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소 짓밟힌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침묵 속 외침

“정몽준, 산재사망 책임져야”...정몽준 캠프 앞 노숙농성



30일 오후 5시, 마스크를 쓰고 피켓을 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조합원들이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의 대학로 선거 유세장에 나타났다.

이날 오전, 울산 현대중공업은 경찰과 직원을 동원해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회사진입을 시도한 하청노조 조합원들을 막아섰다. 최근 2달 사이 8명의 하청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했다. 사측은 이들의 분향소마저 경찰을 동원해 강제 철거했다.

이들이 항의해야 할 대상이 다시 한 번 분명해졌다. 사내하청노조 조합원 10인은 그 길로 한달음에 '진짜 사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진짜 사장’은 서울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선거 유세에 한창이었다.

이들을 제일 먼저 반겨준 사람들은 정 후보의 열성 지지자들이었다. 정 후보가 유세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몇몇 중년 여성들이 유세 차량 옆에서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던 조합원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남의 잔칫집에 와서 왜 행패를 놓느냐”고 했다. “너희들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 얼른 꺼져라”고 했다. 발언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박원순과 내통한 놈들이다. 경찰은 얼른 체포 안 하고 뭐하냐”고 소리를 질렀다. 조합원들은 침묵을 지킨 채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



열성 지지자들이 조합원들에게 달려들어 드잡이를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사복 경찰 30여 명이 밀고 들어왔다. 경찰은 조합원들을 유세차량 뒤쪽 인도 구석과 지하철 환풍구 위로 올려 세웠다. 그리고 바둑알로 집을 짓듯 조합원들을 포위했다. 정 후보가 대학로 유세장에 도착하기 불과 15분 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부인을 대동하고 유세장에 도착한 정 후보 곁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함께 서 있었다. 지지발언에 나선 이들은 시종일관 박원순 후보에 대한 비난에 집중했다.

특히 나경원 전 의원의 지지발언은 조합원들을 더 분노하게 만들었다. 나 전 의원은 “(정 후보는) 현대중공업도 그렇고, 외국에 가면 더 인기가 있다. 우리가 이런 분을 외국에 뺏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시위를 하고 있던 조합원들이 보이는 위치에서 태연히 뱉은 말이었다.

  정 후보 유세에 참석한 김황식 전 총리, 나경원 전 의원, 이혜훈 새누리당 의원이 돌아가며 지지발언을 하고 있다

지지발언이 끝나고 연설에 나선 정 후보는 제일 먼저 스스로를 ‘알부자’라고 소개했다.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란 의미라 설명했다. ‘일복시장’이 되겠다고 했다. ‘일자리와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의미라 했다. 무엇보다 시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안전’한 서울을 만들겠으니 자신을 꼭 뽑아 달라고 했다.

연설 도중 정 후보가 갑자기 시위 중이던 조합원들을 언급했다. 정 후보는 청중을 향해 “조촐한 유세에 찾아와 우리 분위기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누구를 처벌하라, 구속하라’고 하는데 박원순 후보가 저들이 여기서 저러고 있는 걸 모를 리가 있겠나”고 질문했다. 이어 “왜 저런 일이 있을까 안타깝다”며 “법대로 하면 저 뒤에 분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 말처럼 그 분(박 후보)을 구속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후보의 발언에 열성 지지자들이 다시 탄력을 받아 조합원들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이들은 “박원순의 파렴치함이 여기서 나타난다”, “박원순이 저지르는 테러다”고 소리쳤다. 지하철 환풍구 위에 올라서 있던 한 조합원이 더 이상 참지 못 하겠다는 듯 “당신 아들이 이렇게 억울하게 죽어도 그렇게 말 할 수 있겠는가”외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저녁 6시 30분, 정 후보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유세장에서 사라졌고, 조합원들도 마스크를 벗었다. 이들은 곧장 여의도로 이동해야 했다. 대학로에서 여의도까지, 정 후보 선거 사무실 앞에서 예정된 7시 규탄집회 시간을 맞추기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금요일 저녁 퇴근길 마포대로의 교통체증은 극심했다. 침묵시위 1시간 반 동안 물 한 모금 제대로 못 마신 조합원들은 이동 중 한낮 차안 열기에 달궈진 뜨끈한 생수를 마셔야 했다. 점심도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급히 때운 떡볶이가 전부였다. 대학로에서 여의도까지 1시간 25분이 걸렸다.

이동 중 차안에서 한 조합원은 “선거운동원들인지, 열성 지지자들인지 모르겠지만 (하청노동자 산재 사망 사건) 내용도 전혀 모르면서 밀어붙이니까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정 후보는) 연설을 정말 못 하더라, 어떻게 정책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고, 하나부터 열까지 박원순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만 하냐”고 탄식했다.

운전을 하던 정우석 부지회장은 뚫릴 기색이 보이지 않는 꽉 막힌 도로를 바라보며 “그래도 걸어가던 시민들, 지나가는 차안에 시민들 중 몇몇은 우리를 지지하는 의미로 손도 들어주시고 아는 척을 해주셨다”며 “많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왜 이러고 있는지 그 내용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겠지”라고 말했다.

김백선 사무장은 “정몽준이 분명히 우리를 봤다. 우리의 이런 침묵시위가 원청에 압박이 되었을 것이다”면서도 “그 압박이 좋은 변화로 나타날지, 탄압으로 되돌아올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빠져 나간 금요일 저녁 여의도는 한산했다. 애초 예정된 시간은 7시였지만 집회는 그보다 1시간 15분이나 늦춰져 시작했다. 조합원 10인을 포함해 집회에 연대하러 온 참여자 20여 명이 정 후보 선거 사무실 앞 아스팔트 바닥에 모여 앉았다.

불과 일주일 전 정 후보 선거 사무실 앞 도로는 전국에서 상경 투쟁을 올라온 500여 명이 넘는 전국금속노조 조선업 분과 소속 9개 노조 조합원들이 가득 메웠다.

하창민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지회장은 “깨지지 않는 벽을 느낀다. 최소한 인간으로서 미안함, 안타까움이라도 있을 것인데 정말 말문이 막힌다”고 심경을 털어 놓았다.

그러면서도 “이 자리가 더 의미가 있다. 우리 하청노조 조합원은 10명밖에 안 되지만 투쟁하기 위해 이렇게 서울에 모두가 함께 올라온 것은 하청노동자 투쟁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며 “돌아가서 언제 해고당할지 모른다. 여기 올라온 10명 모두 해고를 각오하고 올라왔다”고 말했다.

이어 “책임져야 할 자는 정몽준이다. 정몽준이 안 움직이면 현대중공업은 꿈쩍도 안 할 것이다”며 “노동조합 가입도 조직화도 어려운 하청노동자 현실 속에도 우리를 후원하는 준조합원들이 100여명이 넘는다. 내일도 계속 ‘그림자’처럼 정몽준을 따라 갈 것이다”고 말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가 연대발언을 하고 있다

연대발언에 나선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전수경 씨는 “대기업 사장들을 고발하면 언론에는 크게 나가지 않는다”면서도 “기업에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신호를 준다. 짜증내고 싫어한다. 사회적으로 그들에게 압박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하청노동자들이 올라와서 이렇게 외치는 집회가 사회적으로 의미있고 기업들에게 위협되는 집회라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며 “현재 노동자 산재 사망 이슈가 사회적 쟁점이 되어가고 있다. 인원수가 작아도, 지하에 있어도 끝까지 포기하시지 말고 힘내시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집회는 오후 10시 무렵, 민중가수 박준, 몸짓패 선언의 문화공연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조합원들은 이날 정 후보 선거 사무실 앞에서 하룻밤 노숙을 하고, 31일 오전에도 침묵시위를 이어서 진행한 후오후에 울산에 내려갈 예정이다.

  정몽준 후보 선거사무실 앞에서 집회가 끝나고 조합원들이 함께 모여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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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 비정규 하청노동자 , 산업재해 , 그림자 투쟁 , 상경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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