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가기 두려운 장애인에게, ‘의료민영화’를 묻다

故김준혁 활동가의 죽음을 통해 본 장애인 의료 현실

  <'의료민영화' 도대체 너는 무엇이니?>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최로 26일 늦은 2시에 열렸다.

2년 전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아 진료를 받고 처방을 받았었다. 그래도 차도가 없자 그제야 청진기를 대고 부산을 떨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S대 응급실로 직행했다. 여러 검사 끝에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됐다고 이야기했다. 바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입원실이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겨우 수소문 끝에 다른 병원에 도착했을 때 담당의사 왈, “조금만 늦게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라는 S대 병원에 과연 입원실이 없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장애인이기 때문에 귀찮고 치료비나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노들장애인야학 방상연 학생)

한 달의 병가를 받았다. 한동안은 잠만 잤다. 예전엔 이러면 다 나았는데, 계속 상태가 안 좋았다. 동네에 있는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다. 내과에 갔다가 한의원에 갔다가 정형외과에 갔다가… 이 의사는 이렇게, 저 의사는 저렇게 말했고, 어느 의사는 건강하다고 어느 의사는 심각하다고 말했다. 가자마자 주사부터 맞히는 병원이 있었는가 하면, 비보험 치료부터 일단 해주는 병원도 있었다. 길게 들을 마음이 없는 의사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어려웠다. 그래서 한 번에 종합적으로 보면 좋겠다는 마음에 종합병원 건강검진을 찾아봤는데, 너무 비싸서 깜짝 놀라 재빨리 못 본 체했다.(노들장애인야학 김유미 교사)


아마 병원 가는 게 즐겁다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특히나 안정적인 소득이 없고 병원에 접근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장애인들에게는 더욱 달가울 리 없다. 1년 내내 쉬지 않고 이어지는 투쟁과 농성에 지친 장애인운동 활동가들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질병 걱정에 하루하루 편할 날이 없다. 이들에게 병원 문턱은 단단한 성벽처럼 느껴진다.

철도 민영화 문제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와중에, 한참 잊고 있었던 ‘의료 민영화’ 논란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얼마 전 발표한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이 불씨가 되었는데, 철도 민영화 문제에서도 그랬듯이 정부는 이 대책이 절대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다지 믿음이 가질 않는다. 그리고 장애인과 가난한 활동가, 그리고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서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과연 이들에게 ‘의료 민영화’란 어떤 의미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의료 전문가, 장애인,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의료 민영화’ 도대체 너는 무엇이니?” 발표회가 26일 늦은 2시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최로 노들야학 배움터에서 열렸다.

“요즘 세상에도 맹장염으로 사람이 죽더라…”

발표에 나선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은경 연구원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고 김준혁 활동가의 사건이 병원 앞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장애인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준혁 활동가는 언어 및 지적 중복장애 3급의 장애인으로 장애인운동 현장 투쟁 활동과 다른 중증장애인 활동가들의 활동보조인 등으로 활동해왔다. 하지만 고인은 장애로 마땅한 직업을 찾을 수 없어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고, 가족도 없이 혼자 정부 수급에 의존해 생활해왔다. 그렇게 혼자 지내던 고인은 맹장이 터져 복수가 차는 상황에서도 병원에 쉽게 가지 못했다.

고 김준혁 활동가는 의료급여 수급자여서 의료비 부담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왜 병원을 가지 못했을까?

이 연구원은 현재 건강보험 대상으로 들어와 있지 않은 수많은 비급여 항목들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비급여 항목들에 딸린 본인부담금은 김준혁 활동가와 같은 저소득 수급자들에게는 엄청난 장벽으로 다가온다.

고인은 병원에 실려가기 전까지 지인에게 돈을 빌려야 했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응급실에 가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고, 정작 수술에 동의해 줄 가족이 없어 또다시 발만 동동 구르는 시간이 흘러갔다. 결국 고인은 수술을 마치고 한 시간도 안 돼 패혈증 쇼크로 사망했다.

이 연구원은 고 김준혁 활동가의 죽음을 전하며, 장애인의 열악한 의료현실에 대해 조목조목 짚었다. 비장애인 가구의 경우 월평균 소득 324만 원 중 3.4%인 11만 원만을 의료비로 지출하지만, 장애인 가구는 평균소득 115만 원 중 20.7%인 24만 원을 의료비로 지출한다. 1년간 치료 목적으로 병원을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는 장애인이 무려 22.1%다. 주된 원인은 경제적 부담(57.3%)이다.

소득활동을 하기 쉽지 않은 장애인에게 그나마 장애인연금 등 급여라도 충분히 지급되면 다행이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다. 장애급여 수급자 수, 수급액에서 우리나라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중 최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나마 멕시코 덕분에 꼴찌를 면하는 수준이다.

  OECD국가들의 장애급여 수급자 수 현황. 한국은 멕시코와 함께 최하위권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공적 급여를 통한 소득이 이토록 열악하다 보니 장애인들은 어떻게든 끊임없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장애인 고용률만큼은 OECD 평균인 57%보다 높은 64%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원은 이것이 연금과 기초생활보장을 통한 소득 보전 비중이 20%에 불과한 조건에서 어쩔 수 없이 취직으로 내몰린 것이며, 그나마도 불안정한 일자리들이라고 지적했다.

고 김준혁 활동가는 충분히 노동할 신체적 능력이 있었지만, 얼마 되지 않는 수급권을 잃게 될까 봐 일자리 얻을 수 없었다. 기초생활 수급비는 월 50만 원이 채 되지 않았고, 의료급여 환자였지만 병원 문턱은 너무 높았다. 결국 열악한 소득보장제도와 높은 의료 문턱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의료급여 환자는 안 받습니다”, 의료민영화의 속살

이런 현실에서 의료민영화는 가난한 장애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보건의료단체연합 채민석 정책부장은 의료 민영화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사례로 그 모습을 예상했다.

미국의 국가의료보험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저소득층과 일부 노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메디케이드’를 운영하는데, 국가는 ‘메디케이드’ 대상 환자들에 대한 치료를 병원에 강제할 수단이 없다. 그래서 병원들의 ‘메디케이드’ 환자 치료 거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이 때문에 치주염 치료를 받지 못한 아이가 염증이 뇌까지 전이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국민건강보험의 당연지정제가 폐지된다면 충분히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각 병원들이 사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의 치료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을 챙길 수 있다면, 비급여 항목에 대한 치료비를 낼 여력이 없는 의료급여 환자들을 꺼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채 정책부장은 이런 기류가 이미 대표적인 공공병원인 진주의료원 폐업 과정에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진주의료원에는 일반 치과에서 잘 받아주지 않는 장애인을 위한 ‘경상남도 장애인전문치과’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홍준표 도지사가 사실상 이를 없애버린 것.

심지어 현 정부는 내년도 예산 중 장애인의료비지원 항목을 기존보다 180억 7200만 원이나 줄어든 240억 8800만 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들만으로 의료 민영화가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채 정책부장은 박근혜 정부가 최근 발표한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보면 이러한 우려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책에는 비영리법인인 병원이 영리법인의 자회사를 세우고 주식상장도 가능하게 만드는 대대적인 의료 민영화 방안을 담고 있다. 병원 자체를 영리법인으로 만드는 것이 ‘의료 민영화’라는 비난을 받자 자회사를 통해 영리법인을 만드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것.

정부의 이번 대책을 보면, 병원이 세운 자회사는 △숙박업·여행업 등 의료관광사업 △의약품 개발·화장품·건강보조식품과 관련된 사업 △온천·목욕장·체육시설 등과 관련된 사업 등을 할 수 있게 된다.

채 정책부장은 이런 자회사 설립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장사하겠다는 것으로 의료비 폭등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게다가 대기업 체인약국까지 허용해 약값도 비싸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이번 대책이 건강보험제도 자체를 건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이로 인한 의료비 폭등은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면 안 그래도 취약한 현재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더 떨어지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많은 사람이 민간보험으로 빠져나가 건강보험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는 예측이다.

채 정책부장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비영리병원’, ‘건강보험 의무가입제’가 우리나라의 의료 공공성을 떠받치는 세 가지 축이라고 지적하며, 이 중 한 가지라도 무너지면 의료공공성이 위태로워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의료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의 민영화 시도를 꼭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신체가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건강’의 의미는?

이어진 토론에서는 참가자들이 직접 겪었던 병원의 모습과 노들장애인진료소를 통한 진료 경험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방상연 학생은 “가벼운 질환으로 의원급 병원을 가보면 접수대에서부터 냉대를 느낀다. 또 왔구나 하면서…"라며 "가장 어처구니없는 건 다음에 올 땐 가급적 보호자 혼자 오라고 한다는 사실이다. 환자의 몸 상태를 직접 보지 않고 편하게 처리하려는 행동에 어이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라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병원들의 차가운 시선에 대해 분노를 표했다.

정부에서 대안으로 이야기하는 의료 민영화가 되면 이런 시선들이 좀 없어질까? 김유미 교사는 이에 대해 “노들야학에서 의사단체와 학생들을 연결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라면서 "장애인 환자의 몸이 낯선 의사들은 MRI 진단이 필요했지만, 가난한 환자들은 검진 비용에 놀라 그냥 돌아올 뿐이었다”라고 말하며 의료 민영화가 되면 야학 학생들이 더 병원에 발붙이기 힘들어질 거라고 예상했다.

이어 김 교사는 “다양한 신체가 공존하는 장애인운동 속에서 ‘건강’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했다. 이에 채 정책부장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의료 공공성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있어 중요한 고민 지점”이라고 답했다.

이날 발표회는 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약 3시간가량 진행됐다.
덧붙이는 말

하금철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대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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