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에, 당신이 대답했습니다. 

[기고] “안녕합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안녕하지 못합니까?”라고

[편집자 주] 이 글은 성빛나(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씨가 학교에 붙인 대자보 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자보는 누군가에 의해 훼손됐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대학생에게 알리고자 성빛나 씨가 뉴스민에 기고한 글입니다.

  성빛나 씨가 대구대학교에 붙인 대자보 [출처: 뉴스민]

「맞습니다. 바야흐로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능력이 있으면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머리 아픈 정치적 논박일랑 접어두고 도서관으로 가서 공부하십시오. 남들보다 한발 앞서나가 좋은 직장을 얻으십시오. 좋은 직장을 얻어 중산층 가정을 꾸리고 안녕한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방금 당신이 읽은 것은 이 시대의 주기도문입니다. 당신을 앞만 보고 달려가게 하는 신성한 저 주문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더 저 주문을 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부족한 능력을 메꾸는 데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지방대와 수도권대학 졸업자 간 임금격차는 20%입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당신은 단지 지방대생이라는 이유로 수도권 졸업생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지방대생의 대기업 취업률은 수도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지방대생이 낸 대기업 공채 이력서는 아예 읽히지도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미 뒤처진 레이스 위에서 한발 앞서나가기 위해 이 시대의 주문을 남들보다 더 열심히 외워야만 했습니다.

유명 대학에 붙은 대자보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일파만파로 확산되어 너도나도 각자의 공간에서 자보를 써 붙이며 지금까지 사회에 무관심했던 자신을 돌아보거나 앞으로는 더는 홀로 안녕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을 때,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었을 당신을 생각해봅니다. 스마트폰 화면에 뜬 ‘안녕들 하십니까’ 뉴스를 엄지손가락으로 내리며 당신은 잠시 알 수 없는 감정에 잠겼다가 곧 다른 재미있는 기삿거리를 보며 복잡한 생각을 잊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초의 대자보가 붙었던 바로 그 대학에서 언젠가 경영학과 졸업을 앞둔 학부생이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며 교문을 박차고 나왔을 때, 세상은 기득권을 내려놓은 그 학생의 경이로운 결단에 박수를 보냈었지요. 그러나 이미 교문 밖에 나와 있던 우리, 더는 박차고 나갈 문이 없던 우리는 의아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처음부터, 버릴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선언한 이후 갈수록 비정규직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엄동설한에 우리는 남들보다 더 바싹 비정규직의 입구에 다가와 있습니다. 손끝이 시릴수록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내기란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대적으로 온기의 여유가 있는 위쪽보다 더 많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정치의 과잉’이라는 수도권과 달리 ‘진보의 무덤’인 이 곳 경상도에서는 조금이라도 이 시대의 주기도문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면 ‘빨갱이’소리를 듣는 게 일상입니다.

나는 만약 틀린 것을 틀렸다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할 수 없는 사회라면 기꺼이 빨갱이라는 이름표를 달고서라도 갈 길은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비난 뒤에 숨은 반공주의-반북주의의 혼연일치가 빚어낸 모든 부당한 탄압에 당당히 응수하고자 합니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용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정치세력들로 인해 우리는 건강한 정치가 싹트기 어려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부를 비판하는 일은 ‘체제전복’의 혐의를 받기에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비판의 의견이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는 불통 사회에서 정치는 단지 특정한 누군가의 소유물이자, 자본주의가 두른 민주적 겉치레에 지나지 않습니다. 재판대는 대선 기간, 수업 중 한겨레신문 스크랩을 나눠준 혐의로 영남대 유소희 교수에게 벌금을 내리고 유죄를 선언했습니다. 반면 수많은 댓글로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고 또 의도적인 악성댓글을 달아 부당선거를 자행한 국가기관에 대해서는 눈을 닫고, 귀를 닫고, 입을 닫았습니다. 수사과정에서 이러한 국가기관과 박 대통령 선거캠프 간의 연관성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제가 댓글로 대통령이 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일축했습니다. 과연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꿔 임기를 연장하고, 국회의원을 본인이 직접 임명하여 통치하고자 했던 독재자의 딸 다운 깡다구 앞에, 우리가 보내는 소름 끼치는 침묵은 이 사회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비단 후퇴하고 있는 것은 대의 민주주의라는 법 제도 상의 절차적 민주주의만이 아닙니다. KTX, 가스, 의료 민영화를 통해 국가는 온 국민이 누려야 할 공공재를 자본의 잇속을 챙기는 데 쏟아 붓기 바쁩니다. 철도노동자들은 노무현 정부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온 민영화 절차의 마지막 절차인 자회사 쪼개기와 부분 매각 흐름에 반대하는 파업으로 8,000명 가까이 직위해제를 당했습니다. 또한, 각종 미디어는 ‘연봉 6,000만원 귀족노조’, ‘민영화 아닌 자회사 설립’, ‘명분 없는 파업’, ‘무리한 임금인상안’ 등의 뭇매를 때리며 진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절대로 민간자본에 지분을 넘기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공공기금의 매각시도는 끊이지 않을 것이고 얼마든지 정관을 파기하고 민간매각의 길을 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절차를 밟아 민영화가 완료된 2002년 KT의 전례는 정부의 주장에 의혹을 제기하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임금인상 외에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파업은 불법으로 규정되기에 노동조합은 임금인상안을 제시했을 뿐 실제로 조합원들은 임금인상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철도파업이 국민의 발을 묶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국민의 발을 묶으려는 것이 정말 누구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철도민영화를 추진해 대형사고가 발생하고 요금이 치솟아 다시 국유화 조처를 한 외국의 수많은 실패한 전적들을 버젓이 알고 있음에도 ‘철도 경쟁체제 강화’라는 민영화행(行) 고속열차를 단행하는 것은 철도노동자와 국민들을 선로로 삼아 민간자본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함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송전탑 공사 강행 역시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묻습니다. 이웃 일본에서 벌어진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으면서도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면서까지 위험부담을 안으며 끊임없이 원전과 송전탑을 증설하려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전 세계적으로 원전을 폐쇄하는 흐름에 역행하는 그 이유는 건설업이 원전과 송전탑을 지음으로써 민자발전 부문에서 예외 없는 호황을 누리기 때문이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이미 개발된 기술인 자가발전이나 태양광 같은 새로운 에너지체계를 우리나라에 도입한다면 더 이상 원전을 짓지 않아도 되고 그렇다면 송전탑 또한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싸인 한 번에 공사가 ‘합법’이 되고, 국가의 행정대집행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폭력 앞에 보상보다도 삶의 터전을 지키고 싶었을 뿐인 사람들이 ‘불법’이 되어 쫓겨나고 잡혀가는 세상이 더 이상 법치국가가 맞기는 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며칠 전, 넬슨 만델라가 눈을 감았지요. 한때 그리도 존경했던 그분이 돌아가셨지만 저는 왜 하필 그 날 그가 죽었는지 몹시도 원망스러웠습니다. 남아공의 위대한 ‘별’이 지자 UN은 조기를 달고 전 세계가 애도의 마음을 전했지만 같은 시간 이 땅 밀양에서는 음독자살한 농민의 분향소가 경찰들에 의해 철거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던 두 죽음의 무게가 다른 사회, 추모가 허락되는 사람과 죽음의 흔적조차 무마되고 마는 사람이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죽음마저 불평등합니다. 국가가 힘 있는 자의 가진 것을 보호하고, 가지지 못한 힘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국가의 이름으로 단죄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행복한 지옥의 끝에 정말로 이 시대의 주기도문에서 말하는 ‘안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엄동설한에 칼바람까지 불어 닥치는 이때, 호주머니 속에서 덜덜 떨고 있을 당신의 손끝이 끝내 꽁꽁 얼어버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버리기 전에 이제는 그만 꺼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추위에 떨고 있을 손들을 따듯하게 잡아줄, 용기 있는 당신의 손을 기다리며.

사회과학을 공부하며, 더 나은 세상을 고민하는 빛나 (010-4501-4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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