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철도노조는 공사의 책임 있는 사과와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철도공사장’ 진행을 요구하며 무기한 장례를 연기해 왔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회피해 왔던 철도공사가 사망 7일 만에 유족 및 철도노조와 장례일정에 합의하면서, 9일 오전 7시부터 고 조상만 조합원의 장례식이 ‘철도노동조합장’으로 치러지게 됐다.
그는 땅에 묻혔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고 조상만 조합원이 넘었던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다. 철도공사의 강제전출 압박이 계속 되며 노동자들의 불안감과 분노는 커져만 간다. 이미 6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은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깎았고, 일부는 단식을, 또 다른 일부는 농성을 시작했다. 또 다른 죽음을 낳을 수 있는 강제전출을 막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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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철도노조] |
1994년부터 2014년까지. 20년간 이어진 ‘강제전출’이라는 연쇄살인
강제전출로 인해 노동자가 사망에까지 이르는 끔찍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무려 20년 전부터 많은 노동자들이 고 조상만 조합원과 같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었다. 20년간 이어져 온 연쇄살인이었지만 누구도 이 살인을 멈추지 못했다.
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죽음을 부르는 강제전출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는 동료를 잃은 철도노조 조합원들과 실제로 강제전출 피해를 경험했던 노동자들이 증언대에 올랐다. 철도공사에 강제전출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때는 1994년, 변형근로제 철폐를 내걸고 노조가 파업에 돌입했던 그 해부터였다.
94년 6.23 파업에 참여했던 김 모 서울동차지부 교선차장은 파업 주동을 이유로 대전정비창으로 전출됐다. 이미 과거에 사상사고로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그는 전출 이후 고립된 생활과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병이 재발했다. 이 상황에서 어린 조카를 실수로 사망케 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는 결국 경찰조사 과정에서 경찰서 화장실 창문을 깨고 투신자살했다.
96년 9월, 혼자 거동할 수 없는 노모와 부양가족이 있던 고 서전근 대전정비창 검수원은 공사로부터 근무불성실의 이유로 비연고지 전출명령을 받았다. 그가 어용노조로부터 ‘괘씸죄’로 찍혀 전출이 이뤄진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고 서전근 씨는 관리자와 노동조합에 선처를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이에 항의에 몸에 신나를 끼얹고 분신했다.
94년에는 파업 이후 해고와 복직을 거듭했던 고 박세철 대전기관차지부장이 사고사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그는 복직 후 대전 객화차 ‘장항분소’로 전출됐고, 출퇴근에 어려움을 겪다 어렵사리 차량을 장만했다. 그러다 1996년 출근길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3년 뒤인 99년에는 서울동차지부 부지부장이었던 조항만 서울동차 검수원은 철도공사의 부당징계철회 서명운동을 벌이다 동해차량으로 부당 전출됐다. 서울동차사무소에 근무할 때만 해도 ‘핵심 검수원’으로 추천까지 받았던 그는 1년여의 전보기간 동안 격리감, 경제적 손실, 가정적 문제까지 겹쳐 스트레스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관사에서 주물똥 제거 작업, 똥통 수리까지
‘파업’ 했던 동지들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가정은 파탄
전성철 서울기관사사업소 기관사는 “이제 20년이 지난 이야기가 돼 버렸다”고 말문을 열었다. 입사 38년째, 베테랑 기관사인 그는 1994년 변형근로제 철폐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 중 한 명이었다. 당시 파업으로 그를 포함한 200명의 노동자들이 비연고지로 강제전출 됐다. 그와 같이 활동을 했던 다른 노조 간부들도 동해, 김천, 부산 등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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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
전성철 기관사가 전출을 간 곳은 대전정비창 기계공장이었다. 18년간 기관사 일을 했던 그는 그 곳에서 철도부품에 묻어나온 주물똥을 그라인더에 가는 작업을 했다. 주물공장이 외주화 되면서 그는 일명 ‘똥통수리’ 업무로 배치됐다. 객차에서 변을 처리하는 똥통이 고장나면 그것을 떼어와 수리하는 작업이었다. 전 씨와 같이 강제 전출을 당했던 기관사들은 3년에서 5년간 낯선 곳에서 낯선 작업을 했다.
그래도 전 씨는 서울에서 대전정비창까지 출퇴근을 했다. 하루 출퇴근 시간만 장장 4시간에 달했다. 그와 함께 전국으로 흩어진 여섯 명의 서울기관사사업소 동료들은 가족과 생이별을 했다. 그들은 가족들과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번 만나기도 했다.
전성철 기관사는 “강제 전출은 인간성을 파괴한다. 1994년도에는 많은 전출자가 있었음에도, 당시 어용집행부 시절이었기 때문에 민주노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 희망을 가지고 전출지에서 열심히 살 수 있었다”며 “하지만 노조가 민주화 된 현재도 강제전출 문제가 코앞에 닥쳤다. 떠나는 동지들을 생각하면 말문이 막힌다. 강제전출 이후 또 다시 어떤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임도창 전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장도 지난 2011년 고 허광만 기관사(당시 39세, 노조 서울지방본부 조직국장)를 잃었다. 고 허광만 기관사는 2009년 파업으로 해고된 후 2년간 해고자 생활을 이어가다 ‘고마웠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임도창 전 본부장은 “해고된 이후에도 자기보다 징계 받은 동료 해고자를 챙겼던 동지였다. 그는 해고 시절 다시 기관차를 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해고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하기 전 1분 정도 통화 할 때 미안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며 “해고를 단행했던 자들은 살인자다. 사회적 타살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조상만 조합원 죽음 왜곡하는 철도공사, ‘살인’의 책임자는 어디에 있나
지난 3일, 고 조상만 조합원이 사망한 후 철도공사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철도노조가 고인의 죽음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공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고인이 소속된 전기분야의 경우 7월 순환전보계획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조의 이야기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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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어용수 철도노조 부산전기지부 교선부장은 “철도 전기분야로 내려진 ‘계획전보 세부 시행계획’에 따르면 연 2회(상,하반기 2월, 7월) 전보를 시행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며 “부산전기처밴드의 전기처장 글에도 이번에 한해 제외한다는 것일 뿐, 다음부터는 (전보에) 포함할 계획이라고 명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고 조상만 조합원은 지난 3월, 이미 마산에서 진주로 전출을 간 상황이었다. 공사 측은 강제전출이 아닌 ‘배려’였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유족들은 강제전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어용수 교선부장은 “부인의 증언에 따르면 조상만 조합원은 마산에서 진주로 발령을 받은 뒤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주간 근무 때는 7시에 퇴근 하면 9시 30분에 집에 도착했고, 야간주에는 오후 4시 40분 차를 타야 오후 7시에 출근할 수 있었다. 휴식을 취할 시간이 없었다”며 “18년간 근무해 오던 곳을 떠나, 나이 50이 넘어 진주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일을 하며 부인에게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과거 다양한 직업의 노동자들이 강제전보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법원은 강제전보에 의한 자살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된다는 판결을 내려왔다. 철도 노동자들의 사망도 이와 다르지 않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한인임 박사는 “행정법원에는 강제전보나 전출이 정신건강에 장애를 줄 수 있어 업무상 재해라고 수차례 인정해 왔다. 이번 사건도 전기원만의 문제고나, 당사자가 심약해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철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직무스트레스에서 무방비한 상태다. 노동자 70%가 야간노동을 하고 있어 뇌심혈관계 질환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직무상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심혈관계질환, 근골격계질환, 정신건강 등에 영향을 준다. 정부에서도 직무스트레스를 관리토록 규정하고 있지만 철도공사는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강제전출로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제준 KTX민영화저지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철도공사의 강제전출 문제에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공동대응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기존 야당 및 인권, 법률단체 등으로 구성된 ‘인권침해 진상조사단’을 ‘철도노조 인권침해 감시단’으로 전환 확대하고자 한다. 특히 고 조상만 조합원의 사인 규명을 위한 진상조사 활동을 전개하고 그 결과를 빠른 시일안에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4월 국회에서는 강제전출 등 노조무력화 계획을 쟁점화시키고, 가능하면 최연혜 사장을 출석시켜 질의를 진행해야 한다”며 “필요하면 종교계의 교섭 중재단 활동을 전개하고, 대화를 거부할 시 최연혜 사장 퇴진 운동 공개 선언 등 구체 계획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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