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맞는 WSF, 온 길과 갈 길

WSF의 유의미성 극대화와 동시에 뛰어넘는 '프로젝트' 요구
5차 세계사회포럼, 대안 논쟁 더욱 뜨거워질듯

전소희  / 2004년12월22일 19시31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의 역사적 성과로서 세계사회포럼

내년 초 다섯 번째를 맞이하는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 WSF)은 지구적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의 명실상부한 결집체로서 자리매김 되어가고 있다. 전세계 자본주의 강대국들과 초국적 자본가들이 모여 신자유주의 정치·경제 체제의 확대와 전략을 논의하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의 "대항회의"로 2001년에 시작된 이래, 세계사회포럼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구호의 확산과 함께 급성장하였다.

1차에서 3차까지는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개최되었고, 4차는 세계사회포럼을 '국제화'한다는 목적 하에 인도 뭄바이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5차는 다시 브라질로 돌아온다. 애초의 1차 세계사회포럼에는 15,000여명이 참가했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참가자 수가 증가하여 인도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약 12만 명이 1,200여 개의 행사에 참가했으며, 차기 5차 세계사회포럼도 10만명 이상 참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연례 '행사'로서 세계사회포럼 뿐 아니라 일국 차원에서의 사회포럼은 물론, 대륙별 사회포럼(아시아사회포럼, 유럽사회포럼 등), 주제별 사회포럼(세계교육포럼, 반군사주의포럼 등) 또는 "주체별" 사회포럼(세계의원포럼, 세계청년포럼 등)이 수차례 개최되면서 세계사회포럼은 하나의 '과정'이자 그 자체로서 하나의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행사'로서의 세계사회포럼은 유럽과 브라질 지식인 몇 명이 창안한 '아이디어'로 시작되었을지 모르지만, '과정'으로서의 세계사회포럼은 90년대 중반부터 급성장한 반전·반세계화 투쟁의 결과이자 또한 국제주의적 운동의 성장과 발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세계사회포럼 초기에 노암 촘스키는 세계사회포럼이 "새로운 인터내셔널"로 발전할 가능성을 제기한 바도 있다.

세계사회포럼의 기본 정신

세계사회포럼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야말로 '다른 세계를 향한' 다양한 운동들이 한 곳에 모여 토론하고 향후 공동투쟁을 일구어내는 것을 기본 목표로 한다. 세계사회포럼의 원리헌장에 의하면, "세계사회포럼은 신자유주의, 자본의 세계 지배와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그리고 인류 사회 내 그리고 인류와 지구 간 풍족한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지구적 사회를 건설하는 데 헌신하고자 하는, 시민사회 집단과 운동들 간 성찰적 사고, 민주적 토론, 제안 형성, 경험의 자유로운 공유, 효과적 행동을 위한 상호연계를 형성하기 위한 공개된 회합의 장"이다.

세계사회포럼은 또한 다양한 운동세력이 소통하기 위한 하나의 '공간'이지 '조직'이 아니며, "어떠한 형태의 포럼을 대변하여 그 어느 누구도 모든 참가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며 입장을 표명할 권리가 없다"고 천명한다. 즉, 그 어느 누구도 사회포럼의 이름을 특정 입장이나 계획을 표명하는 데 사용할 수 없음을 기본 원칙이자 정신으로 하고 있다. 이는 그간 반세계화 운동의 핵심 강점 중 하나가 바로 그 내부의 '다양성'에 있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며, 아울러 세계사회포럼이 어느 누구에 의해서 독점되거나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지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정당과 무장조직은 세계사회포럼에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없다. 이는 여전히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긴 한데, 이런 정당 및 무장조직 배제 원칙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다. 먼저,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의 정당들의 우경화와 특히 동구권 붕괴에 따른 공산당들의 실패로부터 비롯된 불신이 존재하고, 이른바 NGO론과 지구적 시민사회론이 대두되면서 정당을 통한 국가권력 장악이라는 '이념적' 지향과 '폭력 사용'에 대한 불편함이 있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브라질 노동자당의 과도한 개입과 지배를 제어하고자 했던 시도로 볼 수도 있다.

기로에 선 세계사회포럼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세계경제포럼의 대항회의로서 '세계사회포럼'은 브라질과 프랑스 지식인 및 활동가 몇몇의 아이디어였으며, 일회성 포럼으로서 제안되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세계 곳곳에서 본격화된 반세계화 투쟁에 대한 이후 전략 수립이 절실하다는 인식, 그리고 9.11과 이라크 침공 이후 폭발한 반전투쟁에 힘입어, 반전·반세계화 운동의 중요한 국제연대의 매개로서 세계사회포럼이 지금까지 성장해왔다.

9.11 이후 '반세계화 운동의 죽음'을 선고했던 제국주의 세력과 주류 언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계사회포럼을 통해 반전 투쟁이 적극 조직되면서 반세계화·반전 투쟁의 상승에 복무하였다. 특히 2003년과 2004년 2월 및 3월 대규모 국제 반전투쟁은 세계사회포럼에서의 전세계적 결의를 통해 가능했던 것이다. 아울러, 칸쿤 반WTO 투쟁에 대한 결의, 그리고 칸쿤 이후 반WTO 투쟁의 전망 모색도 세계사회포럼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 현재 반전·반세계화 운동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기로에 서있는 상황 속에서, 그리고 세계사회포럼에 너무나 다양한 의제를 가진 다양한 세력들이 참여하고 규모가 비대해지면서, 여러 지점에서 문제와 비판이 제기되고, 논쟁이 붉어져 나오는 것이 현재 세계사회포럼이 처해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세계사회포럼 내 민주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의 부재, 여성이나 소수인종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참여와 대표성의 부족, 특정 조직의 세계사회포럼 과정 주도, 대중운동을 기반하지 않은 NGO들과 대중운동들 간 미묘한 긴장, 행동이 결여된 '백화점 식' 행사, '다른 세계' 즉 정치적 지향에 대한 모호성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다.

이는 세계사회포럼이 반전·반세계화 운동 자체가 그렇듯이 현재 기로에 서있으며, 여전히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의 체계화와 투명성 재고, 모든 행사의 발언자와 사회자에 있어 남녀 동수 배치, 여성이나 인종 문제를 별개의 '부문'이 아닌 '횡적 의제'로 설정 등 여러 가지 대응과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으며,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이 속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시도는 '토론만 난무하는' 세계사회포럼을 '행동'과 실천 중심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방법론'(운영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여태까지 세계사회포럼은 조직위원회에서 개최하는 몇 개의 '공식' 행사와 참가조직이 자체적으로 신청·개최하는 행사들로 구성되었으며, 인도의 경우, 총 행사 수가 1,200개에 이르렀다. 그러하다보니 토론 주제가 반복됨은 물론, 개별 토론으로만 끝나 성과가 수렴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공동의 실천과 투쟁결의는 매우 빈약했다.

이에 대한 평가를 기반으로, 이번 5차 세계사회포럼부터는 조직위원회 공식 개최 행사를 아예 없앴으며, 지난 5월부터 국제사무국과 국제위원회는 전세계 수천개 단체를 대상으로 핵심 의제를 조사해 그 결과를 11개의 큰 주제로 정리했고, 참가자들이 각 주제별로 (왠만하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토론 -> 토론 총화 및 공동 전략 수립 -> 행동 결의'의 과정을 밟아나가도록 촉구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사회포럼이 끝나면 11개 또는 그 이상의 실천방안과 행동결의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국제위원회는 2006년에는 현재와 같은 형식의 세계사회포럼이 아닌, 아예 행동 중심의 '무엇'을 만들자는 결정(그 '무엇'은 현재 미정이다.)을 했는데, 이 역시 향후 세계사회포럼의 전망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시도이다. 물론, 이런 실험들의 성공여부는 차후에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Social Movements International Network)이다. 전세계 여러 사회·대중운동들은 세계사회포럼마다 모여 공동으로 '사회운동 회의'를 진행했고, 3차 세계사회포럼에서 개최된 활동가총회에서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이 네트워크는 세계사회포럼의 유의미성을 인식함에도 또한 그것의 한계, 즉 단일한 입장 또는 행동결의를 하지 못한다는 점을 극복하고, 더불어 반전·반세계화 투쟁이 세계사회포럼으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판단 속에서 보다 항시적인 연대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이다.

아직까지는 정보 공유를 핵심으로 하는 느슨한 네트워크이지만, 대중운동과 실천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 활동이 세계사회포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다는 점, 그리고 반전·반세계화 운동의 중요한 매개로서 세계사회포럼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견인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칸쿤투쟁과 차기 홍콩 각료회의 투쟁, 3월 20일 이라크 전쟁 1주기 (내년은 2주기) 투쟁은 바로 이런 사회운동 회의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결의된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이 이런 연대가 가능하도록 물질적 기반을 제공해줬지만, 주체는 이런 사회운동 회의에 모였던 대중운동들이었다. 지난 세계사회포럼에 이어 5차 세계사회포럼에서도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는 2-3일에 걸친 '사회운동 회의'를 개최함으로써 보다 일상적이고 국제주의적인 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네트워크 강화 방안과 전략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러한 지구적인 연대와 투쟁이야말로 세계사회포럼을 탄생시키고, 유지시키고, 앞으로도 그것이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힘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계사회포럼의 핵심 기치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논쟁이다. 세계사회포럼을 비판하는 일부 세력(예를 들어, 인도 세계사회포럼이 개최되던 같은 시기 길 건너편에서 개최된 '뭄바이리지스턴스')은 세계사회포럼의 정치적 지향이 모호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경화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는 그 반대로, 세계사회포럼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수호한다는 명목 하에 '정치화'를 경계하는 세력도 있다.

분명한 것은 세계사회포럼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나 개혁론자들부터 급진적 자율주의자와 극좌 공산주의자들까지 모두 모여있는 공간이며, 특정한 정세와 조건에 따라 특정 세력이 더욱 큰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외부에서 보기에 세계사회포럼의 정치적 정체성은 상당히 '모호'하고, 단일한 '대안'과 '지향'을 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계사회포럼이 비정치적인 공간이고, 지향에 대한 논쟁을 회피하고 있다고 할 수 없으며 그러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최근 세계사회포럼 내부에서 '대안'에 대한 논쟁이 더욱 거세지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첨예화될 것이다. 이는 반전·반세계화 운동이 더욱 발전함에 따라 궁극적으로는 국가와 정치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남미에서 반신자유주의, 반제국주의를 주창하는 좌파적 성향의 정권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런 인식을 더욱 강화해준다.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데 세계사회포럼이 핵심 매개이자 공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세계 민중을 억압하고 생태를 파괴하고 성적, 인종적 차별을 강화하는 현 체제에 대한 진정한 대안은 세계사회포럼을 메우고 있는 행위자들의 몫이며, 이는 세계사회포럼을 거칠 수는 있지만 훨씬 뛰어넘는 프로젝트라는 사실이다. 즉, 세계사회포럼의 유의미성을 극대화하면서 세계사회포럼을 뛰어넘기 위한 '프로젝트'가 필요한 것이다.

세계사회포럼,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인도에서 올해 초에 개최된 4차 세계사회포럼에 한국 참가자 수는 400여 명이나 되었고, 5차 세계사회포럼은 150여 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브라질의 지리적 위치를 감안하면 150명은 상당한 규모이며, 1차 때 4명, 2차 때 12명, 3차 때 30여 명에 비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숫자이다. 이는 한국에서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의 국제연대 운동이 성장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참가 규모가 커진 만큼 한국 운동의 개입력과 활동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한창이다.

5차 세계사회포럼 참가를 준비하고 있는 WTO반대 국민행동,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등 여러 단체들은 현지에서 '반전, 반세계화 아시아 회의(가칭)'을 제안해 지난 6월에 진행했던 '아시아민중사회운동회의'의 후속작업을 진행하고, 'FTA 대응 전략회의'나 '한-일FTA 저지 한일 민중 공동행동'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에 반대하는 아시아 운동 간 연대를 강화하는 한편 한국의 투쟁과 의제를 국제화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우리에게 현재 중요한 것은 세계사회포럼이라는 국제'행사'에의 대규모 참가 자체가 아니라 국내에서의 반세계화 투쟁의 성과를 세계적으로 공유하고, 국제연대를 통해 지구적으로 진행되는 투쟁들과 호흡하면서 그 힘을 기반으로 향후 반세계화운동을 한층 상승시켜내는 것이다. 물론, 국제연대가 반드시 "사회포럼"의 형태를 띠어야 할 필요가 없으며, 사회포럼을 절대화 또는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향에 대한 경계도 해야 한다.

사회포럼은 어떻게 보면 여러 운동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자 매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반전, 반세계화 운동의 상승이자 국제주의의 고취이며, 이를 위해 세계사회포럼에 우리는 어떻게 개입할 것이며, 또한 무엇을 어떻게 얻을 것이냐에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아시아지역 내 연대를 어떻게 강화할 것이며, 나아가 지구적 수준에서 아시아의 위상을 높이는 데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참새회원이라면 누구나 참세상 편집국이 생산한 모든 콘텐츠에 태그를 달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을 잘 드러내줄 수 있는 단어, 또는 내용중 중요한 단어들을 골라서 붙여주세요.
태그: 세계사회포럼
태그를 한개 입력할 때마다 엔터키를 누르면 새로운 입력창이 나옵니다.

트랙백 주소 http://www.newscham.net/news/trackback.php?board=newsers_column&nid=25459[클립보드복사]

민중언론 참세상의 재도약에 힘을 보태주세요

덧글 쓰기

덧붙임

전소희 님은 자유무역협정·WTO반대 국민행동 사무처장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