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하면 만사형통? NO! 체제가 낳은 모순들에 맞선 체제전환운동으로 나아가자

출처: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모든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10월 말 전국 만 18세 이상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잘 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19퍼센트에 그쳐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잘 못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72%에 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퇴진 촛불 시위가 폭발하기 직전인 2016년 10월 말에 최초로 20%선이 붕괴된 바 있다.

윤석열의 지지율이 박근혜 전 대통령 직무 정지가 결정되기 직전인 2016년 11월과 12월 즈음 평균 5%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것과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될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박근혜가 전통적이고 확고했던 지지층마저 상실하게 됐던 결정적 계기는 11~12월 내내 지속된 수백만 규모의 대중 투쟁 때문이었다. 2년 전부터 지속된 윤석열 퇴진 집회의 동원 규모가 ‘퇴진’이라는 요구에 비해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한데 지난 10월 말, 민주당 측의 주도로 명태균 씨와 윤석열 사이의 통화 녹취 내용이 공개되면서 양상은 다소 달라졌고, 강도 높게 공천 개입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대통령실이 내놓은 변명은 “취임 전 통화”라는 것이었고, 순수하게 법률적 해석을 놓고 본다면, 현재 공개된 녹취만으로 탄핵의 법적 요건을 충족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과거 박근혜 퇴진이 관철되는 과정에서 실제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헌법재판소의 엄밀한 법률 해석은 아니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실제 거리로 쏟아져 나와 ‘퇴진’을 요구했고, 수개월이 지난 후에도 그 힘이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진보정당이나 좌파의 준비가 극히 미비하긴 했지만, 작게나마 그 힘이 좀 더 급진적인 방향으로 쏠릴 가능성도 존재했다. 2016년 퇴진 촛불 초기 ‘하야’ 요구를 내거는 것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민주당이 꽁무니 쫓듯 입장을 변경했던 것도, 여당 새누리당 정치인들 중 비박계가 대중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탈한 것도 모두 대규모 시위 물결의 힘 때문이었다. 따라서 향후 정국의 향배 역시 달라진 정세, 민중의 달라진 삶의 조건에 맞는 요구가 어떤 방식으로 제기되느냐가 중요하다.

문제는 정치 고관심층 바깥에 존재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퇴진과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 이후 한국 사회와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게 됐고, 그 결과 깊은 실망과 환멸을 경험했다는 것에 있다. 따라서 같은 방식, 같은 논리로 ‘윤석열 퇴진 운동’이 과거처럼 확대되기란 쉽지 않다. 

퇴진 이후, 민주당도 대안이 아니다

대통령 윤석열이 한국 사회에 끔찍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데 우리 사회의 근원적 모순들은 하필 대통령이 윤석열이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그것은 넓게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연결돼 있고, 길게는 역사적으로 축적된 것이며, 1997년 외환위기 이래 신자유주의적 변화에 한정한다면 민주당-국민의힘 거대 양당이 일정하게 합의한 결과였다. 특히 파견법 제정, 비정규직 확대 등 우리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고 노동권을 무너뜨려온 결정을 해온 당사자는 다름 아닌 민주당이었다. 윤석열 정부와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국회는 매일같이 공방을 벌이지만, 기업 지원와 부자 감세, 군수산업 육성에 대해 서는 논쟁하지 않고 합의한다. 양당은 ‘주주 수익을 어떻게 환원할지’에 대해서는 잘도 합의하지만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은 신경쓰지 않는다. 부동산에 대한 세금 부과는 걱정하지만 서민들의 임대료 부담은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책 역시 별 차이가 없다. 서로가 “김건희 방탄”, “이재명 방탄”이라며 말잔치를 벌이는 사이, 민중의 삶에 진짜 중요한 문제들은 어디서도 다뤄지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여부를 놓고 갈팡질팡하던 민주당은 결국 폐지로 입장을 정리했다. 윤석열 정부의 ‘부자감세’를 비판하는 한편 뒤에서는 동조해오더니 결국 윤석열과 같은 선택을 한 것이다. 퇴진 투쟁의 결론이 다시 민주당이라면, 뭐가 달라질까? 

곳곳에서 벌어지는 민중들의 투쟁을 단순하게 ‘윤석열이 퇴진해야 하는 이유’로 수렴시키고 만다면, 사회운동 스스로 체제의 모순 안에 머무르게 만든다. 불평등과 민주주의 위협 등에 맞선 불복종이 그저 ‘윤석열 퇴진’ 구호에서만 멈춘다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번갈아 대권을 장악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지난 민주당 정권들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파국적으로 만들어왔는지 똑똑히 지켜봤다. 이 신자유주의 세력은 진보적이지도, 노동자와 도시빈민, 성소수자를 위하지도, 그렇다고 유능하지도 않았다. 더 큰 분노를 조직하고, 위기를 반복하는 체제를 넘어서려면 윤석열 퇴진 투쟁의 성과가 단지 ‘정권교체’에 머물지 않도록, 지금-여기의 사회운동들을 체제전환으로 연결하고 조직해야 한다

체제전환운동으로 연결하기

지난 한 달 동안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는 시민 건강권, 성착취, 학생인권, 이주노동, 젠트리피케이션, 재난, 금융, 노동권 등을 주제로 여덟 차례에 걸쳐 진단 칼럼을 발표했다. 각각의 글들은 모두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한 사회운동적 관점을 제시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연결되어 있고, 그렇기에 사회운동이 달라진 모습으로 어떻게 싸워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시민 건강권' 편에서 필자 정성식(시민건강연구소)은 건강권이 보편적 인권이자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임을 전제하고,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건강하고 평등한 사회의 구축이 요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렇기에 “보편적 건강권 보장 운동과 체제전환 운동은 분리될 수 없”으며, 의료공공성을 강화하는 운동 속에서, 체제의 균열을 키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성착취는 체제의 문제다’ 편에서 필자 유랑(한국성폭력상담소)은 딥페이크 성착취물 제작과 공유가 만연한 상황과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디지털 성착취의 역사를 설명하고, 여성혐오와 성차별적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기술발전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성폭력과 성착취가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라는 점을 짚는다. 온라인상의 남초 커뮤니티에서 ‘디지털 고어 남성성’마저 포착되는 현실에서 “상대를 존중하고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시민성을 기를 수 있는 사회 기반”을 만들기 위해 포괄적 성교육과 성평등 교육을 제안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상황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정부 기조 아래 증폭됐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학생인권과 교육에 대한 글에서 필자 난다(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는 한국 교육에서 체벌의 역사와 특징을 정리하고, 열악한 교육 여건과 획일적인 교육과정, 경쟁적인 입시제도가 이런 모순을 지속시켜왔음을 환기한다. 그런 모순에 맞서며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탄생했지만, 과거의 질서를 지키려는 시도들 역시 강화돼 왔음을 경고하고, “어느 누구도 함부로 짓밟히지 않고 군림하지 않는 교육, (···) 서로의 다양함으로부터 배우고 함께 돌보는 교육은 체제 전환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네 번째로 ‘재난’ 문제를 다룬 박상은(플랫폼c)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재난’이 “자연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이고,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 구조로 인해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정쟁에 유리한 측면은 과잉 정치화되고 구조적 문제는 과소 정치화되는 경향을 환기하고, 재난 대책이 전문가 중심으로만 이뤄지면 오히려 재난 예방을 빌미로 사회 통제와 기존 질서가 강화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주노동’에 대해 다룬 글에서 김헌주(경북이주노동자센터)는 오늘날 국경 통제와 이주자 구분이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런 현실이 이주노동자들을 노예노동으로 내몰고 있으며, 등록과 미등록으로 구분하여 차별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이에 맞선 도전과 비판이 필요하며, 이는 곧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0월 25일 게시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글에서 이종건(옥바라지선교센터)은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의 결과로 오래된 가게와 지역 문화가 사라지는 과정에 대한 사례들을 언급하고, 이것이 본질적으로 도시 공간 재편으로 인한 임대료 상승과 원주민 퇴거 문제와 연결돼 있다고 설명한다. 소유권 중심의 체제는 세입자들의 불안정한 삶과 지역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골목에서부터 광장으로 소유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도시 체제를 만드는 운동을 제안한다. ‘금융’에 대한 글의 공동 필자 디디와 지음(공동체은행 빈고)은 이윤 추구가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된 현실, 재테크와 투자가 필수적인 생존 기술로 여겨지는 현실을 환기한다. 평범한 사람들을 불안에 시달리면서 부채인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체제를 넘어서려면 이윤 추구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한 자원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금융이 “각자가 전환을 시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소”이며, “다양한 전환의 실험과 운동을 연결하는 구체적 네트워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구체적인 대안 금융의 실천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에 대해 다룬 최민(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글은 변혁성을 잃어가고 노동자계급 내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노동운동을 환기한다. 노동자계급 내의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고 연대를 만들려면 노동운동 스스로 성평등, 평화, 기후위기 등 다양한 사회 문제들과 연결되어야 하고, 그렇게 차별·위계·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진짜 연대와 단결이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즉, 착취에 맞서는 노동운동의 강화는 노동운동이 자신의 울타리를 벗어나 여러 운동들과 연결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덧붙이는 말

홍명교는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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