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교섭', 화해 여지없는 대립

[논쟁] 논점 없는 찬반 발언, 토론 대신 실력 행사 국면으로
제34차 대의원대회, 전술 의미 잃어버린 '사회적 교섭'

조합원과 대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한 상황에서 의사 진행 중인 장면

19시간 30분 심의, 지금도 진행 중

민주노총 제34차 대의원대회도 무산되었다. 제1호 의안 '사회적 교섭(안) 승인 건'과 제2호 의안 '고용보험과 국가예산 확보 및 남북교류기금 사용 승인 건' 등 상정된 안건은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대의원대회는 제1호 의안을 다루는 데만 6시간 30분이라는 긴 사투의 시간을 보냈지만, 반대하는 대의원과 참관인의 실력 행사에 따라 표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난 33차 대의원대회 13시간에 6시간 30분을 더해 꼬박 19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교섭'은 여전히 '심의 중' 상태이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잡아먹을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제34차 대의원대회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두 개의 발언만 있었다. '사회적 교섭(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발언과 '사회적 교섭(안)'을 폐기하기 위한 발언. 두 발언 사이 화해 지점은 찾기 어려웠고, 두 발언 사이의 논점은 없었으며, 두 발언 사이의 거리는 갈수록 벌어졌다. 논리보다는 감정이, 설득보다는 삿대질이, 토론보다는 행동이 우선되었다. 두 발언은 적대적이었다.

34차 대의원대회에서 두 발언 사이에 화해와 절충과 타협을 중재하는 모습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차례도 발견되지 않았다. 발언과 표결 과정에서 보여진 것처럼 대의원 대부분은 이미 안건에 대한 충분한 정치적 판단을 하고 34차 대의원대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사회적 교섭'이 과연 무엇이기에 단결투쟁을 기풍으로 삼아온 십 수 년 민주노조운동을 순식간에 분열과 대립의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나. 찬반 토론을 벌인 대의원들의 발언에서 대립의 근거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11명 대의원 찬반 토론

반대 제1호 의안 토론에 들어간 시간은 4시 30분 경, 이현경 공공 대의원이 첫 반대 발언에 나섰다. 이현경 대의원은 "작년 파업투쟁 때 직권중재 나서고, 교섭 공간 열어주지 않았다. 교섭은 우리가 힘 있을 때 자본가들이 하자고 하는 게 교섭이다"라며 대 자본 투쟁에 있어서 '교섭'의 위치를 분명히 하였다. 이로부터 "사회적 교섭안을 일치단결 폐기하자. 2월 총파업투쟁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고 결의하자"라고 제안하였다.

찬성 김태일 대의원은 찬성 발언을 하였다. "노동운동 어렵다고 한다. 더 이상 기업단위 정규직 이해와 노조가 아니라 전체 1500만 산별 교섭, 사회적 교섭 아니고는 불가능하다"고 운을 떼었다. 이어서 "많은 분들이 투쟁 이야기한다. 이 자리 대부분 정규직이다. 지난 98년 이후 총파업 제대로 조직한 노조 어디 있나?"라고 물었다. 그리고 사회적 교섭이 필요한 이유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민주노총이 제대로 된 투쟁 조직하기 위해 교섭 필요, 둘재, 조합원 투쟁 쉽게 안 나선다. 조합원하고 의사소통 잘 해야 한다. 셋째, 실리주의 비판 있지만 노조에서 교섭 없이 제대로 된 성과를 챙기지 못한다. 작은 성과를 챙기면서 노동자에게 돌려주는 게 민주노총의 과제다. 넷째, 대의원의 대 자는 대신할 대자다. 조합원 다수가 노사정위 참여를 원하고 있다. 따라서 대의원은 조합원 의사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원장을 믿어보자는 의견도 덧붙였다.

반대 이어 반대 발언에 나선 김운영 대의원은 "민주노총 집행부만 못 보고 있는지, 노무현과 자본은 민주노총 포위하고 가둬 놓는데, 말이 좋아 교섭이지 거기 갇히는 걸 찬성하라는 이야기냐"며 포문을 열었다. "기업 대 노조의 사회 협약인지 몰라도 노무현이 노사평화선언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희망선언2005'와 사회대타협은 노무현정권이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민주노총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며 사회적 교섭과의 연관성을 지적했다. 사회적 교섭이 사회대타협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는 주장이었다.

찬성 박조수 사무금융 대의원은 찬성 발언을 이어갔다. 박총석 대의원은 "왜 자기 사업장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 않는가"라고 운을 떼었다. "지금 비정규직 투쟁한다 하면 사무직 노동자들 힘들다. 먹고살아야 하므로 도와주러 나갈 수 없다. 또 정규직 노동자의 한가지도 뺏기지 않고 그대로 유지한 채 사업장 내에서 비정규직 해결하자 하면 사업주들 안 듣는다"라며 현장의 상황이 어떠한 지를 웅변했다. 민주노총의 지도력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지도력 잃은 지 오래되었다. 국민 공감 얻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따라서 "국민들에게 약화된 힘을 다시 찾기 위해 사회적 교섭의 틀을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함께 하지 못하는 정규직 노동자들 생각하면서 사회적 양극화 해결을 위한 활용으로서 교섭을 추진하자"며 사회적 교섭안에 찬성 발언을 하였다.

의사를 진행 중인 이수호 위원장

반대 양동규 금속노조 대의원은 이수호 위원장의 제안이 근거 없는 낙관에 기초한다며 쏘아 붙였다. "현 정세와 사회적 교섭 과정에서 벌어질 의제, 그 전개 과정 모두가 불투명하다"고 짚고, 사회적 교섭은 "지금 일자리 나누어 줄 테니 구조조정과 임금을 양보하라는 것"이라며 정세적 성격을 언급했다. 양동규 대의원은 또 사회적 교섭에 앞서 비정규법안 처리에 관심심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리해고제와 비정규법안 즉각 철회, 그것을 전제하면 비정규 문제든 뭐든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하고 "그걸 왜 못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유럽에서도 8-90년대를 거쳐 사회적 교섭이 의미 있는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말하고, "무덤 속에 있는 걸 왜 끄집어내려 하느냐. 평등사회 노동해방 움켜쥐자"고 선동하기도 하였다.

찬성 김재하 공공 대의원은 올라온 사회적 교섭안이 일반 원칙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게 통과된다고 교섭이 열린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김제하 대의원은 "민주노총이 총연맹으로서 투쟁목표 놓고 가는데 교섭원칙 없는 건 말이 안 된다. 교섭 이야기를 하기만 하면 어용으로 몰린다"며 현장의 상황을 개탄하기도 하였다. 김재하 대의원은 "우리 힘이 압도적이면 교섭 필요 없다. 노동해방 깃발 들고 바로 나가면 된다"고 말하고 "단위노조에서도 교섭할 때 요구안 놓고 바로 교섭 던지지 않느냐"며 교섭에 무게를 더했다. 한편 "문제는 지도부를 믿지 못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대 강성신 금속 대의원은 대회장에 걸린 프랭카드의 투쟁과제들을 일일이 지적하며 반대 발언을 이어갔다. "노사정위가 대등한 교섭기구라 하는데 자본과 정부가 한 편이면 어떻게 동등하냐"고 물었다. 노사정 교섭이 "정권과 자본에게 우리 노동자의 목숨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다"라는 주장이었다. 대의원 자신도 "현장에서 쇠 빠지게 일한다. 조직 활동가이다. 파업 만들어간다. 투쟁 만들어간다"고 말하고, "조합원이 우리 지도부 배신한 적 없다. 항상 지도부가 기만과 배신을 했다"며 지난 과정에서 지도부가 보여준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짚었다. 강성신 대의원은 "이게 통과되면 현장에서는 민주노총이 만주노총이네, 금속연맹이 양철연맹이네 이런 말이 회자될 것이다. 민주가 만주 되는 것 볼 수 없고, 금속이 양철 되는 것 볼 수 없다"며 사회적 교섭에 반대할 것을 호소하였다.

찬성 이운호 대의원은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업장 돌아가서 총파업 투쟁 조직해서 막아야 하는데 2월 총파업 투쟁 만들어내고 막아낼 수 있겠느냐"라는 문제제기였다. 따라서 지금은 "활용 차원에서 사회적 교섭 기구 만드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이고, "노사정 기구가 우리가 요구하는 형태의 기구가 안 되면 중간에 안 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2월에 같이 이야기하자 해서 하반기 넘어가서 하되, 2월 비정규법안을 막기 위해서는 교섭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반대 계속해서 길이하 대의원이 발언하였다. "지금 시점은 사회적 교섭 논하기 전에 민주노총 중앙위 열어서 2월 총파업투쟁 따져야 할 시기"라고 못박았다. 안건을 다루는 제34차 대의원대회의 의미도 되짚었다. 길이하 대의원은 "사회적 교섭 강행 시점에 이 자리에 서 있는 대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노동사에 길이 남는 하루가 될 것이다. 한국 노동사에 투쟁보다 교섭으로 풀어가자는 결정 내리려고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심경을 피력했다.

찬성 다시 윤영규 보건의료 대의원은 투쟁보다 교섭을 강조했다. "지난 과거에 수많은 총파업 해왔다. 남발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왕왕 있었다"라고 말하고, "시원하게 교섭 없이 총파업만으로 하자는 것은 원칙적이고 선명한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투쟁은 당연히 배치하되 교섭 또한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윤영규 대의원은 "양극화 관련 대기업-중소기업, 조직-비조직, 정규-비정규직이 있고, 대기업에 정규직에 조직노동자와 중소기업 비조직의 중소사업 노동자 양극화를 민주노총이 총파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판"이라고 말했다.

반대 장승옥 대의원은 "지금 집행부는 성과 위주에 매몰되어 있다. 때가 아닌데 무리를 둔다"고 반대 의사를 비쳤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러 갔다가 방을 빼앗기고 쫓겨난다. 저들이 법안 통과시키면 총파업은 없다"고 짤라 말했다.

토론 종결 여부를 결정하는 표결 진행 장면, 단상은 대치중

'사회적 교섭', 더 이상 전술적 의미는 없고

의장이 토론을 종결한 시간은 5시 10분 경, 의장의 토론 종결과 회의 진행에 불만을 가진 조합원과 대의원 일부가 단상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소란이 이어졌고, 의장은 5시 45분 경 정회를 선포하였다.

'사회적 교섭' 찬반 토론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뒤에 안건으로 상정한 '5명씩 찬반 토론을 붙이자는 안'은 압도적 표차로 부결되었다. 찬반 토론이 마무리 된 대신 그 시간은 찬반 행동으로 채워졌다. 토론 국면은 마감되었고, 강행과 저지의 실력 행사 국면으로 이어졌다. 실력 행사는 이미 보도된 것처럼 극단의 양상을 띠었다. 용역과 신나와 소화기와 소방호스가 등장했고, 욕설과 멱살잡이와 무력이 난무했다.

대의원대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사회적 교섭'이 무엇이기에 민주노조운동을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분열과 폭력 사태로까지 내몰고 있나. 이윽고 제34차 대의원대회가 끝날 즈음 참석자들은 스스로 답을 헤아리는 모습이었다. 제34차 임시대의원대회, 민주노총 대의원에 있어 '사회적 교섭'은 더 이상 '전술'이 아니라 적인가 아인가를 편가르는 문제로 자리잡고 있었다.
덧붙이는 말

위 기사 내용 중 대의원 발언 내용은 발언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며, 인용의 책임은 기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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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원대회 , 사회적 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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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가 난다

    난 총파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난 궁금하다. DJ때부터 총파업하자고하자고 노래부르던
    동지들이 과연 뭐를 했던가. 무슨 얘기가 나와도 맨날
    총파업이다. 토론을 하재도 총파업이고, 토론중단하재도
    총파업하자고 노래를 한다. 그리고 무엇을 했나?
    단위 한 군데를 더 조직하기를 했나?
    대국민 선전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나?
    신문만 찍어낼 뿐이다. 그것도 적을 타격하는 신문이
    아니라, 지도부만 타격한다. 적은 단지 지도부를 욕하기
    위한 수사다. 적과 싸우지 않는 지도부를 욕하기 위한.
    그럼 지도부에게 적과 싸울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적이
    있나?

    난 지도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지도부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옛날에 지도부 욕하는 일에 힘을 싣던
    일을 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못봐주겠다.
    총파업, 현장도 단위도 없는 쪽에서, 총파업을 말하긴 쉽다.
    소위 직업적 활동가들, 총파업을 말하긴 쉽다. 왜냐하면
    대중운동을 하는게 아니니까.
    책임질 것이 없으니까.
    총파업 깨지고 개작살 나도, 어차피 지도부 책임이니까.
    만일 당신들이 조금이라도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면,
    노동계급의 진정한 적이다. 인간도 아니다.

    왜, 대중봉기하자고는 안 하시나?

  • ...

    책임이 두려워서 언제나 타협하고 말로만 총파업합니까?
    책임이 두려워서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는 대중으로 여기지도 않습니까?

  • 독자

    '찬성 박총석 사회보험 대의원'이 아니라 '박조수 사무금융연맹 손해보험노조 대의원'입니다.

  • 이정석 기자

    수정했습니다.

  • 정해진

    ㅈㄹ들을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