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사무실
사무실 한켠에서는 정태춘의 음악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전에 끝난 트랙을 다시 되돌립니다.
그래서 그 노래를 다시 한번 듣습니다.
"LA 스케치"
흥분된 음성으로 구호를 외치지도 않으면서도 충분히 카리스마에 전율까지 느끼게 하는 그 노래
꽤 오래전, 그러니까 아직 어렸을 때....
어느 잡지에서였던가
"미국은 더 이상 우리의 산타크로스가 아니다"
라는 글을 보았었습니다.
"미국 = 좋은 나라"
이런 생각을 (강요 받아서) 하고 있었기에
어린 제게 있어서는 좀 충격적인 내용이었지요
이런 거 봤다고 잡혀가는 게 아닐까 쫄기도 했던...
815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일제국주의의 폭압에서 벗어남을 기념하는 날
다가오는 2002년 8월15일은 미국한테서 진정한 자유를 되찾는
또 하나의 의미로 다가오는 민족해방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LA 스케치
해는 기울고 한낮 더위도 식어
아드모어 공원 주차장 벤치에는
시카노들이 둘러앉아 카드를 돌리고
그 어느 건물보다도 높은 가로수 빗자루
나무 꼭대기 잎사귀에 석양이 걸릴 때
길 옆 담벼락 그늘에 기대어 졸던
노랑머리의 실업자들이
구부정하게 일어나 동냥 그릇을 흔들어댄다
커다란 콜라 종이컵 안엔 몇 개의 쿼터 다임 니켈
남쪽 빈민가 흑인촌 담벼락마다
온통 크고 작은 알파벳 낙서들
아직 따가운 저녁 햇살과 검은 노인들 고요한 침묵만이
음- 프리웨이 잡초 비탈에도
시원한 물줄기의 스프링쿨러
물 젖은 엉겅퀴 기다란 줄기 캠리 차창 밖으로 스쳐가고
은밀한 비벌리 힐스 오르는 길목
티끌 먼지 하나 없는 로데오 거리
투명한 쇼윈도 안엔 자본보다도 권위적인
아- 첨단의 패션
LA 인터내셔널 에어포트 나오다
원유 퍼 올리는 두레박들을 봤지
붉은 산등성이 여기 저기 이리 끄덕 저리 끄덕
노을빛 함께 퍼올리는 철골들
어둠 깃들어 텅 빈 다운타운
커다란 박스들과 후진 텐트와 노숙자들
길가 건물 아래 줄줄이 자리 펴고 누워
빌딩 사이 초저녁 별을 기다리고
그림 같은 교외 주택가 언덕 길가 창문마다 아늑한 불빛
인적없는 초저녁 뽀얀 가로등
그 너머로 초승달이 먼저 뜬다
마켓 앞에서 식수를 받는 사람들
리쿼에서 개피 담배를 사는 사람들
버거킹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 사람들
아- 아메리카 사람들
캘리포니아의 밤은 깊어가고
불밝은 이층 한국 기원 코리아 타운
웨스트 에잇스 스트리트 코메리칸 오피스
주차장 긴 철문이 잠길 때
길 건너 초라한 아파트 어느 골목에서
LA 한밤의 정적을 깬다
"백인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미국에 와서 백인들을 잘 못 보겠어"
(따당, 따당땅, 따당 땅 땅)
한국 관광객 질겁에 간 떨어지는 총소리
따당 따당땅 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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