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 낙서 수사, 수급자 개인정보 요구...시민사회 반발

광주경찰, 5개 구청에 수급자 3800명 명단 및 사진 요구

경찰이 지난 15일 새벽 광주 도심에서 발견된 박근혜 대통령 비방 낙서를 수사한다며, 수천 명의 기초생활수급자 명단과 사진을 요구해 파문이 일고 있다.

다수의 언론 보도를 보면, 지난 15일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 건설현장 외벽과 가톨릭센터 벽 등 12곳에서 스프레이 등으로 적힌 '국정원 불법선거개입', '독재정권 물러나라', '12.19 부정선거 박ㄱㅎ를 처단하자' 등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낙서가 발견됐다.

이에 광주지방경찰청은 CCTV 분석해 낙서한 사람으로 지목된 자를 재물손괴죄와 모욕 및 명예훼손죄 용의자로 간주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경찰은 용의자가 '기초생활수급자증'을 가지고 다닌다는 제보를 받고, 광주광역시 5개 관할 구청에 30~50세 사이의 남성 기초생활수급자의 사진과 인적사항 등 관련 서류를 제공해 달라고 요구했다.

현재 광주 시민 중 이에 해당하는 사람은 총 3800여 명이며, 몇몇 구청에서는 관련 정보를 이미 경찰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지방경찰청이 박근혜 대통령 비방 낙서 용의자를 검거한다며 3800여 명의 기초생활수급자 개인정보를 요구해 물의를 빚고 있다. 낙서가 발견된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 건립공사 현장.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 건립공사 누리집

이에 광주지역 시민사회가 과도한 인권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참여자치21은 26일 성명을 내고, 광주지방경찰청이 정권을 비판한 단순 낙서 용의자를 검거하기 위해 수사권을 남용했다고 비판했다.

참여자치21은 "이번 사건을 통해 지역의 수사기관과 행정기관이 시민의 소중한 개인정보를 얼마나 편의적으로 활용하고, 안일하게 관리하는지 명백하게 드러났다"라면서 "낙서범 검거에 수사력을 대거 동원한 경찰이 서민을 울리는 민생범죄 해결에는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참여자치21은 "낙서를 남긴 16곳 대부분이 공공시설 공사현장 외벽으로 애초부터 낙서공간이란 점을 감안할 때, 정권 비판만 없었다면 이렇듯 적극적인 수사를 펼쳤을까"라면서 경찰의 이번 조치가 정권 보호를 위한 과도한 대응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실제로 낙서가 그려진 곳 대부분이 그라피티(낙서) 등 시민들의 거리낙서가 많았던 곳이어서 경찰의 과도한 대응에 대한 논란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광주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광주인권운동센터 등 6개 광주지역 인권단체들도 27일 공동성명을 통해, 존재하지도 않는 '기초생활수급자증'을 근거로 개인정보를 요청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주민등록증과 같은 신분증 형태의 '기초생활수급증'은 없고, 다만 주민등록등본과 같은 서류 형태의 '기초생활수급 증명서'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인권단체들은 "경범죄인 공공장소 낙서행위를 수사하는데 기초생활수급자로 '추정'되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해 3800여 명의 기초생활 수급자 명단을 요구한 것은 수사 편의를 위한 과도한 요구"라고 비판했다.

이어 인권단체들은 경찰에 수급자 명단을 넘긴 구청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의심 없이 수사를 목적으로 한 요청에 대해서는 무조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인가"라면서 "만약 용의자가 장애인 복지카드를 가지고 있었다는 제보가 있었다면, 장애인으로 등록된 수많은 사람의 명단도 경찰에 제공할 것인가"라고 구청의 행태를 비판했다.

기초생활수급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수사에서 과도한 정보를 요구한 경찰의 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20일 인천경찰청은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부정수급 사건을 확대 수사한다면서 인천시에 1000명이 넘는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의 개인정보를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인천지역 장애인단체들은 활동보조인과 장애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거세게 반발하자 인천경찰청이 자료요청 계획을 보류한 바 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18조에는 '범죄의 수사와 공소의 제기 및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개인정보를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하거나 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진보네트워크 등 정보인권단체들은 이런 조항에 의해 공공기관이 보유한 개인정보가 영장도 없이 수사기관에 제공되어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덧붙이는 말

하금철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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