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외주화’ 해결 위한 높은 수준의 정규직화가 필요하다

빛을 만드는 노동자 故 김충현 1주기 기획연재 ⑤

[편집자주] 오는 6월 2일은 고 김충현 노동자 사망 1주기가 되는 날이다. 김충현은 발전소의 다단계 하청구조와 외주화된 위험, 고용 대책 없이 추진된 석탄발전소 폐쇄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이후에도 발전소 2차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은 오히려 더 위험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투쟁은 적지 않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114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함께 김충현 대책위를 꾸렸고, 장례투쟁과 65일간의 노숙농성 끝에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를 통한 발전소 하청노동자 직접고용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러나 합의 이행을 위한 노사전 협의체는 여전히 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원청의 책임 있는 후속 조치는 멈춰 서 있다.

김충현 노동자 1주기를 맞아 우리는 다시 묻는다. 노동자의 죽음 이후 사회가 어렵게 만들어낸 약속은 왜 아직도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는가.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기 위한 합의는 왜 다시 미뤄지고 있는가.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고용·노동안전 현실을 바탕으로, 지난 1년의 투쟁과 변화, 남겨진 과제를 돌아보는 기고 5편을 연재한다.

지난해 6월 8일 사고 현장 방문 당시, 김충현 노동자가 일했던 한전KPS 기계공작실에 국화가 놓여 있다.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은 발전소 2차 하청노동자들이 원·하청 통합 안전시스템의 바깥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하 모든 사진 출처는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야. 해결해야 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문제라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해법’에는 다양한 이견이 존재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볼까? 대부분의 안전전문가, 기업, 정부 관료들은 원청과 하청의 차별적 분할이 문제가 아니라 ‘불합리한 관행’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바로잡아 더는 노동자의 생명·안전이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게끔 ‘원·하청 구조를 합리화’하는 것을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위험의 외주화’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해야 한다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대해 정부 관료들은 ‘생떼’라고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생각하든가, 아니면 일부 안전전문가들처럼 상당히 불쾌한 심정을 드러낸다. ‘안전한 작업환경’이라는 순수할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분야에 ‘정규직화’라는 노동조합의 무리한 요구를 뒤섞었다고 항변하는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되받아 치는 항의성 질문이 있다. “정규직화한다고 안전해지나? 정규직들도 안전사고 나고, 사망한다”는 말이다.

2010년 즈음, 외주화된 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보도되면서 민영화와 상시적 구조조정의 효과로 늘어난 ‘하청화’의 진짜 문제가 드러났다. 노동자의 불안정고용이 불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고 이 압력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한다는 사실이 ‘문제화’되면서 만들어진 ‘위험의 외주화’라는 용어. 

이 용어에서 노동자의 피 냄새를 없애는 것은 가능할까? 그러니까 죽지만 않을 정도로 차별적인, 노동자의 생명에 흠집이 나더라도 다음날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기업의 문 앞에 설 수 있는 그만큼의 절묘한 차별과 초과착취를 용인하는 그런 ‘외주화’ 말이다. 이 구상(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상상이나 허상인)이 성공했다고 치자. 원청과 하청 사이의 울타리를 없애는 대신, ‘안전’의 영역에서만 울타리의 높이를 낮춰 하청노동자들이 넘나들 수 있도록 했다고 치자. 

지난해 9월 18일,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가 태안화력 현장 방문 후 제4차 전체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협의체 위원들은 고 김충현·김용균 노동자가 사고를 당했던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안전보건공단 중앙사고조사단 조사 결과와 고용노동부 안전진단 결과를 보고받았다.

안전 전문가들은 이걸 ‘원·하청 통합 안전시스템’이라고도 부른다. 암튼 이렇게 만들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2019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이후, 정부와 발전사는 ‘김용균 특조위’의 권고를 일부 수용해 발전소에 이 ‘원·하청 통합 안전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해 왔다.

그럼에도 사망사고는 끊이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김용균의 업무 분야인 ‘연료운전’분야에서는 더 이상 사망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발전소의 연료운전 1차 하청노동자들은 낮아진 울타리를 넘었다. 아니다. 그 반대다. 사실은 발전소의 1차 하청들이 넘을 수 있을 만큼만 울타리가 낮아졌다.

2025년 태안화력에서 2차 하청노동자 김충현이 사망했다. 김충현은 연료운전 분야처럼 발전소의 주설비를 운전하거나 정비하는 일이 아닌 주변부화된 선반업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2차 하청이었다. 2차 하청이 넘을 수 있는 ‘원·하청 통합안전시스템’은 구축되지 않았으므로 김충현은 사망했다. 낮아진 울타리는 석탄화력의 1차 하청을 위한 것이었기에, 발전소의 자회사 노동자들, 석탄화력이 아닌 원자력 발전소의 하청노동자들 역시 울타리 바깥에 놓여있었다.

‘김충현 협의체(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에서 13개의 석탄화력 발전소와 2개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2차 하청노동자들을 만나 원청과 하청의 분할이 만들어낸 노동과 안전의 격차가 이들의 생명에 어떠한 흔적을 남겼는지 그 실태를 조사했다. ‘김충현 대책위’에서 주최한 ‘김충현 중대재해 1년, 현장은 바뀌었나?’ 토론회는 그러한 실태를 종합하는 자리였다. 

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번민이 일었다. 우리는 지난 7년간 대체 무엇을 한 거지? 지금 현재 발전소의 상황을 멀리서 본다면, 분리할 수 없는 발전소 정비 업무를 원청과 하청으로 분리해 놓고 ‘불법파견’을 회피하기 위한 코미디 같은 기만과 술수로 얼룩진 한편의 소동극일 것이다. 계약상으로 분리되고, 서류상으로 ‘혼재근무’의 흔적을 지울수록, 현장의 작업방식과 소통방식은 음성화되어 더욱 농밀하게 교류하고 있었다. 안전시스템은 여전히 그들과 무관하게 구축되었지만, 더 문제인 것은 이제 발전소는 ‘원·하청 통합 안전시스템’이 구축된 현장이라는 점이고, 이것이 그들의 위험을 가리는 효과가 발생했다. 

지난 7년 발전소 현장은 일부의 하청노동자에게는 보다 안전해졌고, 전체 하청노동자에게는 위험이 더 은밀하게 심층부로 고여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이전보다 더 쉽게 드러나지 않으므로 관료들이나 안전전문가의 눈으로는 알아챌 수 없다. 왜냐하면 이건 ‘안전’의 문제가 아니라 김용균 사고 이후 시행된 안전대책이 ‘원·하청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전소 현장에서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길, ‘위험의 외주화’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고용을 추진해 보자는 것이 ‘김충현 협의체’의 합의 내용이다.

지난 5월 28일, 김충현 대책위가 주최한 토론회 ‘김충현 중대재해 1년, 현장은 바뀌었나?’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발전소 2차 하청노동자들의 고용·안전 실태와 원·하청 분할 구조가 만들어낸 위험의 격차가 공유됐다.

AI가 일자리를 위협하는 시대,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공정 논란’을 야기했던 그 ‘직접고용 정규직화’의 ‘해묵은’ 카드가 2026년에 다시 꺼내진 것은 ‘남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낡은 해법’이 아니다. ‘외주화의 합리화’라는 가장 강력한 해법에 대한 실패를 인정하는 것, IMF 위기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적 민영화와 외주화의 정부 기조를 재고하는 것, 하청노동자의 사망에 대해 정부와 공기업이 책임을 다하는 것, 무엇보다 하청노동자를 과잉착취해 온 역사에 대한 반성과 그들의 권리를 회복시키는 것의 가장 작은 첫 돌을 놓은 것이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전환의 과정을 이전과 다르게 써야 할 때 그 처음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에 대한 나름의 응답인 셈이다.

그래서 하청노동자를 한전KPS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 시절의 ‘공정논란’에 뒷걸음친 차별적이고 모욕적이며, 그래서 더욱 시혜적이었던 경로를 이탈해 새로운 길을 제시해야 한다. ‘직접고용을 해줄 테니 기존 정규직과는 다른 처우를 받아들여라’라는 절충 혹은 양보를 요구하는 말들을 넘어선 직접고용이 필요하다. 보다 평등하고, 보다 수준 높은 정규직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 한전KPS 정규직조차 사망사고가 빈번한 조직문화를 바꾸어낼 수 있다. 

정비 분야의 도급계약으로 인해 발전소에서 한전KPS는 1차 하청의 위치에 놓인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온전한 자격과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정규직이 쳐놓은 안전한 울타리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허물어진 울타리를 더 안전하게 구축할 수 있는 권리가 하청노동자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이들이야말로 발전소의 구석구석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해왔으므로 그 위험을 드러내고 집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그래서 ‘무임승차’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도, 시혜도 안 된다.

덧붙이는 말

전주희는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이자 고 김충현 사망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 간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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