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의 밥을 위한 노래

[노래여 날아가라 : 문화활동가 인터뷰](3) - 3집 '숨'으로 다가오는 연영석 씨

  연영석 3집 '숨' 표지

홍대 앞은 참 많이 변했다. 주택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가난한 작가들은 '삐까번쩍'한 건물이 들어서면서 홍대 앞을 떠나게 되었고, 홍대 앞은 거대한 건물과 상업문화의 숲이 되어가고 있다. 홍대 앞 거대한 숲에서 삶을 노래하는 게으른 피 연영석 씨를 만났다. 연영석 씨는 1집 돼지다이어트, 2집 공장에 이어 3집 앨범 '숨'을 발표하고 자신의 삶, 우리 모두의 삶을 노래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비오는 날 전통찻집에서의 대화는 함께 나눴던 국화차의 내음 만큼이나 진하고 향기로웠다.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과 호흡하며 노래하는 것"


얼마 전 길지만 재미있는 노래마라톤이 진행되었다. 이 곳에 연영석 씨도 함께 했다. 연영석 씨의 홈페이지에 공연을 본 사람들이 "노래를 불러줘서 고마워요. 열정적 공연 대단했습니다"라고 남긴 글에서 연영석 씨의 열정적인 무대를 상상할 수 있었다. 거리에서 무수히 노래를 부르지만 밴드와 함께 공연을 구성해서 소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연영석 씨에게 또 다른 경험이자, 그동안 가슴에 맺혀 있던 무언가를 조금 풀어낼 수 있는 기회였다. "힘든 음반작업을 지나도 풀어낼 수 없었던 내 가슴속에 무언가를 조금은 풀어낼 수 있었어요.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노래부르는 것이에요"라며 공연을 회상했다.

연영석 씨에게 이번 앨범 작업은 너무나 힘든 작업이었다.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이번 앨범의 제목은 '숨'이다. "숨이라는 제목은 어떤 개념이 있다기 보다는 내 모습을 그대로 이야기 한 거예요. 내가 딛고 있는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버거웠어요" 그의 말에서는 세상의 짐을 온전히 짊어지려 하는 고뇌하는 민중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첫 숨을 쉬기 위해 지금의 질서를 파괴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지금의 숨 쉴 수 없는 사회를 모든 사람이 함께 숨쉬는 세상으로 만들려면 파괴해야 해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억압과 차별 등 모든 것들을 파괴해야 해요" 그는 숨쉬기 위해 어렵지만 파괴의 길을 걷는다.

"노래라는 것은 자신의 삶의 힘든 것들을 털어 버릴 수 있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데, 이번 앨범작업은 아무리 해도 가슴에 맺혀있는 것을 털어 버릴 수가 없었어요. 노래가 희망을 얘기해야 하는데, 나는 그런거 별로 안 좋아하고...사실 희망이 별로 안보이잖아. 내 노래는 왜 이렇게 힘들까...(웃음)"

3집 앨범 '숨', 숨쉬기 위한 파괴


3집 앨범에는 13곡이 실린다. 12곡 그리고 1곡은 보너스란다. "원래는 14곡이 실릴 예정이었어요. 마지막 곡이 있는데 '끝'이라는 노래예요. 내 이야기를 그대로 담은 노랜데, 나에게 더 이상 남은 것은 없다. 바닥이 났다. 끝이다. 그런 나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은 노래였어요. 근데 이 노래를 실으면 너무 우울해 질까봐 못 넣었어요" 그는 노래는 시대를 반영하고,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며 곡을 만드는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끝'이라는 노래는 이렇게 연영석 씨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노래인 듯 했다.

곡 소개를 부탁하자 녹음한지 오래 되어서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해서 기자는 당황하기도 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마지막 카드'라는 노래가 있어요. 이 노래는 카드 빚 때문에 마지막 카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예요. 카드 빚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 많잖아요. 카드 빚 때문에 아이를 던지고 자살한 엄마의 이야기는 저를 힘들게 했어요. '나약해'라는 노래는 전쟁 같은 일상 얘기예요. 전쟁 같은 일상, 나의 이익을 위해 누구를 죽여야 하는 세상, 그리고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구요. '빵'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가사는 아주 간단해요. 일하고 빵 먹고, 또 일하고 또 빵 먹고... 일에 중독 되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죠. '잃어버린 웃음'은 내 이야기예요. 관성화 된 삶에서 웃음을 잃어버리고, 사람도 만나기 싫었던 나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줬죠" 이번 앨범의 노래는 그가 생각하듯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를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오 나의 밥 오 나의 밥"


어느새 중견가수가 된 연영석 씨는 어떻게 노래를 부르게 됐을까? "원래 음악을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는 어린이 합창 전국대회에 나가서 1등도 했다니까요. 유일한 남자 소프라노였죠" 음악과 미술을 좋아했던 그는 화가가 되고 싶어서 미대에 갔다.

"대학에 가서 열심히 운동했죠. 근데 졸업할 때 쯤 되니까, 사회 나가면 뭘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막연히 현장에 가야 한다는 생각도 했구요. 그러면서 현장에 있는 문화 활동가 단위들을 만나게 되고, 문화예술생산자연합을 만들었어요. 그 속에는 영상, 음악, 미술, 글쓰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어요. 그때 작은하늘이라는 노래모임이 있었는데, 맨날 연습만 하는 거에요. 그 친구들 보면서 기능도 중요하지만 무슨 노래를 부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텐데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동안 내가 끄적 거렸던 글들을 모아서 연습실 앞에 붙여놨죠. 그 글들에 노래를 붙인 노래가 '전선은 있다' '동지에게' 같은 노래죠" 연영석 씨의 음악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한 친구가 기타를 치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마치 내가 처음 미술을 시작했을 때 마음이랑 비슷했어요. 그러면서 나도 음악을 해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죠. 나도 음악할 거다라고 농담처럼 떠들고 다녔죠" 20대 후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문화예술생산자연합을 운영했다. 하지만 생계와 여러 가지 문제로 사람들은 떠났고 결국 단체는 해소됐다.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단체를 해산하게 되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처음 죽음을 생각하게 되면서 운동하고 처음으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취직을 할까 생각하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을 장담할 수도 없고.... 그러다가 노래를 부르면 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전에 집회 걸게도 만들고, 현장에서 조각 전시회도 하니까 밥은 주더라구요. 밥도 먹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얼마나 좋아요. (웃음)" 그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지인 공연에 펑크난 게스트 자리를 채웠던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인터뷰 중에도 공연섭외와 음반작업 마무리 때문에 전화벨이 계속 울렸다. 연영석 씨는 이주노동자, 빈민, 장기투쟁사업장 등 가장 힘든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밥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현실과 현실을 넘어선 무엇을 이야기하고, 밥을 위해 노래한다. 그에게 밥은 노래를 부르기 위한 원동력이며, 노래의 소재이며, 노래의 모든 것이다.

일정보다 늦은 인터뷰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3집 앨범 기념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6월 4일 7시 30분 홍대앞 롤링홀에서 해요. 이것도 기사에 꼭 넣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그저 밥만 먹고 살수가 있나요. 밥도 먹고 살기가 힘드네요. 그저 밥만 먹고 살기도 힘드네요. 내가 세상에 살고 사는 이유 밥만 먹기 위한 건 아냐. 나도 나에게도 누구 못지 않은 꿈이 있었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작지만은 나의 꿈을 키우고 싶었어. 아 나도 꿈을 꾸긴 했었나. 나에게도 꿈이란게 있었나. 그래 나는 저주 받은 땅에 꿈도 잊었어. 한 치 두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이 땅에. 하루하루 살아가기조차 벅차하면서 저주 받은 청춘의 시간을 보낸다. 오 나의 밥 오 나의 밥
- 연영성 2집 공장 '밥' 가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