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노사갈등으로 노사의 자율적인 문제 해결이 불가능할 경우, 흔히 노사와 정치권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며 극적 봉합을 꾀한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는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력이 없어, 합의 이후 ‘무용지물’로 남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사회적 합의’ 파기 사업장으로 꼽히는 곳은 기륭전자와 한진중공업이다.
기륭과 한진 이외에도 ‘사회적 합의’ 또는 ‘사회적 약속’이 이뤄진 사업장은 대다수가 반복적인 갈등에 직면하고 있다.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고질적으로 노동조합의 투쟁과 조직력을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 ‘사회적 합의’로 철도 파업 종료됐지만...더 큰 분규 낳나
지난해 12월, ‘철도 민영화 저지’를 내걸고 23일간의 최장 기간 파업에 돌입한 철도노조는 여야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파업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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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새누리당과 민주당, 그리고 철도노조는 지난해 12월 30일 △여야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산하에 철도산업발전 등 현안을 다룰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 설치 △동 소위원회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여야, 국토교통부, 철도공사, 철도노조,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정책자문협의체 구성에 합의했고, 노조는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가 구성되는 즉시 파업을 철회키로 했다.
하지만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는 출범 한 달이 지나도록 자문위원을 확정짓지 못하며 내부 공전을 이어가고 있다. 소위원회 활동 시한이 오는 3월 말까지인 것을 감안할 때, 벌써 활동의 3분의 1이상을 자문위원 구성 논의로 허비한 셈이다. 소위원회는 오늘(7일) 자문위원을 확정짓겠다는 계획이지만, 이후 철도산업에 관한 본격적 논의 의제가 산적해 있어 애초의 목표를 이루게 될 지는 미지수다.
특히 민주당은 소위원회를 통해 소위 ‘민영화 방지법’ 제정을 논의한다는 방침이고, 새누리당은 철도공사 방만 경영 해소에 방점을 찍는다는 계획이라 적지 않은 내부 갈등이 예상된다. 자칫하다가는 내부 논란만 지속된 채, 별다른 성과 없이 흐지부지 소위원회 활동이 끝나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 등이 소위원회에서 ‘시간 끌기’로 회의를 무력화한다 해도 별다른 규제 방법은 없다.
심지어 여야 합의로 철도 파업 사태가 봉합됐는데도 철도공사가 여전히 노조에 대한 징계, 손해배상, 가압류, 강제전보 등의 탄압을 이어가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영익 철도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지난 6일, “여야의 합의는 사회적으로 철도노조 파업과 민영화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진행된 것이지만, 회사는 사회적 합의를 무력화하고 탄압을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철도노조는 계속되는 공사의 탄압이 이어지자, 오는 2월 25일 필공 파업에 돌입하는 방침을 논의 중이다. ‘사회적 합의’라는 말이 무색하게 반복적인 갈등과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쌍용차와 공무원노조, 정부여당이 꾸민 ‘사기극’의 피해자들
정부여당과의 ‘사회적 약속’이 파기된 대표적인 사례는 쌍용자동차다.
지난 2012년 말,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무성 박근혜 캠프 총괄본부장은 “대선 후 열리는 첫 국회에서 쌍용차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김성태 의원 등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도 대선을 앞두고 국정조사를 약속했으며, 대선 이후에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역시 국정조사 실시를 약속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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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하지만 대선 이후에도 새누리당과 정부의 국정조사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대신 여야는 2월 ‘쌍용차 여야협의체’를 구성해 쌍용차 문제 해결 논의를 시작했다. 결국 여야협의체 역시 별다른 성과를 도출하지 못한 채 ‘국정조사 면피용’이라는 비판에만 시달리다 해산했다.
공무원노조도 법외노조 문제와 관련해 고용노동부와 실무협의를 마쳤지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협의안을 파기하면서 사실상 ‘사기극’의 피해자가 됐다.
공무원노조와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8월, 10차례의 실무협의 끝에 노조가 해고자와 관련한 규약을 일부 개정하는 것으로 설립신고 문제에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 노조는 다소 내부 이견이 있음에도 노동부와의 협의에 따라 규약을 개정했고, 7월 22일 오후 고용노동부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이후 노동부는 24일, 기자들에게 문자를 발송하고 ‘공무원노조 설립신고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25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부는 기자회견 2시간 전에 돌연 이를 취소했으며, 다음달 2일 공무원노조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노조와 야당은 노동부의 협의안 번복 이유가 청와대의 외압 때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와대의 개입으로 노-정 협의가 파행된 채, 노정 관계가 오히려 악화된 경우다.
기륭전자, 한진중공업...대표적인 ‘사회적 합의’ 파기 사업장
기륭전자와 한진중공업은 극심한 노사 분규로 자율적인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정치권이 개입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낸 사업장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사회적 합의’는 이행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또 다른 분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기륭전자분회는 원직복직과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며 1,895일간의 공장점거, 삭발, 두 차례의 고공농성, 94일간의 단식 등 벼랑 끝 투쟁을 진행해 왔다. 극심한 노사 갈등이 이어지자 김상희 민주당 의원과 시민사회 등이 중재에 나섰고, 지난 2010년 11월 1일 노사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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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사회적 합의에 따라, 노조는 2013년 5월 1일 사업장으로 복직했지만 장장 8개월간 업무대기가 지속됐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월급, 4대 보험 등을 지급하지 않아 8개월간의 임금이 체불되기도 했다. 급기야 회사가 지난해 12월 30일, 조합원들 몰래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현재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은 빈 사무실에서 철야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사회적 합의 불이행, 사회적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유흥희 기륭전자분회장은 “현재 회사는 사과는커녕 2010년 합의를 노골적으로 부정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흥희 분회장은 “누구도 이 사회적 합의가 이행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회사는 많은 사람들의 눈앞에서 한 사회적 합의를 그냥 종이쪼가리 하나로 취급하며, 최소한의 신의도 지키지 않고 있다”며 “사회적 합의를 했음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약속 불이행에 따른 처벌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진중공업 역시 2010년, 회사의 대량 정리해고 사태가 불거지면서 극심한 노사 분규가 이어졌다. 노조는 전면 파업을 단행했고,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2011년 1월,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사태가 확산되면서 시민사회는 총 다섯 차례의 ‘희망버스’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후 2011년 11월, 노사는 정치권의 중재로 사회적 합의를 체결했으나 합의안은 이행되지 않았다.
박성호 한진중공업지회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1년 후 현장으로 복귀한다고 합의했지만, 현장 복귀 3시간 만에 다시 강제휴업 명령을 받고 공장에서 밀려났다”며 “158억의 손해배상 금액을 최소화한다는 합의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결국 2012년 말, 최강서 열사가 ‘158억 손해배상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으며, 노사 갈등은 또 다시 절정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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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열사 문제가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자 정치권이 또 한 번 중재에 나섰고, 노사는 2013년 2월 23일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 휴업자를 제2노조와 차별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복귀시키며, 현재의 불균형을 최단 시일 내에 복구한다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합의안이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는 이행되지 않았고, 결국 지난해 11월 30일 또 한명의 휴업자가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박성호 지회장은 “회사는 장기휴업에 나가 있는 직원들을 현장에 복귀시킴에 있어 기업별노조 조합원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조합원 비율을 맞게 복귀시키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러나 회사는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2013년 12월 장기휴업으로 인해 김금식 조합원이 사망에 이르자 그 때부터 회사는 비율대로 현장 복귀를 시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러나 여전히 빠른 시일에 비율을 맞추겠다는 약속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복귀하는 비율을 50대 50으로 해야 하는데 이를 실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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