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은 아무 말 없이 영정 사진으로 남아있는 최 씨를 바라보는 일이 어색하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종범아’ 하고 부르면 ‘형’이라고 대답할 것만 같다. 그는 업무에서나 노조 활동에서나 누구보다도 열정적이다. 그와 함께 술 잔 기울이며 노조 활동에 나섰던 AS기사 김배성, 김용구 씨는 동생 최종범이 무척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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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조 연락책
최종범 씨는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 노조 결성 초기 멤버다. 최 씨는 동료 형들과 밥을 먹다 ‘우리도 노조를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김배성, 김용구 씨도 이 자리에 함께 있었다.
올해 7월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출범하기 전, 전국적으로 아래로부터 노조 결성 바람이 불었다. ‘무노조 경영’을 신념으로 삼는 삼성 사측이 모르게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최 씨는 천안센터에서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 “우리도 노조에 가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조 결성을 위한 최초의 연락책이 종범이예요. 종범이가 30분가량 직접 전화통화 하면서 우리도 노조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서류를 취합해서 주면 되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은 무엇인가? 등등 하나 하나 물었죠. 종범이가 통화 내용을 전부 녹음까지 하면서 말이죠. 지금 아니면 삼성에서 영원히 노조를 만들지 못 할 것 같았습니다. 바로 지금,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종범이가 용기를 내어 먼저 알아보기 시작한 겁니다”
몇몇이 적극적으로 노조 결성에 나섰고, 동료 기사들이 동참했다. 전국 삼성전자서비스 센터 중에서도 천안센터는 노조 조직률이 높은 편이다. “우리는 불합리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 “지금이 아니면 노조를 만들 수 없다”는 주문이 마법처럼 걸리기 시작했다.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 월급이 적으면 월급이 적다,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어야 하죠. 아파해야만 세상이 변하는 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죠. 그래서 노조가 생긴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섰어요”
최 씨는 노조 활동에 적극적이다. 매일 밤늦게까지 근무하던 그가, 노조 결정 흐름에 동참하면서 어디서 시위한다고 하면 피켓 들고 쫓아가고, 노조 모임이 있으면 찾아갔단다. 김배성 씨는 지난 10월 26일, 서울 영등포센터 앞 집회에 갔다 내려오던 길에 그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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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범(가운데) 씨와 천안, 아산센터 등지의 조합원들이 노조 활동을 마치고 버스 타고 내려오는 모습니다 [출처: 삼성전자서비스 동료 AS기사] |
“종범이가 버스에서 ‘형님! 노조 활동 선봉에 서실 거죠?’라고 하더군요. 버스에서 그 얘기를 듣던 동료들이 농담 반 진단 반 한 마디씩 던졌어요. 그러자 종범이가 ‘형님 걱정하지 마요. 내가 선봉에 서면 따라오시면 되요. 형님이 뒤에 있어주면 든든해요’라고 했어요. 사람들에게 자신이 노조 활동의 선봉에 설 테니 걱정 말고 같이 가자고 말했죠”
최 씨가 목숨을 끊기 이틀 전, 비가 내리는 날 최종범 씨와 김배성, 김용구 씨 셋은 함께 막걸리를 마셨다. 이들이 자주 가는 막걸리 집이다. 그 막걸리 집에서, 형들은 속 깊은 최 씨가 참 고마웠다.
“종범이가 ‘형들 매일 저녁 노조 임원들 만나서 저녁 먹고 하느라 돈 쓰는 데, 사비로 쓰지요?’하고 묻더군요. 그래서 ‘그렇다’고 하니까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노조 회의 시간에 얘기해서 5천 원씩 회비 더 걷도록 해 볼게요’라고 하더군요. 우리가 ‘괜찮다. 나중에 힘들어지면 얘기할게’라고 종범이에게 말했습니다. 너무 고마웠어요. 그렇게 속이 깊었어요”
‘금속노조가’를 좋아했던 최 씨는 노래방 노래 목록에도 이 노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래방에서 마이크 잡고 목청 터지게 금속노조가를 불러보고 싶다던 최 씨였다. 가장 좋아하는 노동가 1순위는 금속노조가였고 그 다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과 ‘파업가’ 였단다.
“종범이가 가수 빰 치게 노래를 잘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노동가만 부르면 대중가요보다 못했죠(웃음). 처음 불러보는 노래인데다가, 일반가요를 부르는 방식하고는 좀 다르잖아요. 리듬이나 박자나. 그래서 우리가 종범이가 금속노조가 부른 것을 녹음해서 종범이에게 다시 들려줬죠. 우리는 그렇게 노동가를 연습했어요”
#2. 돈키호테
김용구 씨는 최 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시위를 하다 우연히 최 씨가 사는 동네 세탁소집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 아주머니는 종범 씨를 가리켜 ‘바지 수선을 자주 맡겼던 사람’이라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단다. 제품 수리를 하다보면 옷이 찢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최 씨는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새 옷을 사지 않고 아껴 입었단다.
“AS기사들이 대체로 그렇지만, 종범이는 아파도 밤늦게까지 일했어요. 일에 대해 굉장히 열정적이었어요. 난간에 매달려 에어컨 작업할 때, 너무 위험하니까 내가 몸 좀 생각하면서 하라고 했죠. 종범이도 조심해서 일했지만 그런 것 일일이 신경 쓰면 처리 건수가 적어지고, 월급을 적게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나조차도 실적을 위해 난간에 위태롭게 서게 되죠”
고인은 9월 한 달 동안 주말은커녕 추석 당일까지 일을 했다. 수리 자재가 없거나 재수리 요청 시 고객 자택에 방문해 제품을 수리해야 한다. 그렇게 일 해서 받은 9월 월급이 310만 원가량인데 차량 기름 값과 식대, 휴대전화비 등을 빼고 나면 250만원에 불과했다. 그것도 성수기 7, 8, 9월 월급이다. 또한 업무용으로 쓰는 차량도 고장 나면, 회사로부터 단 한 푼의 지원금 없이 자비로 수리해야 한다.
“종범이가 차량 수리비 120만원이 들었을 때, 술 마시면서 울더군요. 또 차량 문짝이 고장 나 80만 원가량 수리비가 나왔을 때 속상해했죠.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차량을 자비로 수리하는 게 당연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것마저 뼈아픈 일입니다. 돈 벌어봤자 차량 유지비, 핸드폰 비, 식사비로 나갑니다”
김용구 씨는 동생인 최 씨가 안쓰러웠다. 모친이 편찮으셔서 병원비를 감당해야 했다. 부인, 딸아이와 셋이 만들어 가는 단란한 가정생활을 꿈꾸었던 그는 집을 마련하기 위한 대출금도 갚아야했다.
“종범이는 손이고 뭐고 몸이 어디 성한 데가 없었어요.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으니까요. 기본적으로 생활비와 어머니 병원비, 집 마련을 위한 대출금이 나가니까요. 종범이가 조그마한 집을 천안 직산에 마련하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얼굴 보면 알잖아요? 나도 내 집이 생겼다는 행복감 말이에요. 종범이가 처가댁에서 살았거든요”
생계에 허덕였던 고인은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김배성 씨는 그런 고인을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라도 표현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수리 기술력을 익히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 혼자 이동하면서 수리 업무를 하고, 빨리빨리 제품을 수리해 건당 수를 올려야 최저임금에서 면할 수 있는 AS기사들은 차분히 업무를 배울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종범이는 자기가 한 번 마음먹으면 밀고 나가는 성격이었어요. 되던 안 되던 몸으로 한 번 부딪혀 보죠. 밤 11시, 12시까지 혼자 막 이거저것 해보면서 기술력도 빨리 익혔죠. 언젠가 동행해서 세탁기 수리하러 같이 한 적 있는데, 그때 친해졌죠. 그때 종범이가 ‘나는 한 시간이나 걸렸는데 형님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 고쳐요?’라고 해서 ‘혼자 하려고 하기보다 같이 배우면서 일해야 기술력 늘고 처리 건수도 늘어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우리에겐 그럴 시간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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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범 씨가 살아 생전 일하던 모습이다 [출처: 삼성전자서비스 동료 AS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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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범 씨의 손이란다. 최 씨의 동료는 손톱 아래 때가 빠지지 않을 정도로 고인이 일을 많이 했다고 했다. 고인의 손가락이 성한데가 없었단다 [출처: 삼성전자서비스 동료 AS기사] |
#3. 막걸리
동료들은 최 씨가 죽기 이틀 전, 그의 눈물을 봤다. 그날 막걸리 집에서 기울인 최 씨와 술잔이 마지막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최 씨는 막걸리 집에서 나와 옮긴 술집에서 경제적으로 힘들다며 눈물을 흘렸다.
“왜 이렇게 매일, 늦은 시간까지 일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평일 8시간만 일해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는 월급을 받는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만큼 월급이 적기 때문에 쉬는 날도 노예처럼 일할 수밖에 없었다. 동료 중에는 마이너스 통장까지 꽉 찬 친구들이 있어요. 종범이도 그렇게 일했는데, 어머니 병원비에 생활비에, 대출금에... 회사에서 가불도 받았습니다”
최 씨는 자기가 계산한 월급과 회사에서 받은 월급이 다르면 사장에게 항의했다.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스스로 건수를 따져 월급을 계산했을 때보다, 회사가 17~20건 가량 적게 일한 것으로 계산해 월급을 주기도 했다. ‘왜 내가 일한 것보다 월급이 적냐’고 항의하면, 회사는 최 씨가 회사에서 가불 받은 돈을 언급하며 최 씨의 불만을 억눌렀단다.
“한 번은 종범이가 계산한 것보다 사장이 월급을 적게 주니까 찾아가서 항의했어요. 그랬더니 사장이 ‘너 가불 받은 돈 언제 갚을 거냐?’고 했어요. 종범이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죠. 정말 치사하지 않습니까? 사장은 종범이가 가불받은 돈을 약점으로 잡아서 ‘내가 당장이라도 가불액만큼 월급을 까버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니가 돈 한 두 푼 따질 입장이냐’고 윽박질렀어요”
김배성 씨와 김용구 씨는 장례를 치른 뒤, 최종범 씨와 자주 갔던 막걸리 집에 가서, 최 씨에게 마지막 술잔을 바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천년나무 아래 가서 최 씨를 맘껏 추억하고 싶다고 말했다. ‘울화통이 터지는 상황’이라 마음 같아서 지금이라도 막걸리 집에 가고 싶지만, 참고 있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열사가 마지막에 남긴 말, ‘동료들에게 부디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를 것을 지키는 일이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최 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제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으로 향한다.
“이 사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천안센터 협력사 삼성TPS 이제근 사장이 자진 사퇴해야 합니다. 그는 종범이에게 입에 담지도 못한 욕설과 폭언을 퍼붓고, 그를 죽음으로 내 몬 사람입니다. 이제근 사장이 얼마 전 ‘빈소에 와서 조문하겠다’며 ‘언제든지 불러달라’고 했어요. 그 말만 하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니들이 조문도 안 왔다며 나중에 나한테 개새끼라고 할 거 아냐’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사과할 마음이 없어요.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종범이가 죽고 나서 기자들에게 편지를 뿌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일단 이제근 사장이 업무를 보는 건 맞지 않아요. 본인 스스로 사표 내야 합니다. 그게 인간으로서의 도리죠. 하지만 문제는 이제근 사장은 바지사장이기 때문에 그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삼성전자서비스 본사에서 업무 지시 받고, 교육을 받았고, 아침저녁으로 미팅하며 본사에서 까였습니다. 위장도급의 장본인, 삼성전자서비스가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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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 기자는 미디어충청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충청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대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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