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의 거꾸로 가는 '사랑' 의미...성소수자들 '분노'

보수 기독교계 요구에 '사랑' 개념을 이성애로만 한정

국립국어원이 '사랑'과 관계된 단어 5개의 뜻을 이성애 중심적 개념으로 돌려놓은 것이 뒤늦게 확인되자 성소수자 단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지난 2012년 11월, 국립국어원은 '이성애 중심적인 언어가 성소수자 차별을 만든다'는 대학생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표준어대사전의 '사랑', '연애', '애정', 연인', '애인' 등 5개 단어의 뜻을 성(性) 중립적인 쪽으로 바꾼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보수 기독교계는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우려하며 국립국어원에 전화와 전자우편, 전송 보내기 운동을 벌이는 등 항의 캠페인을 벌였다. 이에 국립국어원은 지난 1월 '사랑', '애정', '연애'의 뜻을 이성애 중심적인 것으로 돌려놓았다.

국립국어원은 이에 대해 "재변경 이전 뜻풀이는 한쪽에서 보면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돼 전형적인 쪽을 기준으로 바꾼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독교계의 항의에 의해 뜻이 바뀐 '사랑', 연애', '애정' [출처: 국립국어원]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성소수자 인권단체 등에서는 성명을 발표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아래 무지개행동)은 지난달 31일 성명을 내고 "재개정 이전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사랑의 뜻풀이는 그 누구도 배제하고 있지 않다"면서 "오히려 이번 재개정이야말로 이성애를 강요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성간 사랑은 ‘사랑’이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무지개행동은 이어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내디뎠던 한 발자국을 되돌려버린 이번 재개정을 규탄한다"라면서 "동성애문제대책위원회 등 성소수자 혐오세력들은 자신과 다른 사랑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데 힘쓰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자세를 배우기 바란다"라고 지적했다.

노동당 성정치위원회도 31일 '국립국어원의 변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국립국어원 표준어대사전의 ‘사랑’에 관한 해석이 성 중립적 관점에서 또다시 구시대의 이성애 중심적 관점으로 돌아갔다"라고 성토했다.

성정치위원회는 "반대단체들의 집요하고 졸렬한 집착은 이미 성소수자 인권 단체와 옹호자들이 충분히 목격한 바 있어 국립국어원이 겪었을 고통을 십분 이해한다"라면서도 "하지만 반대 민원의 해법으로 역사적 퇴행을 자행하는 것은 국립국어원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SNS상에서도 국립국어원의 '변심'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영화감독 이송희일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국립국어원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하여 어느 한 쪽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습니다."라고 밝힌 것에 대해 "기독교계 반발에 못 이겨 사랑이란 개념을 1년 만에 바꾼 주제에 얌전한 척하고 있네요.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기독교계의 거울이 된 '국어'."라고 꼬집었다.

문화학자 엄기호도 트위터에서 "보수당이 집권 중인 영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청사 건물에 무지개 깃발이 걸린 다음 날 한국의 국립국어원은 사전에서 사랑의 정의를 이성애들의 것으로 되돌렸다. 그들이 좋아하는 '국격'을 우간다 수준으로."라고 비판했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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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성소수자 ,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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