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자 ‘무료노동’ 강요하는 사회...편법 고용도 빈번

돌봄교사, 보육교사, 요양 간병 노동자들 상대로 불법 노동 강요

일선 교육청과 학교에서 초등학교 돌봄교사들에게 편법적인 초단시간근무제를 강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학교, 어린이집, 병원 등에서 일하는 돌봄노동자들이 ‘봉사’라는 명분으로 ‘무료노동’에 시달리고 있어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은수미 민주당 의원실과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등은 26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돌봄노동자 무료노동실태 국회 증언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돌봄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환경, 무료노동 등의 사례를 증언하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무기계약직’ 피하려고 ‘초단기 근무’ 계약 작성

경북지역 초등학교에서 6년째 근무하고 있는 돌봄교사 A씨는 올 초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학교가 무기계약직 전환을 피해가기 위해 ‘15시간 미만’의 초단기근무 계약을 강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A씨는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다른 사람과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는 학교 측 요구에 초단기근무 계약을 작성했다.

초단기계약으로 생긴 공백은 돌봄교사 자격도, 경험도 없는 코디 선생님이 채웠다. 또한 A씨 혼자 해 왔던 돌봄 교실 운영은 3명으로 인원이 늘었고, 이들은 각각 시간을 쪼개 근무하고 있다. A씨는 “돌봄강사를 무기계약 해주기 싫어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정을 지시 내린 것”이라며 “마음대로 고용하고, 마음대로 자를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려는 교육부와 경북교육청의 의도”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돌봄교사 B씨 역시 많은 돌봄교사들이 도교육청의 꼼수 때문에 초단시간 근로자로 전락했다고 입을 열였다. B씨는 “올 2월 경북교육청에서 지침을 내려 ‘돌봄교사도 무기계약대상’이라고 해 놓고는 불과 이틀 후에 돌봄교실 운영시간을 5시간에서 2시간 30분으로 쪼개어 초단시간 근로계약으로 전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현재 초등 돌봄교사는 전국적으로 7,944명 가량이다. 이들 중 노동관계법이 적용되지 않는 초단시간(15시간) 근무자는 약 2천여 명으로, 26.3%에 달한다. 교육청과 일선 학교에서 노동관계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돌봄교사들의 재계약 시점인 2월경에 초단시간 근로형태로의 전환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 지역은 돌봄교사 중 95.1%가 초단시간 근무를 하고 있으며, 세종(89.3%), 전남(82.3%), 전북(75.6%), 경북(63.2%), 충남(40.5%) 등의 지역에서도 초단시간 근무자 비율이 높았다.

초등 돌봄교사들도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지만, 실제 무기계약 전환 비율은 45.5%에 불과하다. 특히 월 1백만 원의 임금도 받지 못하는 비율이 34.4%에 달하고 있으며, 2.8%는 월수입이 50만 원 미만이다.

조범례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 돌봄분과장은 “돌봄교사들은 심각한 고용불안, 저임금과 열악한 근모조건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통한 고용률 70% 달성을 주장하기 전에 시간제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조는 돌봄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위해 △전국에 통일된 업무매뉴얼, 운영시간(근무시간), 처우개선 적용 △돌봄교실 인력의 인건비를 교육부예산으로 지급 △초등돌봄교실의 전문성 인정 및 방과후학교와 분리운영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료노동’ 강요당하는 돌봄노동자들

어린이집 보육교사와 병원 간병, 요양 노동자들의 무료노동 실태도 심각한 수준이다.

수원에서 8년째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는 C씨는 “거의 대부분의 어린이집에서는 근로계약서에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휴게시간을 넣어 근로계약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보육교사들은 휴게시간 1시간을 제외한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근로계약서를 체결하지만, 휴게시간은커녕 무료 추가노동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B씨는 “유아들이 모두 돌아가는 오후 늦은 시간부터 청소가 이뤄지고 나면, 정작 해야 할 일지부터 각종 서류들만으로도 추가근무는 당연지사가 되어 버리고, 퇴근 뒤 집에서 수업준비로 밤을 새워야 하는 것이 매일의 일상”이라고 설명했다.

어린이집 측에서 내세우는 ‘휴게시간’은 점심시간이나 낮잠시간 등인데, 보육교사들에게 이때는 가장 바쁜 시간으로 꼽힌다. B씨는 “점심시간은 하루 일과 중 가장 바쁜 시간으로, 교사 1명당 많게는 유아 23명을 관리해야 한다”며 “아이들 손 씻는 것부터 식사 배식, 식습관 조율, 아이들 지도, 뒤처리, 식후 양치 지도까지 하고 있으며, 이러다 때를 놓치면 식사를 마저 하지도 못하고 정리하기가 일쑤”라고 토로했다.

이어서 “아이들 낮잠 시간에는 평가인증이라는 제도 때문에 유아들의 식사량, 기분, 건강상태, 배번, 투약 등 하루 일과를 초스피드로 끝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병원의 간병, 요양 노동자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현재 시설 요양보호사의 경우 12시간 맞교대 혹은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하고 있다. 심지어 24시간 연속 거주형 시설도 있다. 간병인의 경우 하루 24시간, 12시간제로 운영된다.

석명옥 전국요양보호사협회장은 “12시간 맞교대, 24시간 격일제, 24시간 연속 거주형 근무는 사실상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휴게시간을 지킬 수 없다”며 “시설과 병원은 허위로 휴게시간을 명시하고 실제로는 간병, 요양 노동자들에게 무료노동을 강요하며 임금을 갈취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부분의 요양시설 및 병원 등은 간병, 요양 노동자의 인력이 적어 현장의 노동자들은 식사 시간도 보장받지 못한다. 또한 교대제 근무형태로 운영되는 요양시설의 경우, 교대에 따른 인수인계가 필요하지만 이는 근무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석명옥 회장은 “요양시설은 요양보호사들에게 일찍 출근하거나 늦게 퇴근하게 하며 1시간 가량의 무료노동을 강요하고 있다”며 “심지어 업무의 연장인 교육과 조회 등의 시간도 업무 시간 외로 편성해 요양보호사들의 휴식을 빼앗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심선혜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의장은 “보육교사들의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8시간 근무자의 2교대가 도입돼야 한다”며 “아울러 보육교사가 보육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청소, 사무 등의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차승희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장 역시 “정부 부처와 지자체가 협력해 돌봄노동자 노동권 보호 조치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법제도 및 행정체계 정비를 추진해야 한다”며 △임금 가이드라인 마련 △간병, 요양 노동자 노동기준 마련 △휴게시간, 휴게·탈의 공간 보장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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