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이 인도 정부는 IMF의 권고에 맞춰 값싼 야자유 등 외국산 농산물 유입에 대한 시장 보호 조치를 점진적으로 완화함으로써 자국의 해당 농업 부문 생산체계를 붕괴시켰다는 것이다. 동 보고서는 '부채가 급증하면서 수많은 인도 농민은 결국 자살을 탈출구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안드라프라데시 주의 경우 1999년 200건이던 자살건수가 지난해에는 무려 2115건으로 10배 이상 폭증했다'고 지적했다. 차세대 BRICs로, IT 대국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인도의 한편에서는 초국적곡물자본들에 의한 농민들의 살육전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2003년 우여곡절 끝에 결국 한국과 칠레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됐다. 이 협정은 칠레의 농산물과 한국의 공산품이 서로 맞교환 되는 형태였다. 칠레의 농업은 초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세계 6대 메이저기업들이 전체 수출의 70% 이상을 점하고 있다. 칠레 농업을 이끌어 가는 생산주체는 재배 면적 2천 ha 이상의 기업농들이다. 미국계 다국적 기업인 돌과 유니프루티사가 업계 1,2위를 차지하며 과일 생산과 유통을 주도하고 있다. 칠레 포도의 경우 1998년 현재 세계 수출물량의 24%로 1위, 자두는 17%로 2위 키위, 아보카도, 사과, 배는 3위를 차지하는 등 과일 산업 부문에서 세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차피 정부의 대책으로 한국의 과수 농가는 살아남을 수 없는 ‘다윗과 골리앗’의 지형이었던 것이다.
▲ 6.20 총파업 기자회견 장면 |
다가오는 9월 정기국회 개원을 앞두고 국회 앞에는 정적의 긴장이 맴돌고 있다. 다 열어 제낀 농업시장에 마지막 보루로 남겼던 국민 주식의 쌀 협상 비준안 처리 때문이다. 협상을 마쳤으니 비준을 서둘러 받아야 명분이 서는 정부의 입장과 더 이상 빼앗길 생존권도 없는, 국민의 먹거리 권리를 지키기 위한 농민의 첨예한 입장이 격돌을 예고하고 있다. 질기고 질기게 지속되어 온 농민들의 싸움. 그 지친 마지막 끝 고리에 농민들은 다시 ‘식량 농업 사수’의 깃발을 움켜쥔다. 이번만은 농민들만 싸우게 해서는 안 된다는 선명한 과제를 남기면서.
천부인권과 헌법의 명문을 들이밀지 않아도 ‘태어난 이상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에, 그리고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야 할 기본적 책임과 의무가 국가에 있다. 모든 사람은 살아가기 위한 의,식,주,의료,교육 그리고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 등을 포함해 자신의 건강과 복지에 적절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실업, 질병, 장애, 노령 그밖에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사회보장을 누릴 권리를 갖고 있다. 그렇기에 유명무실할 지라도 국민연금이니 의료보험이니 강제적인 사회 보장제도가 있는 것 아닌가. 먹거리도 마찬가지다. 먹거리는 사회적으로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안전하게 보급되어야 한다. 공공재인 먹거리를 ‘보장하기’ 위한 응당의 강제적 제도와 보장책이 필요하다.
결론부터 말하자. 한국 농업은 거꾸로 가고 있다. 모두가 먹고 살수 있는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아닌 공급량 0%를 향한 경주를 하고 있다. 살아남고 살아가기 위한 농업을 육성하는 것이 아닌 맹목적인 비교우위론적 국제분업주의에 빠져, 책에나 나올법한 자유무역론의 경전을 되뇌이며 ‘농업시장 개방’을 대세라, ‘경쟁을 해야 살아 남는다’고 부르짖고 있다.
식량이 무기가 되는 멋진(?) 세상
한 월간지에서는 농업기획을 통해 “쌀을 비롯한 대부분의 농산물에 대한 수요는 가격 비(非)탄력적”이기 때문에 “쌀 수요량은 가격 변화에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며 ‘식량산업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나 ‘소리 없이 강한 전쟁’은 예전에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76년 자이르(현 콩고) 정부가 곡물 대금 결제를 지연하자 초국적 곡물기업인 콘티넨탈은 자이르의 밀 공급을 중단, 현금지불과 이듬해 밀의 독점 수입을 약속받고 나서야 수출을 재개했다. 1980년 우리나라 냉해의 냉해로 쌀이 부족하자 그 당시 미국 쌀 가격의 3배를 주고 샀으며 그 후로도 ‘5년간 살 것’을 약속했고, 그 미국 쌀 재고량이 1989년까지 남아 있기도 했었다. 1988년 사하라 이남의 최대 소맥 수입국인 나이지리아가 국내 식량생산 감소를 이유로 소맥 수입을 금지하자 초국적 곡물기업인 카길(Cargill)은 미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여 나이지리아의 섬유수출을 제재했다. 1994년도 일본에서 쌀 흉년이 들었을 때 다국적 곡물기업들은 쌀 가격을 3배까지 올린 바 있다.
또 이런 예도 있다. 지난 2002년 북핵이 현안으로 떠오르자 일본은 북한에 대한 식량공급을 중단했다. 당시 식량전달 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세계식량계획(WFP) 관계자들은 악화의 길을 걷고 있던 북한의 식량사정을 거론하며 일본 정부에 지원을 호소했으나 일본 정부에게 번번이 외면당했다. 국제적으로 일본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일본은 식량공급권을 놓고 정치적 줄다리기를 할 뿐이었다.
식량은 이미 무기가 되고 있다. 자연재해, 수급의 불안전성으로 인한 가격 파동 뿐만 아니라, 정치적 압박 수단이 되기도 하고, 한 나라의 정책을 좌지우지 할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런 예도 있다. 지난 1972년 세계 식량 파동이 크게 일었을 때, 당시 세계 곡물생산량이 3% 감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쌀과 밀의 국제가격이 367%, 212% 오르는 등 4개 곡물가격이 100% 이상 급등하는 사태를 보였다. 물론 80년대 이후에는 과잉생산이 더 문제가 되고 있지만, 농업이라는 특수성에 기반한 수급의 불안정성은 언제나 상존한다.
또한 농산물 무역을 구조를 보면, 수출은 미국, 캐나다, 호주를 비롯, 농업대국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 집중하고 있고, 수입은 일본, 한국,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를 비롯하여, 아프리카, 태평양 연안 개도국 등으로 확대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수출은 소수 국가로 집중되고, 수입은 다수의 국가로 확대되는 세계적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소수의 몇몇 나라가 세계 전체 곡물공급을 좌우하고 있는 것에 대한 곡물 무역구조의 내재적인 불안 요인이기도 하다.
또 다른 불안요소로 중국시장의 변화, 세계총인구의 증가 추세 그리고 1인당 곡물 소비량의 증가를 빼 놓을 수 없다. 한 마디로 세계의 곡물시장은 생산자 독점, 환경, 구조적인 불안정성이 언제나 잠복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생산량과 자급률의 위험한 함수
미국 농업부 (USDA)가 지난 2월 9일(05년) 발표한 세계곡물 수급전망에 의하면 2004/05년도 세계 곡물생산량은 전년대비 9.1%증가한 20억 2,087만톤, 소비량은 2.1% 증가한 19억 8,775만톤 그리고 기말 재고량은 9.5% 증가한 3억 8,220만 톤, 기말 재고율은 1.3% 포인트 증가한 19.2%로 전망했다. 세계곡물시장이 ‘공급과잉’ 되고 있음을 언급했다.
[출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
이쯤에서 한국의 식량자급률을 살펴보자. 식량자급률은 국내 농업생산이 국민 소비에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고 있는가를 평가할 수 있는 자료이다. 한국의 식량(곡류)자급률은 밑의 자료를 참고해도 알 수 있지만, 1970년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식용자급률(사료용 제외)은 1970년 86%에서 2002년 58%로 하락했으며, 사료용을 포함 자급률도 같은 기간에 81%에서 30%로 하락했다. 자급률은 쌀을 제외한 대부분 품목이 감소하는 추세이고, 특히 밀과 콩 등의 곡류와 육류의 자급률 하락추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자급률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 이 26%에 이르는 자급률을 떠 밭치고 있는 것은 ‘쌀’ 생산량에 따른 자급률이 녹아 있는 것.
쌀, 소맥, 옥수수, 대두는 동북아에서 식료 소비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4대 작물이다. 쌀은 중국, 한국, 일본 모두 주식으로 정착하고 있고, 한국은 유일하게 ‘쌀’의 자급을 유지하고 있을 뿐 그 외 소맥, 옥수수, 대두 등은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산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농협중앙회에서 발표한 ‘농산물 수입동향’의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농산물 수입액은 98년 46억6400만달러에서, 99년 46억8100만달 러, 2000년 51억500만달러, 2001년 53억2500만달러, 2002년 57억100만달러 로 5년 연속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과실류의 경우는 지난해 4억1900만달러어치가 수입돼 98년(1억9400만달러)의 2배를 넘어서기도 했다.
또한 이런 현상에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에 따라 매년 관세율이 낮아지져 가격 경쟁력이 높은 수입품들이 들어 올 수 있도록 물꼬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농업 더 개방할 시장이 없다는 것이 문제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의 방향은 이런 한국 농업의 취약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제 유일하게 자급률을 유지하고 있는 쌀 시장을 개방하겠다는 것, 그리고 이미 개방된 농산물들에 대한 관세조치들을 풀어낼 것이라는 것이다. 국민의 공분이 모아져야 할 부분은 농업과 국민의 먹거리를 대 놓고 포기하고 있는 정부의 무책임성과 도덕적 해이에 있다.
한국은 2003년을 기준 식품의 50% 이상, 주요곡물의 70%를 수입하고 있다. OECD 가입 30개국 중 곡물자급률이 27위에 해당할 정도로 식량자급기반은 매우 취약하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밀은 쌀 다음으로 중요한 곡물이지만 99.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 주요품목자급률추이 |
쌀 관세화유예로 2010년 MMA(Minimum Market Access: 최소시장접근, 의무수입) 10%의 물량이 수입되고 일정 물량의 식용판매가 허용된다면 쌀 자급률은 90-95%로 하락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만약 관세화로 협상이 타결된다면 국제시장가격, TE 수준 등에 따라 수입량이 결정되므로 사실 한국 ‘쌀’의 자급률이 어느 정도가 될지는 예측하기도 어렵다.
또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DDA(도하개발의제) 농업협상이 제5차 WTO 각료회의에서 논의된 의장 초안을 토대로 타결될 경우,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농업부문의 총소득은 15조원에서 9조원으로 감소하고, 자연감소분을 제외하고도 농업취업자 25~50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정했다. 더욱이 그들은 농촌 고령화의 산증인으로 대부분은 새로이 취업하기 어려운 50대 이상의 농민일 것이다.
죽어 가는 농민, 사라지는 농촌에 대한 단상
2004년 12월 1일 현재 통계청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농가수는 1,240천 가구, 농가 인구는 3,415천 명으로 각각 전년대비 1.9%(-24천 가구), 3.3%(-115천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0년간(1994~2004)의 연평균 농가 감소율은 2.3%로 나타났고, 10년 전에 비해 농가수는 20.4%(-318천 가구)가 감소됐다.
▲ 자료 : 통계청 |
[출처: 한국농촌경제연구소] |
이런 자료도 있다. 통계청이 밝힌 ‘2004년 농가 및 어가 경제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무현정부 출범 이후 2년 동안 국내 농가부채가 35%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농가 1가구당 부채는 2689만2000원으로, 참여정부 출범 전인 2002년 1989만8000원에 비해 3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농가부채 증가 규모는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 발효 직전인 1994년 788만5000원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3.4배나 늘어난 수치다.
국내 농가부채는 1995년 916만3000원, 2001년 2037만6000원으로 계속 증가하다가 2002년 1989만8000원으로 일시 감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2661만9000원)부터 다시 증가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그나마 이렇게 일시 감소할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같은 기간(2002~04년) 가구당 농가 소득이 2447만5000원에서 2900만1000원으로 18%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이런 자료도 있다. 지난 40여년 간 도시노동자가구와 농가의 소득을 가구 원 1인당 소득으로 비교한 자료이다. 1970년 전후와 1980년경을 제외하면 대체로 농가 가구원 1인당 소득이 도시노동자 가구 1인당 소득을 약간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1990년 이후 도시 노동자 가구 1인당 소득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그에 반면 농가 가구원 소득은 꾸준히 하락하여 2002년 현재는 2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2002년 당시 4인의 영농종사자에 의한 농업소득과 1인의 도시근로자에 의한 근로소득이 대등한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실정이다.
[출처: 한국농촌경제연구소] |
위의 예를 통계로 본 현 농촌의 단상이다. 농촌인구가 감소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꼽히는 고질적 농가부채와 농업소득의 감속의 문제가 여전히 산재해 있고, 그 상황은 더욱 심각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방안이 더 시급한 상황이지, 대책도 없이 ‘농가가 해결해라’ ‘농가가 자구책을 마련하라’는 식의 상황을 더 악화 시키는 정책들이 나와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정부의 누적된 농정실패에 반복되는 적자농사, 영농자금 대출, 쌀 수매대금 대출금 상황, 농가부채 누적의 악순환에, 재수 없어 연대보증선 사람이 덜컥 도망이라도 가는 날에는 정말 ‘절망’스럽지 않겠나.
비교우위의 환상을 거둬라
한국 농가의 주된 영농형태는 논벼 (51.5%), 채소(21.2%), 과수(11.0%)의 규모를 나타내고 있다. 이중 논벼농사를 주로 하는 농가는 전년대비 3.1%(-21천가구) 감소했고, 전체 농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유일하게 자급률을 채우고 있는 쌀 시장의 문제도 안정적 식량 공급의 문제를 넘어 현재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농민의 구조, 농민 생존권, 농업 구조조정과 직결 될 수밖에 없다.
비교우위론, 국제분업론. 참 그럴 듯하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커피를 재배해 한국에 수출하고, 한국은 그 나라에 필요한 공산품을 수출한다. 그러나 허점이 너무 많다. 아름다운 공식의 허점은 값싼 자원을 찾아다니는 초국적메이저곡물들은 산업과 농업생산을 전세계에 거쳐 분산시키며 우위론이 아닌 시장중심론으로 세계를 재편하고 있다는 냉혹한 현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틈새에서 대규모 생산자, 가공업자, 수출업자, 선적업자 등이 이득을 챙겨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비교우위는 지리적 여건과는 점점 더 무관해지고 있다. 그 보다는 임금을 억제하고 자원 이용권을 확보하며 정부에서 많은 보조금을 얻어낼 수 있는 소수의 권력, 전세계적으로 정부의 지원을 얻고 또 유도해낼 수 있는 거대 초국적자본의 권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연재기획 '세계화와 한국농업' 순서
1. 기획소개 '세계화와 한국농업'
2. 거꾸로 가는 한국농업
3. 농업의 세계화 누가 주도하는가
-UR에서 부터 WTO 까지
4. 경쟁력 지상주의를 그대로 답습하는 노무현 정권의 농정 - 누구를 위한 구조조정인가
5. 우리 농민은 정말 행복한가?
6. 친환경농업이 한국농업의 대안이 되려면...
7. 협동조합의 역할과 미래
8. 식량보장을 말 한다
9. 한국농업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