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군대에서 남성 동성애자 병사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힘과 동시에 동의 없는 에이즈 강제검진을 받아야했고, 병역기피의 목적으로 ‘동성애자라고 밝히는 경우가 많기에,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검증해야한다’며 성정체성 입증자료로 ‘성관계 사진’을 제출하라고 강요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수개월 동안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며, 우울증, 수면장애, 자살위험,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입고 전역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07년 10월, 군에 입대해 훈련소 생활을 마친 어느 병사가 자대를 배치 받은 이후 선임병, 군 간부에 의해 40여 차례 지속적인 언어적 신체적 성희롱, 성추행을 당한 충격적인 사건이 드러났다. 피해자는 언어적 성희롱을 당했고, 한 소대장은 피해자를 침대 위에 눕혀 올라타 치아로 목을 깨물며 침을 바르는 성폭행을 저질렀다. 피해자는 군 간부에게 가해자의 처벌 등 문제 해결을 원하며 사실을 털어놓고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하지만 이 순간부터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자’로 보호받기는커녕 남성 동성애자로써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을 밝혀야 하는 고충에 시달렸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쌓여갔고 자해를 네 차례나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그저 병역을 기피하는 수단으로 동성애를 악용한다고 판단하는 국방부는 자신들이 가하는 폭력에는 눈을 감고 ‘최근 3년 간 자살사고 2건, 현역복무부적합처리 25명’이라는 문제점만을 이야기하며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이하 관리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관리지침은 국방부의 조악한 동성애관으로 작성되었기에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절대 관리조차 할 수 없는 지침이다. 이 지침으로 성소수자들은 오히려 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느 성소수자가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폐쇄적인 생활공간에서 관심사병으로 인식되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주변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과 언어, 신체적 폭력에 눈감을 수 있을까? 임시방편으로 병원에 입실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비밀보장이 전혀 안 된다는 현실을 넘어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벌어지는 채혈 등을 버티며 생활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조악한 동성애관으로 인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며 상담과 체육, 동아리 활동을 권장 받아야 한다.
관리지침을 인권보호지침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 국방부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다. 반인권적 관리지침으로 입대를 압둔 성소수자들은 자신에게 처해질 예견되는 상황에 대해 두려워하며 걱정을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차별의 사각지대, 군대 안과 밖을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현실이다. 적어도 징병제를 유지하려한다면 차별과 인권유린에 대한 방지대책은 현실성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제도적으로 차별당하고 처벌당하는 동성애자, 성소수자
군대는 가장 폭력적인 위계질서와 다양성을 제거하는 것에 익숙해진 공간이다. 이 익숙함은 군대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성소수자들을 사회적 편견과 혐오를 이용해 통제하고 제도적 폭력으로 차별하고 처벌하고 있다. ‘군형법 제92조 (추행) 계간(鷄姦)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를 두어 처벌하고 있으며 국방부령 제556조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에서 동성애를 심신장애 중 ‘성적선호장애’로 분류, 차별하고 있다. 군대는 동성애자, 성소수자의 인권과 현실을 간과한 채 그들의 인권에 대하여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식의 시선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기본계획(NAP)를 통해 군형법 제92조 등 반인권적인 법률을 개정할 것을 국방부에 권고하였고, 2006년 2월 성관계사진 제출을 강요한 사건이 사회적 문제로 야기되었음에도 국방부는 ‘법률 폐지나 규정 개정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계간을 동성 간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한 인권단체들의 요구는 논의의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고, 오히려 국회에 군형법 상 추행, 계간을 더욱 세분화하여 가중처벌 하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했다.
군대가 저지르는 제도적 폭력을 거두지 않는 대선후보들은 차디찬 외면을 받을 뿐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후보들은 저마다 ‘임기 내 군 복무기간 단축하겠다’, ‘월급을 올려주겠다’ 등을 공약으로 쏟아내고 있다. 국방의 의무를 줄여주며 표심을 잡기에 급급할 뿐 군대를 변화시키려는 노력, 군대에 복무하는 병사들을 위한 인권정책은 찾기 힘들다. 이번 성소수자진영에서 각 후보에게 질의를 보내며 동성애자를 차별, 처벌하는 여러 정책에 대해 물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한국사회당 금민 후보, 그리고 무소속 이회창 후보만이 답변을 보내왔다. 답변 중 ‘군형법 92조 계간조항 삭제’에 대해 권영길, 금민 후보가 폐지입장을 전해왔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군대 내에서 동성애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과 군대 지휘체계의 문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후보를 비롯해 답변조차 없는 후보들의 모습은 ‘심히 유감’이며 이들의 인권 감수성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대선 주자들을 비롯해 한국사회가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연구 자료가 있다. 영국,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의 군 전문가 600여명과 광범위한 인터뷰를 통해 이들 국가에서 동성애자의 군 복무에 대해 연구한 Aaron Belkin에 따르면, ‘동성애자의 군복무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동성애자 차별과 고통의 문제 그리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배려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대선주자들은 군복무와 관련된 동성애자의 문제에 있어서 보편적 인권의 원칙을 견지하고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현재 군대 내 존재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을 외면하고 존재를 부정하며 그에 따른 차별과 처벌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우선, 지휘관은 물론 일반 병사들에게도 성소수자가 ‘성폭력의 가해자, 병역 기피자, 에이즈를 퍼트리는 흉물’이 아닌 여러 성적 취향 가운데 하나를 갖고 있는 ‘사람’임을 적극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흔히 국방부가 이야기하는 ‘성군기 확립’, ‘안보 수호’가 ‘국가의 의무’를 다해야하는 남성들의 성정체성을 획일화 시키고 다른 정체성을 제거하는 핑계가 될 수 없다.
또한, 성소수자를 차별, 처벌하는 관련 조항들을 삭제해야하며, 군대에서 고통 받는 성소수자를 위해 ‘인권가이드라인, 인권지침서 발간’등의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로 인한 혜택은 성소수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전반적 군 제도를 변화시키려 노력하지 않고 군 복무 단축, 월급 상향 조정 등 립 서비스로 막기엔 그 현실이 너무나도 끔찍하다는 것을 성소수자를 비롯해 모든 유권자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대선 주자들은 그저 차디찬 외면을 받을 뿐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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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권 님은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