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고공농성 끝나면 한달에 두번 놀러가자

[인터뷰] 유성기업 이정훈 지회장 아내 한영희 씨

대형마트 비정규노동자 한영희(48) 씨는 요즘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다. 직장 근무와 집안일로 바쁜데도, 물리적 시간은 마음 한 편의 빈 공간을 채우지 못한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20대 초중반의 자녀들이 한씨에겐 든든한 버팀목이지만, 언제나 삶이 그렇듯 때때로 비바람이 불고 소나기가 내린다.

한영희 씨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인 이정훈(51) 씨는 ‘노조파괴범’ 유성기업 사업주 구속을 촉구하며 200일 넘게 22미터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이다.

강원도 산골짜기 남자와 전남 바닷가 여자
민주노조 위해 산 남편...그래도 그때가 재밌었다


만나자마자 대형마트에서 오래 근무했냐고 묻자, 원래 직업은 미용사였는데 직업병으로 그만뒀다고 말한다. 스무 살에 서울로 올라와 친척집에 머물며 미용 일을 시작한 한씨는 그 시절 남편 이정훈 씨를 만났다며 수줍게 웃는다. 강원도 영원 산골짜기 남자와 전남 완도 바닷가 여자가 결혼한 옛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전 서울 마포에서 미용사로 일했고, 남편은 그 동네 의경이었죠. 서로 얼굴도 몰랐어요. 어느 날 친구와 놀다가 같이 들어가는 길에 ‘야, 저 오빠 커피한 잔 뽑아주고 가자’ 했는데, 그게 인연이 됐어요. 친오빠가 최전방에서 군 생활을 하는데다가 대학생 시위도 많았던 때라 안타까운 마음에 저와 친구가 그렇게 한 거죠. 그런데 남편은 제가 이성적으로 관심이 있어 커피를 뽑아줬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웃음). 계속 만나다가 결혼까지 하게 됐죠”

경찰시험을 준비하던 이정훈 씨는 우여곡절 끝에 1987년 경기도 부천의 유성기업에 입사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동료이자 절친인 김동암 씨와 노조 활동을 하던 그는 부천공장에서 노조 대의원을 하다 충북 영동공장으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노조 활동에 뛰어들었다. 한씨는 “1992년 9월 20일” 영동에 내려왔다고 또박또박 날짜를 되새기며 “남편은 늘 노조간부였다”고 말했다.

“영동공장에 있을 때 남편 월급이 딱 50만원이었죠. 노조 활동한다고 잔업, 특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본급만 받았어요. 남편은 많아야 일주일에 3번 정도 집에서 잤어요. 노조 활동으로 전국을 다녔죠. 91년 부천 유성기업에 공권력이 투입됐을 때도, 영동공장에 노조를 세울 때도, 96년 총파업을 할 때도 남편은 민주노조를 위해 살았죠. 그땐 친정어머니가 알게 모르게 많이 도와주셨어요. 예를 들어 부식비가 거의 들지 않았죠. 또 옆집에서 돈을 빌려다가 월급타면 갚고. 반복되는 생활이었어요”


여러 면에서 힘든 시절이었겠다고 묻자 의외로 “그때가 재미있었어요”라고 답한다. 물론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남편이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해 야속하고 이제와 아이들에게 미안하긴 해도, 돌아보면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단다.

“노조 조합원들이 우리 집에 많이 왔죠. 술 한 잔하고, 겨울에는 개구리 잡아 튀겨먹고. 부천에서 내려온 제가 영동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저도 워낙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남편도 그래요. 남편에게 노조 활동하지 말라는 얘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죠. 개인적으로는 남편이 노조 활동을 통해 인간의 자존감을 찾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남편의 일이니까 받아들인 게 있죠. 남편의 집념에 대해선 믿음이 있어요. 남편은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아도, 우리 노동자가 이긴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아직 살날이 많은데, 돈 600만원에 넘어가지 말라

한씨는 200일 넘게 남편과 떨어져 있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3월 15일 1차 유성 희망버스 행사 때 낭독했던 편지글처럼, 그는 작년 10월 13일 결혼기념일에 고공농성에 돌입한 남편에게 서운하다는 말 대신 “한 달이면 돼?”라고 물었다. 2011년 유성기업의 노조파괴 공작이 한창일 때, 그는 “난생 처음 주말부부라는 것도 해봤다”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저는 회사에 대한 미움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렇게 심하진 않았죠. 하지만 2011년부터 회사가 왜 이렇게 노조를 탄압하고 완강하게 나오는 건지. 누구 말마따나 사장 뒤에 대단한 빽이라도 있는지 의문이에요”

2011년 5월 18일, 회사가 공장을 직장폐쇄하고 용역업체 직원을 투입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기가 막혔단다. 남편은 당장 회사로 들어가 봐야 한다는 전화 한통을 남기고 그날로 집을 나갔다.

“회사를 위해 수십 년 일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남편 동료들이 용역깡패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공장에서 쫓겨났을 땐 정말 화가 났어요. 남편은 해고통지서까지 받았죠. 당시 아이들과 남편을 만나러 갔는데, 가뜩이나 마른 사람이 더 비쩍 마른 채로 환히 웃는데 차마 그 앞에서는 눈물도 흘릴 수 없었어요”

시간이 흘러도 한씨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회사가 노동자들을 갈라치기해 조합원들이 전국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에서 친회사 성향의 유성기업노조에 새로 가입했다. 2011년 회사가 노조 조합원을 모두 공장 밖으로 쫓아냈을 때, 공장 안에선 복수노조가 설립됐다. 한씨는 최근 근무 도중 유성기업노조로 간 남편의 동료를 만났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제가 그 사람에게 ‘600만원에 넘어가지 말라’고 했어요. 회사가 어용노조에게 교섭 타결금조로 1인당 600만원씩 주나 봐요. ‘회사가 돈지랄 하는 거냐’, ‘인생 아직 살날이 많은데, 자식 있는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다’라고 했죠. 자식에게 올바른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부모가 그래선 안 되는 거잖아요. 더 큰 문제는 회사가 제발 조합원들을 이간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충북 영동은 손바닥 보듯 훤히 보이는 작은 동네예요. 서로 선후배에 동기에다 얽히고 설켜 있죠. 어떻게 그 바닥에서 서로 살아가라고... 사측이 횡포 좀 그만 부려야 해요”

체포영장까지 발부되고 아이들이 “아빠 언제 내려와?” 물을 땐...
여보, 사태 잘 마무리되면 우리 둘만의 시간도 갖자


한씨는 며칠 전 남편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을 때, 처음으로 고공농성을 중단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단다. 경찰이 남편을 강제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농성이 길어질수록 아이들도 “아빠 언제 내려와?”하고 묻는단다.

“우리 딸은 아빠를 닮아 사람을 불쌍히 여길 줄 알고, 추진력이 있어요. 우리 아들은 차분하고 듬직하게 맏아들 노릇을 하죠. 그런 아이들이 아빠 없는 집 같다고 할 땐 마음이 짠하고,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죠. 가족은 살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한번은 결혼기념일에 고공농성에 돌입했다는 제가 쓴 편지 대목을 보고, 누가 그게 뭐가 대수냐는 식으로 인터넷에 악플을 달았나 봐요. 아들이 ‘사람은 누구나 소중한 기념일이 있는 것 아니냐’며 처음으로 화를 내더군요. 딸은 그때 ‘엄마가 언론에 나오는 거 싫다’며 울었어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타일렀죠”


한씨는 그러면서도 “무엇하나라도 해결하고 농성장에서 내려와야지 그냥 내려오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던 자신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아빠인 남편을 생각하면 사태가 빨리 해결돼 농성을 중단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지만, 회사의 강경한 자세와 간절히 투쟁하는 동료들을 보면 이대로 내려와선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회사가 노조를 이용하기도 했죠. 2012년 홍종인 지회장이 유성기업 아산공장 앞에서 굴다리 고공농성을 하고 내려왔을 때도, 회사는 말을 바꿔 약속사항을 이행하지 않았잖아요. 남편은 고공농성에 돌입하면서 회사 경영진이 꼭 처벌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저도 같은 생각을 했죠”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의연하게 자신의 옳다고 믿는 길을 선택하고 걸어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지 않다. 노조활동이 전부인 남편의 영향도 있겠지만, 한씨는 마음속에 하나의 원칙을 품고 있다.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냉정하게 잘라버린단다.

“대기업 사장이나 고위 간부가 아니면 한국 사회에선 모두 노동자예요. 그런데 왜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파업하면 파업한다고 뭐라 하는지 모르겠어요. 친한 분들은 제가 파업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하면 듣기 싫어서 잘라버린다는 것을 알죠”

날이 더워지고 고공농성이 길어질수록, 그는 매일 남편의 음식을 살뜰히 챙겨주는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이 커진다.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에도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는 조합원들을 보며 남편이 참 외롭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커진단다. 고마운 마음이 커질수록, 조만간 사태가 해결돼 남편이 웃으며 내려오는 모습을 상상해본다는 한씨는 개인적인 바람도 살며시 전한다.

“고공농성이 끝나면, 남편이랑 둘 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요. 제가 한 달에 두 번 일요일이 휴무거든요. 남편은 사실 이런 거 잘 몰라요. 둘만 여행가본 적도 없죠. 하지만 이젠 아이들도 다 컸고, 조합원들도 노조 활동을 잘 하니... 남편과 한 달에 두 번 여행가고 싶어요”
덧붙이는 말

정재은 기자는 미디어충청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충청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정재은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땅에서 힘내서 함께 싸우고 있는 진짜 동지이십니다. 꼭 승리해서 두 분이 여행간다는 이야기 듣고 싶네요. 그날을 위해 힘 보탭니다! 멋진 가족분들 힘!!!!!!!!!!!!!

  • 조합원

    ㅅㅈㅋ노동자 연대투쟁합니다,,,,투쟁

  • 포항

    노조탄압은 노동자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배은망덕한 넘들의 심보, 양심 없는 넘, 인간임을 거부하는 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