밤부터 ‘기이한 일’이 발생한다. 국회의원과 기자들에게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난리가 났다. 서울, 부산, 포항 등 노사협의회 위원장으로 구성된 스마트폰 채팅방, 전국 A/S기사 중 전담팀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또 다른 채팅방에 글이 올라가고, 상황이 전해졌다. 앞서 한 두 차례 모임을 시도했던 이 모임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측은 노동자들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채팅방에 오른 글을 지워버리기도 했다.
“글의 내용은 ‘2013년 6월 초. 또 하나의 전태일 열사가 있다. 젊음을 불살라야 할 만큼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바로 삼성전자서비스의 직원이다’는 것이다. 처음에 진중권 교수에서 ‘좀 도와주소’ 하는 마음으로 트윗을 보냈는데, 리트윗 되면서 빵 터졌다. 진 교수 팔로워 수가 13만~16만 정도였다. 네이버 오늘의 트위터에 5분 정도 메인으로 올라와 있자 동료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많은 팔로워와 인연을 맺고 있는 이외수 선생에게도 트윗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막 퍼지면서 여러 곳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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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7월 14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설립됐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이제, 노동자들은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다
2013년 7월 14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태어났다. 지회는 현재 노조 조직 확대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1만여 명 노동자의 단결을 모으기 위해, ‘노조’라는 집의 주춧돌을 올리고 골간을 세우고 있다. 그는 ‘노조는 대중이 계속 만들어가는 하나의 집’이라고 정의 내렸다.
“사람을 모을 거다. 골간도 세우지 못했는데, 장식 먼저 하는 건 맞지 않다. 지회 현 집행부 임기가 2년 남았다. 2년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은 조직을 확대해서 지회의 기본을 만드는 일이다. 그래야지 폭풍치고 비바람이 쳐도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다음엔 후배들이 예쁘게 벽화도 그리고, 장식도 해서 완성해나가야 할 것 아닌가. 노조는 대중이 계속 만들어가는 하나의 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노조 조직을 확대하고 유지하는 하나의 힘은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동자들의 삶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점심시간 이야기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제, 노동자들은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다.
“없던 점심시간이 전국적으로 생겼다. 그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매일 점심시간 달라고 해도 ‘야 임마, 밥 못 먹고 살았나. 남는 시간에 밥 먹으면 되지’ 하던 사측이었다. 퇴근 시간도 오후 6시로 막아 놨다. 우리는 대리기사들이 콜 건수로 돈을 받는 것처럼, 일처리 건당으로 돈을 받는다. 시간외수당도 주지 않으면서 밤 9시, 11시까지 막 부려먹었다. 우리가 굶든 살든 간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게 삼성이다. 우린 이런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우리가 북 치고 장구 치고 ‘물러가라’ 하니까 점심시간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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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
(기사제휴=미디어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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