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제목 모과 나무가 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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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저녁꽃    
작성일 2003년 02월 03일 10시 34분 11초
학창시절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도시락을 먹기가 무섭게 건영이는 나의 손을 잡아끌며 어딘가로 가자는 시늉을 했다. 따라 간 곳은 체육관 옆에 있는 운동장 한 귀퉁이었다. 거기엔 모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건영이는 나를 향해 흡족하게 웃으며 이내 돌멩이들을 주워들고 열매를 향해 마구 던졌다. 열매들은 돌에 맞아 데굴데굴 땅바닥을 구르며 떨어졌다. 건영이는 내가 어른이 되면 모과향기가 나는 향수를 뿌리고 싶다던 말을 새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코끝이 찡했다. 모과가 노랗게 읽을 때를 기다리다가, 어렵게 기회를 만든 친구의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나는 그 후로 모과 열매를 얇게 저며 교복 자켓 윗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가끔씩 아니 어쩌면 너무나 자주, 삶이 허해져 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늘 건영이를 떠올리며 건영이가 나를 위해 써주었던 일기장을 편다. 그리움이 더해지면 어쩔 수 없이 나는 도서관으로 간다. 거기에서 고흐의 화집을 들추고 '아틀리에'(혹은 '고흐의 방'이라고 불림)라는 제목의 그림을 본다. 아무도 없는 빈방에 침대 하나와 덩그러니 놓여진 의자 두 개가 있는 아주 소박한 그림이다. 고흐가 그의 친구 고갱을 그리워하며 그렸다는 이 그림은, 고등학교 시절 도서관에서 나란히 의자를 돌려놓고 함께 창 밖을 바라보던 그때의 풍경 속으로 나를 데려다 줄 것만 같다.

건영아 너도 기억하니?
그 모과 나무가 있던 자리를
그리고 우리가 함께 있던 창 넓은 도서관을
항상 난 너와 있던 자리 아래 우리 우정을 세워 두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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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4년만에 다시 만난 친구 건영이를 위해 노래를 신청하고 싶네요
4년 전 늦은 밤 대전역 앞에서 주머니 속에 있던 동전을 두 손 가득 쏟아 주며 "그 동전은 다 나한테만 전화하라고 주는 거다."라고 말했던 친구의 따뜻한 웃음을 잊을 수가 없답니다

건영아,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마워
네가 힘들게 헤매이는 동안 난 그저 널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구나
내 미안함을 이렇게라도 달랠 수 있다면 좋겠다


노래신청: 꽃다지 <전화 카드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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