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서울본부가 비정규 노동센터 설립을 위해 서울시로부터 15억 원의 지원금을 받기로 한데 대한 반대 목소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오는 8월 22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에서 이 문제가 논의될 예정이라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국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민호, 김호정 공동의장을 비롯한 17명의 비정규 노조 대표자들과 9개 비정규직 노조들은 7일 오전 성명서를 내고 서울본부의 지원금 수령 시도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계기를 통해 전노협과 민주노총을 결성했던 민주노조의 자주성을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대표자들은 “이번 사안 자체가 전국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주는 사안이고, 서울본부만이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 이와 유사한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며 “비정규노조 간부들 또한 이번을 계기로 반성적으로 돌아보며 원칙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며 성명서 발표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은 “김대중 정부 시절 국고지원금 및 정부 지원금에 대한 논의를 거쳐, 민주노총은 ‘건물, 토지 등 부동산과 최소한의 관리유지비를 포함한 비용으로 제한한다’는 원칙을 결정한 바 있다”며 “이는 정부가 국고지원금을 갖고 장난질 치며 한국노총 등을 관리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자주성과 민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같은 방식으로 정부 지원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정신’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서울시 예산지원은 사업비 항목으로 그동안 서울시가 한국노총에만 지원금을 줬던 것을 민주노총에게도 주겠다는 것”이라며 “‘서울시가 책정한 것인데 굳이 거부할 이유가 있나?’ 같은 이런 논리가 한국노총이 정부 지원금을 받을 때 스스로를 합리화하던 논리”라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대표자들은 이어 서울본부 지원금 수령을 통한 비정규직 사업이 지난 10년 간 민주노총이 전조직적으로 진행한 미조직-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민주노총은 정부나 자본에게 돈을 구걸한 것이 아니라 조합원의 십시일반으로, 자주적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전략조직화를 진행해 왔다”며 “지자체 돈을 지원받아 ‘비정규직 조직화’를 하겠다고 명분을 내세우는 일이 정당화되면 어떻게 자주적인 전략조직화 기금 마련 사업을 논의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지역본부별로 광역지자체와 시청, 구청 등 말이 통하거나 친분이 있는 지자체를 졸라 돈을 지원받는 방식이 정당화되면 민주노조의 자주적인 조직화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서울본부의 계획이 ‘비정규 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인지에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서울본부가 서울시에 제출할 용도로 작성한 15억의 세부 내역은 장학사업에만 절반 가까운 7억, 정책연구사업에 3억, 교육사업과 법률구조사업에 약 3억, 복지 지원사업에 1억 3천 등이다.
대표자들은 “비정규 센터에 걸맞는 활동이라 할 ‘비정규직 노조활동 보장사업’에는 총액의 3.3%에 불과한 5천만 원이 전부”라며 “이건 사실상 장학회나 다름없으며, 서울시가 책정한 민주노총 지원금 역시 ‘비정규 센터’나 ‘비정규직 조직화 지원’과는 전혀 관계없는 장학사업·복지사업 지원 성격”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비정규직 당사자들로서 참으로 허탈하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서울본부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지자체 지원금을 받고 있는 지역본부들도 하나같이 대외적으로 ‘비정규직’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비정규직 사업을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인지, 돈이 필요하기에 ‘비정규직’이란 명분을 갖다 쓰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비정규직 대표자들은 “우리 비정규직 노조들도 어쩔 때는 원칙을 버리자는 강한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며 “살짝만 비겁해지면 노동조합이 아니라 노사협의회로 만족했을 것이고, 원칙을 조금만 수정했다면 전노협과 민주노총 건설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노총 민주화의 길을 걸었을 것이며, 조금만 비겁해지면 좀 더 큰 권력을 갖고 비정규직을 위해 일하겠노라고 포장하면서 민주통합당이나 안철수 품에 들어가는 것을 합리화할지도 모른다”고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갖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이 민주노조에 남아 있는 이유는, 민주노조가 지자체에서 수십억을 받아와 생계비 보전이나 복지 혜택을 줄 것이라고 믿어서가 아니”라며 “내가 어떤 삶을 사는 것이 당당하고 정의에 맞닿는 일인지를 잘 알기에 민주노조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민주노총에 “중앙집행위에서 원칙과 중심을 분명히 재확인해 달라”며 “‘누가 뭐라 해도 이게 바로 민주노총이야!’라는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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