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연구자’라 쓰고 ‘구멍가게 주인’이라 읽는다

[신의 직장, 출연연의 이면(2)] 오현우 생명공학연구자를 만나다

오현우(52) 씨는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24년째 연구자로 일해 온 박사이다. 그는 연구원과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연구팀장급인 책임연구원이다. 스펙으로 보면 고학력자에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얻었고, 적성에 맞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으니 나름 성공한 인생이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어둡다. 한국사회에서 편하게 살 법도 한데, 정부와 기관의 평가에 생존을 위협받고 경쟁에 시달리는 처지다. 2013년 한 해 주 발명자로 국내특허 등록 1건, 국내특허 출원 1건, 국외특허 등록과 출원 각각 1건씩 실적을 내고, 국제 유명 학술지와 국내 학술지에 6편의 논문이 실려도 그의 인사고가 결과는 수우미양가 중 ‘양’이다. 낙제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 하는 출연연에 대한 변덕스러운 정책과 노동조건은 그의 삶을 옥죄일 뿐만 아니라 연구자로서의 자부심마저 잃게 만든다. 박근혜 정부가 ‘파티는 끝났다’며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을 내 놓았을 때, 그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복리후생’ 혜택(?)을 곱씹다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신의 직장’에서 일하는 출연연 연구노동자들은 인건비를 알아서 벌어오고, 장비관리도 알아서 하는 구조에 놓인 자신을 ‘구멍가게 주인’이라고 부른다.

곤충을 다루는 오 씨의 빡빡한 근무 일상
주말에도 생물 관리...연구업무 특성은 ‘과제완성형’


오 씨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 입사 이래 매일 실험했다. 생명 현상에 관한 기초연구와 바이오신소재 등 첨단생명공학 등 기관의 고유 연구업무와 별개로 요즘 2개의 추가 연구업무에 힘을 쏟고 있다. 생물의 유전자(DNA)를 추출해 종을 분류하는 ‘DNA 바코딩’ 연구와 식물 추출제를 이용한 살충제 개발이다.

“연구의 원리는 단순하다.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그때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복잡하다. DNA 바코딩 연구를 시작할 땐, 무지 많았던 곤충이 그해부터 없어 황당했다. 곤충을 받아야 하니까 산으로 들로 과수원으로 뛰어다니고... 매일 출장을 다닐 수 없으니까 다른 기관에서 얻어오고, 사오기도 했다. 곤충 확보가 가장 큰 문제였다. 어떤 곤충은 3년째 마지막 연구 해에 가서야 구할 수 있었다(웃음). 결과가 안 나와 시약을 모두 바꾸고, 과정도 바꾸고, 다른 실험실에서 해 보기도 했다”

기계가 아니라 생물을 다루기 때문에 복잡하다. 연구과정에서 벌어진 시행착오는 일이리 열거할 수 없는 정도다. 우후죽순 생겨났다 돈벌이가 안 돼 망해가는 업체 중, 관련 연구를 위해 필요한 업체를 수소문해 찾느라 6개월이 걸리기도 했다. 그래도 이 업체 관계자들에게 공동으로 일하겠다는 합의를 이끌어냈을 때는 말할 수 없이 기뻤단다.

그러다보니 연구업무 특성상 그는 업무시간 외에도 일한다. 일이 밀려 평균 주 3~4회 밤 10시까지 일하지만, 초과근로수당은 없다. 생물을 관리하는 경우에는 먹이 주고, 청소하고, 이상 유무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주말과 휴일에도 연구소에 나온다.

“살충제 개발로 모기를 키우니까 주말에도 생물 관리를 한다. 어떤 연구자는 시장에서 채소를 살 수 없으니까, 연구소 내 하우스에서 직접 키운다. 농약성분으로 곤충이 다 죽기 때문이다. 또한 실험을 하다보면, 목요일에 시작해 72시간 테스트를 할 경우 주말까지 이어진다.”

그에게 하루 일과를 알고 싶다하니, 미리 정리한 빡빡한 ‘하루일과표’를 내민다. 오전 8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업무 일정을 정리한 표에서 연구노동자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업무가 다르기 때문에 정시 퇴근, 정시 출근하는 구조의 업무와 똑같이 비교할 수 없다.


특히 그는 주1회 실험 진행 관련 팀원 회의를 하거나 실험 진도를 확인한다. 수시로 내외부 관련 연구자와의 모임을 갖고 의견을 교환하며, 관련 연구의 동향 파악을 위한 논문을 검색하고 확인한다. 세미나, 학회 등 연구업무나 회의로 평균 주1회 출장을 간다.

“우리는 동향파악이 굉장히 중요하다. 연구 결과가 책으로 나오는 건 1~2년 뒤라 늦다. 비슷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와 기관은 이런 활동은 일하지 않고 ‘노는 시간’으로 본다”

때문에 오 씨는 연구업무의 특성과 출연연의 역사를 무시하고 ‘과잉복지’를 없애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무지의 일환’이거나 ‘다른 의도를 가진 대책’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 ‘비정상 대책’이라는 것이다. 정부 계획의 기본원칙이 ‘국가공무원의 복리후생 수준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 일례다.

“출연연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구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극단적으로 공무원은 야간근무수당이 있지만 출연연은 없다. 성과연봉제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비교 자체가 다르다. 우리는 밤낮없이 일하는, 과제 완성형 임무를 수행한다. 업무에 맞게 휴가 등 근로조건이 달라졌다. 공무원은 회갑 휴가가 없지만, 우리는 하루 쉰다. 연구자 대부분은 주어진 휴가의 절반을 쓰지 못한다. 법정휴일조차 쉬지 못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노사 단체협약으로 회갑 휴가를 만들었다. 대신 우리는 휴가를 사용하지 않으면 급여로 지급되지 않는다”

무한경쟁과 평가의 굴레 PBS제도와 삼진아웃제
40% 인건비 직접 벌고 퇴출 위협 도사려


오 씨의 연구업무는 △출연연마다 기관별 고유 업무 △추가 연구사업 △미래의 연구과제 수행을 위한 히든(Hidden) 과제 △고가 장비 운영 및 유지, 실험 지원 등 4가지로 나뉜다. 이를 위해 각각의 연구 결과를 정리하고, 회의하고, 연구과제 선정을 위한 계획서를 작성, 발표하는 등의 일을 더한다. 이 가운데 기관별 고유 업무는 오 씨의 임금 중 60% 가량 차지한다. 나머지 40% 가량의 임금을 스스로 벌기 위해 그는 추가 연구사업을 한다.

“출연연과 공무원조직의 큰 차이는, 출연연은 PBS제도로 정부에서 연구자의 임금 중 60%만 보장한다. 나머지 40%는 연구자가 과제 용역을 따서 직접 인건비를 확보한다. 자동차 딜러가 영업 뛰는 만큼 돈을 가져가는 것과 비슷하다. 자동차 딜러와의 차이는 출연연은 100% 기준을 맞춰놔 아무리 많이 벌어도 초과 임금을 가져갈 수 없다. 연구능력에 따른 100% 성과급제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목표연봉이 있는데, 한 마디로 퇴직금, 4대 보험 등 기관이 지급해야 하는 돈도 내가 벌어야 하는 것이다. PBS제도로 생겼다. 연구자의 연봉이 7천만 원이라면 퇴직금, 4대보험이 다 포함된 것이다”



연구과제중심제도(PBS, Project Based System)는 1996년 김영삼정부 시절 도입됐다. 이 제도는 연구기관이 정부나 민간 등으로부터 연구과제를 수탁해 인건비 등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모든 인건비가 연구과제에 포함되고, 연구원들은 무한경쟁으로 내몰렸다. 연구원의 자질은 ‘과제를 얼마나 따왔느냐’로 평가받게 됐다. 또한 정부와 기관이 PBS제도의 보완으로 3책5공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는 고단한 삶의 이면이다. 연구자의 과도한 연구과제를 수행을 수행을 막기 위해 과제책임자는 3개 이하, 총 5개의 과제를 수행하게 했다. 연구자 스스로 인건비를 확보하기 위해 여러 과제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먹고 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인건비가 1억 원이면, 연구자는 4천만 원을 벌기 위해 큰 과제를 해야 한다. 1천만 원짜리 작은 과제면 4개를 해야 한다. 자체 경쟁이 생긴다. 만일 농림부에서 장기간 10억짜리 큰 연구과제를 준다면 모두 한 팀을 이뤄 응시하겠지만, 정부 바이오 과제가 대부분 5천만 원, 1억 원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는 작은 과제를 하는 것은 본인의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으로 치부한다”

PBS제도는 비정규직 노동자 확대로 이어지기도 한단다. 연구자 스스로 40%의 인건비를 벌어오려면 추가 연구를 해야 하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와 기관은 본질적인 문제 회피하고 비정규직 비율만 낮추는데 급급해 보인다.

“연구는 집단 작업인데, 일손이 딸린다.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비정규직 비율을 낮추는 게 목적이다 보니,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나서 2년 계약이 끝나면 나가라고 한다. 연구업무에도 지장이 있다. 어떤 것은 3월, 어떤 것은 6월에 과제가 시작되는데, 연구자들이 정말 같이 일할 때가 되면 계약기간으로 일을 그만두게 된다”

더불어 그는 미래 연구과제를 항상 준비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또한 고가장비인 전자현미경도 오 씨가 운영하고 지원한다.

“전자현미경은 숙달된 테크닉이 필요해 다른 사람 것을 찍어주고, 나의 연구에도 사용하는데, 기관의 직접적인 지원은 없다. 고가장비를 유지해야 하다 보니 연구자가 관리하고 운영해 수익을 발생시키는 구조다. 사진 한 장 찍는데 실비를 받아 그 돈으로 부품 고치고, 필름 사고, 사람을 고용한다”

그렇게 인건비를 벌어오고 장비 관리도 하는 연구노동자는 매년 이루어지는 평가에서 퇴출당할지 모른다는 위협에 시달린다. 이른바 ‘삼진아웃제’다. 만일 인건비를 100%로 확보하지 못하는 일이 3번 누적됐다면, 이 연구원은 퇴출당한다. 그는 “연구자로서의 자부심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이 평가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연구과제를 수주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과제 선정 자체가 스트레스다. 정부 정책에 따라 평가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논문을 써도 다른 평가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나가야 한다. 복잡한 상대평가시스로 연구 점수 60점 외에 기타 점수 40점도 중요하다. 돈을 잘 벌었는지, 기관의 말을 잘 들었는지가 연구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연구자는 조금이라도 성공할 수 있는 단기 연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정부는 이 구조를 만들어 놓고 ‘실패확률이 높은 장기적인 연구를 하라’고 한다. 아이러닉하지 않은가”

변덕스럽고, 변죽 울리는 정부 정책
예나 지금이나 먹고 살기 어렵지만 이젠 지켜온 것마저...


생각해보면 연구노동자로 살면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먹고 살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그는 1988년 군 제대 후 90년에 생명연에 입사해 첫 월급으로 25만 원가량 받았다. 입사 전 학원에서 ‘수학의 정석’을 가르칠 때도 월 100만원을 받았는데 말이다. 그는 첫 월급을 받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삶의 어려운 과정을 거쳐 남들이 보면 ‘번듯한 직장’에 들어왔는데, 초봉이 겨우 25만원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모두 갚았지만, 주택자금대출과 두 아이 대학 학자금대출을 받았다. 한 아이 등록금만 1년에 1천8백만 원이었다. 사실 옛날에 생명연에서 일할 때 돈이 없는 상황이 닥치니까 500원 하는 담배 펴야 하나, 끊어야 하나 고민했다. 돈이 없어 결국 담배를 끊었다(웃음). 여기 연구실에 있다 보면 하루 담배 한 값으로는 택도 없다”


동료들의 처지도 비슷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외국에서 공부하던 연구자들을 불러 모았단다. 이들은 부모님에게 신세져 비싼 돈 들여 공부하고도 한국에 들어와 방 한 칸 구할 돈이 없어 전전긍긍했다. 신용도 없어 대출 받을 자격이 안 되다보니 능력 있는 연구자를 확보하기 위해 집을 주고, 집세만 내라 했던 시절이다. 그것도 사람이 밀리니까 거주 기간을 제한했단다.

대체로 학사, 석사, 박사학위 따느라 뒤늦게 생활의 안정을 찾은 연구자들은 ‘10년 넘게 돈만 쓰다 비로소 월급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들의 나이 30대 후반이다. 기업에 다니는 동년배와 비교했을 때 연구소의 복지가 적다고 느꼈지만, 오 씨가 계속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과 보장된 미래였다.

그러다 90년대 초중반 연구자들의 월급이 막 뛰기 시작했다. 혜택이 많은 시절이었다. 다시 97년 IMF 금융위기가 찾아오면서 90년대 초반에 ‘잠시 단물 보다가 계속 밑으로’ 내려갔다. 연구자들은 그 시절 정부가 장려한 사내벤쳐 활성화로 퇴직금을 중간정산해 이를 시도 했다 대부분 망했다.

연구자의 삶이 바뀌는 것과 동시에 출연연의 정체성도 계속 바뀌었다. 경제성장과 동시에 출연연의 정체성 논란은 그야말로 풍년이었다. 기업이 자체 연구시스템을 갖추게 되고, 생명과학은 무병장수시대에 걸맞은 먹거리 창출과 결합하게 됐다.

“무병장수라는 큰 주제를 자기과제로 삼아도, 정부는 그 기반을 조성하지 않고 평가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창조적인 생각과 기술이 나오겠는가. 정부 정책이 오히려 출연연의 발전을 막고 있다. 교육이 백년대지계라면 과학은 20~30년 연구 투자해야 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 장관, 국장, 기관장 등이 바뀔 때마다 출연연 계획도 매년 바뀐다. 또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인건비를 벌기 위한 40%가 나머지를 좌지우지 하게 된다. 알아서 먹고 살라고 하니까 일이 제대로 될 수 없는 것이다”

사명감과 자부심,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묵묵히 일했던 연구자들은 다시 정부와 정면 승부를 벌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부채가 없는 출연연까지 ‘방만 경영’과 ‘과잉 복지’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정부의 대책에 오 씨는 한 숨이 나오다 못해 치사하단 생각마저 든다. 이미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연연의 복리후생제도나 휴가제도 등이 후퇴했는데, 이젠 그나마 연구노동자들이 싸워 노사 단체협약으로 체결해 지켜온 복지마저 없앤다고 한다.

그에게 복지사항을 열거해 달라고 하니 △본인 회갑 휴가, 창립기념일 휴가, 10년마다 근속 휴가 등 휴가제도 △근속에 따른 십만 원대의 포상제도 △문화생활, 체력단련 등을 위한 복지카드 등을 들었다. 대학생 자녀 학자금 지원 등 내세울만한 복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낮은 금리의 주택자금대출, 본인 의료비지원 등은 모두 옛말이다. 공공기관을 정상화하겠다며 변죽만 울리는 정부 정책보다 자신의 일에 대한 오 씨의 평소 생각에 귀 기울이게 되는 이유다.

“내가 생각하는 연구란... 내가 더 잘하는 것도 있겠지만 전문가로서 내가 해온 일을 바탕으로 다른 전문가들이 하고 있는 일을 분석하고 참조해서, 세상이 필요로 하거나 필요한 것이라고 예측되는 것을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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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 출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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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연구원

    참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다시 싸움을 준비합니다.

  • 글쎄요

    그래도 과학자는 자기가 하고싶은 일 하면서 살지않나요~? 국민세금을 쓰면서 그정도 obligation은 필요하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