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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볼프 비어만 (박성희님)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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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볼프 비어만    
작성일 2000년 11월 08일 13시 10분 02초
볼프 비어만은 1936년 11월 15일에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들은 모두 공산주의자였고 노동자였다.
함부르크 부두에서 일하던 그의 아버지는 1933년 공산주의의 저항운동에 참여한후 1943년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되었다.
1953년 비어만은 동독으로 이주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어만은 '청년공병'에 가입하였고, 1950년에는 동베를린에서 '청년 공병여단(동독등지에서 생산성 향상 때문에 경쟁시키기 위한 집단의 최소단위)'의 리더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1953년 까지 하인리히 헤르쯔 중고등학교에서 수학한후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였으며 1959년-1963년 사이에는 철학과 수학을 전공하였다.

하지만 1957년-1959년 사이 그는 베를리너 앙상블의 연출보조를 맡는등 문화공연과 관련한 직업을 갖게 된다.
그후 그는 작곡가 한스 아이슬러를 통해 본격적인 문예인으로서의 길을 가게 된다. 1960년, 비어만은 글쓰기와 작곡에서 커다란 성과를 얻게되고 동독 주민들로 부터 열광적인 환호를 받는다.
1964년과 1965년 부활절, 그는 장벽을 넘어 서베를린에서 공연을 갖게된다. 하지만 동독 정부는 동독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그가 계속 서베를린에 남아 있거나 아니면 동독으로 돌아올 경우 동독정부에 대해 협조적일것을 종용한다.
그리고 65년 11월 이후 동독정부는 그의 노래와 문학을 금지시키기에 이르지만 동독 주민들 사이에는 손으로 직접 베껴 적은 그의 작품들과 복사된 그의 노래 테이프들이 점점 확산되어갔다. 이후 서독에서 망명자 신분으로 살아가던 그는 각 도시와 전 세계를 돌며 연주회를 하였으며 한결같이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1989년 이후 그는 독일통일과 자신의 정치적인 삶에 대한 수기를 발간하였으며 1993-1995년 사이에는 뒤셀도르프의 하이네 대학에서 초청교수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현재 오펜바흐, 휄더린, 뫼리케, 뷔히너 그리고 하인리히 하이네와 마찬가지로 독일문학의 거장중 하나로 불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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