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1호기가 건설돼 35년째 가동되고 있지만 고리1~4호기 최인접지역인 길천마을(기장군 장안읍) 주민들은 아직도 이주를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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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리 원자력 발전소 1~4호기에 인접한 길천마을. ©용석록 기자 [출처: 울산저널] |
길천마을이주대책위원회는 이주 요건이 되도록 전원개발사업구역으로 길천마을을 포함시켜 달라는 요구를 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집단이주를 하려면 ‘전원개발사업구역’으로 지정,고시돼야 하나 고리1호기가 들어설 당시 ‘고리’주민은 집단이주를 했고 ‘길천마을’은 이주에서 제외됐다.
길천마을 집단이주에 대해 2011년 7월에 고리원전본부와 기장군, 길천리대표들 간에 ‘길천리 지역 전체 이주에 대해 객관적 타당성을 근거로 이주방안을 모색’하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했다. 그들은 공동으로 이주 타당성에 대해 2012년에 연구단체에 용역을 줬으나 이주는 불투명하다.
길천지역은 고리원전이 입지할 당시부터 개발제한구역이 설정됨에 따라 30년 간 재산권 행사가 제한되고 주거환경이 낙후됐다. 2001년 개발제한구역에서 풀려 한쪽에는 원룸이 들어서고 한쪽은 집이 허물어져 가는 등 마을 모습이 기형적이다. 바닷가 쪽으로 횟집이 있어도 손님이 거의 없다.
1988년 한전발전사업단장은 고리원전 인근 주민의 집단이주 요구에 대해 수용할 수 없으나 희망자에 대해 개인별 이주를 추진하기로 약속했고, 에너지전시관 옹벽 옆 도로 인접세대 이주희망자는 2007년에 이주했다. 현재 길천리에는 889세대 1,765명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98년 4월에 한전고리원전본부와 길천마을 대표들 간에 ‘길천마을 장기발전 기반 구축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로 합의했다. 마을 주민들은 “10년이 지나도 발전은 커녕 마을이 점점 더 고립돼 가고 있다”며 집단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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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에서 벗겨진 페인트처럼 녹슬고 있는 길천마을 사람들. ©용석록 기자 [출처: 울산저널] |
길천마을은 고리1호기가 들어서기 전 7번 국도가 지나가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었다. 고리 1~4호기가 차례로 들어섬으로인해 주민들의 주 통행로였던 7번 국도가 단절됐으며, 31번 국도가 우회도로로 개설됨으로써 마을은 외곽지역으로 밀려나는 아픔을 겪고 있다.
길천마을 주민은 “사택은 31번 국도 건너편에 짓고 우리 마을은 원전 코앞에서 그들의 출퇴근로가 된 셈”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길천마을 개발위원장은 개발을 원하지 않지만 이주를 위해 개발을 원하는 개발위원장이기도 하다. 그는 사택이 들어선 곳과 에너지관 부지도 원래 농토였는데 마을 사람들 생계수단인 농토의 많은 부분을 한수원이 매입했고, 어획량도 어장 축소로 줄어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 파괴됐다고 했다. 경제활동기반이 상실돼 결과적으로 고리원전에 의존적인 경제구조로 전환됐다는 것이다.
고리 1호기는 원래대로라면 2008년 폐쇄됐어야 하나 2006년 6월 한수원은 수명 연장 10년을 신청했고 지금까지 가동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고리 1호기 수명 연장에 반대했지만 2년 만에 특별지원금 1,610억원을 받으며 연장에 합의했다.
마을이주대책위원장에 따르면 1,610억원 중 원전과 최고로 가까운 길천 5,6,7반 사람 중 희망자 이주에 150억원이 나갔으며, 나머지는 해일방제시설과 월내도로건설 등에 쓰일 예정이라고 했다.
마을 주민들은 원전에서 지원금 몇 백억 나온대야 사는게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없다고 한다. 지원금이 개인에게 돌아갈 수 없고 쓰여질 분야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발전량에 따라 해마다 0.5%씩 지원되는 지역발전기금이 예전에는 1억 8천만원, 지금은 3억 8천만원 가량 길천마을에 나온다. 이주대책위원장은 “공동기금으로 예치하면 좋은데 자꾸 빨리 쓰라고 하니까 쓸 곳을 찾지 못해 공동으로 길천마을 내에 있는 땅을 사놓았다”고 했다.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는 1971년 착공, 78년 4월 29일 준공된 이래 1983년 2호기, 1985년 3호기, 1986년 4호기가 순차적으로 준공되어 운영 중에 있다.
40년 전 고리에서 쫓겨 왔는데 또 나가라니, 신고리 3~4호기 사람들
고리원전 부지에 살던 한연자 할머니(87)는 70년대 초 기장군에 고리1호기 건설 때 26가구와 함께 서생면 신리 7반 골메마을로 이주했다. 골메마을에서 40년을 살았는데 신고리 공사 때문에 다시 이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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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연자 할머니(87)는 40년전 고리 1호기 들어선 곳에서 서생면으로 이주했으나, 이젠 신고리 3~4호기 때문에 다시 이주해야 한다. ©용석록 기자 [출처: 울산저널] |
한 할머니가 처음 골메마을로 왔을 때 그곳은 야산과도 같은 곳이었다. 처음엔 천막을 치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길을 내고 터를 터를 잡아 집을 지어 살았다. 바닷가쪽 축대를 다 쌓는데는 3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동지섣달 손발이 얼어 터져도 돌멩이를 날랐어. 그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아 아바이가 집 지어놓고 죽었으니 혼자 7남매를 다 키웠지. 영천까지 나가 젓갈 팔면 보리쌀 한 되 받아와서 얼라들 먹이고...”
한연자 할머니는 국가에서 중요한 일 한다니까 살던 곳에서 이사했단다. 서러워도 나라가 잘 살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랬단다. 땔나무도 없고 쌀이 귀해 밀 껍데기 먹고 근근이 아이들 키워 정들고 살았는데 이제 또 그 마을을 떠나라고 한다.
70년대 초 기장군에 고리1호기 공사가 시작되면서 26가구가 울주군 서생면 신리 7반 골메마을로 이주했다. 30년 살고 있는데 2001년 신고리 3~4호기가 들어선다며 그 마을에 원전건설이 고시됐다. 골메마을 사람들은 10년 넘게 재산권 행사도 못하고 비가 새도 손을 못대고 살았다.
한연자 할머니는 “백성이 살아야 공장도 생기지. 백성이 있어야 원자력도 있지.”라며 한탄을 한다. 어떻게 두 번씩이나 사람을 나랏일로 내쫓느냐는 것이다.
같은 마을에 사는 김모(62) 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한수원에서 어업보상을 3년만 해준다는 것이다. 어업소멸보상을 받고 가면 다른 곳에 가서도 어업을 영영 못한다고 한다. 배운게 고기 잡는 일인데 다른 마을로 가면 어촌계에서 타지 사람을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맨날 텅텅 비어 있더만 체육관은 와 짓고 운동장은 맹글어서 뭐하노. 당장 생계가 걱정인 주민들 먹고 살 길 먼저 터 줘야지."
골메에는 26집 이주해서 6집(어업에 종사하지 않는)이 신고리 3호기 생긴다니까 이사했고 20호 남아 있다. 20호는 90% 이상이 바다에서 고기잡이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사람들, 신고리 1호기때부터 싸웠지만 이젠 포기
울주군 서생면 주민단체인 서생면주민협의회는 지난 7월 신고리 5·6호기 자율유치 건의서를 울주군과 군의회에 전달했다. 군의회는 같은 달 '신고리 원전 5·6호기 자율유치 건설요청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신고리 원전 5·6호기는 현재 정부의 실시설계 승인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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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예정된 가운데 신리마을은 한수원과 마을 전체가 이주하는데 합의했다. ©용석록 기자 [출처: 울산저널] |
자율유치에 나섰던 신리 주민을 만났다.
“우리가 안 싸운게 아니다. 신고리 1~4호기 생길때 엄청나게 싸웠다. 삭발도 하고 돌멩이도 던지고 머리띠 매고 데모도 하고. 그런데 안되더라. 시내쪽 사람들 지원이나 왔나. 온전히 우리 문제였다. 서럽고 힘들었다. 아무리 싸워도 안되더라. 그리 싸워도 4호기까지 지어졌다.”
신리마을 사람들은 외부(신리마을 외 지역)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도 있었지만 신고리원전이 들어서면서 마을 사람들 간 갈등이 불거졌다. 과수원이나 땅이 많은 지주는 땅 없는 사람들이 싸울 때 먼저 합의해서 신고리 원전을 막지 못했다고도 한다.
“인자 우리도 실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원전이야 반대하지. 그런데 우리가 반대한다고 5, 6호기 안 지어 지겠나. 안 지어져도 3, 4호기가 지어져서 어차피 우리는 사정거리 안에 산다. 늘 위험하단 말이다.”
신리마을 주민들은 처음에 한수원에서 마을 반쪽만 이주시킬 계획이었는데 3자협의체(한수원, 울주군, 마을대표)를 구성해 작년에 마을 전체를 이주한다는 합의서를 썼다. 올해는 자율유치 신청서를 써서 2천여 명 서명을 받아 군 의회에 제출했다.
정광석(온양,온산,서생) 군 의원과 이순걸(온양,온산,서생) 군 의회 의장은 전화통화에서 “이미 신고리 5~6호기가 건설될 사전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주민들이 기금을 받기 위해 낸 자율유치 신청서로 해석했고, 그걸 받지 않는다고 해서 신고리 5~6호기가 지어지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유모(50세) 씨는 신리청년회 소속이다. 그는 신고리 1~2호기 지을 때 신리 마을만 줄기차게 반대했다고 한다.
“서생면 전체로 확산되길 바랬죠. 단식투쟁도 했는데 최고 힘 없는 사람만 피해를 많이 봐요. 우리는 그때 체르노빌 원전도 공부하고 원전이 왜 나쁜가도 다 알았어요.”
그는 원전이 들어오면 안전성 문제도 있고 고기도 못 팔고, 재산권에 침해를 받는다는 걸 다 알았다고 한다.
“군수한테도 반감이 많죠. 맨 처음 원전 끌어들인게 군수잖아요. 거기다 지원금 받으면 그 돈 다 어디다 쓰는지 모르겠어요.”
울주군은 원전지원금을 규정대로 쓸 수 밖에 없다며 경로당설치, 상수도사업, 도시가스공급사업, 스포츠파크, 체육공원 등을 짓는데 주로 사용한다고 했다. (기사제휴=울산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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