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동물을 학살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비교되는 상황은 아우슈비츠다. 많은 동물 해방 운동가들은 동물을 물건으로 치부하는 사회를 향해 인간이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역사를 예로 들어왔다. 그 역사가 잘못되었다면, 현재 우리가 가하는 무자비한 학살 역시 잘못되었음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다. 먼 나라의 역사를 예로 들 필요 없이 우리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 그 피해와 상흔은 아직도 청산되지 못해 피해자들은 여전히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영화 소재로 나왔던 군함도(軍艦島)라는 섬이 있다. (일본어로는 ‘하시마(端島)’라고 한다)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항 근처에 위치한 섬으로, 1943-45년 동안 약 500~800여 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징용되어 강제 노역을 했던 고통과 한이 서린 곳이다. 극악무도한 노동 환경으로 당시 조선인들에게는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 없는 지옥문’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조선인은 하루 12시간 동안 채굴 작업에 동원되었고, 20%에 달하는 122명이 질병, 영양실조, 익사 등으로 사망했다.
이 섬이 끔찍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곳이 고립된 지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외부인이 절대 볼 수 없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조선인들은 폭력과 억압을 겪으며 죽어갔다. 탈출은 불가능했다. 섬 전체가 그 산업을 지지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탈출을 시도했던 조선인들은 발각될 경우 총살당하거나 파도에 휩쓸려버렸다. 군함도 생존자인 최장섭 할아버지는 한 인터뷰에서 "사방이 바다여서 도망가기도 어려웠다. 만약 도망을 갔더라도 육지에서 붙잡혀 끔찍한 매질과 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탈출하다 익사한 한국인이 40~50명 됐다는 또 다른 이의 증언도 있다. 세상과 동떨어지면서 지옥이 되어버린 사건에 기시감이 드는 사업이 시작되려 한다. 이번엔 우리 땅의 이야기다.
2023년 8월, 충청남도는 축산업을 발전시키고자 지역별 산재한 양돈 농가를 이동시켜, 정보통신기술(ICT) 융복합 스마트 축산 시범 단지 조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상지는 보령·서천 부사 간척지와 당진 석문 간척지로, 축사부터 분뇨 에너지화 시설·도축장·가공장 등을 연계해서 운영할 것이라고 했다. 김태흠 도지사는, 산업 단지처럼 소규모 농가들을 모아 규모를 키우고 그 안에서 도축, 육가공, 브랜드화, 분뇨처리, 방역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게 미래 축산의 모습이라며, 스마트 축산 단지를 바탕으로 축산 농가의 생존권과 국민의 환경권을 모두 보장해 나아갈 것이라 말했다. 165만㎡의 부지에 설립될 2층형 축산 단지에 30만 명의 돼지를 욱여넣겠다는 계획이다. 소비자들은 이 축산 단지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출처: 필자 제공
한 번씩 찾아가는 경기도의 도살장이 있다. 비질(Vigil)*이라는 활동을 위해서다. 사람들은 주로 도로 한 쪽에 대기하고 있다가, 돼지를 가득 실은 트럭이 도착하면 잠깐의 시간 동안 그 안에 갇힌 이들을 만난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트럭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울고, 애도하고, 분노했다. 여러 대의 트럭이 도살장으로 들어가고 나면 그 안을 향해 절을 했다.
*비질(Vigil) : 육식주의 사회가 가리는 피해자들을 만나기 위해 농장, 도살장, 수산시장 등의 현장에 찾아가 폭력적인 현장 속 진실의 증인이 되는 활동. 토론토 피그세이브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전 세계적인 풀뿌리 운동이 되었다. 비질은 참사의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철야기도 등의 뜻으로 강력한 정치적인 애도 행위를 의미한다.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출처: 필자 제공
어느 날 갑자기 도살장 입구에 거대한 장벽이 세워졌다. 그 장벽을 처음 본 날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꽤 큰 돈을 투자해 세웠을 그 장벽은 돈값을 했다. 돼지를 가둔 트럭이 그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그간 멀리서라도 지켜보던 모습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스마트 축산 단지가 생긴다면 어떨까. 피해자를 가리는 장벽은 그 규모부터 다르다. 그 안에 누가 살고, 누가 죽임을 당하는지 외부인은 결코 알 수 없다. 그 단지 안에서 모든 것이 ‘원스톱’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폭력, 강제 임신, 감금, 살해가 ‘원스톱’으로.
고속도로에 나타난 소 무사히 포획...“농장에서 탈출” 출처: YTN 화면캡처
'돼지 탈출' 서해안고속도로 한때 정체. 출처 : 연합뉴스TV 화면캡처
누군가 도로에서 우연히 도살장으로 향하는 트럭 속의 돼지와 눈이 마주칠 일도, 트럭에서 탈출한 피해자들이 도로를 배회하여 기사에 나오는 일도 더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스마트 축산 단지는 그러한 가능성을 모두 차단한다. 억압된 이들이 사회에 ‘균열’을 낼 기회. 그렇게 피해자 30만 명을 꼭꼭 감출 지옥. 7,595억 원의 엄청난 세금이 생명을 학살하기 위해서 쓰일 예정이다.
군함도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역사 왜곡 논란이 있었다. 여기에 일본은 현재 사도 광산도 군함도와 비슷한 방식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자 한다. 착취의 흔적을 교묘하게 가리고, ‘일본 근대화의 상징’으로만 군함도를 포장하는 일본 정부의 모습은 우리가 비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일치한다. ‘양복 입고 출퇴근하는 축산 단지’, ‘수익 안정성 보장’, ‘농업 탄소저감’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학살의 단지.
군함도의 회색 건물들이 어떻게 보이는가? 세계유산이라는 워싱 아래 감춰진 피해자들의 고통이 보인다면, 축산 단지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도 명백할 것이다. 어떤 언어로 미화하더라도 그곳은 고문과 학살을 위한 땅이다. 군함도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감옥에 갇힌 이가 비인간이라는 점, 축산 단지에서 생존자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땅에서 태어나고 감금된 모든 이들은 이변 없이 죽는다.
충남도가 모델 삼고 있는 축산단지는 중국 허베이성의 26층 규모 아파트형 축사다. 더 밀집된 착취 시설에 ‘영감’을 얻은 사업. 우리 사회는 새로운 지옥을 상상하며 나아가고 있다.
"고기 생산량 늘리기 위해…26층 세계 최대 '돼지 사육 빌딩'" 출처: SBS 뉴스화면 갈무리
[인용]
<충남, 간척지 위에 축산단지 추진...사육부터 도축·가공·분뇨처리까지> 돼지와 사람
<조선인 강제 징용의 상징이 세계유산 등재? 일본 하시마 섬 [지식용어]> 시선뉴스
<'군함도' 생존자 최장섭 할아버지가 영화를 보고 나서 한 말> 인사이트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 사전 ‘군함도’
<화난 당진시민, 김태흠에 "30만 돼지 축사 건립? 백지화하라">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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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리는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