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륭, 한진 노동자 속인 ‘사회적합의’...헌신짝 돼 버렸나

강제성 없는 사회적합의,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휴지조각으로 전락

무려 1,895일간의 장기투쟁을 벌였던 기륭전자분회, ‘희망버스’라는 이슈를 만들어낸 한진중공업지회. 이곳은 모두 격한 투쟁을 벌이다 ‘사회적합의’로 노사 갈등을 봉합한 사업장들이다.

투쟁이 장기화되고 논란이 확산되면서, 노동계와 시민사회, 그리고 정치권까지 달라붙어 ‘사회적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진을 뺐다. 노사와 시민사회, 정치권 등은 숱한 의견차이와 대립을 거치며 사회적합의를 이뤄냈고, 외부적으로 갈등은 봉합됐다.

하지만 실제로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은 ‘사회적합의’ 이후에도 여전한 장기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회사가 사회적 약속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노사의 사회적합의서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기 때문이다. 합의 이행에 대한 어떠한 강제성도 없는 사회적합의가 노동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는 셈이다.

조합원 몰래 야반도주 한 기륭전자, ‘사회적합의’ 사실상 파기

7일 오전, 텅 빈 기륭전자(현 렉스에이앤지) 사무실에는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이 9일째 철야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전, 회사가 조합원들 몰래 야반도주하듯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오갈 데 없는 조합원들은 한기가 서린 빈 사무실에서 ‘황당함’에 몸을 떨었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철야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회의실 앞.

기륭전자분회는 해고자 원직복직과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며 무려 1,895일 동안 공장점거, 삭발, 두 차례의 고공농성, 94일간의 단식 등 벼랑 끝 투쟁을 진행했던 곳이다. 노사 갈등 악화와 투쟁의 장기화,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면서 노동계와 시민사회, 정치권 등이 중재에 나섰으며 지난 2010년 11월 1일, 노사는 가까스로 사회적합의를 도출했다.

사회적합의 이후 2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작년 5월 1일, 10명의 조합원들은 8년 5개월 만에 기다리던 일터로 복직했다. 복직 첫 날, 새 옷과 새 신발을 신고 나온 조합원들은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회사는 그들에게 일을 주지 않았다. 복직 첫 날부터 장장 8개월간, 조합원들은 회의실 테이블에 앉아 업무가 주어지기를 기다렸다. 회사는 월급도, 4대 보험도 지급하지 않은 채 업무대기를 하라고만 했고, 조합원들의 임금은 8개월째 체불됐다. 이것으로도 모자랐는지, 회사는 지난해 12월 30일 조합원들 몰래 사무실을 이전했다.

  텅 빈 기륭전자 사무실.

조합원들은 매일 아침 최동렬 회장 자택으로 찾아가지만, 문 앞에서 경찰에 끌려나올 뿐이다. 유흥희 기륭전자분회장은 “정보과 형사가 최동렬 회장을 만나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최 회장이 ‘밖에서 떠드는 저 사람들과 나는 상관이 없다. 저들 중 우리 회사 직원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최동열 회장은 사회적 합의를 사실상 폐기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켜지지 않는 ‘사회적합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잇따라 목숨 끊어

한진중공업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한진중공업 사측의 정리해고에 맞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 고공농성에 돌입하고, ‘희망버스’ 바람이 몰아치자 한진중공업 노사는 2011년 11월 정리해고 철회를 비롯한 협상을 타결했다.

하지만 곧바로 노동자들은 장기휴업자 신분이 됐고, 손배가압류를 포함한 노조탄압이 이어졌다. 노조탄압과 손배가압류로 최강서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조합원들은 공장점거투쟁에 나서며 다시 한 번 격렬한 노사 대치가 이어졌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사태가 장기화되고 문제가 확산되자 정치권이 중재에 나섰고, 지난해 2월 23일 노사는 사회적합의를 도출했다. 합의안은 휴업자를 제2노조와 차별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복귀시키고, 현재의 불균형을 최단 시일 내에 복구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합의가 도출된 지 1년도 채 안된 지난해 11월 30일, 한진중공업에서는 또 한 명의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한 김 모 조합원은 2011년 정리해고를 당한 후 현재까지도 현장에 복귀하지 못한 채 휴직자 생활을 했다.

김 씨 뿐이 아니다. 현재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에 소속된 휴업자 100여 명은 아직까지 현장에 복귀하지 못한 채,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고 있다. 비율상 9:1이었던 기업노조와 금속노조 조합원 사이의 현장투입 불균형 해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조합원 A씨는 “아파트 경비원 생활을 하고 있다. 알고 보니 한진중공업지회 휴직자 대여섯 명이 같은 아파트에서 경비일을 하고 있다”며 “언제 현장으로 복귀 할지 몰라 기약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강제성 없는 사회적합의,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휴지조각으로 전락

사회적합의가 매번 휴지조각으로 전락하면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문제로 확산돼 정치권까지 나서 어렵게 합의를 이끌었지만, 강제성이 전무해 회사로서는 합의를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유흥희 기륭전자 분회장은 “민사소송에서는 복권에 당첨되기 전, 친구에게 돈을 나눠주기로 한 약속도 지켜야 한다고 했다. 하물며 국회에서 사회적으로 약속한 사회적합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하지만 기륭전자 노사는 국회에서 조인식까지 열며 사회적합의를 했지만 회사는 이 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 합의 이행을 위한 강제성이 없다면 사회적합의는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유 분회장은 “사회적 합의로 약속된 고용문제에 대해 회사가 책임지지 못할 경우,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을 지는 강제 조항이 필요하다”며 “또한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도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사회적합의가 파기된 기륭전자 노동자 등은 조만간 법률가단체, 국회 등과 토론회를 개최하고 사회적합의 이행을 위한 논의를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기륭전자분회의 경우 사회적합의 이행을 위한 대책 마련과 회사의 무분별한 투기 규제를 위한 투쟁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사회적합의 이행을 법률적으로 강제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은수미 의원실 관계자는 “사회적합의는 계약이나 단체협약이 아닌, 말 그대로 ‘신사협정’이다. 거기에 강제성을 붙이는 게 사실상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 수 있다”며 “노조 측 주장대로 법으로 명문화한다면 본래 취지에도 맞지 않고, 사회적합의를 할 회사도 없다.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라 답답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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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 사회적합의 , 기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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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갈매기

    기자가 누군지 모르나, 실상을 제대로 알고 기사 쓰라

  • 흠..

    2004년이었던가? 노무현 정권 노사정위원회 참가 문제를 둘러싸고 민주노총 내부에서 격렬한 논란이 벌어졌던 일이 있었다. 대의원대회 단상 점거와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적어도 그때는 '사회적합의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건강한 활동가들의 원칙, 민주노조의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는데..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투쟁해 온 동지들 스스로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라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기분이 참 거시기 하다. 이 동지들의 심정 모르는 바 아니나, 선뜻 동의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차라리 '사회적 합의는 기만이었다!'라고, 자본-정치권이 한 몸이 되어 기륭투쟁을 주저앉히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사기쳤다는 게 밝혀졌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 합의주의'하고 '사회적 합의'는 다른 건데 내가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건가?

  • 기륭전자분회

    위 분의 견해가 틀리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옳습니다. 다만 기 합의된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폭로나 실제적인 사회적 강제를 가능한 만들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산재가 자본의 탐욕의 결과라는 폭로와 함께 산재 사망을 기업 살인으로 보자는 것과 같은 취지입니다. 법이나 제도가 만능은 아니지만 (법 제도가 지배질서의 울타리지만) 법 제도를 활용하는 것 또한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임승차만 해도 30배의 징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권력과 자본들은 밥 먹듯 거짓말을 해도 어떤 징벌이 없습니다. 개별적 약속도 아니고 오랜 기간 모진 투쟁을 통해 형성된 합의가 다시 개별의 영역에서 휴지 쪼가리로 변해 범 사회적 연대 투쟁이 물거품이 되는 것에 대한 분명한 항의를 하자는 제안입니다. 정권의 노동자계급 포섭 전략인 사회적 합의주의와 법 제도 정치적 보호도 없이 강고하게 투쟁하여 제도권을 억지로 견인하여 형성하는 것이 '사회적 합의'입니다. 대표적으로 한진과 기륭을 걸었습니다. 그것은 현실 법 밖 또는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환기를 통해, 현실 법보다, 그리고 체제가 그어 논 선보다 반보라도 더 가고 또 선을 넘자는 요구, 하나의 상황을 개별 회사나 노조가 아니라 전체 사회의 문제로 꿰뚫자는 요구로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