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길 달려온 해고노동자, “법, 행정의 노동차별 철폐하고파”

7년간 ‘노조파괴 시나리오’와 싸워온 보워터코리아 지회장

목포에서 서울 대한문까지 천리 길을 달렸다. 장장 9박 10일간의 마라톤이었다. 가슴에는 ‘모든 노동에 대한 차별 철폐 염원을 안고 해고노동자가 달린다’라는 몸피켓을 매달았다. 첫 날부터 발목에 무리가 왔다. 이를 악물었지만 삼일 째가 되자 통증이 심해졌다. 암담했지만 버텼다. 지난 7년간 회사의 노조 탄압과 동지와의 이별, 사법적 횡포를 견뎌온 그였다.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일 것 같았던 광주 전남지역을 벗어나, 전북고속버스 투쟁현장에 도착했을 때 눈물이 났다. 이제 대한문도 거뜬히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국도 1호선을 따라 끝없이 달리면서 생각했다. 올 해에는 기필코 그동안 함께하지 못했던 해고노동자들을 복원해 노동조합 활동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겠노라는 다짐이었다.

[출처: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7년간 ‘노조파괴 시나리오’와 싸워온 보워터코리아지회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보워터코리아지회 해고노동자들이 9박 10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지난 12일, 서울 대한문에 입성했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주위의 우려 속에, 결국 결승지점에 발을 디뎠다. 벌써 7년의 장기투쟁과 4년여의 해고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만큼 새로운 다짐과 결의가 필요했다.

지난 13일, 기자와 만난 정태욱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보워터코리아지회 지회장은 “비록 작은 홍보일지라도, 모든 노동에 대한 차별을 바꾸어내고 싶어 마라톤을 시작했다”며 대장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정태욱 지회장을 비롯한 보워터코리아지회 노동자들은 지난 7년간 갖가지 차별과 탄압에 시달려 왔다. 자본과 정부, 법원을 막론하고 어느 곳 하나 다르지 않았다. 보워터코리아 현장에는 벌써 2007년부터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작동됐다. 사측은 2007년, 조합원의 성향을 A, B, C, D 등급으로 분류한 뒤 노조파괴를 본격화했다.

2008년에는 쟁의행위에 참가한 조합원에 대해 경고장 남발, 대기발령, 징계처분을 내렸고, 전 노조 간부 한 명은 ‘힘들었다’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9년에는 노조사무실에 대한 단전을 실시했고, 급기야 2010년에는 문을 걸어 잠근 채 징계위원회를 개최해 노조간부 6명 전원을 해고했다.

“보워터코리아는 미국계 외투기업입니다. IMF시기 한라그룹이 부도를 맞으면서, 미국의 다국적기업인 보워터자본이 회사를 인수했어요. 노조는 2007년 단체교섭 요구 사항으로 토지매각저지를 내걸었고, 적법한 쟁의행위 절차를 밟고 투쟁에 돌입했어요. 하지만 사법기관은 경영권에 관한 사항으로 파업을 했다며 불법 쟁의행위 판결을 내렸습니다.

애초 보워터자본이 들어오기 전, 한라그룹은 여러 설비를 들여놓기 위해 공장부지를 크게 확보했어요. 당시 공장부지는 평당 1만원이 조금 넘는 선이었지만 2007년 당시에는 36만원으로 뛰었죠. 보워터자본은 이 부지를 매각하려 했고, 노조는 매각에 대한 공정분배를 요구했어요. 하지만 회사의 일방적 매각을 저지하지 못했고, 6백 억 원이라는 매각대금은 미국 본사로 유출됐어요.”



회사는 이미 2006년, 기업형태를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변경하고 김앤장 법무법인 등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컨설팅을 시작한 상태였다. 노조 간부들은 모두 해고됐고, 노조 사무실은 폐쇄됐으며, 조합원에 대한 전환배치, 손배가압류 등이 연이어 발생했다.

“토지매각 반대 투쟁이 불법 쟁의행위로 판결이 나면서, 손배가압류가 진행됐어요. 지회장 앞으로 6천 여 만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이 청구됐고, 차량까지 가압류를 당했어요. 이와 함께 노조 간부 6명은 전원 해고됐어요. 이후 조합원들을 십 수 년간 해 왔던 업무에서 배제시키고, 배수로 청소나 페인트칠과 같은 허드렛일을 시켰어요.

어용노조가 조직됐고, 그들은 조합원들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회사 말아먹으려는 사람들이 밥이 넘어 가느냐’며 피켓시위를 했어요. 그러다 싸움이 나면 조합원들을 징계위에 회부했어요. 2011년에는 인원감축 구조조정이 실시됐습니다. 기업 형태를 유한회사로 변경했기 때문에, 정말 경영상태가 어려운지 아닌지를 알 길이 없었어요. 그 과정에서 조합원 8명이 표적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천리길 달려온 해고노동자, “법, 행정의 노동차별 철폐하고파”

회사의 탄압이 지속되고 있었지만, 법원도 노동위원회도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오히려 보워터코리아 조합원들은 법원과 정부로부터 극심한 차별과 배제에 시달려야 했다. 법원과 노동위원회는 거듭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노동자들에게 법적, 제도적인 벽은 너무 높았다.

“차별에 대한 많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 노동자들에 대한 행정적, 사법적 차별에 중점을 두고 싶어요. 법원은 노동자들의 성향을 분석한 인사팀장의 전략 문건을 ‘업무’가 아닌 ‘개인의 비밀’로 취급했고, 인사팀장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충격이었죠. 대법원까지 인사팀장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간부들에 대한 부당해고 건은 현재 1년 6개월 가량 대법원에 계류 중입니다. 지노위에서는 이를 부당해고라고 판정했지만, 중노위에서는 부당해고가 아니라며 이를 뒤집었어요. 고등법원에서도 부당해고로 인정받지 못했는데, 회사는 재판 과정에서 김앤장과 함께 이명박 정권에서 가장 성장한 법무법인 ‘바른’을 또 다시 추가 대리인으로 선임했어요. 적자 사업장에서 이것이 가능한 일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회사가 노조 사무실 단전 단수와 전화, 인터넷 등을 차단한 것 역시 노동조합에 대한 업무방해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지속되는 탄압과 지난한 투쟁 과정 속에서 해고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남아있는 이들은 생계 곤란과 가정 파탄 등에 직면했다. 정태욱 지회장은 한동안 우울증에도 시달렸다. 셀 수 없이 많은 법적 다툼과 물리적인 투쟁이 이어지면서 정신적인 고통이 뒤따랐다.

“한동안 정신적인 우울증을 겪으며 힘들었어요. 사람 만나는 것도, 전화를 받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전화를 걸어 온 조합원이 대뜸 ‘미안합니다’라고 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떠나겠다는 말을 하겠구나 싶어서요. 조합원들도 울면서 이야기해요. 가정도 있고 생계 문제도 있으니까요. 그들을 향해 배신자라고 할 수 있나요. 수많은 소송을 거치면서, 서류만 봐도 가슴이 마구 뛰는 습관도 생겼어요. 모든 것이 죽음의 도구인 것 같은 때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많이 극복했어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지만, 그래도 정태욱 지회장은 마라톤 출발점에 섰던 때를 기억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있다. 올 한해는 지금까지 흩어져있던 해고자들을 조직하고, 이들이 현장으로 복직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내겠다는 결의다. 어용노조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장이지만, 금속노조를 떠날 수 없는 24명의 조합원들이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다.

[출처: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올해는 현장에서 민주노조를 지키고, 해고자들이 복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해고자 대오의 복원이예요. 마라톤을 뛰면서도 해고자들의 복원을 통해 노동조합 활동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보워터코리아의 문제는 단순히 우리 단위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국의 장기투쟁사업장 동지들 역시 같은 차별에 시달리고 있어요. 이 동지들과 함께 힘을 모아 줄기차게 싸우고 싶습니다. 제 바람은 단 하루만이라도, 아니 한 시간만이라도 민주노총 총파업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총파업을 통해 박근혜 정권 퇴진과 노동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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