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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퍼,퍼 10회 올라왔습니다&베트남에서 온 편지
번호 258 분류   조회/추천 508  /  66
글쓴이 이지상    
작성일 2001년 02월 12일 16시 36분 39초
퍼.퍼 10회가 올라왔습니다.남들 다쉬는 빨간날 쉬지도 못하고 작업해주신

방송국장님 감사^.^

하루 밥 세끼 찾아먹는것도 참 어려운 일이지만 한달두번 엎데이트도

정말 어렵군요^.^ 다시한번 이해와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아래는 이번에 소개되는 베트남에서 온 편지의 뒷얘기 입니다

미안해요 베트남 음반에는 처음에 녹음했던 내용에 2절 가사를 붙이고

바이얼린과 첼로를 덧붙였습니다


사람이 사는 마을 2"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에 들어있는 베트남에서 온 편지라는 노래이야기 입니다
한겨레 21을 뒤적이다 이 글을 보았고 곧바로 노래를 만들어 그 다음날 녹음을 끝냈습니다
기록으로만 남기엔 참 가슴아린슬픔과 회한이 담긴 글입니다 -한겨레 21에서 옮겨왔습니다


여전사의 순애보, 전설이 되어…


한국군은 한 여인을 ‘해방전사’로 만들었다.

한국군의 개머리판에 머리를 찢기고 몸을 유린당했다는 레 티 응옥(당시 24살). 그는 한국군에 대한 복수심으로 유격대원이 됐고, 미군의 총탄에 맞아 짧은 생을 마쳐야 했다(그러나 푹빈촌 주민들은 그가 한국군과 싸우다 전사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국군에 대한 증오로 베트콩이 되다


쿠앙응아이성에 살고 있는 남편 톤 롱 히엔(63)을 찾아냈다. 군 의사로 외지를 떠돌며 근무하다 최근 퇴역해 고향인 쿠앙응아이성에 돌아왔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뒤 히엔은 재혼해 1남2녀를 뒀다. 한국 기자가 찾아와 지난날의 상처를 묻자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조용히 일어서 손님을 맞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제단 위의 초상을 들고 나왔다. 흰 아오자이를 입고,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젊은 여인의 얼굴이었다. 히엔은 그게 바로 옛 부인의 얼굴이라고 했다.

히엔은 당시 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의 간호사였다. 1958년 입산하기 전에 사랑하던 응옥과 약혼했고 65년 잠시 시간을 내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다시 산에 들아가고 응옥은 재회를 바라며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푹빈촌 학살이 일어난 66년 11월, 마을 주민들이 모두 참혹하게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아내도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 응옥이 산 속의 병원에 찾아온 것이다.

-한국군에 강간당했다는 말도 들었을 텐데…

“참혹하게 죽었을 것으로만 생각했던 아내가 내 앞에 나타나 너무나 반가웠다.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기뻤을 뿐이다.”

응옥은 10일쯤 산속의 야전병원에서 그와 함께 머물렀다. 응옥은 계속 산에 남기를 바랐다. 그러나 히엔은 그를 마을로 돌려보냈다. 집에 가 옷과 쌀을 사놓고 기다리면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며칠이 지난 뒤 히엔은 마을로 내려가 응옥을 데리고 함께 산을 올랐다.


-부인은 한국군에 대한 증오로 해방전선에 가담했나.

“맞다. 아내는 한국군에 대한 증오로 산에 올랐다. 양민학살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남편을 따라 혁명의 길에 들어섰다.”

-한국군과 싸우다 부인이 전사했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아니다. 미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야채를 뜯으러 갔다가 동지 2명을 살리고 숨졌다.”


응옥은 간호사로 일했다. 1969년 10월21일(음). 응옥은 동료 2명과 함께 부상자들한테 먹일 야채를 뜯어오는 임무를 맡았다. 점심을 해먹은 그는 ‘시에스타’(오수)시간이 되자 인근 초가집에 잠을 자러 갔다. 그런데 밥 지을 때 피운 연기가 미군의 눈에 띄고 말았다. 화장실에 가러 잠시 나온 응옥이 앞산에서 내려오는 미군을 발견했다. “미군이야! 미군이 온다!” 응옥이 외치는 소리에 동료 2명은 도망쳤다. 그러나 응옥은 미군의 총에 뒷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부인의 제사를 계속 지내고 있나.

“전에는 아내의 제단과 사진이 처갓집에 있었다. 제사를 내가 지내고 싶어 가져왔다. 정부에서 아내한테 나오는 열사 보조금은 지금도 아내의 부모가 받고 있다.”

-한국군 장교가 푹빈촌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가 찾아와 사죄하면 용서하겠는가.

“당시 한국군이 정말로 잘못했고 사죄하며 우리 가족을 찾아온다면 그것은 우리 가족한테 복(福)이다. 나는 따뜻하게 맞을 것이다. 우리는 전쟁을 잊기로 했다.”


7년을 헤어졌어도 순결을 지켰네


그에게 부인을 떠올리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던 그는 응옥이 죽었을 때 부인에게 바쳤던 시(詩)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담담하게 그 시를 읊었다.

"""""""""""""""""""""""""
우리 어릴 적 사랑할 때 나는 떠났네

임무를 맡아 나는 떠나고 당신은 기다림으로 청춘을 다 보냈네

우리 서로 만날 때면 눈물의 꽃을 피웠네

7년을 헤어졌어도 우리는 순결을 지켰네


여전히 푸르른 숲을 지나면

노을처럼 흐르는 강물

그대가 남긴 그날의 피가 내 가슴을 온통 적신다

당신은 오랜 기다림 으로 청춘을 다 보냈고

나또한 오랜 그리움 속에 인생을 다 보낸다

7년을 헤어 졌어도 우리는 순결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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