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이 든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2016년 10월 말부터 온 나라가 촛불로 불타오르자 11월 4일, 박근혜가 이른바 ‘대국민 간담회’에서 뱉은 말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 탄핵소추가 발의됐고, 헌법재판소는 다음 해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했다.
“현대사의 아픈 상처” 운운하며
박근혜 정부 시절 전국의 공공도서관에 책을 공급하는 국책사업인 ‘세종도서 지원’ 사업에서 ⟪소년이 온다⟫를 비롯한 책 9권은 “사상적으로 편향되고, 역사를 왜곡했다”는 이유로 배제됐다. 당시 정부는 런던도서전, 파리도서전, 베를린 문학축제 등 각종 해외 초청행사에서도 한강 작가를 빼려고 애썼다. 그래도 2016년 5월, 한강 작가는 소설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을 수상했다. 박근혜는 축전을 보내지 않았다.
배경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세월호 참사 후 박근혜 정부에서 그대로 부활했다. 한강 작가를 비롯해 무려 9,473명이다. 이명박 시절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을 윤석열이 다시 문화체육부장관으로 데려다 앉혔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유인촌은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고 했다.
2024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윤석열은 박근혜와 달리 페이스북에 축하 글을 올렸다. “작가님께서는 우리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라고 썼다. 영혼 없는 문장이어서일까, 인공지능(AI)의 대필 의혹이 일었다.
윤석열은 2024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누리는 정치적 자유와 인권은, 이제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며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복원하고 국민이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수준을 더 높이 끌어올려야 합니다”라고 했다. 재임 중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는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2023년 국무총리가 대독한 추념사에서는 “IT기업과 반도체 설계기업 등 최고 수준의 디지털 기업이 제주에서 활약하고 세계의 인재들이 제주로 모여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는 생뚱맞은 말을 했다. 그랬던 자가 ‘현대사의 아픈 상처’ 운운한 것을 보니, 본인이 썼다면 유체 이탈 화법임은 분명하다.
박절하지 못한 부부
고상한 문학 열풍이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한국 사회는 경박한 ‘녹취’로 혼란에 빠졌다. 공인이든 사인이든, 무심코 했든 은밀하게 했든, 이제 모든 말들은 녹음되고, 공개되기도 하는 시대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지만, 녹음까지 됐다면 천 년도 갈 판이다. 이런 시절에 대통령과 그의 배우자는 대화나 통화에 거침이 없다.
부창부수 박절하지 못해서일까. ‘쪼그만 가방’ 선물을 거절하지 못했고, 젊은 해병이 죽었어도 책임자는 처벌하지 말라 했고, 사적으로 부탁받은 공천은 “좀 해 줘라”고 했다. 모두 녹취로 세상에 드러났다. 녹취가 없다고 문제가 아니겠는가만은 여튼 1970년생 정치브로커는 검찰이 소환장을 날리자 “구속시키면 증거를 더 공개하겠다”고 악을 쓴다. 녹취록을 비수처럼 숨겨둔 그 역시 살아날 방도를 강구하느라 심히 고단할 터다.
지난 2월 ‘대통령실을 가다’라는 KBS 대담에서 박장범 당시 앵커는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의 뭐 쪼만한 백” 이야기를 꺼냈고, 대통령은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긴 참 어렵다”고 답했다. 용어를 진중하게 쓴 덕분인지 KBS 이사회는 10월 23일에 그를 KBS 사장 후보자로 임명 제청했다. 사장 지원자 면접에서 그는 “사치품을 명품이라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제조사에서 붙인 이름(파우치)을 쓰는 것이 원칙”이며 “파우치는 한국말로 ‘작은 가방’”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또 다른 1970년생의 등장이다. 정작 KBS 구성원들은 그의 사장 취임에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하니, 그 속이라고 평안할까.
최근 한국 사회에 1970년대생들이 약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더러 나온다. 한강도 명태균도 박장범도 1970년생이다. 1970년생에게 4.3은 일제 강점기보다 가까운 과거고, 5.18은 유년기의 상처며, 이후 한국 사회는 격동의 세월을 거쳐왔다. 나이대로도 인구수로도 한국 사회 구성에서 가운데 볼록한 허리쯤에 있는 1970년생들, 괴이한 세상에 태어난 90여만 개의 우주는 이렇게 각각 전혀 다른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출처: Unsplash, Yeshi Kangrang
제발 이제라도 시동을 꺼 주오
11월 2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차량 7대를 잇달아 들이받고 역주행까지 했던 20대 운전자가 면허를 딴 적이 없다고 한다. 운전자는 사고 직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시동 끄는 걸 몰라”라고 했다고 알려졌다.
물론 면허가 있다고 해서 다 운전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술이나 마약에 취한 운전자가 대형 사고를 냈다는 기사는 하루가 멀다 올라온다.
술 좋아하는 현 대통령은 운전면허가 없다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아예 무면허 운전 중이 아닌가 싶다. 심지어 시동을 끌 줄도 모르는 운전자. 측근에게 박절하지 못했던 그가 국민에게는 박절하게 가속페달을 밟아댄다.
윤석열이 11월 7일 대국민 기자회견을 한다고 한다. 도대체 뭘 하려고 대통령이 된 건지 궁금하기는 하다. 그도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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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미는 오랜 노동운동의 길 위에 있는 활동가로서 현재는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기획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칼럼은 노동자역사 한내와 참세상이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