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파크의 비극, 그리고 멈춰선 진실
1월 30일, 창원 고속버스터미널 옆 카페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두 시간 넘게 아버지는 딸의 사고와 이후 이야기를 숨도 쉬지 않고 토해내셨다. 매일 밤 딸아이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잠이 드신다며, 휴대폰 바탕화면에 있는 눈이 시리도록 고운 아이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보고 싶은 딸에게.
그곳은 어떠니? 춥지는 않니? 얼마나 가족들이 보고 싶을까.
우리는 너를 한순간도 잊지 않고 너무너무 보고 싶고 그립단다.
갑자기 억울하게 가족 곁을 떠나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너를 생각하면 아빠는 마음이 미어지고 힘들다. 아빠의 슬픔은 너의 억울함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추위를 많이 타는 너를 걱정하며 맞은 첫 겨울도 이제 끝자락이구나.
딸아, 네가 가족 곁을 떠나가는 길에 흐드러지게 핀 봄꽃들을 우리 가족은 곧 맞이하겠구나. 그날은 유난히 벚꽃이 만개한 날이었다. 너의 외로운 길을 배웅하듯 말이다. … (중략) … 딸아, 우리 가족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네가 그곳에서 잘 보고 있지? 그곳에서 가족들의 힘듦을 보더라도 네가 너무 슬퍼하지 말고, 너 하고 싶은 거 더 많이 하고 너답게 잘 지내길 바란다. 아빠는 너 보러 갈 때 미안했던 발길이 하루빨리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길 바라며 오늘도 늦은 밤을 넘긴다.
보고 싶은 우리 딸, 너의 목소리를 오늘도 통화기록으로 듣다 잠들련다. 너무너무 보고 싶다. 딸, 잘 지내라. 사랑한다.
━ 아빠가
2025년 3월 29일 창원NC파크 야구장 4번 게이트 인근에서 외벽에 설치된 알루미늄 루버 1개(약 33.94kg)가 약 17.5m 높이에서 탈락하여 매점에서 대기 중이던 관람객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치는 참담한 사고가 발생했다. 사건 직후, 진실을 밝히겠다며 ‘사고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결과는 참담하다. 진실을 향한 동력이 돼야 할 조사가 오히려 피해자를 배제하고 책임을 희석하는 행정적 절차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NC파크 사례는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이 어떻게 ‘사회적 투쟁’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관료화되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현실이다. 구조물 추락으로 한 시민이 목숨을 잃은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이 비극은 왜 일어났는가?”, “누가 이 죽음에 책임을 지는가?”
창원NC파크 야구장. 출처: NC다이노스 홈페이지
‘전문성’ 내세운 또 다른 사회적 폭력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회적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본래 은폐하려는 권력에 맞서 목소리를 되찾는 처절한 ‘사회적 투쟁’의 과정이었다. 노동자 역사 속에서 우리가 목도했듯, 산재나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자본과 국가가 덮으려는 치부를 들춰내는 힘은 언제나 당사자들의 끈질긴 저항과 연대에서 나왔다. 하지만 오늘날 각종 조사위원회가 구성되고 사회적 조사위원회가 제도화되면서, 이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사회적 투쟁이라는 본연의 의미를 상실한 채 관료적 행정 절차로 전락하고 있다.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도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를 계기로 구성된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회’를 시작으로 故김용균 특조위 등 조사위원회가 가동됐다. 구조적 원인과 대안을 담은 조사 결과는 발표 직후에만 주목받을 뿐, 법적 강제성 부재와 기업의 책임회피와 외면 속에 현실에선 작동하지 않는 ‘휴지조각이 된 조사보고서’가 되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진실은 광장에서 밀실로, 거리의 목소리에서 두꺼운 보고서 속으로 유폐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건의 핵심 주체인 피해 당사자들이 조사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참사를 통해 이 권력화된 조사의 모순을 목격해 왔다. 국가와 지자체는 ‘위원회 구성’이라는 절차를 통해 사회적 분노를 관리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여 안착시킨다. 이 과정에서 ‘전문성’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권력이 형성된다. 복잡한 수식과 기술 용어 뒤에 숨은 전문가들은 진실 규명의 주도권을 독점하고, 정작 삶이 파괴된 피해 당사자들을 조사의 ‘주체’가 아니라 ‘관찰자’ 혹은 ‘객체’로 전락시킨다. 전문 지식은 진실을 밝히는 돋보기가 아니라, 대중과 당사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높은 문턱이 됐다.
NC파크 사고조사과정에서도 유족의 참여는 보장되지 않았다. 유족이 단 한 차례 의견을 진술할 수 있었던 것조차 경상남도의 자발적 조치가 아니라, 유족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한 결과였다. 조직화된 위원회는 피해자의 절규를 ‘감정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전문가들의 논의를 ‘이성적인 것’으로 격상시킨다. 그러나 현장의 고통을 몸소 겪은 당사자의 목소리가 빠진 진실은 생명력을 잃은 기술적 결론일 뿐이다. 피해자가 배제된 채 책상 위 서류로만 완성된 보고서가 어떻게 사회적 치유와 재발 방지의 토대가 될 수 있겠는가. 이는 진실 규명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또 다른 형태의 가해이자 사회적 폭력이다.
관료화된 진실 규명은 ‘졸속 면죄부'
최근 발표된 NC파크 사고조사위원회의 결과는 이러한 관료화된 진실 규명의 결정판이다. 사고조사위는 설계 오류와 시공 부실을 나열했지만, 그 보고서에는 ‘총체적 부실’이라고만 하여, ‘누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책임 주체를 밝히지 않았다. 사고는 발주처, 설계자, 시공사, 운영기관의 의사결정이 연쇄적으로 실패하며 발생한 ‘시스템 사고’임에도, 사고조사위는 기술적 결함에만 매몰됐다. ‘총체적 부실’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구체적인 책임자들의 이름을 지워버린 것이다.
특히 사고가 난 지점은 운영 주체인 NC 다이노스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범위 내에서 ‘탈부착 공정’을 진행했던 단 한 곳이었다. 하지만 사고조사위는 현장을 성급히 철거하도록 방치하며 원인 규명의 핵심 쟁점을 스스로 인멸했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시점 범위 내에 있는 NC 다이노스의 탈부착 영역에 대한 조사를 누락한 것은 특정 주체의 책임을 경감해주기 위한 ‘봐주기식 조사'였다는 짙은 의혹을 남긴다. 세월호에서 유가족을 배제했던 권력이, NC파크에서는 ‘현장 보존의 미비’와 ‘ 봐주기식 조사’로 이름을 바꾸어 반복되는 것이다. 가해자 측이 선정한 전문가들이 밀실에서 만든 보고서는 고인의 명예를 다시 한번 훼손하는 ‘졸속 면죄부’에 불과하다.
진상 조사는 ‘사회적 회복’ 과정이어야
사고에서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호기심이나 보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고의 표면적인 원인뿐만 아니라, 그 배경이 된 구조적, 제도적, 사회적 문제들을 깊이 들여다보는 과정입니다. 또한 사고의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피해자들의 상실감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서입니다. 유사 사고의 재발 방지와 미래를 위한 사회적 교훈 수립에도 그 의의가 있습니다.
━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이제 우리는 진실 규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조사는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행정 행위가 아니라, 무너진 정의를 바로 세우는 ‘사회적 회복’의 과정이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배운 진실 규명의 원칙을 제도화해야 한다.
첫째, 피해 당사자의 실질적 참여권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조사위원회 구성 단계부터 피해자나 유족이 추천하는 전문가, 혹은 당사자 본인의 위원 위촉을 의무화해야 한다. 이들은 조사 방향을 설정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실질적 주체의 지위를 보장받아야 한다.
둘째, ‘기술적 조사’를 넘어선 ‘사회적 책임 조사’를 병행해야 한다. 기계적인 사고 원인 분석에 매몰되지 않고, 사고 전후의 행정적 의사결정 구조와 안전 예산 배정의 적절성 등 구조적 원인을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 누가, 어떤 판단으로 시민의 안전을 방치했는지 그 ‘책임 주체’를 명시하는 조사가 필요하다.
셋째, 조사 기구의 철저한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사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자체나 운영기관이 직접 사고조사위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현재의 ‘셀프 조사’ 시스템을 타파해야 한다. 제3의 독립적인 상설 조사 기구가 조사를 주도함으로써, 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다시 광장의 진실로
진실은 닫힌 회의실 안의 서류 뭉치가 아니라, 광장에서 외치는 피해자의 목소리와 맞닿아 있을 때 비로소 그 힘을 얻는다. 전문성을 권력이 아닌 진실을 위한 도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진실 규명이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이 되어 피해자를 소외시키는 이 잔인한 관료주의의 연쇄를 끊어내야 한다.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형성된 또 다른 권력에 맞서, 진실 규명을 다시 사회적 투쟁의 한복판으로 돌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중대시민재해의 엄중한 책임을 지자체와 자본이 온전히 짊어질 때까지, 누군가의 죽음이 ‘기술적 오류’라는 차가운 문장으로 박제되지 않고 우리 공동체가 함께 성찰하고 변화해야 할 ‘사회적 과제’로 바로 설 수 있도록 투쟁에 나서야 한다.
피해자의 참여가 배제된 채 전문가들의 논리 속에 갇힌 진실은 결코 우리를 안전하게 만들지 못한다. 진실 규명의 과정을 다시 ‘사회적 투쟁’의 장으로 돌려놓는 것, 그것이 우리가 걸어온 저항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길이다. 억울한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고,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진실을 찾는 권력을 당사자의 손으로 되찾아오는 데 있다.
아버지의 핸드폰 화면 속에서 반짝이던 고인의 눈망울을 잊지 않으려 한다. 우리의 기억은 차가운 보도 위에서, 차오르는 바닷물 속에서, 함성 가득한 야구장에서 그리고 매일 죽음의 일터에서 스러져간 이 땅의 모든 평범한 이들로 향해야 한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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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는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상임활동가다. 참세상은 이 글을 노동자역사 한내와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