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제목 동행
번호 193 분류   조회/추천 232  /  66
글쓴이 라우라    
작성일 2000년 12월 23일 15시 04분 49초
시 하나를 다시 읽었어요..
어떤 그림이 머리속에 그려지는데...
그 느낌이 좋아 옮깁니다...
음... 그냥 무슨 베스트 극장 하는 짤막한 단막극이 연상되는...
그런 느낌입니다

그렇게 춥지 않은 겨울...
졸음이 엄습하는 토요일 오후의 사무실에 앉아
이렇게 사연하나 보냅니다...

신청곡은요..

권진원 - 내 사람이여
Beatles - Wait
U.F.O - Try Me
Joan Baez - Geordie
Peter, Paul & Mary - Rock My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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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김남주

희미한 구름사이로
으스름 달빛 빛나고
바람은 불어 된새바람
솔밭 사이 황토밭 마른 수숫대를 흔든다

- 진눈개비가 오려나 보지요

달빛에 젖은 창백한 사내가 외투깃을 세우며
동행의 여자에게 다시 말을 붙였다

- 아까 그차가 막차였나 봐요
어떡하죠 저 땜에 차를 놓치게 돼서

여자는 자기보다 큰 보퉁이를 애꿏게 쥐어 뜯으며
미안해 했다
딴은 그놈의 보퉁이가 차를 그냥가게 했는지 모른다
차를 멈출 듯 하다가도 덩치 큰 짐을 보고 그랬는지
번번히 줄행랑을 놓고는 했으니까

- 아니어요
운전사가 심통이 나서 그랬을 것입니다
이쁜 아가씨와 함께 있는 못생긴 남자가 아니꼬와서 말입니다
그런데 아가씨 아가씨는 아까 자기를 소개하면서
자조 섞인 말투로 공순이라 했고
나는 나를 소개하면서 멋쩍게 웃으며 글쟁이라 했습니다
당신은 노동자 나는 시인 떳떳합시다

그리고 사내는 허리 굽혀 여자의 보퉁이를 어깨에 멨고
그러자 여자는 사내의 가방을 들고 뒤를 따랐다
가방에서는 고소하게 깨소금 냄새가 났다
읍내까지 시오릿 길은 험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노동자와 시인은 밤길을 재촉했다
살얼음이 깔린 개울을 건너고 고개를 넘었다
찾아갈 곳은 못 되더라 내 고향 어쩌고 저쩌고
나 태어나 이 강산에 투사가 되어 어쩌고 저쩌고
그들은 애움길을 돌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합의했다 너럭바위 언덕에서
읍내에 도착하면 대합실에서 한숨 붙이고
내일 아침 서울행 첫차를 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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