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 이철호(학벌없는사회, 배문중 교사)
* 참석 : 공기, 서린, 왕클, 김지애(학벌없는사회), 장혜옥(학벌없는사회), 배성인(참세상), 홍석만(참세상)
* 장소 : 학벌없는 사회 회의실
* 일시 : 2015년 4월23일과 6월4일
* 사진 : 김용욱(참세상)
* 논의정리 : 김지애(학벌없는사회)
![]() |
사회: 당장 대책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지만 교육의 문제로 이어지는 사회문제가 노동의 문제로 이어지고, 청년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지금 우리 시대의 청년들의 삶이 어떤가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듣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사회가 일자리가 가능한지, 우리 사회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어떤 능력을 요구하고 있는지, 그 능력의 정체가 무엇인지, 노력하면 그 능력을 갖출 수 있는지,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요.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생각해 보려고 해요. 청년들은 과연 무엇을 요구받고 있는가, 사회로부터. 아니면, 이 말을 바꾸면 이렇게 되죠. 우리 사회는 한국 사회의 청년을 어떤 인간으로 만들려 하는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 |
▲ 공기. |
물론 비교해봤을 때 경험적으로 기회가 더 많았던 사람이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데 능숙한 것 같기는 해요. 왜냐하면 이런 좌담회 등에 초대받아서 듣고 이야기하는 경험을 통해 습득되는 능력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능력을 발휘하는데 경험이 중요하죠.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저의 능력이라고 인정해줄 만한 부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능력이란 게 너무 방대해요’라고 했더니 이렇게 질문을 만들어 제게 주셨어요. 청년들에게 이 사회가 갖추길 요구하는 능력의 정체에 대해 질문 받았고, 이 시대가 우리 청년세대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생각해보면 너무 많아서 이런 것들도 요구하고 있는 거죠.
미생을 보면 주인공 장그래는 학벌도 스펙도 없는 캐릭터로 나옵니다. 그런 장그래에게 한 가지 능력이 있다면 취업 후 살아남을 수 있는 노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는 것도 능력이 되는 이 시대에서 장그래는 노력을 인정받았고, 제 친구도 장그래의 그런 점에 꽂혔었죠. 사실 환상이잖아요. 아무것도 없던 사람이 대기업에 취직을 해서 뭔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지 않았어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그 신화. 이런 점에 중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회가 어느 정도의 교육과 경제적 기반이 갖춰지면 취득할 수 있는 것들 말고도 개인의 노력까지 하나의 스펙으로 포섭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능력의 지표로서 스펙은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사실 스펙은 능력과 같은 말인 거 같아요. 그런데 자신의 기준을 뛰어넘는 천재성을 가진 사람들을 두고 우리가 보통 능력자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개인이 가진 능력들을 스펙으로 인정하는 문제는 이 사회가 우리로 하여금 그 능력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가려내도록 하고 있고, 그렇다면 그 능력이나 스펙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자연스레 도태되는 사회라면 당연히 정당하지 못한 불평등한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능력이라는 게 있어 보이고 특별한 것처럼 보이지만, 능력을 특별하게 만드는 작업들을 걷어낸다면 그 실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모든 사람이 능력을 갖도록 제도적인 안정과 교육적 기회, 경제적 기반을 준다면 일정 정도의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능력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게 이 지점인거 같아요. 어떤 개인을 인정해주고 추앙하기보다는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적 기반과 능력을 쌓을 기회를 누릴 수 있다면 얻을 수 있는 게 대부분인데, 그것이 마냥 특별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죠.
좋은 학벌을 가지는 것과 그에 상충하는 능력을 갖는 것은 사실상 제가 봤을 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고요. 약자들에겐 그 또한 학벌과 같은 권력으로 느껴질 것 같아요. 그래서 학벌은 없어도 능력을 가지길 원하고, 나아가 능력 없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우리의 내면을 좀 들여다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반성을 해보면, 사람들이 무시하지 못할 능력에 대한 기대가 있어요. 그것이 사회적 기준이 아니라 유명세라거나 혹은 인정받는 거나 그런 것들이죠. 그 사이에서 그렇지 못한, 그럴 기회가 없던 사람들을 혐오하고 있었기에 내 안에 깃든 능력주의라는 게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학벌주의와 능력주의를 같은 선상에서 놓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고, 이것이 긍정보다는 비판의 대상으로 볼 수 있는 지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 다음 이야기들도 다 듣고, 차근차근 이야기 나누는 게 좋겠습니다. 다음은 서린 씨 이야기를 듣죠.
![]() |
▲ 서린. |
제가 일자리를 구하려면 “지금은 그만뒀지만 저도 대학을 다녔어요”라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 안에서 어떤 활동들을 했어요. 저는 이런 저런 능력이 사실은 있답니다! 모르셨죠? 할 수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이러저런 활동도 했었어요.” 치사하지만 살기 위해 그런 말을 해야 했어요. ‘일을 찾기 위해 자신을 팔아야 된다, 상품성을 개발해야 한다.’ 사실 그러고 싶지 않아 대학도 거부했지만 저도 계속 고민을 하게 되는 거예요. 대학을 거부한 상태에서 상품성을 개발하기란.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사회부적응자나 그런 분위기로 보기 때문에, ‘너 조직생활 할 수 있겠어?’ 혹은 ‘넌 마음에 안드는 것에 눈 감을 수 없는 사람인 것 아냐?’라고 하지만, “아니에요. 저 사실 눈 감고 잘할 수 있어요”라고 얘기해야 되는 거고, 그걸 돌려 이야기하는 거죠.
저는 그때 당시 그런 선택을 하고 활동을 했지만, “모든 면에서 제가 그런 건 아니고, 돈을 받고 일하는 경우에는 문화에 맞춰 일을 해야겠죠”라고 말해야 되는 거구요. 그것도 뭐랄까, 비위가 좋은 능력이라고 생각했어요. 면접 때도 너무 솔직히 이야기하면 안되니까 살짝 거짓말하는 것도 다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능력하면 훈련받은 사람, 이미 교육되어진 사람을 쓰려는 게 가장 큰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스펙을 그렇게 쌓는 이유도, 이 사람이 영어실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건 실제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능적인 것들을 놓고 사회에서 인정하는 기준에 따라서 얘는 실력이 인정되는 사람, 얘는 안되는 사람으로 구분해서 쓰려고 하잖아요. 신입을 뽑을 때도 어느 정도 훈련이 된 신입을 뽑으려 하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 일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써주는 게 아니란 말이죠.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여럿이 같이 하기 때문에 팀이 다른 사람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고, 모르는 것을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지를 능력으로 보는 게 아니라, 한 명 한 명 따로 떼어서 보는 거예요. 얘가 어떻게 돈을 벌어올 수가 있지? 이런 식으로 보고. 그렇게 하니까 예를 들어 사회성이 좋아서 팀워크를 좋게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죠. 그 사람의 역할은 별로 필요 없을 수도 있는 거죠. 능력이라는 게 관계성을 배제하고 보는 개념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 메모 몇 줄 가지고 이렇게 길게 말씀하시다니 대단한 능력입니다. (일동 웃음)
왕클: 저는 대학거부도 하지 않았고, 4년제는 가지 않았지만 전문대를 나왔어요. 스스로를 싼 값에 팔아서 경력을 5년, 6년으로 만들어 ‘얘는 오래 오래 근무하는 애구나’라는 점을 보여줘서 괜찮은 직장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정도가 됐어요. 앞 사람들이 계속 그만둬서 제가 사무국장이 되고 그랬거든요.
김지애: 나도 같은 케이스. 앞사람들이 계속 그만두는 바람에. (일동 웃음)
![]() |
▲ 왕클. |
학벌의 경우도, 대학 법학과를 나온 학생은 그만큼 ‘내가 이 정도니까 이 정도 받아야 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 정도 줄 수가 없으니까... 한 번 면접관이 되니까 무섭더라고요. 이 사람들과 무슨 얘기를 해야되나 싶고. 친구들과 만났을 때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고, 운동판에 있는 친구들이 아니라면, 토익자격증이나 한자자격증이 있는 사람을 뽑았겠죠. 그러나 제가 앞서 일했던 경험을 생각해보니, 나는 전문대를 나왔고 운전면허 자격증밖에 없지만, 엑셀을 이만큼 다루고 워드도 이만큼 하는 건 물론 돈도 들이고 내가 이만큼 배웠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누가 나를 이끌어줬으니까 그렇지 않나 싶고요. 저는 능력이나 스펙보다 배우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 여긴 타고난 능력자들만 계셔서...(웃음) 메모도 없이 말씀을 다 잘하셨는데요. 근본적으로 세 분 말씀을 들어보면 능력을 개인화하는 문제를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그 다음 능력이라는 게 나의 가치실현과는 무관한 누군가의 요구라는 것.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내가 어떤 것을 계속 키워나가는 개념이 아니라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 저 사람이 요구하는 게 뭔가를 잘 맞추는 것. 즉, 보여주는 능력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그보다 앞서 질문 하나 할게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시나요? 능력이 있어야 하나요? 능력이 없는 놈은? 어떡하죠? 음... <학벌없는사회>가 학벌문제를 사회에 제기했잖아요. 그때 되받아친 논리가 이거에요. 능력. 학벌, 이거 문제 있어. 그럼 능력을 보면 되잖아! 그래서 능력주의사회 구현! 이런 식의 종합대책이 나왔어요. 학벌타파 종합대책이 아니라 능력주의 사회 실현을 위한 종합대책이라고 해서 직업능력개발원이 학벌대책 종합보고서를 썼었어요. 그 보고서를 보면, ‘학벌이라는 것이 전근대적인 신분이라든지, 집단에 귀속된 것이라 보고 집단에 귀속되지 않는 개인 가치. 개인 가치의 극대화. 그래서 능력을 실현하고 능력에 따른 임금의 차별화는 온당하다!’라는 게 노무현 정부 때... 그런데 지금은 예전보다 나아졌나요? 전 능력자가 아닌가 봐요. 처음에 하려던 얘기를 까먹었어요. (웃음)
학벌로 존재를 증명하는 것보다는 그 사람의 개인적인 측면을 봤다는 것인데, 당시 그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대개 이런 주장을 진보적 가치로 여겼어요. 학벌보다 능력을, 이게 마치 바람직한 방향인 것처럼 얘기했죠. 우리 단체가 했다는 게 아니고... (일동 웃음)
김지애: 실제로 제가 어디 가서 일하는 단체에 대해 언급했을 때 반응은, ‘맞아, 학벌이 나쁘지. 능력 위주의 사회가 돼야지.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해야지,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면 되냐, 그건 신분제다.’ 이런 얘기를 너무 많이 하는데 이건 좌우를 가리지 않아요.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요. 정말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더욱이 지금 취업 때문에 고민하는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능력과 학벌은 다르다, 대척점에 있다’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사회: 그러니 능력을 가져라...!!
왕클: 그런데 그 능력은 누가 결정하는데요?
사회: 우리가 궁금한 게 그거에요. (일동 웃음) 그 능력의 정체가 뭔데요?
왕클: 사실 배우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그 능력에도 개인차는 있어요. 저도 엑셀을 배우는데 저만큼 배우는 사람도 있고, 단축키가 어려워 못하는 친구도 있고. 저는 일을 빨리 하고 싶어하는 성향이라 일을 더 빨리 배울 수는 있지만, 그래도 누구나 어느 정도 배우면 가능하고요. 물론 애널리스트라면 모르겠지만 대체로 웹자보 만드는 것도 배워서 하잖아요. 대충 다들 하잖아요. (웃음) 다들 배우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눈치가 있으면... 눈치도 능력인가?
사회: 중요한 말씀인데, 배움의 ‘기회를 줬으면’이 전제되잖아요. 기회를 주고 이끌어줬으면 자연스럽게 갖출 수 있는 능력인데 말이죠?
왕클: 사실 돈이 없어서 못 배울 수도 있고, 누군가 이끌어주지 않으면 어렵죠. 교육의 해택을 못 받으면요.
사회: 능력 간의 차별은 정당한가요?
공기: 제가 들었던 생각은, 다들 뭐랄까... 능력있는 사람을 추구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잖아요. 제가 이렇게 얘기할 수 있고, 포토샵을 공부하고 배우는 것도 이 판에서 살아남기 위한 능력인 거죠. 웹자보를 만드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이런 곳에 와서 이야기를 해야 되기 때문에 쌓아온 저의 능력인 거죠. 사실 다른 곳에서는 전공이 다르면 이런 것들이 필요 없을 수도 있잖아요. 저는 이런 걸 요구받았던 거 같아요. 능력있는 사람이 되려면 이런 것들을 기본적으로 할 줄 아는 게 좋다는 인식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불러주지도 않을 거고 찾지도 않을 거라는 게 싫어서랄까? 그렇다면 모두에게 다 배우라고 하는 것이 과연 맞나? 배우지 않으면 도태되는 듯한 마음을 느끼지 않게끔 나아가자고 하는 것이 중요한 걸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저한테 포토샵을 배우고, 글을 쓰게끔 요구하는 것보다 이런 것들을 하지 않아도 좋아,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혹은 제가 이걸 배우려 했을 때 배울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더 중요한 가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리 안에서 계속 능력을 키우자고 하는 생각들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서린: 능력은 보통 인정을 받아야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나 혼자 능력 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다거나 인증을 받는 과정이 필요한 거 같고, 능력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능력일 수 있고, 또 인정을 받아야만 능력이라는 게 있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라는 건 살아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내가 어떤 사람을 생각하는 문제, 소중함이랄까요? ‘난 네가 있어서 너무 좋다, 네가 이런 걸 너무 잘해서 소중해’라고 생각했을 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글을 많이 생산해내야 하는 게 일이라면 ‘글을 잘 쓰는 그 사람의 능력이 있어서 소중하고 고마워. 넌 정말 글쓰는 능력이 있구나’라는 얘길 하면서 그 조직 안에서 인정받고, 그 사람이 능력있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근데 만약 능력이라는 걸 인정받기 위해서만 몰두하게 되면, 인정받지 않으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니까. 쓸모없는 사람이 되면 설 곳이 없어지고...
우리가 이 사람을 인정하는 게 어느 정도의 인정인가? 이 사람이 능력 있어서 감사를 표하는 정도, 이 사람은 이게 특기라서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이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같이 할 가치가 있고, ‘저 사람은 능력이 없으니 쓸모없어, 빨리 어떻게 해야겠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능력이라는 건 잘하게끔 훈련하는 과정이 있고, 그것을 같이 지켜봐주는 게 있잖아요. 그런 방향으로 가면 좋겠지만, ‘너 왜 이거 아직 안 배웠어?’라거나 ‘넌 왜 이렇게 배우는 게 느리냐? 다른 애는 엄청 빨리 배우던데’ 하면...
공기: ‘기본이 안 돼 있네’라고 하기도...
서린: 맞아. ‘기본이 안 돼 있네’하면 그 능력이라는 것이 차별을 정당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밖에 안되니까... 그런데 내가 뭔가를 계속할 때 경험치가 올라가고 숙달되는 게 있잖아요? 그럴 때 능력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져야 된다거나 허상이라거나 말하긴 어렵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렇지만 양적으로 평가한다면, 그 능력은 사실 허상 아닌가? 능력이라는 말도?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너 노래 정말 잘한다. 네가 노래를 불러줘서 정말 행복하다. 넌 능력 있어.” 이럴 때 능력을 얘기할 수도 있지만, 반면에 “노래 해보세요. 소울이 없네.” (모두 웃음) 이건 매우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사람과 오래 있어본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어떨 때 노래를 잘하는지 사실 잘 모르면서 단지 평가하기 위해서 세워놓고 재단하고,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는 방식으로 능력의 개념을 쓰는 게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공기: 그런데 그렇게 들었을 때는... 실은 태도의 차이인 것 같아요. 개인이 가진 능력을 칭찬해주거나 비판하는 등의 것들은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이 사람이 가진 것들에 대해 어떤 태도로 대하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그랬을 때 능력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까도 얘기했듯이 능력이 특별하다거나 인정받을 수 있을 만한 그런 것들이 아니라 누구나 평등하게 그 능력을 키울 수 있을 만한 조건이 갖춰진다면 누구나 키울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얘기했을 때 우리가 인정하는 부분들이 아니라, 능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럼 능력이 뭐지? 우리가 능력이라고 하는 건 실체가 없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능력뿐만 아니라 인정을 하고 말고 할 때는 능력을 포함한 다른 것들도 인정의 과정이잖아요. 그 사람이 그런 학벌을 가져서 인정해주는 것처럼. 우린 능력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러저러한 능력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능력에 대해 포기를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 돋보이는 사람을 칭찬하는 게 불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엄청나게 칭찬하고 우대하는 식의 것들이 내 안에서도 이 사람을 부럽게 만들고, 주변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능력에 대한 칭찬 자체가... 사실 거칠게 얘기하면 그런 것들 자체가 필요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 |
▲ 이철호. |
김지애: 빵을 만드는 사람이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려고 했을 때는 그걸 누가 인증해줘야 하잖아요. 공인 기관을 통해서든, 심사를 통해서든. 내가 아무리 그것을 잘한다고 해도 누가 서류나 방식, 절차를 통해 인정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거죠.
사회: 그리고 그 사람이 제아무리 타고난 미각을 가지고 있어도 제빵사 자격증이 없으면 소용없는 거죠.
공기: 우리도 그런 얘기를 할 때 너무 높은 기준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방금 미각을 얘기하셨는데, 이것도 실은 천재적인 능력이거든요. 빵이 언제 숙성됐고, 한입 먹었을 때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은 쉽게 가질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능력의 예로 그런 것을 떠올린다는 자체가 그만큼 능력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사회: 제가 만난 어떤 사람이 차를 마시는 사람이에요. 제가 볼 땐 똑같은데, 언제 뭘 했고 그걸 느낀다기에 순간 예로 떠올랐어요.
김지애: 저는 공기씨 말에 공감하는데, ‘능력이 뭐야?’ 라고 물으면 ‘능력? 뭘 잘하는 건데...’ 사실 잘하는 게 어디까지인 건지도 모르겠고... 이만큼만 하면 되는 건지, 더 잘해야 되는 건지, 그 한계선을 모르잖아요. 너무 복잡한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빵을 제법 잘 만들더라도 빵을 잘 만드는 사람은 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면 제법 만드는 사람들 가운데 내가 이겨야하기 때문에 빵 맛으로만 평가를 받고 능력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은 거죠. 그래서 외모도 능력인 것 같고요
공기: 아주 큰 능력인 거 같고요.
사회: 외모까지 가면 아주 이야기가 광범위해지고요... 내가 빵을 제법 만드는데 내가 우리나라 제일의 빵집을 운영할게 아니라 골목에서 동네 사람들 먹는 데 불편함만 없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질 좋은 재료로 값싸게 공급해서...
서린: 그리고 옆에 파리바게트가 들어와... (일동 웃음) 이게 현실...
김지애: ‘나는 이 빵을 제법 만들 수 있어, 내 소박한 바람은 그 맛있는 빵을 동네 사람들과 나눠먹고 싶은 거야. 난 그걸로 생활비를 벌고... 그런데 그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 난 프랑스 유학을 갔다 왔어.’ (일동 웃음) ‘이런 내가, 이런 내가! 파리바게트에 안 들어가고, 파리바게트는 날 선택해주지 않아.’ 그런 거죠.
공기: 그런데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안 한다는 거죠. 빵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소박한... 그런 생각은 안하게 되요. 자기가 가진 능력 때문에. 그게 능력이 주는 착각인 것 같아요.
서린: 그리고 뭔가 자기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 때 내 능력을 더 키워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 해결방안이 개인적인 것으로 될 수밖에 없고... 지금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되는데, 주거문제든 뭐든 너무 힘들어 사회가... 그러면 나는 이걸 해결하기 위해 능력을 키워야 해. 그런데 능력을 키우려다 보니 돈이 없어서 알바를 해야 돼. 알바를 하다 보니 나이를 먹고 아무도 안 써주기 시작해. 그런 어둠의 쳇바퀴가 돌아가는 것 같아요.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네가 인간답게 못살아도 우리는 책임질 수 없다’라는 사회의 목소리가 있지 않나 싶어요.
능력에 따라 차등을 주는 게 당연한 것처럼? ‘같은 얘기를 해도 잘하는 사람은 인센티브를 줘야 공정한 거야’라고 말하면서.... 같은 시간을 일해도 그곳에서 요구하는 것에 못 미칠 수 있잖아요? 그래도 이 사람은 일을 한 거잖아요. 그런데 ‘너는 일을 잘 못했으니까 돈을 조금밖에 못줄 것 같아’라고 하는 게 당연시되고, 같은 일을 하는 사람 가운데서도 ‘내가 일을 더 잘하는데 왜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왕클: 누구나 일을 잘할 수는 없잖아요? 일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못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저는 능력이 달란트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아요. 얘는 회의록을 아주 잘 작성하고, 저 사람은 PPT를 잘한다면, 회의할 때 이 사람은 PPT를 쓰면 되고,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그걸 맡으면 되잖아요. 앞서 얘기했던 걸 보면 능력을 키우는 건 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능력이 좀 더 있으면 그만큼의 돈을 버니까. 결국에는 돈 때문에 능력을 키우는 것 같아요. 근데 누구나 다 무엇을 잘하는 건 아니니까.
![]() |
▲ 김지애. |
김지애: 그런데 사실 젊은이들이 큰 걸 바라는 게 아니거든요. 아는 취업준비생 얘기를 하면, 이 사람은 사람들이 다 아는 대학을 나왔어요. 학벌 열등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4년제를 졸업했고요. 그런데 취직하기 위해서 보통 이런 저런 스펙을 따는데, 지금 가진 것으로는 부족한 거죠. 더 많은 스펙이 있어야하고, 그것들 중에서 허우적댄다고나 할까? 이도 저도 아닌 거죠. 시사 상식은 면접 때 물어볼까봐 매일 체크해야 해요. 그리스 시리자 문제도 면접에서 물어볼까봐 찾아보는 거죠. 한편으로는 토익 시험도 다시 쳐야 하고, 외모도 관리해야 하죠. 그래서 ‘네가 하고 있는 것들 중에 회사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게 뭐야’라고 물으면 사실 정확한 대답을 못해요. 모르겠다고 하죠. 다 하는 거고 필요한 거니까. 취직이 어렵고 준비해야 할 것이 넘쳐 나니. 썸 타는 여자가 있는데, 사귀자고 고백도 못하고 있죠.
배성인: 그 친구는 사실 대졸자잖아요. 참세상에서 이 기획을 하게 된 이유는, 한국 사회에 청년문제를 너무 대졸자 중심으로 몰아가기 때문에 새롭게 기획하게 된 거에요. 왜 대졸자들만 중심이 돼서 모든 문제를 쏟느냐 이거죠. 전문대 졸업자 이하도 얼마나 많아요. 굉장히 다양한 층이 있는데, 양적인 측면에서만 주목해서 대졸자에게만 사회적 관심이 있어요. 말씀하신 그 청년도 그 불평등 구조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죠. 그렇지 않은 다양한 사람의 인식을 어떻게 결집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를 확장시키는 게 지금으로선 시급한 과제죠.
사회: 지금 눈앞에 닥친 문제는 공동체적으로 사회 시스템이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거죠. 생존의 문제, 삶의 기본적인 문제가 공동체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집안이나 개인의 문제로 돼있죠. 그래서 산다는 건, 내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냐의 문제고, 같이 해결하는 것은 어디 경전에 있는 말씀 같은 것이죠. 실제로는 내가 개별자로서 사회를 움직이는 소수의 힘에 맞춰나가도록, 살아남도록 애쓰게 되는 거죠.
서린: 우리 사회는 생존이라는 게, 태어났으면 누구나 생존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을 담보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거예요. 일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고,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거죠. 그런데 내가 일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막말로 공원에서 잡초를 뜯는 것도 일하는 건데, 이건 제대로 보수를 못 받는 일이잖아요. 그런 일자리를 찾았을 때라면 모르겠지만. 그래서 결국엔 능력이라는 것도 허상이고 쓸모없는 건데, 그 능력이 필요한 이유가 일하기 위해서니까. 그 일이라는 것도 거의 쓸데없는 일이 대부분이잖아요. 자본주의 사회니까 하는 일들...
저는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바쁘게 일을 해야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생산량이 좋아져도 계속 일을 밤새 하는데... 요즘은 거의 체력이 능력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너무 많이 일을 해야 하고. 제 주변에 그 누구도 한가롭게 살고 있지 않거든요. 저도 너무 피곤할 정도로 일해야 하고요. 몸이 망가져서 강제로 쉬다가 또 돈을 벌어야하니 나와서 일해야 하고.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도 취업했다고 해서 편하게 살지는 못하잖아요. 모두가 과로 상태로 사는 사회고, 그런 과로를 해서 유지하는 모든 일자리는 사실 쓸데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내가 일을 하지 않거나 적게 하면서 생존할 수 있는 문제, 예술가로 살고 싶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은 능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왕클: 듣다 보니까 능력이라는 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최고를 이루어 나가야만 옳은 건 아닌 거 같아요. 얘길 들어보면 사실 별 거 없잖아요. 빵도 적당히 배부르게 만들면 되고, 언제 숙성됐는지 그까짓 거 모르면 어때요. 잡초도 대충 뽑으면 되고... 그래도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잡초 한 개도 보이지 말아야 하고, 과일도 엄청 크게 키워 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쟁을 해야 되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적당히 살면 능력이라는 게 필요 없을 수도 있는데...
배성인: 궁금한 게 있는데, 주변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거나 관계를 맺을 때 1차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스타일이라거나, 정치적인 신념이라거나, 일을 잘하는 여부를 떠나서 스타일이 안 맞으면 짜증이 확 나거든요.
김지애: 그 짜증을 참고 묵묵히 일하는 것도 능력이죠. (일동 웃음)
서린: 너와 내가 어떻게 다르니까 소통을 해서 앞으로 어떻게 일하자고 하는 것조차 중요한 능력이라고 하잖아요. 일하는 사람과 트러블이 생겼을 때 ‘그건 네가 이렇게 말해서 해결했어야지, 문제를 만들면 어떡해? 넌 너와 맞는 사람하고만 일할 거니?’라고 하면 ‘아, 제가 잘못했네요, 다시 가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죠. (일동 웃음)
김지애: 이미 지난 일인데... 나는 그럴 때 그런 센스와 재치, 민첩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이거든요.
배성인: 그럴 때 보통 둘 다 문제라고 이야기하죠. (일동 웃음)
공기: 좀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 아까 ‘능력의 정체가 뭐냐, 실체가 있느냐’라고 얘기했을 때 각자 생각하는 능력이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능력은 달란트라거나, 돈을 벌기 위해 능력을 쌓는 거라거나, 혹은 사회 요구에 맞춰 능력을 쌓을 수밖에 없다라거나, 또는 능력은 특정한 목표를 위해 다다르기 위한 것 아니냐 등등으로 얘기했을 때... 먼저 돈을 위해 능력을 쌓는다는 것은, 그 능력을 가진다는 건 돈이 많은 거잖아요. 그렇다면 그 능력은 돈을 많이 갖게 되는 것을 능력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거죠. 그렇다면 능력자라면 돈이 많은 사람이 곧 능력자라고 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능력이라는 게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게 이 사회에서 맞는 거라면 결국에는 우리가 좀 더 편하게 누리고 살기 위해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거잖아요. 그게 자본이든 학벌이든 갖추는 건데... 그럼에도 적당한 능력은 필요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때 돈을 많이 벌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하는 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우리가 이 사회에서 돈을 좀 더 벌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는 거잖아요, 능력자가 되라는 건요. 전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요. ‘능력이라는 게 사실 필요하다면 배우고 갖춰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아까 잡초의 예를 들으셨는데, 먹고 살기 위한 농작물이 잡초가 많으면 잘 안 자라거든요? 그래서 농사 때 잡초 제거는 먹고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거든요. 반면 이 좌담회 같은 경우도 어찌 보면 먹고 살기 위해서, 먹고 입고 자는데 꼭 필요한 작업은 아니거든요. 우리가 모호하게라도 필요하면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예민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아요. 그것이 바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라고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여러 가지 고민이 들었고. 또 한편으로 우리 사회가 능력을 강제하는 것은 힘이 있는 사람이거나 소수가 원하는 거라고 비판하듯 이야기하면서도, 우리 개개인도 더 낮은 사람들에게 능력적으로 요구하는 게 생기는 거죠. 그래서 청년을 호명하면서 능력을 청년문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청년세대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 세대의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윗세대가 아랫세대에게 무얼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우리도 윗세대에게 무얼 갖추라고 요구하는 게 맞느냐는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필요하면 배우고 노력해서 능력을 갖추라고 이야기하는 게 결국 돈 많은 사람이 되라는 얘기인 것 같아요.
서린: 공기의 말에 공감해요. 결국 돈을 많이 벌어라, 이거 같고. 돈이 돈을 버는 사회이기 때문에 돈이 없는 사람은 능력이 적을 수밖에 없어요. 아까 대충 하면서 살아도 된다고 하신 건 이런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방침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을 덜 소진시키기 위한 방법일 것 같고요. 굉장히 힘을 빼야 하지만 한편으로 악착같아야 가능한 일인 거 같아요. 누군가가 좀 더 쉬면서 한 달에 육십만 원만 벌고, 남는 시간에 잉여롭게 살 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칩시다. 일을 가혹하게 하고 싶지도 않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이 몇 년간 그렇게 살았는데, 어느 날 병이 날 수도 있는 거죠. 어머님이 아프실 수도 있고. 저도 그렇게 살고 싶거든요. 그러나 미래를 생각하다 보면 내 마음과 상관없이 사회의 요구에 응하게 되는 거예요. 나는 그것을 거부하고 싶어서 대학도 거부한 건데. 그렇게 살고 싶지 않지만, 결국에는 그런 것들을 고민하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먹고 살아야 될까 고민이 되는 거죠.
예를 들면, 저는 누군가 대학을 다니고 있다면 그만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그 일로 사회에서 내몰릴 일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죠. 능력이라는 것이 정말 허상일 수도 있고, 말도 안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 사람이 최소한 생존할 수 있도록 같이 무얼 만든다거나 울타리를 만들어갈 때 그 사람과 능력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을 걸 수 있는 거죠. 보통 ‘너 그렇게 스펙만 쌓다가 인생 허비하는 거야’라고 말하기도 하잖아요. 저도 토익 강의를 들어봤는데, 인기 강의를 들으려면 줄을 길게 서야 해요. 앞자리에 앉기 위해, 아니면 TV화면으로 봐야 하죠. 그런 걸 보면 황당하잖아요. 줄 서 있을 때 스스로 한심하다 생각했었는데, 사실 저 같은 사람이 많고, 지금도 많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는 거죠.
‘다른 사회로 바꿔 보자!’라고 했을 때조차도 거기서 돈을 벌어야만 생활이 유지가 돼요. 이 일이 남들이 봤을 때 그럴듯하게 보여야 되고, 그러기 위한 능력이 요구되는 거죠. 웹자보를 잘 만드는 능력, 사람들이 기부금을 막 내고 싶도록 말을 잘 만들어내야 되고, 논리정연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그 안에서 더 잘하는 사람을 대우해 주게 되고. ‘쟤는 일도 못하고, 고민이 깊지가 않아, 넌 좀 더 해야 될 것 같아’라고 얘기하는 부분이 생기는 거죠. 당연히 고민을 많이 하고, 시간이 많은 사람이 더 얘기할 부분이 있을 수 있겠죠. 그렇게 하면 일이 빠를 수는 있는데, 다른 사람은 사실 알바를 몇 개씩 뛰고 있어서 고민할 시간도, 여력도 없고, 뇌가 쥐포처럼 되어있는데, 거기다 대고 ‘넌 고민이 없다’고 하면 너무 슬픈 거죠. 내가 이 바닥에서까지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일동 웃음) ‘나도 잘 하고 싶은데, 돈도 안주고. 그럼 날 가르쳐줬어?’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동료를 생각할 때도 능력적으로만 보는 점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