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 기반 질서’ 종말: 그린란드에서 드러난 미국 제국주의

오늘(21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 모인 세계 자본주의의 정치·경제 지도자들 앞에서 연설한다놀랍게도그가 다룰 핵심 쟁점은 북극의 섬그린란드다.

1월 19~23일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특별연설을 했다출처 : WEF

그린란드대부분이 얼음으로 덮인 이 땅에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이는 천 년 전 이 지역에 도착한 바이킹 탐험가들의 일종의 마케팅 수법이었다고 한다. ‘초록의 땅이라는 이름을 붙여 이주민을 끌어들이려 했던 것이다아이러니하게도오늘날 그린란드는 기후 변화로 실제로 점점 더 초록색이 되어가고 있다. 2025년에 발표된 최근 연구에 따르면그린란드의 빙상은 빠르게 녹고 있으며그 결과 한때 눈과 얼음이 지배하던 지역으로 식생이 확산하고 있다지난 30년 동안 약 1만 1천 제곱마일에 달하는 빙상과 빙하가 사라졌는데이는 매사추세츠 주보다 약간 더 큰 면적이며 그린란드 전체 빙상·빙하 면적의 약 1.6%에 해당한다.

그린란드는 지리적으로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일부지만정치적으로는 덴마크의 일부다덴마크는 이를 덴마크 왕국이라 부르는데이는 영국이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을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군주제적 식민 유산이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그리고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식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 섬은 18세기에는 노르웨이의 소유였지만당시 노르웨이는 덴마크 제국의 일부였고 1905년에야 독립했다덴마크는 그린란드를 계속 유지했다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덴마크를 침공하자그린란드 주민들은 미국 쪽으로 더 눈을 돌리게 되었다그러나 그린란드는 미국 영토가 된 적은 없다전쟁이 끝난 뒤 덴마크는 다시 그린란드에 대한 통제를 회복했고, 1953년에는 그린란드의 법적 지위를 식민지에서 덴마크의 해외 현()’으로 바꾸었다이 과정에서 그린란드 주민들은 아무런 의견도 묻지 못했다실제로 그린란드 헌법은 1953년부터 1979년까지를 은폐된 식민화의 시기로 규정하고 있다그린란드는 1979년에 자치권을 획득했고, 1985년에는 1973년 덴마크의 일부로 가입했던 유럽경제공동체(EEC)에서 탈퇴하기로 했다.

냉전이 시작되자 미국은 소련을 북극에서 견제하기 위한 기지로 그린란드를 장악하려는 요구를 제기했다미국은 그린란드를 1억 달러에 사겠다고 제안했다덴마크는 판매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미국이 이 섬에 상설 군사기지를 둘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약에는 동의했다이 과정에서 기지 건설을 위해 일부 이누이트 가정이 강제로 이주당했다이후 덴마크가 미국의 핵무기 배치를 허용했다는 사실도 드러났고, 1968년에는 방사능 오염 사고까지 발생했다핵폭탄 하나는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다덴마크의 공식적인 비핵’ 정책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덴마크 식민 지배의 다른 결과들도 있었다. 1960~70년대에 덴마크 의사들은 출산율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 수천 명의 그린란드 여성과 소녀들의 동의나 인지 없이 자궁 내 피임기구(IUD)를 삽입했다가임기 여성의 약 절반이 강제로 피임 조치를 당했다또한 22명의 아이가 가족에게서 분리되어 덴마크로 보내졌는데이들은 식민지를 통치할 유능한 차세대 엘리트로 교육받을 예정이었다덴마크 사회에서 그린란드인에 대한 인종차별도 만연했다덴마크에서 심각한 만취 상태를 가리키는 속어로 그린란드 사람처럼 취했다는 표현이 널리 쓰였고이 표현은 공식 덴마크 사전에까지 실려 있다.

이것이 그린란드 사람들이 처한 비극이다그들이 마침내 과거의 지배자에게 존엄을 요구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지렛대를 쥐게 되자이제는 훨씬 더 강력하고 무자비한 새로운 지배자와 마주하게 되었다트럼프는 그린란드의 소유권을 원한다그는 이것이 심리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이는 안보나 광물 문제가 아니라프랑스인들이 말하는 라 글루아르”, 즉 영광에 대한 야망이다그는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며미국 영토를 확장하고자 한다.

트럼프는 미국 외교 정책을 200년 동안 규정해 온 먼로 독트린을 언급하면서이제는 자신이 말하는 돈로 독트린을 거론한다먼로 독트린은 1823년 미국 대통령 제임스 먼로에 의해 제시되었다당시 아메리카 대륙의 거의 모든 스페인 식민지가 독립했거나 독립 직전이었다먼로는 신대륙과 구대륙은 서로 다른 영향권으로 남아야 하며유럽 열강이 이 지역의 주권 국가들을 다시 지배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는 미국의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그 대가로 미국은 기존 유럽 식민지를 인정하고유럽 국가들의 내정에는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다.

먼로 독트린은 원래 서반구에서의 유럽 개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이후 미국 대통령들은 이를 반복적으로 미국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해 왔다첫 직접적 도전은 1860년대 프랑스가 멕시코에 막시밀리안 황제를 세웠을 때였다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뒤프랑스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철수했다. 1904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이 불안정한’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개입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는데이는 루스벨트 보충조항으로 알려졌다이 논리는 파나마의 콜롬비아로부터의 분리를 지원해 미국이 파나마 운하 지대를 확보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냉전 시기에는 쿠바 미사일 위기나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부에 대한 레이건 행정부의 반대처럼, ‘공산주의 방어’ 명목으로 먼로 독트린이 재차 소환되었다.

돈로 독트린은 트럼프의 즉흥적 변덕이 아니다이는 미국 행정부의 최신 국가안보전략에 명시되어 있다트럼프는 우리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 하에서 서반구에서의 미국 지배력은 다시는 의심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수십 년 동안 다른 행정부들은 서반구에서 커져가는 안보 위협을 방치하거나 오히려 키워왔다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우리는 우리 지역에서 미국의 힘을 매우 강력한 방식으로 다시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린란드는 경제적으로 과연 가치가 있을까인구 5만 6천 명에 불과한 그린란드의 경제는 작고어업에 크게 의존하며매년 약 39억 덴마크 크로네(약 5억 2천만 유로)에 달하는 덴마크의 일괄 보조금에 의해 유지된다이는 주민 1인당 연간 약 9천 유로에 해당한다세계은행에 따르면 그린란드의 GDP는 약 35~40억 달러이며수출의 약 90%가 어업 관련 제품이다.

현재 그린란드는 희토류를 생산하지 않지만미국 지질조사국은 기술적으로 채굴할 수 있는 희토류 매장량이 약 150만 톤잠재 자원은 3,61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이 자원들은 전기차 모터에서 전투기까지 다양한 제품에 쓰인다그린란드에는 총 55개의 핵심 원자재 매장지가 확인되었지만실제로 채굴 중인 곳은 단 한 곳뿐이다미국액션포럼(AAF)의 연구에 따르면지질학적으로 알려진 그린란드의 광물 자원 가치는 이론적으로 4조 달러를 넘을 수 있지만현재의 시장·규제·기술 조건에서 현실적으로 채굴할 수 있는 규모는 약 1,860억 달러에 불과하다실제 채굴 활동은 극히 미미하다일부 미국 억만장자들이 니켈 채굴 회사를 설립했으며현 미국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은 과거 그린란드 광산 기업의 CEO였다.

그린란드는 심각하게 저개발되어 있고 인구도 부족하다포장도로는 100마일도 되지 않고혹독한 북극 환경과 극히 작은 노동력을 안고 있다그린란드를 개발하려면 수천억 달러가 필요할 것이다노동 인구 2만 5천 명 중 43%가 지방 정부에서 일하고 있다실업률은 여전히 높고나머지 경제는 정부 보조금에 크게 의존하는 새우·어류 수출에 달려 있다실제로 그린란드 주민들은 섬을 떠나고 있으며 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그린란드는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섬을 떠나는 사람들의 빈자리는 일부 가난한 아시아계 이주 노동자들로 메워졌다이들은 그린란드인들이 기피하는 일을 맡거나소규모 상점과 사업체를 차려 생계를 꾸리고 있다.

그린란드는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아시아로부터의 이주를 장려했다

트럼프가 말하는, 이른바 부동산 거래’ 방식으로 덴마크와 합의해 그린란드를 사들이려면그는 과연 얼마를 지불해야 할까. <파이낸셜 타임스>는 그린란드의 자원 가치를 기준으로 할 경우 약 1조 1,000억 달러가 적정하다고 평가했다반면 <뉴욕 타임스>는 훨씬 낮은 125~770억 달러라는 추정치를 내놓았다.

하지만 정작 그린란드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과정은 없었다. 2025년 1월 베리언 그룹(Verian Group)의 여론조사에 따르면그린란드 주민의 85%는 덴마크를 떠나 미국에 편입되는 것에 반대했고찬성은 6%에 불과했다다만 적절한 유인이 주어진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트럼프 행정부는 그린란드 주민 1인당 1~10만 달러를 직접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며여론을 미국 편입 쪽으로 유도하려 하고 있다.

트럼프는 뜻을 이룰 수 있을까그는 그린란드는 국가 안보와 세계 안보에 필수적이다되돌릴 수 없다고 말한다다보스에서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선트는그린란드를 넘기지 않으면 미국이 추가로 1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위협에 맞서려는 유럽 지도자들의 시도를 조롱했다. “아마도 그들은 먼저 그 악명 높은 유럽식 실무그룹을 꾸릴 텐데그게 그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일 것이라는 식이었다베선트는 유럽이 북극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만큼 강하지 않으며그렇기 때문에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장악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손에 넣을 가능성이 크다그렇게 되면 그는 미국의 서반구 제국을 확장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된다군사 행동은 배제되었지만유럽이 굴복하지 않는 한 경제전은 불가피하다유럽은 에너지 공급에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도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고 있다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부동산 거래는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트럼프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라틴아메리카에서는 마침내 쿠바를 장악하는 데 눈을 두고 있고북미에서는 캐나다 역시 합병 대상이다이에 따라 캐나다 총리 마크 카니는 노선을 급격히 바꿨다카니는 국제 금융자본 계급의 전형적 인물로전 골드만삭스 임원이자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영국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인물이다그는 캐나다로 돌아와 트럼프의 병합 요구에 맞서 캐나다의 독립을 내건 민족주의적 공약으로 지난 선거에서 승리한 자유당을 사실상 장악했다.

이번 다보스에서 카니는 충격적인 연설을 했다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나는 세계 질서의 단절달콤한 허구의 종말그리고 무자비한 현실의 도래에 대해 말하려 한다이제 강대국의 지정학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우리는 매일 강대국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확인한다규칙에 기반한 질서는 퇴색하고 있다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약자는 감내해야 할 것을 감내한다.”

카니는 뒤늦게나마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국제 규칙 기반 질서세계화워싱턴 컨센서스의 실체를 인정했다. “수십 년 동안 캐나다 같은 국가들은 우리가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라고 불렀던 체제 아래서 번영했다우리는 그 제도에 참여했고원칙을 찬양했으며예측 가능성의 혜택을 누렸다그 보호 아래서 가치 중심의 외교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우리는 이 질서가 부분적으로는 허구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가장 강한 자들은 필요할 때 스스로를 면제했고무역 규칙은 비대칭적으로 집행되었으며국제법은 피고나 피해자의 정체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었다그럼에도 이 허구는 유용했고특히 미국의 패권은 공공재를 제공했다열린 해상로안정적인 금융 시스템집단 안보분쟁 해결을 위한 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강대국들은 경제적 통합을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관세는 지렛대가 되었고금융 인프라는 강압 수단이 되었으며공급망은 악용할 수 있는 취약점이 되었다통합이 상호 이익이 아니라 종속의 원천이 되는 순간그 거짓말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중견국들이 의존해 온 WTO, 유엔, COP 같은 다자 기구집단적 문제 해결의 구조는 크게 약화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규칙이 더 이상 당신을 보호하지 않는다면당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그러나 이것이 어디로 이어질지 냉정하게 봐야 한다요새들의 세계는 더 가난하고더 취약하며덜 지속 가능할 것이다.” 카니는 캐나다가 이 새로운 시대에서 앞장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캐나다는 가장 먼저 경고를 들은 나라 중 하나였고그로 인해 전략적 태세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지리적 위치와 동맹 가입만으로 번영과 안보가 자동으로 보장된다는 편안한 가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캐나다인들은 알고 있다.”

그는 다보스의 다른 지도자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요구했다. “더 이상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실제로 작동하는 것처럼 반복해서 부르지 말라이 체제를 있는 그대로 불러야 한다가장 강한 자들이 경제적 통합을 강압의 무기로 사용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시대라고.”

그는 옛 질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우리는 그것을 애도할 필요도 없다향수는 전략이 아니다하지만 이 균열 속에서 우리는 더 나은 것더 강한 것더 정의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이것이 요새의 세계에서 가장 큰 손실을 입을 중견국들의 과제다강대국은 그들의 힘을 갖고 있다하지만 우리에게도 무기가 있다현실을 직시하고허구를 멈추며내부의 힘을 키우고함께 행동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이제 카니는 현실주의자가 되었고유럽 지도자들은 돈로 독트린과 워싱턴 컨센서스의 종말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카니는 중견국들이 별도로 조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북반구의 브릭스인가캐나다는 이미 중국과 무역 협정을 체결했고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손에 넣은 뒤에는 국경 너머 패권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방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패권국이 주도하고 다른 자본주의 민주국가들이 동맹을 이뤄 규칙을 정하던조화로운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끝났다이제 각 국가는 다극적 세계에서 새로운 동맹을 찾아 각자도생의 길로 나아간다더 이상 확실한 것도예측 가능한 것도 없다과거의 안전자산이었던 금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출처From Monroe to Donroe, Greenland and Carney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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