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제목 삐딱이 님께 - 저도 여자입니다.
번호 28 분류   조회/추천 790  /  26
글쓴이 이정원    
작성일 2002년 08월 05일 21시 21분 10초
안녕하세요. 이정원입니다.
빨리 답글을 올려야지 하고는 이제야 글을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먼저 변명을 하자면 한번도 그런 생각을 갖고 'be the reds' 작업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냥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면 정말 변명이지만, 나오는 여성과 남성 수를 세어가며 같은 횟수로 넣어야지 그런 생각도 없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길거리 응원에 열광한 것은 여성이고, 뜨거운 월드컵 열기 속에서 노동자 투쟁을 한 것은 남성이다.' 이런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삐딱이 님의 글을 읽고 저도 다시 한 번 사진을 보았습니다.
월드컵 길거리 응원에서 무리를 지어 있는 건 여성이 많더군요.
집회는 남성이 많구요.
아차, 싶었습니다.

하지만 삐딱이 님께서 얘기하신 것처럼 제가 일부러 그렇게하지 않았다는 건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저도 여자인데 아무리 제가 일부러 '여성은 길거리 응원에만 열심이고 노동자 생존권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이렇게 하겠습니까.

처음 이 사진이야기를 기획한 건 님께서 얘기하신 것처럼 월드컵에 가려진 노동이었습니다.

월드컵 개막전 날 한강대교 꼭대기에 올라가서 고공농성을 하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가 월드컵에 가려서 눈물을 흘리며 단신농성을 그만두어야 했던 시그네틱스 조합원들,
월드컵 전부터 이리저리 쫓겨다닌 노점상 노동자들, 산재인정하라며 거제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천막 농성을 벌이는 대우조선 노동자들, 언론재벌 조선일보와 싸우는 인쇄노동자들, 조막손을 가지고 다섯 살 때부터 축구공을 만드느라 눈이 멀어버린 인도의 소녀.
그뿐이겠습니까? 더 많지요.

그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여성, 남성이 아닌 사람들 얘기를 말입니다.
노동에 지친, 삶에 벼랑끝에 몰린 사람들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마음편히 축구를 TV로도 볼 수 없는 사람들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또, 축구를 보면서 젊어지고 환해진 우리 부모님들 얘기도 하고 싶었습니다.
오랜간만에 젊은이들과 하나되어 붉은 티셔츠 입고 얼굴에 스티커도 붙이고 거리로 나가 환하게 응원하는 우리 부모님들 이야기도 하고 싶었죠.

이런저런 일들로 사진기를 들고 원하는 사진을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할 얘기는 너무 많았고, 사진기를 메고 나갈 수 있는 곳은 ... 별로 없었습니다.
자본에 압력을 주려던 시그네틱스 조합원들은 열 이틀만에 눈물을 흘리며 단식을 그만두었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보아주지 않아서요. 저도 못 갔습니다. 가려던 날 단식을 풀었다고 했습니다. 가슴이 아프더군요. 게으른 저 때문에... 얼마전에 만났던 시그 조합원들 얼굴이 어른거렸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으면 더 많은 이야기를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텐데요.

요즘은 제가 사진 찍기가 힘이 듭니다. 다른 일을 맡게 되어서 그렇습니다.
이 사진들은 그나마 부서를 옮기기 전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다, 변명이네요.

처음엔 삐딱이 님의 이야기에 아무런 답변글을 올리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궁색한 변명이고, 사진은 사진으로 얘기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궁색한 변명이라도 올리기로 마음을 먹은 건 한 번도 성 비율로 이야기를 만드려고 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게 읽으셨다면...
잘못은 제가 있지요.
삐딱이 님께서 얘기하신 것처럼 이것저것 생각하고 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못 그런것이지요.

생각할 거리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번엔 더 신경쓰겠습니다.





>>> Writer : 삐딱이
> 자료나 영상을 생각하면서 잘 만드셨더군요
> 재미있게 봤습니다
>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아쉬움이 많았던 사람을 공감할 부분이 있더군요
>
> 다만 한가지 덧붙인다면....
> 사진이야기를 처음보고 나서 괜찮네.하는 생각과 함께 '왜 다 여자야'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붉은 악마로 대표되는 화면들에 나오는 사람들의 사진 중에 여자가 많아서 였을겁니다
> 그래서 재미삼아 표시를 하며서 세어봤더니...
> 붉은 악마에는 여자가 노동자들의 사진에는 단연 남자들이 많더군요
> 제 글을 보시면 뭐 그런것까지....하고 말씀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 만드신 분이 의도적으로
> '이번 월드컵에 더 열광한 사람들이 여자였다'
> 라는 메시지를 넣으실 생각이 아니였다면
> 'to be reds'에 대한 아쉬움일 것같아서 글을 올립니다
> 사진자료의 확보나 집회현장에 남자분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 이런 영상을 만드시는 분이 고민하셔야 할 부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
> 월드컵에 대한 바른 평가와
> 그 기간동안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의미를 담고 싶어서 영상을 만드신 것같고
> 그런 의미에는 저도 동조합니다
> 다만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 영상을 통해 암암리에 잘못된 선입견을 넣을 수 있다는 점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 영상의 힘은 무서운 것이니까요
> 더군다나 의도하지 않으셨는데 그런 인상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 앞으로 영상을 만드는데 한번쯤 더 고민해보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습니다
>
> 앞으로도 좋은 사진이야기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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