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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우편(통문연)

제목 [펌] 북 누나만난 백기완씨
번호 11 분류   조회/추천 799  /  97
글쓴이 박대련    
작성일 2000년 10월 16일 04시 36분 11초
13일 오전 11시30분 평양시 통일거리 평양단고기집 별실.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에 초청받아 방북한 백기완(68)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네살 터울의 누나 인숙(72)씨와 부둥켜 안고 말없이 울기만 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져 열세살, 열일곱살 꽃다운 나이에 헤어진 지 55년 만의 만남이었다.
“누나를 처음 보니 질경이가 떠오르더라고. 밟힐수록 끊임없이 자라는 질경이 말야. 헤어질 땐 정말 예쁜 꽃이었는데, 이젠 질경이처럼 쭈글쭈글한 노인이 돼버렸더라고. 나도 마찬가지지만….”

사무치는 씻김의 통곡 뒤에 백 소장은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 소식을 물었다. “63년에 돌아가셨어. 내가 살고 있는 해주에 모셨어.” 인숙씨는 다시 눈물을 찍으며 말을 이어갔다. “어머닌 ‘기완이가 꼭 돌아올 거야’라며 돌아가실 때도 눈을 감지 않으셨어.”

일순, 반세기 한많은 세월이 백 소장의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우리 여덟식구는 해방되고 나서 남북으로 나뉘어 살았어. 어머니하고 큰형, 누나, 할머니는 북에, 아버지, 둘째형, 나, 그리고 여동생은 남쪽에 살았지. 가끔 오갔는데, 전쟁이 나곤 소식이 끊겼어.” 비극은 이산으로 끝나지 않았다. 둘째 형은 전쟁 때 일등병으로 전사했고, 큰형은 ‘정치공작원’으로 남쪽에 내려왔다가 붙잡혀 10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누나도 어머니 기일을 모르더군. 아버지 기일이 10월12일이거든. 앞으로 아버지 어머니 제사를 함께 지내야겠어.” 백 소장은 13일 저녁 방북 대표단 환송연회가 열린 옥류관에서도 2시간 남짓 누나를 따로 만났다. 남매는 기약없는 이별이 아쉬운 듯, 또다시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평양특별취재단politics@hani.co.kr


...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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