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프 아기옹(Philippe Aghion)과 피터 하윗(Peter Howitt)이 조엘 모키어(Joel Mokyr)와 함께 2025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유는 “혁신 주도형 경제성장을 설명한 공로” 때문이다. 노벨위원회는 아기옹과 하윗을 “창조적 파괴를 통한 지속적 성장 이론”으로 인용했다. 이 글이 설명하듯, 그들의 연구는 창조적 파괴를 단순한 비유에서 엄밀한 분석적 틀로 변모시켰다. 이번 노벨상은 번영과 기술 발전의 원동력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이해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편한 연구를 기린다.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는 개념은 1940년대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다. 그는 경제 발전이 본질적으로 상당한 혼란을 수반한다는 생각을 요약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산업혁명 이후의 모든 주요 혁신 — 증기기관에서 인터넷,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 은 이전의 기술, 일자리, 기업을 대체해왔다. 그러나 50년 동안 슘페터의 통찰은 대체로 서술적이고 질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새로운 노벨상 수상자인 필리프 아기옹과 피터 하윗이 해낸 일은, 이러한 직관을 엄밀한 수학적 틀로 전환하여 창조적 파괴가 전체 성장을 만들어내는 구체적 메커니즘, 인센티브, 조건을 설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아기옹과 캐나다 출신 하윗의 협업은 새로운 제품과 생산방식이 끊임없이 옛것을 대체하는 혁신의 순환 과정을 설명하는 모델을 낳았다. 이 과정은 언젠가 자신이 창조적으로 파괴될 것이라는 사실이 낙담을 불러일으킬지라도 성장은 계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기념비적 논문은 1987년에 처음 제출되어 5년간의 심사를 거쳐 1992년 <이코노메트리카>(Econometrica)에 실렸다. 이 논문에서 아기옹과 하윗은 창조적 파괴의 작동 방식을 수학적으로 구성했다. 새로운 더 나은 제품이 시장에 등장하면, 기존 제품을 판매하던 기업들은 손해를 본다. 혁신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창조적이지만, 기존 기술이 시대에 뒤처지는 기업이 경쟁에서 밀려나기 때문에 동시에 파괴적이다.
이 논문은 슘페터의 비전을 현실 속으로 불러왔다. 1만7천 회 이상의 인용을 기록하며, 이후 수십 년간 혁신과 성장 연구의 토대가 되었다. 하윗에 따르면, 아기옹은 처음부터 이 연구가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으며, 그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2025년 노벨 경제학상 위원회).
아기옹과 하윗의 이론적 틀은 성장 이론이 기업 및 제품의 실제 데이터를 더 밀접하게 다루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델은 혁신의 사회적 수익과 사적 수익의 차이, 혁신의 분배적 함의, 그리고 혁신을 가로막는 정치적 장애물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낳았다.
창조적 파괴와 미시 데이터의 만남
아기옹–하윗 모델의 핵심 공헌 중 하나는 성장 이론과 기업 단위의 미시 데이터를 연결하도록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클레테(Klette)와 코르툼(Kortum, 2004)은 다품목 기업의 모델을 구성해, 기업이 제품 포트폴리오의 증감에 따라 고용과 매출이 어떻게 변동하는지를 설명했다. 렌츠(Lentz)와 모르텐센(Mortensen, 2008), 루트머(Luttmer, 2011)도 이러한 작업을 발전시켜 창조적 파괴를 기업 동태와 구조적으로 연결했다. 아제모을루(Acemoglu) 등(2018)은 특허, 연구개발(R&D), 기업 동태의 패턴을 구조적 성장 모델에 결합했다.
신규 제품의 다양성이나 기존 기업이 자체 제품의 품질을 개선함으로써 성장한다는 이론은 기업과 제품 간 고용 및 매출 재배분이 거의 없다고 예측한다. 이러한 이론은 기존 기업이 축소되거나 사라질 이유를 거의 포함하지 않는다. 즉, 그것들은 평화로운 성장 이론이다.
반면 새로운 경쟁자 앞에서 기업이 축소되거나 소멸하는 사례는 무수하다.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했고, 소형 제철소가 종합 제철소를 몰아냈으며, 월마트가 소매 상인을 몰락시켰고, 애플과 삼성의 스마트폰이 노키아와 블랙베리를 대체했다. 아마존은 오프라인 상점을 몰아냈고, 넷플릭스는 블록버스터를 사라지게 했으며, 우버와 리프트는 택시 시장을 잠식했다. 이제 챗GPT가 구글 검색을 위협하고, 웨이모의 자율주행차가 우버와 리프트를 대체하려 한다.
미국 종합기업데이터베이스(Longitudinal Business Database, LBD)에 따르면, 일반적인 해에 중소기업의 7퍼센트 이상, 대기업의 5퍼센트 이상이 퇴출된다(중소기업은 중위 고용 이하, 대기업은 그 이상으로 정의된다). 이들 기업은 퇴출 전 전체 노동자의 2~3퍼센트를 고용하고 있었다.
생존한 기업들 사이에서는 훨씬 더 큰 규모의 일자리 재배분이 일어난다. 데이비스 등(1996)이 이를 문서화했다. 미국에서 축소되거나 퇴출된 모든 기업의 고용 감소를 합산하면, 5년 동안 전체 일자리의 30퍼센트 이상에 달한다. 이러한 재배분은 주로 좁은 산업 내부에서 일어나며, 이는 광범위한 부문 전환(예: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이 아니라 근접 경쟁자들 간의 경쟁을 반영한다. 가르시아-마시아(Garcia-Macia) 등(2019)에서 필자는 공저자들과 함께 이러한 높은 퇴출 및 일자리 파괴율을 설명하려면 성장의 전반적 과정에서 창조적 파괴가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생존 기업은 성장하는 경향이 있고, 퇴출 기업은 생존 기업보다 규모가 작다. 신생 기업(창립 5년 미만)은 평균 10명의 직원을 두지만, 오래된 생존 기업(5년 이상)은 평균 30명 이상을 고용한다. 이러한 생애주기적 역학은 선택(작은 기업이 퇴출될 확률이 높음)과 생존자 성장 두 가지 모두를 반영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패턴을 이해하는 데 창조적 파괴는 필수적이다.
그림 1은 일자리 창출률, 기업 진입률, 사업장 진입률, 기업 퇴출률이 모두 미국 산업별 5년 기간 동안 노동생산성 성장률과 양의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창조적 파괴의 직접적 기여를 반영할 수도 있고, 창조적 파괴가 기존 기업이 자신의 제품을 개선하도록 자극하는 간접 효과를 반영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아기옹 등(2015)은 기업들이 “뒤쫓는 경쟁자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escape competition)” 혁신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그림 1. 미국의 노동생산성 성장률과 역동성 지표(1988~2022)
출처: 노벨 경제학상 위원회(2025)의 부록 도표 A2.
주: 이 도표는 산업별 5년 평균치를 구간별 산점도로 나타낸 것이다. 각 도표는 기업 퇴출률 또는 일자리 소멸률의 5년 평균치와 노동생산성 성장률의 5년 평균치를 비교해 보여준다. 표본은 네 자리 산업 분류 기준으로 159개 산업과 7개의 5년 기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동성 변수(dynamism variables)는 <기업 역학 통계>를, 노동생산성 성장률은 <미국 노동통계국>」의 자료를 사용했다. 계산은 Adhami(2025)의 관련 분석을 바탕으로 했다.
기업의 퇴출률과 진입률, 그리고 생존 기업 간 일자리 재배분 모두가 최근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감소했다(Decker 외, 2016). 진입 기업(창립 5년 미만 기업)의 고용 비중은 24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떨어졌다. 창조적 파괴가 성장의 핵심적 동력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기업 역동성’의 감소는 미국의 생산성 성장 둔화와 실망스러운 성과에 기여했다. 아크지트(Akcigit)와 아테스(Ates, 2023), 그리고 피터스(Peters)와 월시(Walsh, 2025)는 이 역동성 감소의 원인과 그 결과가 미국 성장에 미친 영향을 조사했다.
이러한 패턴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바르텔스만(Bartelsman) 외(2004)는 많은 선진국과 신흥국에서도 기업과 일자리의 유사한 회전(churning, 창조와 소멸의 순환 과정) 현상을 문서화했다. 따라서 창조적 파괴는 모든 발전 단계의 경제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피터스와 질리보티(Peters & Zilibotti, 2021), 부에라(Buera)와 파탈-하에프(Fattal-Jaef, 2025)는 창조적 파괴 이론을 적용해 개발도상국의 기업 역학과 성장을 설명했다.
혁신의 사회적 수익과 사적 수익
핵심 정책 질문은 민간 기업들이 올바른 혁신 동기를 가지고 있는지, 다시 말해 혁신의 사적 수익과 사회적 수익이 일치하는지 여부다. 한편 아기옹–하윗 모델은 과거 혁신가들의 노력으로부터 현재 혁신가들이 얻게 되는 긍정적 지식 확산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현재의 혁신은 이전 혁신가들이 도달한 품질 수준 위에 구축되지만, 오늘날의 혁신가들은 미래의 기업들이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삼을 것이라는 사실을 내면화하지 않는다. 이러한 긍정적 외부효과는 사회적 혁신 수익을 사적 수익보다 높인다.
다른 한편, 현재의 혁신가들은 ‘이전 혁신가의 이익을 가로챔’으로부터 이득을 얻는다. 예를 들어, 새로운 제약회사가 기존 제약회사의 시장을 대체할 10% 더 나은 약을 개발하면, 새 회사는 전체 이익의 100%를 차지할 수 있다. 사회가 얻는 실제 이익은 10% 개선된 약이지만, 새 회사는 그보다 훨씬 큰 이익을 거둔다. 이는 원칙적으로 민간 부문에서 과도한 혁신을 초래할 수도 있다.
실제로는 연구자들이 일관되게 밝혀낸 바에 따르면, 긍정적 지식 외부효과가 이익 탈취 효과를 초과하므로, 정부의 연구개발 세액 공제나 보조금 같은 장려책 없이는 혁신이 너무 적게 일어난다. 이에 대한 실증 연구로는 존스와 윌리엄스(1998), 블룸 외(2013), 아드하미(Adhami, 2025)가 있으며, 브라이언과 윌리엄스(2011)의 종합 논문이 있다.
그럼에도 성장의 어느 정도가 창조적 파괴 에서 오는지—즉, 새로운 품목 도입(Romer, 1990) 이나 기존 기업의 자체 제품 개선(Akcigit & Kerr, 2018) 같은 덜 파괴적인 경로에서 오는지—에 따라 혁신의 사회적 수익과 사적 수익 간의 격차 크기가 달라진다. 성장의 더 많은 부분이 창조적 파괴에서 비롯될수록, 사회적 수익과 사적 수익 간의 격차는 더 작아진다(Atkeson & Burstein, 2019).
창조적 파괴의 분배적 결과
창조적 파괴는 기존 기업의 성장을 견제하는 동시에 기존 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창조적 파괴의 급증은 전체적으로 가장 큰 기업들이 통제하는 제품과 매출의 비중을 높이는 경향을 보인다(Berlingieri 외, 2025). 이는 기업 소유가 인구 전반에 균등하게 분포하지 않고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부의 불평등에 함의를 지닌다.
아기옹 외(2019)는 미국의 주와 도시 수준에서 혁신과 상위 소득 불평등 간의 상관관계를 조사했으며, 그 결과 양의 상관관계 를 발견했다. 마찬가지로 존스와 김(2018)은 신규 진입자들의 창조적 파괴가 상위 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힘이 될 수 있지만, 기존 기업들의 창조적 파괴 성공은 오히려 상위 소득 불평등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노동자들에게는 빠른 창조적 파괴의 속도가 실업 기간과 이후 직장에서의 낮은 임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로슈(Jarosch, 2023)는 소득 감소가 고용 축소와 임금 하락 중 어느 쪽에서 비롯되는지를 정밀하게 분해했다. 아기옹과 하윗(1994) 자신들도 창조적 파괴의 속도와 실업률 간의 이론적 연결고리를 제시했으며, 더 많은 혁신이 더 높은 일자리 파괴율을 낳을 수 있다고 밝혔다.
혁신에 대한 정치적 장벽
‘창조적 파괴’ 성장 관점의 중요한 미덕은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에 대한 정치적 반대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성장이 기존 기업과 노동자의 부를 침해하지 않는 온건한 형태로 일어난다면, 혁신에 장벽을 세울 이유는 거의 없다. 반대로, 성장이 창조적 파괴의 형태를 취하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일부 기존 기업과 노동자의 이윤과 소득 손실을 초래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혁신에 반대할 유인을 가지게 된다.
역사는 창조적 파괴에 장벽을 세운 수많은 국가의 사례로 가득하다(Parente & Prescott, 2002; Acemoglu & Robinson, 2012; Akcigit 외, 2023). 따라서 아기옹과 하윗의 연구는 창조적 파괴가 불러오는 갈등을 어떻게 건설적으로 관리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렇지 않으면, 혁신은 손해를 볼 위험이 있는 기득 기업과 이해 집단에 의해 차단된다.
이 통찰은 왜 어떤 사회는 지속적 성장을 경험하는 반면 다른 사회는 정체 하는지를 설명한다—제도적 틀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강한 재산권과 특허 보호는 반독점 집행과 기존 기업의 지배력 고착을 막는 정책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폴 로머의 공헌과의 비교
폴 로머(Paul Romer)는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을 “기술 혁신을 장기 거시경제 분석에 통합한 공로”로 수상했다. 존스(2018)가 지적했듯, 로머는 아이디어의 비경합성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시장 지배력 및 시장 규모 효과에 주목했다.
이러한 함의는 아기옹과 하윗의 모델에서도 나온다. 그러나 핵심적인 차이는 로머의 모델에는 창조적 파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로머의 이론에서 혁신은 기존 기업과 노동자의 시장 점유율이나 고용을 침해하지 않는 새로운 품목의 등장 형태를 띤다.
협력과 작업 방식
아기옹과 하윗의 협업 자체가 성공적인 창조적 파트너십의 본보기다. 하윗은 두 사람의 “멋진 협력 관계”를 성격의 보완성으로 설명한다. 에너지 넘치고 역동적인 아기옹은 가속 페달 역할을 했고, 조용하고 신중한 하윗은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 이러한 대담한 이론적 야망과 세심한 분석적 엄밀함의 균형 이 혁신적이면서도 기술적으로 탄탄한 연구를 낳았다.
결론
필리프 아기옹과 피터 하윗의 연구는 창조적 파괴를 상징적 은유에서 엄밀한 분석틀로 탈바꿈시켰다. 그들은 혁신이 어떻게 기회와 혼란을 동시에 만들어내는지 수학적으로 모델링함으로써, 경제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번영이 자동적이거나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도록 했다. 즉, 혁신을 보상하면서도 지속적 경쟁 압력을 유지할 제도적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공지능, 생명공학, 재생에너지로 대표되는 빠른 기술 변화의 시대를 항해하는 지금, 그들의 통찰은 여전히 깊이 관련이 있다. 창조적 파괴를 이해하는 것은 혁신을 장려하면서도 그 파괴적 효과를 관리하고, 네트워크 효과와 규모의 경제 속에서도 경쟁적 시장을 유지하며, 오늘의 돌파구가 내일의 혁신과 공동 번영을 막지 않게 하는 정책 설계 에 도움을 준다.
아기옹과 하윗의 기념비적 논문이 발표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 노벨상 수상은 그들이 번영의 동력과 인류 발전을 지속시키는 조건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기후 변화, 불평등, 지정학적 분열의 도전에 직면한 오늘날, 혁신 주도 성장의 지속과 그로 인한 갈등을 건설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출처] Sustained growth through creative destruction: Nobel laureates Philippe Aghion and Peter Howitt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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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J. 클레노우(Peter J. Klenow)는 스탠퍼드대학교 경제학 랜도 교수이자 시이퍼(SIEPR, 스탠퍼드 경제정책연구소)의 고든 앤드 베티 무어 펠로로 재직 중이다. 그는 또한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연구원으로, 해당 기관의 경기변동 및 성장 프로그램 공동 책임자를 맡고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