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족들, 청와대 앞 밤샘 농성...“대통령 만나겠다”

오열하는 유족들, “제발 길 열어달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밤샘 연좌에 들어갔다.

경찰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하는 유족들을 가로막았다.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발이 묶인 유족들은 연좌를 하고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일부 유족들은 행진을 가로막은 경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의 영정을 들고 “제발 길을 열어달라”고 호소했다.


청와대 앞 무릎꿇은 세월호 유족들, “제발 길 열어주세요”

8일 밤 10시 경, 여의도 KBS 앞에 집결한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은 KBS의 오보와 보도국장의 막말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이 유족들을 가로막으면서 대치상황이 지속됐고, 유족들은 4시간 여 동안 KBS정문 앞에서 연좌를 이어갔다.

결국 KBS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한 유족들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발길을 돌렸다. 유족 100여 명을 비롯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시민 등 4백 여 명은 9일 새벽 3시경부터 광화문에 모여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아이의 영정을 안은 유족들은 “우리는 시위하러 온 게 아니다. KBS에 사과를 요구했으나 한 마디의 사과도 없었다. 이제 믿을 것은 대통령 밖에 없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 말씀만 드리고 싶다. 아이들의 죽음이 억울하고 헛되지 않도록 면담을 해 달라”고 호소하며 행진을 이어갔다.

또한 유족들은 “KBS 보도국장의 사과를 듣고 싶어 찾아갔으나 대규모 경찰 병력만 있었다. 우리가 범죄자냐. 우리는 죄인이 아니다. 길을 막지 말아달라”고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새벽 3시 54분 경, 유족들은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발이 묶였다. 경찰은 청와대로 향하는 골목을 경찰버스로 차단했으며, 병력을 배치해 유족들의 행진을 막았다. 유족들은 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했으며, 이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일부 유족들은 경찰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아이의 영정을 들고 “길을 제발 열어 달라.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하게 해 달라. 조금만 길을 열어주시면 기어서라도 가겠다”며 오열했다. 또한 “무능력한 엄마지만, 아이의 억울한 죽음을 꼭 밝히고 싶다”며 “우리가 강남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었으면, 장관 부인이었으면 이렇게 길을 막았겠나”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또 다른 유족은 “아이들 시신을 보면 모두 손톱에 멍이 들고 손이 골절돼 있다. 얼마나 몸부림을 쳤으면 그랬겠나. 얼마나 아이들이 추웠으면 오그라든 손을 펴면 다시 손이 오그라든다”며 “지금 나오는 아이들은 얼굴도 없다. 오로지 DNA로 부모를 확인한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애들을 안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아직도 팽목항에서 아이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새벽 넘어 동틀 때까지 청와대 앞 연좌농성 지속...유족들 오열

유족들은 새벽 4시 경부터 청운동 사무소 앞에 연좌를 시작했다. 배가 침몰하기 전,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영상도 차례로 공개했다.

사고 당일인 4월 16일, 이미 배가 가라앉았을 때인 저녁 6시 38분 경 찍힌 동영상도 공개됐다. 유족들은 “밤 6시 38분 경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때 까지도 단 한명의 해경도 잠수를 하지 않았다. 유족들이 그렇게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는데도 3일간 잠수 한 번 안했다. 그냥 기다리라고만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 영상에는 “부디 안전하게 구조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이라는 아이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한 아이가 “살아서 보자”는 말을 남겼다. 영상에서 아이들의 모습이 나올 때 마다 영정을 가슴에 품은 유족들은 오열했다. 영상에 찍힌 아이를 보며 “저 아이가 내 딸”이라며 외치기도 했다.

한 희생자 학생의 부친은 “가족들이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 배가 90도로 기운 상황이었는데, 해군이던 해경이던 구조에 나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왜 구조를 하지 않느냐고 하니, 조류가 세다며 기다리라고만 했다”며 “결국 아이들 모두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이런 세상이 안전한 세상이냐. 딸 아이의 장례를 치렀던 4월 25일은 딸 아이의 생일날이었다. 아이가 엄마 아빠를 부르며 살려달라고 얼마나 애원했겠나”며 눈물을 흘렀다.

가수가 꿈이었던 고 이보미 양의 부친은 딸 아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를 틀었다. 이보미 양이 부른 ‘거미의 꿈’이 청와대 앞에 울려 퍼졌다. 이 씨는 “우리 아이도 차디찬 물 속에서 추위와 싸우며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이 노래를 듣고 면담에 나서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족 고 모 씨는 수학여행에 떠나기 전, 딸아이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공개했다. 아빠의 핸드폰에는 ‘공주’라는 딸 아이의 애칭이 저장돼 있었다. 고 박성호 군의 모친은 “우리 아이들의 죽음이 묻혀서는 안된다.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죽었지만 내일은 또 다른 아이들이 죽을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은 죽었지만 아직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많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모두 함께 해 달라”며 “이 사회가 어떻게 이렇게 썩었나. 진상규명을 확실하게 해서 이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벽 4시경부터 청와대 앞에서 연좌 농성을 시작한 유족들은 3시간이 넘도록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 위에 앉아 있다. 어두운 새벽이 걷히고 어느새 동이 텄지만 청와대로 가는 길은 아직 깜깜하기만 하다.

태그

세월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윤지연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도주승

    브츠츠츠츠츷츷츠츠츠츠츠츷츠츷츠츠츷츠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