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노조 삼성, 17년간 해외 파견시킨 노동자 귀국후 해고

5년 근무한 삼성SDI에서 해고된 이만신 씨(52)

지난 21일 금속노조 삼성서비스전자지회 울산분회는 울주군 삼남면에 있는 삼성 SDI 사회 정문 앞에서 이만신 씨의 부당해고 철회 선전전에 연대했다.

  지난 21일 삼성SDI 정문에서 '노조 설립'과 '부당해고 철회'를 외치는 노동자의 연대투쟁이 있었다. ⓒ이민진 기자 [출처: 울산저널]

이만신 씨(52)는 1987년 4월 제대한지 보름만에 삼성 SDI 생산직에 들어갔다. 12시간 교대근무를 하던 때다. 이씨가 입사한 해 8월에 전국적으로 노동자대투쟁이 벌어졌다. 이씨도 노조에 동참했다. 이씨와 동료들은 회사 간부를 쫒아내서 스스로 근무조를 짜 일하면서 노조 설립을 외쳤다.

11일 동안 회사를 지켰지만 회사는 '해산하지 않으면 공권력을 투입해 모두 잡아간다' 며 노조설립을 막았다. 가족과 지인이 동료들을 하나 둘 빼가면서 노조는 마지막 찬반투표를 해서 이씨를 포함해 17명만 회사 안에 끝까지 남기로 정했다.

17명의 노동자는 LPG 탱크 주변에 아세톤을 뿌리고 공장과 함께 죽겠다는 각오로 남았다. 경찰에 회사를 진압하고 노동자를 몰아 붙이자 이씨는 "같이 죽자"는 맘으로 성냥불을 붙였다. 이씨는 그때를 떠올리며 "가스 벨브를 여니 처음 나오는 공기압 때문에 성냥불이 꺼졌다. 우린 처음이라 몰랐는데 경찰은 알고 포위망을 좁혀왔다"고 말했다. 남은 노동자는 경찰에 잡혀갔다. 그 뒤로 이씨의 회사 생활은 험난했다.

이씨와 노조를 만들자는 4인방은 부서를 3번이나 옮기고 울릉도, 기장 등 여러 지역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근무 기간도 짧았고 심지어 공장이 없는 곳으로 갔다. 이씨는 브라운관 재생 공장에서 1년, 진공관 만드는 공장에서 1년 5개월, 울릉도에서 일주일을 지내는가 하면 일본에 있는 삼성 SDI 하청 업체에 진공기술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3개월 동안 근무 해야 했다. 그 사이에 나머지 3명은 회사와 합의하에 퇴사했지만 이씨는 노조 설립의 꿈을 접지 않았다.

회사는 이씨를 17년 동안 해외 근무지로 파견했다. 이씨는 말레이시아에 5년간 주재 근무를 했다. 가족도 함께 갔지만 그 곳 직원들 사이에서 이씨 가족은 왕따였다. 이씨가 회사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청원을 넣자 회사는 사직서와 노사 참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조건으로 걸었다. 이씨는 노사 참여를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현장에 복귀를 요구 했지만 한국에 들어와서 1년간 대기발령을 받았다.

이씨는 그 무렵 노사협의회 선거에 위원으로 출마하려고 준비했다. 당시 상무가 "각서 내용을 어기려는 거냐"며 노사 개입을 막았다. 이씨는 각서는 썼지만 현장에 복귀시켜준다는 회사도 약속을 어겼다며 항의했지만 회사는 "당신이 현장에 가면 시끄러워 진다 사무실로 가겠다면 당장 근무 시켜주겠다"고 답했다.

회사는 이씨를 노사 요주의 인물로 보고 다시 해외 파견시켰다. 이씨는 중국근무를 거부하면서 민주노총에 연대를 요청했다 "해고당해도 중국은 안 간다. 하루에 20명씩 연대 투쟁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지만 민주노총은 "일단은 회사에 남는 게 좋겠다"고 연대를 거부했다. 이씨는 섭섭했지만 중국행을 택했다. 이씨는 12년 동안 중국에서 일했다. 중국 생활도 이씨에겐 감옥 같았다. 처음 2년은 꼼꼼한 이씨가 불량을 골라내면 불량률이 높아진다며 관리팀장이 일에서 빼버렸다. 그 후 10년 동안 이씨는 매일 출근해서 인터넷을 보다 회사 안을 배회하다 밥 먹고 앉아 있다 집에 가는 생활을 했다. 현지 노동자들 사이에 "이씨가 이건희 친척"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10년 넘게 주재 근무하는 생산직도 없지만 다른 한국인과 달리 회의에도 안 들어가는 이씨가 이상했다.

이 시절 이씨와 부인은 우울증도 앓았다. 회사 안을 걷다보면 변전실 옆에 나무가 있었다. 허리띠를 풀고 나무에 걸고 벽돌 두 개를 받치니 딱 죽을 자리였다.

이씨는 아내에게 "나는 죽어도 회사 안에서 죽을 거다. 내 시체가 회사 밖에서 발견된다면 절대 믿지마라"는 말까지 했다. 이씨는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구친다고 눈시울을 붉혔지만 세 아이를 생각하면 참아야 했다.

10년이 지나 한국에 들어오고 싶다는 이씨에게 회사 간부는 "10년이면 여기 사람 다 됐겠네. 여기서 살지 그래"라고 말했다.

이씨가 회사 내 직원 게시판에 '창살없는 감옥살이에서 구해달라'는 글을 올리자 회사는 경고조치했다.

12년이 지나 사장이 바뀌자 이씨는 울산공장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해외에 나가 있던 '요주의 인물 5명'은 회사를 나갔다.

회사 임원이 이씨에게 밥과 술을 사면서 돈 얘기를 꺼냈다. "가족과 미국에 살려면 얼마나 들겠냐"는 질문에 이씨는 "집 사는데 5억 가게 차리는데 3억 정도 10억은 있어야 되지 않냐고" 답했다. 질문은 함정이었다.

그 임원은 이씨가 회사를 그만두는 조건으로 돈을 제시했다며 녹음파일을 증거로 내밀고 이씨를 해고했다. 2012년 10월 해고된 이씨는 공갈협박과 상근자 폭행, 근무 태만이 해고 사유였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이씨는 곧바로 민사로 해고 무효소송을 진행하고 1인 시위에 나섰다. 회사는 이씨를 공갈협박죄로 형사소송했다.

이씨는 형사 소송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회사는 항소했고 민사는 다음달 13일에 판결이 난다. 이씨는 "회사가 해고 사유로 주장하는 공갈협박죄가 무죄로 밝혀졌으니 해고무효 소송도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20일부터 한달 동안 회사 정문 앞에서 부당해고 취소와 노조설립을 요구하는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덧붙이는 말

이민진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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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고어

    삼성SDI는 노조해고자를 복직시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