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할머니들 서울 상경...“고향땅 위한 마음, 막을 수 없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기자회견...“명분 잃은 송전탑 공사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기구 만들라”

밀양 주민들이 정부가 송전탑 건설을 강행할 근거가 사라졌다며 서울로 상경,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18일 오후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와 밀양 주민 50여 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신고리원전 3, 4호기 케이블 성능 시험 검사 결과 준공이 2년 이상 연기된 상황에서 밀양 송전탑 공사를 강행할 명분이 사라졌다”며 즉각적인 공사 중단과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라고 촉구했다.


몸을 부축 받고 나온 82세의 밀양 부분면 자치회장 김길곤 할아버지는 마이크를 들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김 할아버지는 “우리가 어릴 때 얼마나 굶주리고 헐벗었는가. 그래도 새마을운동에 동참했고 이 나라를 일군 이들이 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도 농사지으며 행복하게 사는 우리 마을을 왜 이렇게 만드는가. 양심을 지키고 살아왔는데 이 사회는 뭔가. 우리는 단지 오염되지 않은 땅을 자식들에게 잘 물려 주려는 것 아닌가. 얼마든지 다른 대안이 있다. 고향땅을 생각하는 우리 어머니의 마음을 막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할아버지는 또 참여자들을 에워싼 경찰들을 가리키며 “우리가 폭력을 저질렀는가. 경찰은 왜 나왔는가”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노환으로 손을 덜덜 떨며 띄엄띄엄 어렵게 말하는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할머니들과 좌중은 함께 울었다.


기자회견장은 성진 머리칼을 은비녀로 말아 묶고 피켓을 든 할머니, 턱까지 내려오는 농사철 모자를 눌러 쓰고 손을 치켜든 할머니, 세월에 빠지고 센 머리칼로 허연 머리를 드러낸 할머니, 주름처럼 쪼글쪼글한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 손등까지 검버섯 핀 손을 모아 기도하는 할머니들로 가득차 있었다.

피켓을 들고 앉아 눈물을 흘리다 마이크를 잡은 한정래 어머니는 “잘사는 사람만 살게 하고 왜 못사는 사람은 더 죽이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라며 “박대통령님, 우리 마을을 굽어살펴 송전탑을 짓지 못하게 해주세요”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송영숙 단장면 용회마을 주민은 “밀양 주민의 통곡의 눈물은 강을 이룰 정도”라며 “정부가 4대 폭력을 말했는데 우리 주민들에 대한 정부의 폭력에 대해선 무엇이라 하겠는가”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또 “우리 가족끼리 식사를 해본지 얼마나 됐는지 모른다. 집에도 못 들어가 노숙하고 있다. 자식 같은 대추, 밤, 깻잎, 벼 농사도 못한다”며 “대통령이 단 한번이라도 내려와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에 함께 해온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우리 말이 다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며 부품 결함으로 송전탑 공사가 지연된 사실을 지적, “총리와 장관이 거짓말 했다.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고 발언했다.

서울시청 앞에서 15일째 단식 중인 김정회 주민은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경찰에게 폭력을 당해야 하는가”라며 “매일 같이 병원으로 감옥으로 실려 가야 한다”며 “경찰이, 이 나라 정부가, 그리고 제일 권력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됐다”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18일째 단식 중인 천주교 조성제 부산교구 신부는 “명분없는 싸움 때문에 서울로 올라오게 해서 죄송하다”며 “안타까움, 조그만 마음이 다 모이는 순간, 이 탐욕이 무너질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김준환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는 “우리는 성실히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인생의 경륜을 통해 대화하고자 하는 어른들의 시도를 막는다면 정부와 한전은 모든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라고 촉구했다.


사회를 본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용산참사가 떠오른다”며 “6명을 희생시키며 강행한 용산 개발 현장은 현재 주차장으로 방치돼 있다”고 이유없이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는 정부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문기주 쌍용차 정비지회장은 “100일이 넘게 송전탑에 올라가 농성을 벌였다. 전자파 후유증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다. 밀양에 송전탑이 건설되면 나이드신 어르신들에게 어떠한 문제가 야기될지 불을 보듯 뻔하다. 충분한 대화와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문제다”라고 밝혔다.

기자회견 후 김준환 신부와 71세의 이남우 부북면 주민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께 드리는 밀양 주민들의 공개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출발했다. 이후 밀양 주민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765배를 절하고 송전탑 건설 철회를 기도했다.

사회자는 765배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과 한전에 대한 절이 아니라 국민에게 하는 절”이라며 “이제까지 관심을 가져주셔 고맙고 앞으로 이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의미다”라고 밝혔다.

할머니들은 찬 아스팔트 위에서 사회자의 셈에 맞춰 뻣뻣한 무릎을 꺾고 굽은 등을 더 구부려 절을 했다. 몇몇 할머니는 절을 하다가도 손을 올려 잘 들리지도 않는 쉰 목소리로 “송전탑 건설 반대”를 외쳤다.


할머니들이 오늘 떠나온 밀양에서는 벌써 33명이 병원으로 후송, 22명이 연행, 남은 주민들은 태풍이 지나가는 비바람 속에서 비닐을 뒤집어쓰고 농성하고 있다.

이날 밀양 주민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공개 서한을 통해 밀양 송전탑 공사 즉각 중단, 책임자 처벌, 사회적 공론화 기구 구성을 요구했다. 밀양 주민들은 내주 중 다시 서울로 상경, 청와대, 한전, 경찰청, 국가인권위 등 송전탑을 강행하는 주요 정부부처 앞에서 시위를 지속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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